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나를 독서 정체기에 빠뜨렸던 책이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와 광활한 대륙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용은 많고, 내가 알아야 할 중국의 숱한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갖가지 문화유산의 이야기들을 따라가기 벅찼다. 조금씩 나눠 읽다보니 보통 하루이틀정도에 끝나는 책을 일주일 가량 붙들고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읽어도 전부를 읽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 무지랭이가 읽기에는 내용이 방대했다. 중국편을 전부 읽은 것도 아니고 이번 실크로드 답사는 오아시스 도시마다 약간씩 다른 도시의 이야기들이다. 유홍준 작가님께서도 실크로드 답사기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많이 낯설기도 했지만 한두차례의 답사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이다. 보통의 답사기를 쓸 때는 대여섯차례를 다녀온 뒤 집필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조차 낯설고 버거운 실크로드의 답사를 내가 한번 읽어서 뭔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누란의 미인 발굴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한참 뒤에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누란의 미녀는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신은 모직물과 양피로 된 옷을 입고 가죽 신발을 신고 짚으로 만든 바구니가 뚜껑에 덮여있을 정도로 복구가 가능했다. 무려 3900년 전의 시신이었고 사망 당시 나이는 40~45세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몇 천 년동안 사라지니 않은 미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랍고 너무 신기했다.

"이 쿰타크 사막은 두 가지로 이름높다. 첫째는 신선 시내 중심가에서 불과 1킬로미터 밖에 덜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도심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막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모래 입자가 아주 고와서 바람에 이동하는 유동사막으로 모래 언덕이 바람결따라 굽이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무한대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장소의 유적지와 쇠퇴하고 번성했던 나라들의 역사 이야기가 읽어나가기 벅찼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중국의 역사를 배제할 수 없기에 공존했던 나라의 역사를 알아가는 여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작가님은 한두장 넘길 때마다 화려한 곳곳의 사진을 남겨서 유적지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고 환상적인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볼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각종 나무인형인데, 훙미롭게도 당시엔 페지의 재활용이 성행해서 페지로 망자에게 옷을 입히고 모자와 신발을 만들어주었으며, 나무 인형의 팔을 보면 종이를 꼬아서 만든 경우가 많다. 이것4이 오늘날에 와서는 페품이 아니라 엄청나게 중요한 생활사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다양한 문화재와 더불어 비숫한 예로 우리 나라 고구려나 통일신라에 있었던 문서와 문화재 이야기를 함께 곁들여 호기심을 자아낸다.

중국은 학자와 시인을 기리는 일에 끔찍할 정도로 지극해서 유작을 빛내는 동시에 위업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우리는 조상들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데 너무 무심하고 새로운 것들과 유행에 너무 바삐 움직이느라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를 가든 유적지 입구에 당도하기 전에 멀리 떨어져서 주변 경관과 함께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천수산석굴을 가면서 석굴이 홀연히 나타나기를 벼르고 별렀던 것은 바로 유적지 전체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답사와 기행문의 섞어 유적지와 문화, 역사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묻어나서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책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여행이나 유적지 답사의 즁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고작은 여행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다. 문화유산 답사는 특히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광할한 중국 대륙의 땅에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장면들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너를 처음 읽은 것은 출간 50년 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역주행의 신화로 세상이 떠뜰썩하던 몇 해전이었다. 2016년 즈음 큰 기대로 읽었던 책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이 지루하게 읽혀졌고, 그저 그런 소설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소설로 <스토너>를 꺼내면 의아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2018년에 책을 사두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스토너를 처음 만날때 내 모습은 때론 절망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으로 혼자 애쓰며 헤쳐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스토너의 슬프고 고독한 인생을 마음에서 밀어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독히도 나와 닮아 있는 연민에 지루하다고 멀찍히 두고 바라보는 책이었다.

이번에 <스토너>를 다시 읽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에 감사한다.
<스토너> 초판본은 절판되었던 1965년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의미있는 사전 서평단 이벤트에 내 이름이 올라 기뻤다.
의미있는 책을 소장하게 되는 일은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4년 전과 후의 내가 작게나마 어떤 성장의 진동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마음잡고 정독을 해 나갔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 입학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교수가 되어 사랑하고 결혼하며 쇠락해가는 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남들에게 인생소설이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지루함이 아니라 젼혀 새로운 소설로 다가왔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 속 진하게 올라오는 뭉클함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특별한 어떤 장치나 반전이 통쾌하게 그려지고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뿜어져 나오는 잔잔한 이야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스토너의 변화와 성장처럼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그려지는 이디스의 부분은 아쉬웠던 부분이라서 내가 여성 스토너가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디스를 남자로 바꿔서 이입해 읽어보기도 했다.)

