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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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연노랑의 표지에서 풍기는 '병아리'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주인공이 너무 힘없고 약해보여서 사실은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읽다보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두루 포진되어 있는 문제들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런 사회악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별 차이가 없는 듯해보여 안타깝다.

기업의 노동보험 및 사회보험 전반과 관련된 서류작성이나 제출을 대행하고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주인공이 근무하는 사무소에서는 월급 계산 등도 대행한다.

졸업 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해 파견사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사회보험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아사쿠라 히나코.

"아주 잘하네, 병아리 씨. 당당한 노무사 같았어. 전혀 신입 같지 않더라"
니와 씨가 놀렸다. 니와 씨는 소장보다 조금 연하로 사십대 중반이다.
"병아리가 아니라 히나코예요."

주인공 히나코의 이름이 일본어로 '병아리'를 뜻하는 '히요코'와 발음이 비슷해 신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처음에 거슬렸던 호칭의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름대신 이렇게 호칭하는 것은 작은 사무실이라고 해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 손으로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의가 무색하게 간신히 작은 노무사 사무소에 취직해서 파견근무 중이라 그런지 움츠러들고 잔뜩 긴장한 상태다.

"경리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여자가 하는 일로는.​
그런데 두세 달 만에 더는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성차별적인 대사도 많다. 직장 내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지난 세대의 여성들이 참고 살아온 관습에 의한 것은 아닐까.

지금 젊은 여성들은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고는 있지만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직장 내에서, 게다가 직속 상사에게 듣는 말이라면 감수하고 넘어가게 될지 모른다.
이런 회사라면 두세 달만에 그만둘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불의를 볼 때마다 입바른 소리로 상사의 눈 밖에 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지낼 수도 없는 직장 내의 생활고충이 드러난다.

곧바로 업무에 투입되어 마주하게 된 클라이언트들이 의뢰해 온 것은 겉으로는 단순한 노사 간의 의견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내면 직장 내 괴롭힘, 여성 직원의 출산 문제, 연장 근로 시간 조작 등 다른 실상이 보이는 문제들에 혼란스럽다.
열의에 가득 차 있다가도 좌절하고, 작은 실수에 주눅 들다가도 결국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회초년생 사회보험 노무사로서 차근차근 성장하며 업무를 해결해 나간다.

"더 제대로 보고 잘 듣자.
그리고 나도 좀 더 잘 표현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나.
내일부터는 꼭. "

현실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던져진다고 해서 당장 일자리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닥치는대로 주어지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혹은 파견 근무직은 잔업이나 허드렛일을 해야한다.

패기어린 열정이 오히려 지적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문제점이라든지 직장내 노동시간의 조작이나 악덕 기업의 행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대우, 산재와 직장내 괴롭힘 등등,,,

사회 구조 안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알아도 눈을 감고, 혹은 몰라서 당하는 일들을 보며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직원들도 도마라는 아이를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다루고 있네."
"탄광의 카나리아?"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니와 씨를 바라봤다.
"몰라? 옛날에 탄광에서 작업할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가서 경보기 대신 썼다잖아. 카나리아는 끊임없이 조그맣게 지저귀는데 메탄이나 일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어버려. 물론 울지도 않지. 카나리아로 탄광 안이 위험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체크하는거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제1호로 상황을 파악하는 거군요."

"개인적으로는 도마 씨의 힘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이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 역시 다양한 빛깔 속에 있었다."

개인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선시 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이다. 어떤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결정이기에 그 안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침묵하는 근로자와 노동자들의 몫이다.
그들을 위해 일하고 법률을 대행해주는 기관마저 공평한 일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죄책감과 회한이 자리 잡는다.

"여러 종류의 정식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골라 주문했더니 제시되어 있는 금액과 달랐다. 계산대에 물어보니 정규직과 파견직은 가격이 다르다고 했다. 복리후생비가 사원식당 운영비로 들어오기 때문에 파견직과 출입하는 업자는 외부이용자 가격을 받는다고. 정규직은 사원은 선불카드가 아니라 사원증을 내밀었다.
정말 치사하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나의 이상과 현실적인 노동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강하게 부딪친다.
이 소설에서 거론되는 문제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들이라 직접 경험은 하지 않아도 함께 분개하게 된다.

