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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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두 부분이 교집합처럼 만났다. 일부 과학에 관련한 전문 지식과 젠더에 관한 부분이다. 과학 중에서도 생소한 진화심리학이라니...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과학 중에서는 그나마 생물학 쪽이 조금 나은 편이고, 남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의 생각을 마음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상대를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를 나와서 절대 여대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은 공학을 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는 씩씩하다는 고정관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자란 세대이다. 남자답게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여자친구가 부러웠고, 섬세한 남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갖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쓰고 있다. 고정된 인간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일반화된 문장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찾고 반문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러한 문제는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저자처럼 민감한 부분을 소신있게 파고 드는 여성 지식인의 부재도 안타깝다. 인식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인데 나의 경우에는 딸을 키우면서 앙성평등, 혹은 젠더감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인지라 종종 나의 꼰대근성을 고쳐 먹곤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남성 과학자들이 논하는 세계가 혼란스럽고 터무니없음에 어떤 가설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성차별적 언사와 괴롭힘을 당한 여성을 대변한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나, 성차별적인 언사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각이 점차 깨우쳐지자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의 법칙까지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듯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성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작가의 논증들은 시의적절하게 남성과학자들의 문장을 파고들어 통쾌하다. 미국 사회에서도 과학자들의 논증에도 깔려있는 성차별이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놀랍기도 했다.

일부다처제와 전통적인 엄격한 일부일처제 모두에서, 여성의 성에는 족쇄가 채워지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성에도 제약을 가하지만, 성적 이중 잣대를 통해 남성에게 바람피울 수 있는 약간의 재량권을 준다.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독서모임의 주제로도 떠오른다. 남성의 자유로운 성적 관념에 비해 족쇄를 채우고 성차이에 대한 결정이 그 자체로서 이념적이이다. 나 역시 여자와 남자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며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 못했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니까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빠와 남동생을 우대한 습관이 배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댁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나를 낳은 엄마는 딸을 낳아 죄인처럼 살다가, 그 이듬해 남동생을 낳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그 때에는 웃으며 지나는 에피소드에 불과 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성차별이었을까?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남성와 여성을 나란히 툴애 가두지 않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민감하다.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의 수사처럼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진화심리학자 모두 성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를 떠받들고, 성적 이형성이 두드러진 사회들이 가장 평등주의적이지 않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제, 교육,직업적 기회를 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무시한다. 남성과 여성이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성차별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 사회들이 평등주의 사회에 근접한 사회이기 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어떤 편에서도 옹호하는 주장이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차별적인 언사나 모욕을 퍼붓는 사람들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올바른 이해는 사회를 제대로 보고 어떤 주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설픈 이념의 해석은 더욱 논란의 여지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직면할 때 제대로 된 개념의 숙지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이 드물게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위상을 남성 위에 놓으려는 시도인 줄 아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대체로 예로부터 두 성을 분리해온 장벽들을 허무는 일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선 순위와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며칠을 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과학 논문에 따른 성차별적 논증에 대한 반박의 글들이 어려웠다. 굉장한 혼란도 오고 공부하는 셈치고 읽고 쓰고 고치고 ...

그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수하며 접어 놓은 책장을 다시 펼치면 또 생소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읽어봐야했다.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니었던지라 나름 꽤 진보했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복잡한 여러 이론들을 한번에 이해하고 제대로 나의 주관을 세우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판에 박힌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친다면 반박정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읽어야 할 책에 얼떨결에 편승해서 저자의 생각과 의도와 동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방대한 지식인의 서사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나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생각에 동조해 볼 수 있어서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 책이다.

이런 오만한 주장들을 만날 때면,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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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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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목이 딱 내 맘같은지 어려운 심리학적인 내용이지만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점검해 볼 수 있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독일의 심리학자 클라우스 베른하르트가 전하는 우울증과 번아웃에 관한 책이다. 우울증과 번아웃이라는 정신과 심리학적인 경계를 구분지어 치료 역시 달리 해야하는 영역이지만 항우울제 처방을 모든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우울증과 번아웃의 진짜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작가의 당부였다.

