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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에서 출판한 서울역사강좌 중 일제강점기 서울에 대한 강의록입니다.

전반적으로 짤막한 강의록 14강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접하기 쉽지 않은 도록과 지도가 있지만 내용 자체는 깊지 않습니다. 입문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뒤에 정리되어 있는 참고문헌은 상당히 유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는 강의록 중 일제강점기 경성의 공간변화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할까 합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2강 경복궁 파괴와 조선총독부 박물관 설치
제3강 창덕궁 창경궁 파괴와 창경원의 탄생과정
제4강 경희궁의 훼철과 전각의 향방
제6강 일제강점기 주택지 개발과 서울의 변화
제8강 대한제국과 메이지의 공간충돌, 장충동과 박문사
제11강 남산신궁 건립에 담긴 의미

제2강부터 4강의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대한제국시절부터 행해온 궁궐파괴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건설하면서 전각을 파괴하는 과정과 순종이 고종 인산이후 정무를 보던 창덕궁과 창경궁을 훼철하는 과정이 현재 남아있던 당시의 지도와 도면을 보여주며 설명되고 있습니다.

고종이후로 사용되지 않았던 경희궁의 전각의 훼철상황은 더 기가 막힙니다. 일제에 의해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이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되기 전 1980년대까지도 이 궁궐 부지는 학교부지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런 궁궐의 공간변화는 일제가 경관을 변화시켜 통치에 아용하기 위해 조선의 한양을 경성으로 변화시킨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1910년 조선을 강제병합한 이후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의식적으로 지속됩니다.

특히 법궁인 경복궁을 의도적으로 훼철하고 이 장소에서 조선물산공진회와 같은 박람회를 오랜기간 개최하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의도적인 공간구성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행했습니다.

이런 공간의 의도적 변화는 조선의 왕실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으로 일제강점 초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곳은 궁궐 뿐 아니라 일반 주택지역에서도 일어나 성곽도시인 한양의 도성을 훼철하고 일본인들의 고급 주거지를 만드는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제6강이 이에 대한 내용을 설명합니다.

현재의 명동 충무로 등 당시 남촌으로 불리던 지역은 청계천 이남 지역으로 특히 남산 기슭에 일본인들이 대거 모여 살았습니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일본 공사관이 들어섰던 지역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일제는 총독부 관리들의 주거지를 해결한다는 명목하에 경복궁 서쪽의 현 서촌 지역과 경희궁 궁궐 안에 관사를 지어 청계천 이북의 조선인 거주지역을 침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내내 지켜져온 국유림을 파괴하고 성곽을 해체시킨 후 일본인들을 위한 고급주택지를 현재 명동 충무로 지역에 대거 건설합니다.

또한 용산지역으로 일본인들을 위한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한편 한강이남를 잇는 한강철교와 한강 인도교를 건설해 최초의 강남이자 전원도시인 명수대와 노량진을 개발합니다.

1930년대 들어 일제는 영등포의 공업지역 개발과 더불어 현 흑석동과 노량진을 개발하면서 인천과 연결되는 경인지역 개발도 시작합니다.

일제당시 신도시인 용산과 영등포, 흑석동과 노량진에 대한 내용은 김시덕 작가님의 ‘서울선언 (2018)’과 ‘갈등도시(2019)’에도 현재 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남아있는 흔적들과 연계되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8강과 11강은 서로 연관이 되어 있는 강의록인데요 특히 8강은 위에서 설명한 일제 강점기 주택지 개발과도 직접적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충단과 박문사의 위치가 현재 충무로 건너편 남산기슭이기 때문입니다.

고종이 1894년 이후 희생된 군인들과 명성황후를 위해 제단을 쌓고 장충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고 제기억에 처음 남은 ‘장충’이라는 지명은 ‘장충체육관 ‘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를 기리고 개항기 순국한 병졸들울 제향하기 위해 만든 장충단은 일본인들이 명동과 충무로에 무리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일제는 안중근이 암살한 이토 히로부미를 장충단에서 제향을 올리고 이후 조선의 충신들을 기리는 대한제국의 제향의식을 금지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 일본인들을 위한 행락지로 만들어버리고 장충단 맞은 편에 이토를 기리는 박문사라는 사당을 건립합니다.