육아휴직 관련법안이나 근로기준법, 노동법, 실직수당 등등 기본적으로 알아야 누릴 수 있고 모르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직장 내에게서 이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와 병폐들이 고착화되어 있을 뿐 어떠한 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청년들이 제대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꿈을 위해 입사한 회사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좌절하고 꿈을 꺾게 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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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작가 - 우리가 사랑했던
조성일 지음 / 지식여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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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홀연히 삶을 멈춰 더욱 더 아쉬움레 그리운 작가들이 있다.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동화 작가 등 이 책에서 다룬 28명은 모두 작고한 작가들이지만 우리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 또렷하게 기록돼 있는 분들이다.
그리운 그 작가들이란 제목으로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명만 들어도 설렌다.

김춘수는 생전에 무의미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가 내면의 세계로 더욱 빠져들었던 것은 유일한 라이벌 시인이라고 표현한 김수영 때문이었다.
김춘수는 김수영의 <풀>과 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었지만 그에게 선수를 빼앗겨 자연스럽게
그 반대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과 김수영 시인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된 일이다. 누구에게나 따라 올 수 없는 시적인 매력이 있어서 라이벌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런지 모르지만 자기가 갖지 못한 시를 쓰는 사람을 바라보면 충분히 부러움을 가질 수 있다.
블로그를 다니다가 시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운 내 마음처럼,,

"그를 키운 건 '8할'이 곰소만 갯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이 바람은 질마재를 넘어 대처로 가고, 대처는 그 질마재를 넘어 바다로 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지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노래하듯 자동으로 이 시가 떠오른다. 아마도 서정주 시인은 이 푸르른 봄날에도 저기 저기 하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고 있을지 모르겠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므로^^

"박완서-삶이 소설이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의 어린 시절은 그럭저럭 유복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평화롭고 단란하기만 했던 가정을 가난, 죽음, 고통, 아픔이란 단어로만 설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작가 박완서의 탄생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과연 소설가 박완서의 문학은 가능했을까..
박완서의 불행한 상처는 전쟁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폐암으로, 의대 레지던트였던 외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
그것도 한 해 넉 달 차이에 일어난 일이라니.

박완서 작가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 소설을 배워서 쓴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소설같은 삶을 살다 간 이름 박완서를 기억한다.

오빠를 잃은 슬픔을 담은 <엄마의 말뚝>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담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담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등 모두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다.
<나목> <그 여자네 집><아주 오래된 농담><노란집><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빈 집>의 시인 기형도는 첫 시집을 내지도 못한 채 준비하던 원고 뭉치를 안고 서울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요절 시인이다.
<엄마걱정>이라는 시처럼 유년의 시절을 보낸 기형도의 삶과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해 " 그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로 끝을 맺은 <혼불>은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에 달하는, 17년 세월을 머금으며, 말 그대로 굽이굽이 흐르는 큰강처럼 흘러온 대장정의 산물이었다.

작가 최명희에게 있어 <혼불>은 그의 전부였다.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혼불'이야기에 매료됐던 그는 이걸 작품으로 쓰기로 맘먹고는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쳤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시작되어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며
우리 문학사를 풍성하게 가꿔주는
대하소설의 마지막 계보를 장식한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를 기억하자.

병을 알고나서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원고를 다 마친 후 2년의 투병생활 끝에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정성과 열정이 존경스럽다.

그리운 그 작가들의 삶과 흔적이 담긴 역사를 몇 장의 글로 알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존경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많은 작가들이었다. 요절한 아쉬움, 병마와 싸우다 조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정생님과 정채봉 동화 작가님도 좀 더 오래 좋은 글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작가들의 태어남부터 작품세계, 다양한 연결성 등 작가의 간단한 연혁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모두가 꽃이 되고 싶고
이름이 불려지고 싶고
마음에 새겨지는 의미가 되고 싶다.
작품에서 빛나고 이름으로 기억나는 얼굴들을 보게 되어 인상적이었다.