기본적으로 자가 치유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출발이지만 당장 작은 의욕조차 내기 어려운 상태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직관을 믿고 나에게 맞는 진단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

우울증과 번아웃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성질인 것이므로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활동 역시 충분히 쉬는 것이 아니므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열거된 우을증의 원인 10가지를 반대로 서술해본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가서 운동을 하며 무심코 먹는 무분별한 약을 조심하고, 영양은 골고루 섭취하고, 어떤 음식에 대하여 예민하지 않게 먹는 것이 좋은 습관이다. 또한 잘 먹고 잘자는 수면 관리와 적당한 인간 관계가 우울증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운동 부족으로 인한 수면부족도 원인으로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아침산책도 느슨해지고 피곤함과 일상의 지루함을 체험 중이다.

굳이 어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과민해진다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결국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건강을 좌우하므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알맞게 먹되 설탕에 대한 경고는 하고 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적당한 영양 섭취를 골고루 하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지만 소스, 음료수 등의 간식거리에 숨어 있는 설탕류의 과잉섭취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은 우려된다.

나도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져서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몸이 망가지면서 건강에 대한 공부를 했다.
원래부터 건강과 식습관에 대해 관심도 많아서 아이를 키울 때 모든 이유식과 간식은 시판용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서 먹일 정도로 첨가물에 대해 믿지 못했다. 지금도 파는 음료수나 식당 음식은 될 수 있음 배제하고 집밥 위주의 식단과 집에서 생과일을 갈아 마시거나 그냥 매실에 물을 타서 먹는 정도의 음료를 해주는 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눌러대던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온다.
건강관리사 자격증 공부하다가 내 몸의 상태가 교통사고 후유증이겠거니 하고 방치했던 점을 발견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내 몸 구석구석을 마구 공격하고 생활을 빈곤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버티고 살았는데 결국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면역력과 영양의 빈곤에서 오는 질환이었다. 진통제가 아니라 영양을 제대로 섭취해서 바닥까지 내려간 면역력을 키우고 끌어올려야 했던 것이다.

이런 몸을 방치하며 노숙자들과 자폐 아이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먹이고 감당하는 일을 20년 가까이 하다보니 내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번아웃과 함께 우울증의 신호였던 것이다.

힘든 일은 어떻게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번에 몰아친다.
몸과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세상에 혼자 떨어져 살게 되는 일이 생겨났다.
나의 우을증과 불안증은 극도로 예민해서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사람처럼 늘 쉼없이 두근거렸고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었던 날이 많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우울증이 올 수 밖에 없는 모든 상황이었다. 운동부족, 영양부족으로 인한 면역력의 결핍, 수면 부족, 만성염증으로 인한 무기력, 슬픔과 고민을 억누르고 참는 습관...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원인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저 몸이 곯았거니 하고 방치했을 뿐, 원인은 분명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과 영양부족이었을 것이다. 아는데 혼자 추스르기가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어둠의 터널을 지났다. 그 터널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이 어둠만 있을 뿐 도무지 빛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충분히 슬퍼해야 그 상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빠져나오는 시간도 다르다.
나의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주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병적으로 보이고 답답해 보이지만 나에겐 그 시간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불안과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역시 원인과 해야할 일은 알고 있다. 다만 일어설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무기력이 짓누르는 무게가 더 클 뿐이다.