장충단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시설을 남산 기슭에 만든 것이죠.

또한 일제는 남산에 ‘조선신궁’이라는 일본의 국가신도 종교시설을 건립합니다.

조선인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가미와 메이지 천황, 천황의 충신이던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신사등을 남산 주변에 건설합니다.

해방촌에 남아있던 조선신궁의 계단이 얼마전에 모두 사라져버렸고 노기신사의 석재가 아직도 남산 배화여대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일제는 조선신궁을 일제 강점기 말기에 건설하고 조선인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등 조선인들의 황민화에 압장서게 됩니다.

장충동의 박문사 자리는 현재 신라호텔 자리로 이 장소가 해방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을 찿는 귀빈들의 숙소인 영빈관이었다가 박정희 정권이 삼성그룹에 팔아서 현재의 신라호텔이 들어섰다고 하는 기막힌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가 경복궁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남산에 이렇게 신사와 조선신궁을 짓고, 덕수궁 앞에 경성부청( 현 서울도서관)을 잣고 경복궁을 훼철해 남산에 있던 총독부 청사를 1925년 경복궁으로 이전한 것 모두는 공간을 지배해 식민지를 통치하려던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고 이런 흔적들은 아직도 서울의 경관에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창경궁이 창경원이었던 당시 창경원에 놀러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고, 1993년 경 쯤인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텔레비전에서 당시 ‘중앙청’이라고 불리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폭파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 시절 중앙청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바뀐 이후 그곳을 방문했던 어렴풋한 기억도 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서울의 공간변화는 현재의 서울의 공간에 직접적 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판단여부를 떠나 일제의 경성 도시계획과 당시의 도시개발이 현재 서울의 경관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는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1960년대이후 한국의 경제개발과 도시계획을 주도했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청년 시절 배웠던 일제당시의 지식과 개념을 그대로 다시 써먹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일본 정치계에서 한국 정치계를 막 대한다는 인상을 받는 건 한국의 위정자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토지구획정리 사업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이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일제가 사대문밖 돈암동 등에 새로운 주택지를 건설하던 1937년 대경성계획에서 선택했던 택지개발사업에서 쓰던 그대로의 개념을 가져온 것입니다.

일제때 주택개발로 빈민층인 토막민들이 경성 교외로 말려났는데 같은 개발방식을 채용한 박정희 정권 당시의 판자촌 개발과 아파트 건설도 하층민들을 서울 교외로 밀어냈습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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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쓴 트래킹 이야기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애서 출판되어 주목을 받은 책입니다.

같은 미국작가인 빌 브라이슨 (Bill Bryson)의 ‘Walking in the Wood(2006)’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숙명인 듯 합니다.

두 책 모두 아마추어 트랙커인 저자들의 자전적 이야기이고 미국의 대표적인 두 트래킹 코스인 PCT(Pacific Crest Trail)과 AT (Appalachian Trail)를 다루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두 책 모두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리뷰는 이 두 작품을 간략히 비교하면서 진행할까 합니다.

첫째, 이 책의 트래킹 동기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남편과의 갑작스런 이혼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로 인한 것으로 혼란스럽고 당황스런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버지에게서 버림받고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야 했던 개인사가 더 영향을 미친 것 같아보입니다.

반면 빌 브라이슨의 책은 고등학교 동기와 함께 무모하게 애팔리치아 트래킹에 나서서 이들이 처한 상황을 코믹하게 보여줍니다.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들이 생전 처음 산속에 들어가 겪는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유머와 코믹함이 있죠.

둘째,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여자 혼자 트래킹을 하는 상황으로 험난한 트래킹을 해나가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46세의 어머니가 암으로 죽고 26살에 이혼을 한 여주인공이 한번도 해본적 없는 미국 서부 종주 트래킹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젊은 여성 혼자 트래킹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도전적인 것인지 은연중에 대화를 통해 나타나 있고 책의 말미에 주인공이 위험에 노출되었던 순간이 나타나 있습니다.