그리운 작가와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더욱 깊이 읽었다. 아름다운 문학으로 그들을 영원히 만날 수 있으니 가슴이 새겨지는 이름들이다.
정말 한 문장, 시 한구절만 읽어도 알 듯한 이름들이 모두 그리워진다.

책 제목이 딱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리운 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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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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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이안을 줄 것 같은 제목을 보고 잔잔한 에세이집이려나 어렴풋이 생각했던 이 책은 '잠을 통한 변신'이라는 아늑한 환상을 쓴 장편 소설이었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한 일들이 얽힌 세상을 살면서 평온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자신 만의 노력과 방법으로 힘든 과정을 겪다보니 안으로 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우울함과 열등감, 무기력, 애정 결핍 등에 맞는 약들을 복용하고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정신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면?

책과 함께 이어 플러그가 사은품으로 도착했다.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보였지만 집에서 이걸 쓰게 될까?하고 한쪽에 밀어 두었다. 머잖아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딸의 친구들이 놀 장소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음,,, 도무지 글자가 안들어와서 요녀석을 꺼내 귀에 꽂으니 아주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쓸모가 있으니 상품으로 나오는 거겠지^^

오테사 모시테그는 <아일린>이라는 소설로 미국의 최고 젊은 작가 상과 헤밍웨이상을 수상한 작가였다. 2016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작까지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신랄하고 솔직한 성적인 묘사에 당혹스러웠다.

주인공은 외적인 조건만 보면 아름답고 똑똑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 내면은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에서 비롯된 삭막한 감정과 무기력함,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문제에 사로잡혀 자식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결국 암과 알콜의존으로 세상을 떠나고, 헤어지고도 집착의 대상이 된 애인에게 병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그녀 주위에는 진정한 공감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자신의 의식과 정신을 비워내길 바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쓴 소설이다.

약물을 통해 동면하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이 약물남용처럼 보이고,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애타는 심정을 담았다.

"엄마와 예전처럼 대화할 수 없어. 정말 슬퍼. 버림받은 느낌이야. 정말, 정말 외로워."
"우린 모두 외로워, 리바."
나는 말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그녀도, 나도 외로웠다.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그저 너무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날 안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그거 한심한 거니?"
"애정을 갈구하는 거지." 나는 말했다.
"괴롭겠구나."

깨어 있는 동안은 주로 영화를 보는 주인공과 절친 리바의 대화에서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법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에는 귀기울여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것을 본다. 어쩌면 혼자가 되어 힘든건 나이고, 애정을 갈구하며 약을 먹으며 버티는 건 나인데...
나도 위로받고 사랑받고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은데...

"일 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약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암에 산 채로 잡아먹혔다. 어머니가 뇌사 상태로 병원에서 온갖 관을 꽂고 있는 모습도 나는 보았다.
삶은 연약하고 찰나이며 사람은 물론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온종일 자는 생활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죽음을 감수할 참이었다. "

죽음을 감수하면서 위험한 시도를 하는 주인공은 염세적이다. 또한 끊어내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문장이 자주 나온다.

'사랑'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리바는 자주 '정착'에 대해 얘기했다. 내게는 그게 죽음처럼 들렸다.
"누군가의 입주창녀가 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어." 나는 리바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전 남자친구 트레버에 대한 로맨틱한 충동은 이따금 고개를 들었다.

결혼하고 안착하려는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사랑없는 관계가 너무 무모하고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사랑받지 못했거나 상처가 너무 크거나,,

"해야 할 일도 없었고 대응하거나 보상할 일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 무엇도. 그런데 나는 그 무를 인식했다.
잠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깨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잠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 전부가 가능한 최악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번쩍거렸고, 보잘것 없는 모든 기억, 그때 그곳에 나를 있게 한 모든 사소한 일들이 내 정신을 가득채웠다.
나는 언제나 여전히 나였다."