일단 이런 경우 나역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일종의 회피였고 슬픔을 억누르는 기간이었다. 차츰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다.
책이 무작정 좋아서 나섰던 곳이 도서관이었고, 그런 모습을 모두 보아 준 사람들.
그 시작점에 늘품 독서모임 가족들이 있었다.
웃어도 슬픔이 보인다는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아주고 응원해주고 묵묵히 함께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기에 지금처럼 내 자신이 예전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 뿐아니라 다른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이겨내고 진심어린 위로의 말들은 서로를 웃기고 또 울렸다. 6년의 시간 동안 점차 달라지고 변화하는 모습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상승했다. 사람들을 만나 운동도 어울려서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을 자연스레 체험헸다.
젊은 시절 뼈 마디마디가 염증으로 부어 오르면 소염 진통제를 먹으며 또 일을 하고 봉사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혹사했다.
제대로 몸도 마음도 치료받지 못했던 시간과 내 마음에 스스로 용기를 주면서 다행히도 자가치료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나친 목의 사용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경추손상이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교통사고로 목을 다치고 나서 고생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지금도 목의 불편함으로 잠을 잘 못자고 어깨결림과 두통까지 동반한다.
때로는 일이 주는 부담보다 말 그대로 목을 짓누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옛날부터 목은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었고 심각한 위험에 처할 때 목의 비유를 많이 쓰곤한다.
우리의 목은 생각과 행동을 연결한다. 목의 모든 것이 정상일 때만 우리 목과 정신 사이에 정보가 문제없이 교환된다.

누구나 한번쯤 걸리는 흔한 감기처럼 우울증과 번아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마음이 병이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걸까, 번아웃에 걸린 걸까?
뇌가 우리 몸에 보내는 비상 경보기로서, 스스로는 도저히 쉴 생각을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강제휴식을 주고자 우리 뇌가 보내는 SOS신호일지 모른다. 우울증과 번아웃이라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 긍정적인 기능과 적절한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함께 가야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고 극복하며 행복한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이 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증이나 번아웃은 더이상 숨기고 부끄러운 병이 아니다. 드러내 놓고 손을 내밀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지치거나 시달리고, 고단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다.
힘들면 완벽하게 하려는 집착을 버리고 내려놓고 쉬어가는 거다. 갑작스런 무기력과 번아웃은 없다. 쌓아가고 있을 지도 모르는 마음의 짐과 감정을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한다.

"인생은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


행복은 당신이 누구고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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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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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혼자 산다> 프로그램에서 박나래가 새로 이사한 집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집을 꾸미기 위해 이것 저것 주문하고 가구 배치를 하는데 터무니없이 커다란 화분에 웃음이 났다. 아기자기하게 작은 화분을 거실 창문에 쪼르르 놓고 싶었다는데 실제로 영접한 화분은 거실 천장을 쓸고 다닐 만큼 키가 컸다. 내가 식물을 키워보니 다 자란 식물보다는 작은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더 크던데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집이 넓어도 덩치가 커다란 화분 몇 개가 자리를 꽤나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맥시멀리스트인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짐으로 가득찬 집 안 풍경이 답답해 보였다.
무언가를 사서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필요한 것을 제대로 사거나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비우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자세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책은 결혼과 함께 호주에서 살게 된 작가가 생활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비우면서 시작하게 된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그림과 글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해준다.

지난 번에 제로웨이스트 운동 역시 독일 여행이후 삶이 변화되었는데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외국이 환경을 위한 여러가지 운동 실천과 더불어 친환경 제품을 좀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작가가 노력하는 것과 비슷한 나의 경험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도 맥시멀리스트는 아니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편이라 불필요하거나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버리거나 나눠주는 편이다.
물건을 살 때에는 몇 번을 생각하고 잘 쓸 것인지 꼼꼼하게 따지다 보면 충동구매를 피하고 뚫어져라 보던 물건도 시시해 보여 사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홈쇼핑의 경우에도 바로 결제하가기 보다는 무통장입금으로 해놓고 결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검하고 또 생각하고 지출을 한다.
화장품도 작가처럼 단순한 기초 화장만 하는 편이라 화장대에 화장품은 스킨 로션과 비비크림, 그리고 립밤과 눈썹 펜슬만 있다. 색조화장은 아예 하지 않아서 구매하지 않으니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쓰지 않아 뒹구는 제품들도 없다.