반면 빌 브라이슨의 책은 위에서 언급한 고교시절 고향 친구와 같이 트래킹을 하는 이야기로 트래킹 자체도 이 책에서 했던 것처럼 종주를 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를 합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미 기혼인 저자와 노총각인 친구는 완주를 목표로 했었으나 산 밖의 삶과 일들에 끊임없이 얽매어 완주보다 숲속에서의 새로운 즐거움을 찿는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픈 기억이 남아 있던 고향 미네소타와의 절연을 결심하고 트래킹에 나서 그 절박함이 더 강했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계획했던 트래킹 코스를 모두 완주합니다. 기록적인 폭설로 일부 구간을 우회하고 돈이 없어 물조차 사 먹을 수 없을 만큼 고생했지만 결국 완주를 하고 맙니다.

요새처럼 집에 갇혀 일만하는 것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 솔직히 외국에서의 트래킹 경험담은 그 자체로 짜릿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2013년에 페이퍼백이 나온 책이니 저자가 걸었던 미국 서부의 트래킹 코스가 근래에 일어난 캘리포니아 대화재로 얼마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 책에서 묘사한 캘리포니아와 오레건 주의 히피들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때가 언제 오게 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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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Dennis Kim 2020-12-06 00:26   좋아요 0 | URL
그러신가요?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여성 트래커가 쓴 글을 보기가 무척 어렵네요.
 

미국이 1838-1842년 행한 남태평양( 피지, 사모아,하와이), 개척 이전 서부 콜롬비아 강( 오레건, 캘리포니아, 캐나다 접경지역) 및 남극대륙 탐험에 대해 한국에는 놀랄만큼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 160여년 전 행한 남태평양/ 남극 탐험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1830년대 미국은 아직도 서부 지역, 캘리포니아와 오레건 주의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이전시기부터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태평양 항로를 따라 항해를 해온 유럽 ( 특히 영국과 프랑스) 세력과 달리 대양 항해 혹은 탐험의 역사가 일천한 신생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남태평양/ 남극 항해를 이끈 미 해군 소속 찰스 윌키스 중위 ( Lieutenant Charles Wilkes)는 미 해군성으로부터 항해선단의 선장(Captain)으로 임명받지도 못한 상태로 전대미문의 항해를 하게 됩니다.

측량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찰스 윌키스는 4여년간의 항해동안 그 이전 서구 어느 나라에서도 측량하지 못한 피지군도와 남극 대륙을 측량하고 해도를 작성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군인으로서의 오만함과 휘하 선원들을 무자비하게 또 폭군과 같은 스타일로 지휘해 능력에 비해 그의 업적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4년간의 항해가 끝난후 그는 뉴욕에서 열린 군사법원( Court Martial)에 회부되어 그가 행한 지휘가 적절했는지 심판을 받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오만하고 고집불통인 개인적 스타일로 그는 바라던 해군제독이 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긴 항해 이후 그는 자신의 업적을 내보이기 위해 항해일지를 기반으로 공식 항해기를 집필하였고 자신이 지휘한 항해 기간 수집한 남태평양 섬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표본과 식생에 대한 도판들을 전시하는 일에 책임을 맡게 됩니다.

그의 항해에서 수집한 이 표본과 각종 기록들은 후에 워싱턴에 세워지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의 근간이 됩니다.
이후 미국은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멕시코와 전쟁을 하게 되어 현재와 같은 서부지역 영토를 확보하게 됩니다.


같이 동행한 과학자들도 이후 식물학, 민족지학 (ethnography), 인류학 (anthropology), 그리고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등을 선도하는 학자들로 뚜렷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영광의 바다(Sea of Glory)로 미국의 알려지지 않은 ‘영광스런 항해’에 대한 책이므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쇼비니즘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항해를 진행한 배경과 시기에 더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시기는 미국의 아직 열강에 들지 못했던 신생 국가의 시기로 흔히 하는 시대구분으로 남북전쟁 이전시기입니다.

1853년 일본에 전함을 끌고와 강제개항시켰던 미 해군 페리제독 (Commodore Matthew Perry)도 동시대의 사람이고, 거의 동일한 시기에 영국의 찰스 다원(Charles Darwin)이 영국 군함 비글호( HMS Beagle)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던 시기입니다.