닥터 터틀을 만나기 시작하고 평일밤에 열네다섯 시간씩 자고 주말에는 하루에 겨우 몇시간만 깨어있었다. 약물중독으로 인한 어둠, 현실과 꿈 사이의 흐릿한 상태, 음울하고 멍한 뇌안개 상태로 산다는 것,,,

잠을 자지 않으면 불안해서 약을 먹고 또 먹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면, 반대로 깨어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골치아플까도 생각해본다.

우울증 환자들이 잠을 자는 이유를 알 것같다. 잠으로 도망가는 일종의 회피이다.
이전의 나도 아이 학교 보내놓고 안그래도 어두운 1층 집에 커튼을 치고 오전내내 잠만 잤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거실의 커튼부터 걷어냈다.
어둠에 길든 사람은 어둠이 익숙해서 잘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롭거나 지루하거나 그리움을 느낄 때면 그 사진들을 훑어보며 그곳이 얼마나 시시한 곳인지-갈라진 계단, 물이 새는 지하실, 페인트가 벗어진 천장, 부서진 찬장-확인하며 역겨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모님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더라도 내게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그들은 친구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내게 위안이나 좋은 충고를 해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나를 거의 알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죽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자기답게 사느라 바빴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그게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나빠 보였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늘 술에 취한 어머니는 어떤 책임도 져주지 않았다. 유년기에 방치된 삶이 내내 그늘진 삶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언제나 영화속 환상처럼 현실에서는 마음을 두지 못하고 슬픔이 공기 중에 종일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다양해서 잠의 깊이에 따라 빠르기도 느리기도 했다. 나는 수도꼭지에서 받아 먹는 물맛에 아주 예민해졌다. 물이 때로는 뿌옜고 부드러운 광물질의 맛이 났다. 거품이 많고 역한 입냄새 같은 맛이 날 때도 있었다. 소파에 푹 쓰러진 채 나무바닥 위의 먼지가 외풍에 회오리처럼 밀려가는 모습을 숨죽이고 빤히 바라보는 나 자신을 문득 의식하고 살아있음을 잠시 기억한 뒤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난 슬픔에 압도당한 것 같아. 너무 힘들었거든. 하지만 어쩐지 아름답기도 해. 이렇게 슬프고 평온하게. 엄마가 돌아가시지 전에 뭐라고 했는지 아니?
'모두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안달하지 마. 그냥 재미있게 살아' 그 말이 정말 와닿더라. '모두에게 인기 있는 사람.' 사실이거든. 난 정말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거든. 너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난 이만하면 괜찮다고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 지금 인생을, 그러니까, 나 혼자서 직면하게 된 일이 아마 내겐 이로울거야."
<친구 리바는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있었다>

"하늘은 희부옇고 내 귀를 때리는 바람의 거센 일렁임에 도시의 소음은 지워졌다. 그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렵기는 했다. 미친 짓이었다. 잠을 통해 새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이 아이디어는.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의 깊은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숲 속을 헤매고 있었던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굴의 입구에 다가가고 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의 역한 냄새가 난다, 동굴에서 다시 빛으로 나오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 모든 세상이 다시 새로워지겠지."

엄마가 잠이 오지 않을 때 알려준 방법으로는
양을 세지말고 중요한 것을 세라는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대는 먹을 것 이름이나
대통령의 이름 꽃이름 등을 세었다.
이 부분이 그나마 따스한 부분이었다.

약물 중독에 빠진 고아가 된 주인공은 누구든 호감을 갖는 사람은 아니다. 사랑스럽고 자기 일을 잘하는, 누구가 좋아하는 캐릭터로서가 아닌 비호감형인 인물을 내세워 어두운 일면을 알고나면 응원하며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나는 기분이 든다.

반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는 글들 속에서 염세적이지만 세상의 고요함을 위해 나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잠을 자는 해로 만든다는 발상이 특이했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는 지금, 그렇다고 약물에 의지하는 방법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시도한 주인공은 그만큼 다급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글들은 섬세하고 진솔해서 인용하고 필사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처음엔 읽히지 않고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드러내놓고 아파할 수 없는 젊은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게 느껴졌다.

결국 알약을 먹고 사흘간 잠을 자고 , 일어나서 피자 한조각과 물에 약을 먹고 또 사흘간의 잠을 자는 반복이 몇달간 지속된다.