버릴 수 없는 것 중에 단연 으뜸은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이미 예전에 필요없다고 처분했던 일기와 편지들을 그리워하는 터라 웬만해서는 간직하고 싶다.
아이가 어릴때 입었던 우주복와 처음 신은 신발과 옷한벌 보관하고 유치원때부터 쓴 일기장과 앨범들은 아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2년이 넘어가도록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물건도 있는 걸 보면, 그것들은 분명 나에게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놔두었으니,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옷장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체형 덕분에 오래 된 옷도 다 입을 수 있기에 고물상에 가도 아깝지 않을 골동품 옷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멀쩡하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들락날락거린다.
게다가 나보다 훌쩍 자란 딸이 입지 않는 옷과 신발도 아까운 마음에 한번이라도, 일년이라도 더 내가 입게 된다. 늘어가는 것은 옷인데 외출하려면 마땅한게 없는 어이없고 대책없이 가득찬 옷장이다.
매번 버리고 정리를 해도 옷은 참 줄지않는 아이러니 중에 하나이다^^;;;

편한 옷과 자주 입는 옷은 정해져 있는데 혹시라도 외출하거나 모임에 나갈 때 입는다고 구색을 맞추어 채워두는 옷장을 또 한번 들여다본다.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복장을 유니크하게 유니폼화 시킨 일이 존경스럽다. 우리가 한가지 복장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만 단순하게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살림을 하게 되면서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한 가정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쓰레기양이다.​
놀라움을 넘어 죄책감까지 느끼기 시작한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이후였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우리 집, 내 공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 할 일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내다 버린 물건들의 행선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유리병을 재활용하는 일은 나도 일가견이 있다. 집에서 만든 피클이나 반찬을 나눠줄 때 유리병에 자주 주다보니 내가 다른 플라스틱 반찬통보다 유리병을 세척해서 쓴다는 것을 가까운 이웃은 알고 있다.
요긴하게 모아 둔 유리병은 소스병이나 반찬통이나 곡류 견과류 등을 보관할 때도 좋고 작은 물건을 담아 정리하기도 좋다.
요즘은 이쁘고 입구가 좁지 않은 아이들을 골라 수경재베 식물을 꽂아 두기까지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한 일이다.

물건을 무작정 사서 모으고 쟁여놓는 일도,
그렇다고 무작정 버리고 비워내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 생활을 위해서 물건을 살 때부터 신중해지는 것이 생활과 마음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더불어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지구에 사는 지구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는 문장이 와닿는다.

무심코 늘어나는 쓰레기를 줄이기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생수를 매일 한병을 마시면 한달에 30병이고 1년이면 360병이 쓰레기가 된다.
비닐 라벨을 분리해서 버리지 않는다면 재활용조차 되기 어려운 생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
비닐 봉지보다는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플라스틱보다는 종이 가방이나 유리병을,
그리고 샴푸나 세제보다는 비누를 사용해서 용기를 줄이고, 화장지 대신 손수건 사용 등 돌아보면 작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하다.

물론, 그만큼을 위한 수고로움과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건강해지고 덜 복잡해지는 일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으므로..
물건을 비우면서 나에게 꼭 필요하거나 가치있는 물건을 알게 된 것럼, 삶의 많은 것을 비우다보니 내게 남겨진 것들을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됐다.

정리가 안되는 삶의 부분들과 생각, 그리고 인간관계를 미련없이 비워내자 중요한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내게 소중한 것들만 신경쓰고, 마음주며 살아가고 싶다.
물건을 채우는 것만큼 나에게 편안하고 소중한 것들을 남기고 비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노력인지 행복하고 여백이 있는 풍요로움을 선물로 줄 것같다.