"길고 주름진 얼굴이 예전에는 얇은 가죽처럼 강인해 보였지만, 지금은 아주 오래돼서 바짝 말라버린 종이처럼 약해 보였다. 스토너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시는구나. 1년, 2년, 아니 10년 뒤라도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거구나. 때 이른 상실감이 몰려와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해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자신을 문학적인 세계로 인도해준 스승의 죽음을 감지하며 상실감을 느끼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은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며 씁쓸해하는 스토너의 마음에 애틋해졌다.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고나면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상실감은 인정하기 싫은 죽음의 공포와 충격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는 슬롯을 땅에 묻으며,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도 울어줄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망자의 고독에 울음으로 보낸 사람은 스토너였다. 친구였으며, 동지였으며, 스승이던 교수 슬론의 죽음으로 함께 보낸 젊은 시절도 땅 속에 묻고 애착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마음에 가엾기도 했다.
죽음이 주는 상실감을 견디고 나면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도 한다. 남은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고 싶어지므로.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

나도 나이 마흔에 아이와 둘이 세상에 떨어져 나와 살면서 남들이 일찍 알고 배워버린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스토너의 마음에 내가 얹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스토너의 서툰 사랑에 묻어가게 되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스토너의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모습이 비쳐진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를 향한 마지막 인사에 눈물이 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우정을 원했다. 친구를 가까이 두고 친밀한 우정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게되면 포기할 것도 있고 혼돈 속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사람이 있을까?
삶을 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될 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있을까?

한동안 김훈 작가에게 빠져서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구절이 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더욱 평탄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지만 어느 순간 안정된 평지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들이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기고 더욱 평탄한 길이 나온다는 표헌은 힘든 여정에 들어선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스토너>를 읽고나서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이 결국은 죽음 앞에서 평지가 되는 것이라는 절묘함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생이기에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세월의 뒤안길을 돌고 돌다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마주한 누이같은 소설이라는 말에 동감이다.

자신의 삶을 실패라고 할 것도 없다. 희망과 사랑에 배신당하고 실패하고 실망과 불신을 만들고 나의 의도와 다른 삶을 살게 될지라도 결국은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며 스스로 관조하는 삶을 만들어간다.
결국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치열한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어떤 쓸모도 없음을 느끼며 자신의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이 고요히 힘이 빠지며 침묵하는 삶으로 종결되는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지 모른다. 빛처럼 환하게 비추다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
찬란한 빛 주변에 어둠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평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두 부분이 교집합처럼 만났다. 일부 과학에 관련한 전문 지식과 젠더에 관한 부분이다. 과학 중에서도 생소한 진화심리학이라니...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과학 중에서는 그나마 생물학 쪽이 조금 나은 편이고, 남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의 생각을 마음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상대를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를 나와서 절대 여대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은 공학을 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는 씩씩하다는 고정관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자란 세대이다. 남자답게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여자친구가 부러웠고, 섬세한 남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갖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쓰고 있다. 고정된 인간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일반화된 문장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찾고 반문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러한 문제는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저자처럼 민감한 부분을 소신있게 파고 드는 여성 지식인의 부재도 안타깝다. 인식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인데 나의 경우에는 딸을 키우면서 앙성평등, 혹은 젠더감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인지라 종종 나의 꼰대근성을 고쳐 먹곤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남성 과학자들이 논하는 세계가 혼란스럽고 터무니없음에 어떤 가설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성차별적 언사와 괴롭힘을 당한 여성을 대변한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나, 성차별적인 언사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각이 점차 깨우쳐지자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의 법칙까지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듯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성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작가의 논증들은 시의적절하게 남성과학자들의 문장을 파고들어 통쾌하다. 미국 사회에서도 과학자들의 논증에도 깔려있는 성차별이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놀랍기도 했다.