그런 휴식기를 갖고 나서 세상은 달라졌을까?
나는 원하는 새로움을 장착하고 눈을 떴을까?
여전히 그대로인 나와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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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류형정 지음 / 뜻밖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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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표지를 들추니 이쁜 만화와 정갈한 손글씨로 가득한 책이다. 봄분위기 타듯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어 가볍고 재밌게 읽었다.
세상엔 재주많은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기자기한 그림에 손글씨까지 써서 나만의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작업일까?

"나는 믿는다.
언젠간 나의 꽃이 피리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틈에서 필 수 있으니
나를 많이 들여다봐야지"

표지부터 너무 귀염미를 발산한다.
네컷이나 두컷 혹은 한 페이지에
생각과 글을 정성껏 손글씨로 눌러 쓴 에세이 만화

"가끔은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여러 가지의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거나
여러 일을 통해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그런 모습이 정말 내가 맞을가 고민하고
여러 모습의 나를 보며 흔들리지만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해지기도 한다."

직업병으로 어깨가 아파서 뒤의 여러 장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는데 너무 정감이 가고 웃음이 나오는 책이다.
자기의 일에 의미를 찾고 자꾸 잠자고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일을 하는 작가의 노력들이 너무 부러웠다.

스무 살에도 서른 살에도 나를 찾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늦게 나를 알아간다. 사실 아직도 나를 나 자신이 잘 모르고 내가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 대한 것을 질문할 때 의미를 부여하며 확신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어느 날의 바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바다 사진만 찍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그날의 나의 마음을 바라다 보는 일
시선을 바꿔보는 일은 참 멋지다♥

"작은 것들은 작지 않다.
늘 제일 큰 노트 대신 작은 메모지를 쓰고
큰 소리 보다 작은 소리에 집중한다.
작은 연필이 연습의 길이를 보여주고
작은 말이 모여 큰 힘이 된다.
나의 작은 그릇에는
작지만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학창시절부터 무언가 글감이 떠오르면 바로 쓰라는 문예부 선생님의 지도에 수업 중에도 문득 창밖을 보다가 시가 떠오르면 연습장을 꺼내 끄적거렸다.
문학 소녀를 꿈꾸던 나의 10대와 20대를 잃어 버리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온 시간들이 훅 하고 지나간다.

결국은 내가 지치지 않을 정도로 했어야 했는데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 몸도 마음도 망가진 후에 돌보는 나의 삶을 찾아가려니 어설프고 서툰게 한둘이 아니다.
작가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왼손으로 그린 그림까지 멋스럽다.
살짝 웃음도 나는 재미난 책이다

"무용수의 동작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들뜬다. 인간이 저래도 되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어도 되나.
무언가에 매혹된 인생은 황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단한 바위같이 곧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 어디에도 사로잡혀 있지 못한다.
유연한 몸을 가지고 싶고,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유연석을 보면 그렇게 설레고 좋은가 싶다. 계속 설레서 유연해져 미끌미끌거리고 싶다."

무용수의 유연함, 영원한 댄신 퀸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을 볼 때 느끼던 황홀함이 이런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유연함과 우아한 몸짓, 그 안에 깃든 마음까지 유연할 것 같은 그들의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유연석이 좋단다. 나는 밥잘사주는 예쁜 누나부터 정해인의 미소가 좋다.
요즘 스치듯 보게된 반의반이라는 드라마에도 그 선한 미소가 고스란히 담겨 설렌다.
이 누나같은 이모(?)마음 설레게 하는 정해인.

부록에는 스무장 정도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손글씨 대신 워드로 대신 했지만
책에 대한 작가의 열심과 애정이 보였다.