옷장과 이불장, 그리고 씽크대와 서랍장 속에 숨은 것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소일거리를 만들어 봐야겠다.
하나씩 정리하다보면 정말 내게 필요한 것들을 만날 수도 있고, 정돈된 주변이 정돈되고 가지런한 나로 ,

물건보다 진정으로 채워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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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허유정 지음 / 뜻밖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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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 책에 담은 꿈은 단 하나,
지금 당장 쓰레기를 줄여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
대단한 결심도 필요하지 않고
나무 칫솔을 써볼까? 하는 딱 이 정도의 관심이라면 작가는 성공했다.
나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다 못해
여름이면 자주 마시게 되는 탄산수를 플라스틱 병이 아닌 유리병 용기를 찾아 바로 주문을 했으니 말이다.^^
행동파!!!

평소에 유리병 용기는 잘 닦아서 재활용하는 편이다. 수제잼을 만들거나 피클을 만들면 그 전에 사용했던 소스병이나 장아찌 병등을 두었다가 소독해서 사용한다. 나름대로 환경을 생각해서 쓰레기 분리수거나 친환경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시작은 거대하지 않았다.
나 하나 일회용품을 줄이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쓰는 물건으로 나의 몸에는 변화가 즉각 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는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고 유리 소재나 도자기, 코팅팬보다는 스텐용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비닐의 사용을 절제하는 일이다.​

장을 보러 갈때는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항상 들거나 끌고 나간다.
그래도 담아온 물건들을 꺼내 정리하다보면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재가 많이 나온다.
친환경 세제에도 관심이 많아서 비누나 샴푸에도 관심이 많은데 작가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쓰레기 없는 일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보다는 '이 정도는 나도 따라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이 더 많다. 관심은 있었지만 몰라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생활을 바꾸고 몸도 건강해지고 집안도 이뻐지는 방법들이 너무 마음에 쏙 들었다.

용기에 담긴 세제가 아니라 디스펜서에 담겨진 세제통에서 내가 가지고 간 용기에 담아서 사오는 시스템이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볼 때 고려해 볼만한 관심사이며 함께 행동해야 할 문제이다.
나뿐 아닌 모두, 그리고 현재만이 아닌 미래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선의 가득한 모습이 감동적이고 멋져 보인다.

"본격적인 제로웨이스트의 시작과 여행담을 길게 풀어 놓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멋있었고, 따라 하고 싶었고, 그리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이런 삶을 알게 돼 시작하게 됐고,
그 이후 내 몸과 마음은 더 건강해졌으며,
나아가 조금 진지한 나의 일상이 됐다.
이렇게 건강한 유행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따라 해봐도 좋지 않을까?"

완전 강추다!!
나 역시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분이다.
딸아이가 초경을 준비하면서 일회용 생리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아이의 몸에게 화학약품 덩어리를 줄 수 없었다. 고민하고 서로 이야기한 결과 흔쾌히 받아들이고 딸과 함께 면생리대로 바꿔 3년째 사용 중이다. 아주 만족한다.

여럿에게 좋다고 권유하고 보여주기도 했지만 빨래걱정으로 혹은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선뜻 실천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냥 담가놓고 세제 뿌려놓았다가 빨래처럼 세탁망에 넣어 돌리면 된다. 마지막에 유연제 대신 식초나 구연산을 넣는다.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유리병 탄산수를 바로 주문했다. 플라스틱 병의 사용이 활용이 전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닐 라벨을 벗기고 내부는 깨끗하게 헹궈서 찌끄러뜨려 버려야 확실한 분리수거이다.
그에 반해 유리병은 재활용이 쉽다. 녹여서 재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집에서도 활용하기 좋다. 버릴 것은 버리고 몇 개는 또 수경재배에 사용될 것 같다^^