일부다처제와 전통적인 엄격한 일부일처제 모두에서, 여성의 성에는 족쇄가 채워지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성에도 제약을 가하지만, 성적 이중 잣대를 통해 남성에게 바람피울 수 있는 약간의 재량권을 준다.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독서모임의 주제로도 떠오른다. 남성의 자유로운 성적 관념에 비해 족쇄를 채우고 성차이에 대한 결정이 그 자체로서 이념적이이다. 나 역시 여자와 남자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며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 못했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니까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빠와 남동생을 우대한 습관이 배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댁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나를 낳은 엄마는 딸을 낳아 죄인처럼 살다가, 그 이듬해 남동생을 낳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그 때에는 웃으며 지나는 에피소드에 불과 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성차별이었을까?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남성와 여성을 나란히 툴애 가두지 않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민감하다.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의 수사처럼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진화심리학자 모두 성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를 떠받들고, 성적 이형성이 두드러진 사회들이 가장 평등주의적이지 않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제, 교육,직업적 기회를 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무시한다. 남성과 여성이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성차별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 사회들이 평등주의 사회에 근접한 사회이기 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어떤 편에서도 옹호하는 주장이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차별적인 언사나 모욕을 퍼붓는 사람들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올바른 이해는 사회를 제대로 보고 어떤 주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설픈 이념의 해석은 더욱 논란의 여지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직면할 때 제대로 된 개념의 숙지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이 드물게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위상을 남성 위에 놓으려는 시도인 줄 아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대체로 예로부터 두 성을 분리해온 장벽들을 허무는 일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선 순위와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며칠을 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과학 논문에 따른 성차별적 논증에 대한 반박의 글들이 어려웠다. 굉장한 혼란도 오고 공부하는 셈치고 읽고 쓰고 고치고 ...

그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수하며 접어 놓은 책장을 다시 펼치면 또 생소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읽어봐야했다.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니었던지라 나름 꽤 진보했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복잡한 여러 이론들을 한번에 이해하고 제대로 나의 주관을 세우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판에 박힌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친다면 반박정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읽어야 할 책에 얼떨결에 편승해서 저자의 생각과 의도와 동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방대한 지식인의 서사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나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생각에 동조해 볼 수 있어서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 책이다.

이런 오만한 주장들을 만날 때면,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제목이 딱 내 맘같은지 어려운 심리학적인 내용이지만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점검해 볼 수 있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독일의 심리학자 클라우스 베른하르트가 전하는 우울증과 번아웃에 관한 책이다. 우울증과 번아웃이라는 정신과 심리학적인 경계를 구분지어 치료 역시 달리 해야하는 영역이지만 항우울제 처방을 모든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우울증과 번아웃의 진짜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작가의 당부였다.

기본적으로 자가 치유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출발이지만 당장 작은 의욕조차 내기 어려운 상태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직관을 믿고 나에게 맞는 진단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

우울증과 번아웃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성질인 것이므로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활동 역시 충분히 쉬는 것이 아니므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열거된 우을증의 원인 10가지를 반대로 서술해본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가서 운동을 하며 무심코 먹는 무분별한 약을 조심하고, 영양은 골고루 섭취하고, 어떤 음식에 대하여 예민하지 않게 먹는 것이 좋은 습관이다. 또한 잘 먹고 잘자는 수면 관리와 적당한 인간 관계가 우울증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운동 부족으로 인한 수면부족도 원인으로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아침산책도 느슨해지고 피곤함과 일상의 지루함을 체험 중이다.

굳이 어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과민해진다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결국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건강을 좌우하므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알맞게 먹되 설탕에 대한 경고는 하고 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적당한 영양 섭취를 골고루 하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지만 소스, 음료수 등의 간식거리에 숨어 있는 설탕류의 과잉섭취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은 우려된다.

나도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져서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몸이 망가지면서 건강에 대한 공부를 했다.
원래부터 건강과 식습관에 대해 관심도 많아서 아이를 키울 때 모든 이유식과 간식은 시판용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서 먹일 정도로 첨가물에 대해 믿지 못했다. 지금도 파는 음료수나 식당 음식은 될 수 있음 배제하고 집밥 위주의 식단과 집에서 생과일을 갈아 마시거나 그냥 매실에 물을 타서 먹는 정도의 음료를 해주는 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눌러대던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온다.
건강관리사 자격증 공부하다가 내 몸의 상태가 교통사고 후유증이겠거니 하고 방치했던 점을 발견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내 몸 구석구석을 마구 공격하고 생활을 빈곤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버티고 살았는데 결국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면역력과 영양의 빈곤에서 오는 질환이었다. 진통제가 아니라 영양을 제대로 섭취해서 바닥까지 내려간 면역력을 키우고 끌어올려야 했던 것이다.

이런 몸을 방치하며 노숙자들과 자폐 아이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먹이고 감당하는 일을 20년 가까이 하다보니 내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번아웃과 함께 우울증의 신호였던 것이다.