봄에 피는 꽃이 다르고 여름에 피는 꽃이 다르고, 가을과 겨울을 기다리는 꽃이 다르듯이 내 안의 꽃도 언젠가는 피어날 것을 믿어본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을 즐겨보는 일.
바람직한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며 서서히 농축되어 가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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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당 오가와 - 오가와 이토 에세이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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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을 읽을 때는 주로 한국문학이나 에세이를 즐겨 읽었다. 그나마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번역의 쓴맛을 어릴 때 보아서 그런지 세계의 문학은 왜 그리 어렵기만 한건지,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못하는 페쇄적인 성격때문인지 독서편식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일본 문학에 대한 편견도 있어서 걸러 읽게 되었고, 독서모임을 통해 몇 권 읽으며 역시 일본스럽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요즘의 일본 소설과 에세이를 접하게 되면 의외로 감수성이 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난다. 뭐든 나의 좁은 식견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다양성을 인정해 가는 일은 책읽기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츠바키문구점>집필 당시 기록한 1년 간의 일기로, 소박하고 단정한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과 남다른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지난 번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고나서 그런지 느낌이 오가와 이토의 일상과 닮은 권남희 번역가 문체가 은연 중에 친근하게 겹친다. 아니나 다를까 권남희 작가 역시 자신과 닮은 느낌이 있어 이토 작가의 일곱 권째 번역을 계약하며 기뻤다고 한다. 직업으로서 번역을 하지만 감성이 비슷한 작가의 글을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작가는 '유리네'라는 강아지를 키운다. 그리고 독일, 그 중에서도 베를린을 오가며 글을 쓴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거의 날마다 슬픈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츠바키 문구점>을 내던 해의 일기임에도 지금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아 살짝 무거워졌다. 세상은 여전히 슬픈 뉴스로 잠잠할 기색이 없다. 코로나 19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데다 우리나라는 텔레그램의 n번방인지 박사방인지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다. 이번에도 형량이 너무 적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제대로 죄값을 치루고 반성을 해도 모자를텐데 이런 ....!!!!

후,,,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글을 읽으며.

"내가 지향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없이 살다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꼼꼼하고 완벽하게, 그리고 빠르고 정확하게
수학문제를 풀어나가 듯
인생의 문제들도 그렇게 풀어나가면
될 줄 알았다.
나도 완벽하게 그렇게 살아내고 싶었다.

무엇이든 책임을 다하려는 욕심이
어쩌면 차갑고 도도해 보이기도 했을
내 젊은 날에 비해 지금의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각까지 노후되는 것을 원치않기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틈...
빈 구석이 보여지고, 느리고 어설프지만
여유있게 웃을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진다.^^;;,; (은근 허당이다)

아직도 풀어내야 할 인생의 문제들
예전처럼 완벽함을 꿈꾸지 않는 지금
그 틈이 고맙다.

"하루 15분이어도 좋으니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을 보는 게 좋다."
그 말에 헉하고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이 닿는 모든 것에 인간의 손이 닿은 것만이 있었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지 하고 슬퍼하다 하품하는 유리네를 발견하고 안심했다.
바다며 산을 당연하듯 보는 사람과, 나처럼 도시에서 인공물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은 정서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베를린은 개에게 너무도 다정한 도시다.
그 때 들은 꼬리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일본에서는 푸들 꼬리를 짧게 자른다.
개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을 때는 푸들의 꼬리가 원래 그렇게 짧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태어나서 바로 자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르는 것은 단순히 그 편이 귀여워서라고 한다."

인간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환경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않다.
거기에 사람들은 동물에게까지 가혹하다.
그저 더 귀엽다는 이유로 강아지의 꼬리를 태어나면 바로 자른다니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몸서리를 치게 된다. 어떤 아픔을 느낄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생각을 하지않는 모양이다.

독일에서는 인위적으로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선진국은 경제성장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츠바키 문구점>은 결코 화려한 얘기는 아니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라는 독자의 편지에 기분 좋아진 작가처럼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을 글로 담아 책으로 나오는 것도 신기할텐데 대상까지 받으면 정말 맥주 맛이 제대로 일 것 같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강아지와 함께, 요리를 하고 기분에 따라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때때로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 낸 일기도 책으로 만들 수 있구나.
작가의 삶은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니 더 없이 멋진 일이다.

독가들의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음 속편을 이어서 쓰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속편이 나오기 전에 <츠바키 문구점>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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