내가 따라하고 싶은 몇가지 아이템을 소개해본다.​
에코백, 텀블러와 사용은 당연한 것이고, 서랍 안에 박혀 있던 손수건 사용을 늘리고 싶다.​
그냥 버릇이나 습관처럼 마구 뽑아 사용하는 휴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뽑혀나가는 나무를 생각해보면 정말 아껴야 할 것들이 많다.
예전 사람들처럼 주머니나 핸드백 안에 손수건을 챙겨서 나가면 은근히 핫해 보이기도 하고
화장지나 물티슈를 덜 사용하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 칫솔을 나무 칫솔로 바꾸는 것은 작가도 추천하는 아이템이다.
미세 플라스틱을 입안에 넣는 격이니 건강한 몸을 위해서 나무 칫솔을 생각해 봐야겠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제가 문제이다.
일단 천연 수세미를 파는 곳에서 천연 수세미를 사고 싶다. 성긴 재질의 천연 수세미는 햇볕에 말려 새 것처럼 사용할 수 있고, 물을 머금으면 젖은 해면처럼 우연해지고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천연 수세미는 우리 몸에도 좋은 살림이다. 아크릴 수세미를 사용할 때 특히 걱정됐던 미세 플라스틱. 종종 끊어지는 플라스틱 수세미 조각을 보면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은 얼마나 많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천연 수세미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완전한 식물. 입에 들어가도 자연스럽게 나오겠거니 생각하면 설거지하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

천연 수세미와 함께 설거지 비누를 사용하면 맨손 설거지가 가능하게 된다. 이 뽀드득한 손맛을 나도 좋아하는데 고무장갑을 끼고서는 느낄 수 없다.

면행주를 삶는 일이다. 설거지하고 나서 항상 면행주를 삶아 쓰다가 얼마전부터 소독하는 세제를 사용해서 담가 사용하는 편리함을 가장한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었나보다.
행주를 삶아 뽀송뽀송하게 햇볕에 말려서 사용하면 기분도 좋아진다.
어릴 때 아이 천기저귀를 삶아서 널어 놓았던 감촉을 다시 만나보야야겠다.

지퍼백이나 비닐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대체품으로 실리콘 백을 활용한다고 한다.
사용방법은 비슷하고 씻어서 사용하면 3000번 이상 재사용이 가능하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배달주문이 많아져서
온갖 포장재로 담아져 나오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너무 문제가 되고 있다.
줄일 수 있는 쓰레기를 줄여보는 일상의 재미를 하나씩 늘여가고 싶어진다.

또 하나는 음식물 처리기이다.​
미생물이 있는 처리기인데 음식물 쓰레기를 넣으면 미생물이 몇 시간 만에 흙처럼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런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이 아파트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집에서 설치하기에는 가격도 부담되지만 한두집이 변해서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없는데 비싸더라고 나라에서 이런 처리기를 장착해줄수 있는 날이 온다면 참 좋겠다.

면적도 좁은 우리 나라에 쓰레기 산만 200여개나 훨씬 넘는다고 한다. 소각하면 연기로 나쁜 성분이 나오고, 매립하면 비닐의 경우 500년이상 썩지도 않고 나쁜 성분이 흙과 물로 흘러 들어간다.

머지않아 닥쳐오게 될 쓰레기 전쟁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먹거리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은 건강한 몸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작가처럼 집에서 밥을 안해먹고 인스턴트나 배달음식으로 먹다보면 호르몬의 이상으로 몸이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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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책은 <새의 선물>을 재작년 즈음에 읽었으니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들만의 색이 드러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성격의 글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해서 출간소식을 듣고 궁금했던 책이다. 
장편 소설<새의 선물>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은희경 작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혔다.
이 책 속에서 만난 은희경의 세계는
역시 은희경 작가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신형철님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서 나의 기대는 한층 더 커졌다.

