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후에 그때를 회상하면서 "모든 것이 (일본인의 노력 없이) 그저 주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데에 얼마나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떠올리곤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민주주의는 ‘너무 쉽게‘ 나타났고 결국 튼튼한뿌리를 내리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에 따르면, 위로부터의 민주화는 저 유감스러운 ‘무책임의 논리‘, 즉 상위자의 명령에 묵묵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항복 1주년에 만화가 가토 에쓰로가 당시 만연했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전쟁이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내용이, 탈진 상태의 두 남녀가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하는 천황의방송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통해 표현되어 있다. 두 남녀는 죽창과 화재 진압용 양동이를 들고 원자탄에 대항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 P72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패전 및 그 이후 시기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가이다. 그 이후 반세기 동안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때의 경험을 시금석으로 삼아 ‘평화와 민주주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고민해 왔다. 이것이야말로 전후 일본의 위대한 주문(mantra)인 것이다. ‘평화와 민주주의‘는 오늘날 일본인 각자로 하여금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부여하며 쉼 없이 논쟁을 벌이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이러한 개념들, 여러 논쟁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역사적 기억이 차지하는 비중 중 어느 하나도 일본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은 없다. - P26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이 책을 집어든 분들이 한순간만이라도 시간 여행의 감각을 느끼신다면 좋겠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직접간 듯한 낯선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모두가 부를 줄 알았으나 이제는 한 마디도 남지 않은 노래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노래가 천 년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