힘든 일은 어떻게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번에 몰아친다.
몸과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세상에 혼자 떨어져 살게 되는 일이 생겨났다.
나의 우을증과 불안증은 극도로 예민해서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사람처럼 늘 쉼없이 두근거렸고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었던 날이 많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우울증이 올 수 밖에 없는 모든 상황이었다. 운동부족, 영양부족으로 인한 면역력의 결핍, 수면 부족, 만성염증으로 인한 무기력, 슬픔과 고민을 억누르고 참는 습관...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원인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저 몸이 곯았거니 하고 방치했을 뿐, 원인은 분명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과 영양부족이었을 것이다. 아는데 혼자 추스르기가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어둠의 터널을 지났다. 그 터널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이 어둠만 있을 뿐 도무지 빛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충분히 슬퍼해야 그 상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빠져나오는 시간도 다르다.
나의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주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병적으로 보이고 답답해 보이지만 나에겐 그 시간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불안과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역시 원인과 해야할 일은 알고 있다. 다만 일어설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무기력이 짓누르는 무게가 더 클 뿐이다.

일단 이런 경우 나역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일종의 회피였고 슬픔을 억누르는 기간이었다. 차츰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다.
책이 무작정 좋아서 나섰던 곳이 도서관이었고, 그런 모습을 모두 보아 준 사람들.
그 시작점에 늘품 독서모임 가족들이 있었다.
웃어도 슬픔이 보인다는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아주고 응원해주고 묵묵히 함께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기에 지금처럼 내 자신이 예전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 뿐아니라 다른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이겨내고 진심어린 위로의 말들은 서로를 웃기고 또 울렸다. 6년의 시간 동안 점차 달라지고 변화하는 모습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상승했다. 사람들을 만나 운동도 어울려서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을 자연스레 체험헸다.
젊은 시절 뼈 마디마디가 염증으로 부어 오르면 소염 진통제를 먹으며 또 일을 하고 봉사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혹사했다.
제대로 몸도 마음도 치료받지 못했던 시간과 내 마음에 스스로 용기를 주면서 다행히도 자가치료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나친 목의 사용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경추손상이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교통사고로 목을 다치고 나서 고생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지금도 목의 불편함으로 잠을 잘 못자고 어깨결림과 두통까지 동반한다.
때로는 일이 주는 부담보다 말 그대로 목을 짓누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옛날부터 목은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었고 심각한 위험에 처할 때 목의 비유를 많이 쓰곤한다.
우리의 목은 생각과 행동을 연결한다. 목의 모든 것이 정상일 때만 우리 목과 정신 사이에 정보가 문제없이 교환된다.

누구나 한번쯤 걸리는 흔한 감기처럼 우울증과 번아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마음이 병이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걸까, 번아웃에 걸린 걸까?
뇌가 우리 몸에 보내는 비상 경보기로서, 스스로는 도저히 쉴 생각을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강제휴식을 주고자 우리 뇌가 보내는 SOS신호일지 모른다. 우울증과 번아웃이라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 긍정적인 기능과 적절한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함께 가야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고 극복하며 행복한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이 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증이나 번아웃은 더이상 숨기고 부끄러운 병이 아니다. 드러내 놓고 손을 내밀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지치거나 시달리고, 고단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다.
힘들면 완벽하게 하려는 집착을 버리고 내려놓고 쉬어가는 거다. 갑작스런 무기력과 번아웃은 없다. 쌓아가고 있을 지도 모르는 마음의 짐과 감정을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한다.

"인생은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


행복은 당신이 누구고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나혼자 산다> 프로그램에서 박나래가 새로 이사한 집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집을 꾸미기 위해 이것 저것 주문하고 가구 배치를 하는데 터무니없이 커다란 화분에 웃음이 났다. 아기자기하게 작은 화분을 거실 창문에 쪼르르 놓고 싶었다는데 실제로 영접한 화분은 거실 천장을 쓸고 다닐 만큼 키가 컸다. 내가 식물을 키워보니 다 자란 식물보다는 작은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더 크던데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집이 넓어도 덩치가 커다란 화분 몇 개가 자리를 꽤나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맥시멀리스트인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짐으로 가득찬 집 안 풍경이 답답해 보였다.
무언가를 사서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필요한 것을 제대로 사거나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비우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자세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책은 결혼과 함께 호주에서 살게 된 작가가 생활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비우면서 시작하게 된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그림과 글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해준다.