"비너스란다. 바다의 거품 속에서 태어나는 장면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슬퍼졌을까.
초록색이 도는 우윳빛의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럽고 아름다운 얼굴.
가냘픈 알몸을 휘감은 채 바람에 날리고 있는 긴 금발의 머리카락과 커다랗게 열린 조개껍데기를 밟고 선 무방비해 보이는 하얀 맨발.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는 눈 속 깊은 곳의 
그 신비로운 슬픔 때문이었을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마치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설명과 묘사가 뛰어나 나의 상상대로 비너스를 그려 놓는다. 사물이나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근사해서 닮고 싶은 몇몇의 작가들이 있다. 내가 문장이나 글에 멋을 더하는 은유나 묘사에는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만나면 따라 적고 싶은 문장들이
넘실거리는 것도 즐겁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외우는 일마저 포기하면 그 때부터는 노년 인생에서 점점 더 많은 일을 포기해야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해야 했음에도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체념과 거기에 대한 강요였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자신의 삶의 좌표는 지도의 어디 쯤에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단편이 있다. 
<지도중독>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란 게 뭐예요?"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왜 그렇게 열심히 지도를 보세요?"
"좌표가 있으니까. 지도는 내가 풀어본 중에 가장 쉬운 2차방정식이야. 원정 O가 확실하면 P의 위치는 구할 수 있는 법이거든"
"P의 위치가 구해지면 가야 할 방향이 보이겠죠?"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축을 중심으로 만든 좌표상에서 시작점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까? 
네비게이션이 나오기 전에 여행을 갈 때면 늘 챙겼던 교통지도. 여전히 방향을 알 수 없던 기억이 문득 떠 오른다.
지금 나의 위치를 제대로 알면 가고자 하는 곳의 위치를 원하는 곳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소중했던 지도.
그러나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원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소녀B의 몽상으로 시작하는 단편
<날씨와 생활>은 나의 사춘기시절에 함께 했던 세계명작전집 이야기를 함께 따라 읽으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 당시엔 책이 귀하고 도서관도 많지 않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나도 어느 날 엄마께서 월부판매로 사 주신 전집이 생겨서 읽은 책을 몇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때에 읽었던 책은 나의 유년 시절동안 많은 생각을 지배해 왔을 것이다.

소공녀 세라처럼 어느날 부잣집의 상속녀가 되기도 하고,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하얀시트가 덮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가냘픈 소녀가 되어보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의 사랑을 받는 쥬디도 되어보고, 미운오리 새끼 속의 백조 한마리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기도 했다. 사랑의 학교처럼 꿈을 키우고 싶었고, 작은 아씨들의 큰언니 매그처럼 주위를 챙기면서 주인공 소녀 못지 않은 몽상가로 살아온 셈이다.
그 시절의 월부책장사에게 책좋아하는 딸을 위해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았을 엄마 생각을 하며 재밌게 읽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표제작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의 만났던 이태리 식당에서 벽에 걸린 그림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대한 애착과 인정에 대한 결핍이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소재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결국은 필사적인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인 욕망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완벽한 비율을 뽐내며 서 있는 비너스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아름다움에는 여러가지 관점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축복받지 못한 출생으로 인한 결핍이 만들어 낸 슬픈 은유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달라지기로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순된 삶의 질감을 표현한 것같아 마음에 들었다.
대학 때 읽고 꽤나 좋아했던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 스친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인간은 모순된 것을 알면서도 나의 길을 가고
허락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탐하며
또 그것들을 좇아 욕망에 눈이 멀어
결국은 아름다운 것들이 멸시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상투적인 말로 도배가 되어버린 책도 읽게 되고 터무니없는 억지같은 이야기로 도무지 감을 잡을 수없는 책도 읽는다.
기타를 처음 잡아 연습할 때, 말랑말랑하던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 살이 박히는 것처럼 내 안에 가끔은 어떤 글로도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힌 듯이 감흥이 생기지 않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단편들마다 색다른 주제인듯하면서도 삶의 잃어버린 좌표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하나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기회를 빌어 은희경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섬세하게 사람의 고독함, 이유와 존재에 대한 통증들까지 매일 달라지는 날씨처럼 
은희경작가만의 색채로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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