지난 번에 제로웨이스트 운동 역시 독일 여행이후 삶이 변화되었는데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외국이 환경을 위한 여러가지 운동 실천과 더불어 친환경 제품을 좀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작가가 노력하는 것과 비슷한 나의 경험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도 맥시멀리스트는 아니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편이라 불필요하거나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버리거나 나눠주는 편이다.
물건을 살 때에는 몇 번을 생각하고 잘 쓸 것인지 꼼꼼하게 따지다 보면 충동구매를 피하고 뚫어져라 보던 물건도 시시해 보여 사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홈쇼핑의 경우에도 바로 결제하가기 보다는 무통장입금으로 해놓고 결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검하고 또 생각하고 지출을 한다.
화장품도 작가처럼 단순한 기초 화장만 하는 편이라 화장대에 화장품은 스킨 로션과 비비크림, 그리고 립밤과 눈썹 펜슬만 있다. 색조화장은 아예 하지 않아서 구매하지 않으니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쓰지 않아 뒹구는 제품들도 없다.

버릴 수 없는 것 중에 단연 으뜸은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이미 예전에 필요없다고 처분했던 일기와 편지들을 그리워하는 터라 웬만해서는 간직하고 싶다.
아이가 어릴때 입었던 우주복와 처음 신은 신발과 옷한벌 보관하고 유치원때부터 쓴 일기장과 앨범들은 아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2년이 넘어가도록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물건도 있는 걸 보면, 그것들은 분명 나에게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놔두었으니,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옷장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체형 덕분에 오래 된 옷도 다 입을 수 있기에 고물상에 가도 아깝지 않을 골동품 옷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멀쩡하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들락날락거린다.
게다가 나보다 훌쩍 자란 딸이 입지 않는 옷과 신발도 아까운 마음에 한번이라도, 일년이라도 더 내가 입게 된다. 늘어가는 것은 옷인데 외출하려면 마땅한게 없는 어이없고 대책없이 가득찬 옷장이다.
매번 버리고 정리를 해도 옷은 참 줄지않는 아이러니 중에 하나이다^^;;;

편한 옷과 자주 입는 옷은 정해져 있는데 혹시라도 외출하거나 모임에 나갈 때 입는다고 구색을 맞추어 채워두는 옷장을 또 한번 들여다본다.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복장을 유니크하게 유니폼화 시킨 일이 존경스럽다. 우리가 한가지 복장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만 단순하게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살림을 하게 되면서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한 가정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쓰레기양이다.​
놀라움을 넘어 죄책감까지 느끼기 시작한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이후였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우리 집, 내 공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 할 일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내다 버린 물건들의 행선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유리병을 재활용하는 일은 나도 일가견이 있다. 집에서 만든 피클이나 반찬을 나눠줄 때 유리병에 자주 주다보니 내가 다른 플라스틱 반찬통보다 유리병을 세척해서 쓴다는 것을 가까운 이웃은 알고 있다.
요긴하게 모아 둔 유리병은 소스병이나 반찬통이나 곡류 견과류 등을 보관할 때도 좋고 작은 물건을 담아 정리하기도 좋다.
요즘은 이쁘고 입구가 좁지 않은 아이들을 골라 수경재베 식물을 꽂아 두기까지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한 일이다.

물건을 무작정 사서 모으고 쟁여놓는 일도,
그렇다고 무작정 버리고 비워내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 생활을 위해서 물건을 살 때부터 신중해지는 것이 생활과 마음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더불어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지구에 사는 지구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는 문장이 와닿는다.

무심코 늘어나는 쓰레기를 줄이기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생수를 매일 한병을 마시면 한달에 30병이고 1년이면 360병이 쓰레기가 된다.
비닐 라벨을 분리해서 버리지 않는다면 재활용조차 되기 어려운 생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
비닐 봉지보다는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플라스틱보다는 종이 가방이나 유리병을,
그리고 샴푸나 세제보다는 비누를 사용해서 용기를 줄이고, 화장지 대신 손수건 사용 등 돌아보면 작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하다.

물론, 그만큼을 위한 수고로움과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건강해지고 덜 복잡해지는 일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으므로..
물건을 비우면서 나에게 꼭 필요하거나 가치있는 물건을 알게 된 것럼, 삶의 많은 것을 비우다보니 내게 남겨진 것들을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됐다.

정리가 안되는 삶의 부분들과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를 미련없이 비워내자 중요한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내게 소중한 것들만 신경쓰고, 마음주며 살아가고 싶다.
물건을 채우는 것만큼 나에게 편안하고 소중한 것들을 남기고 비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노력인지 행복하고 여백이 있는 풍요로움을 선물로 줄 것같다.

옷장과 이불장, 그리고 씽크대와 서랍장 속에 숨은 것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소일거리를 만들어 봐야겠다.
하나씩 정리하다보면 정말 내게 필요한 것들을 만날 수도 있고, 정돈된 주변이 정돈되고 가지런한 나로 ,

물건보다 진정으로 채워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