1858년 다윈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원고를 이 항해에 참여했던 과학자 아사 그레이 (Asa Gray)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이 항해를 통해 미국은 후발주자로서 유럽 열강들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을 대항해를 통해 축적하기 시작했고 그 기반도 1850년대 설립된 스미스니언 박물관이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 윌키스가 작성한 남태평양 및 미 대륙 서부의 측량자료와 해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일한 해도로서 사용되어 이후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 대중적인 항해/ 모험/ 해군 관련 서적들은 그 자체로 영어권 국가들에게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기록이면서 상당히 제국주의적 성향을 띄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내새니얼 필브릭 (Nathanial Philbrick)도 전미 도서상 (National Book Award)를 수상한 유명한 해양전문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책들은 대부분 항해의 해양의 역사 분야로 각종 해전 및 항해 관련 서적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번에 처음 이 저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후 읽고 싶은 이 저자의 책은 ‘In the Heart of the Sea (2000)’라는 책으로 멜빌의 마스터피스 ‘모비 딕 (Mobi-Dick)’과 관련되어 그가 영감을 받은 실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읽으려 했었지만 여건때문에 읽지 못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가졌던 패권을 가져오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남북전쟁 전후로 미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기에 있어 미국이 어떻게 아시아와 태평양에 영향력을 확대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미국의 해양력 확대의 과정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자신들의 우방으로 끌어들이고 일본의 한국 침탈을 방조하였고,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중국과 충돌하면서 20세기 패권의 향방을 결정지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양의 관련 도서들이 세심한 참고도서 목록과 함께 존재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기밀 문서들이 있겠지만 일단 공식 출판된 관련 도서를 훑어보아도 상황을 복기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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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Hardcover, Deckle Edge) - 『숨결이 바람 될 때』원서
Paul Kalanithi / Random House Inc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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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들은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입니다.

다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요절했기 때문에 나오는 드라마틱함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쓴 글이기 때문에 주제 자체가 철학적이고 쉽지 않습니다.

굳이 어떤 형식의 글인가 구분하자면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본인의 일생을 정리했으므로 자서전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영문학과 과학사/의학사를 공부한 후 의대에서 공부한 저자의 이력이 책에 그대로 담긴 것 같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문학도와 의학도로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풀어냅니다.

저자는 폐암이 걸리기 전까지 전도유망한 신경외과 의사였고 신경과학자였으며, 실습을 하던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폐암은 그와 가족들의 삶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폐암이 확진되기 전까지의 삶이고, 폐암이 확진된 이후 신경외과 수술을 병행한 초기, 신경외과 수술을 못하게 된 이후 딸의 출산과 암투병기를 기록한 부분이 후반부입니다.

자신의 폐 사진을 보고 더이상 신경외과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10여년 이상 걸어온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장면은 보는 이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저자의 부인이 마지막 장에 있습니다.

저자의 부인은 그 자신 내과의사로서 자신의 반려자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과 저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저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가족에게 짐이 되고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저자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모르핀을 맞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목격했던 저자는 본인이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자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신경외과 수술이 무슨 의미인지, 가족과 사랑이 무슨 의미인지,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리고 미래가 없는 자신의 시한부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합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육체란 무엇인지, 인생이 살같고 덧없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도 저자는 자신을 닮은 딸을 낳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8개월간 자켜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자신의 분신이 그래도 세상에 살고 있어서 안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2세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무튼 이분들은 자신들만의 선택을 한 것 같네요.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고 싶은 분들은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의학용어를 감내하셔야 합니다. 특히 신경외과 (neurosurgery)에 관련된 용어는 엄청나게 생소해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 저자가 신경외과 수술을 집도하는 수술 장면은 주로 두개골을 절개하거나 척추 수술을 진행하는 광경을 묘사하므로 가독성이 엄청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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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소개드린 ‘무지개떡 건축 ‘의 이론서인 ‘무지개떡 건축 (2015)’의 탐방 보고서격인 책입니다.

주로 서울의 도심과 외곽지역에 있는 무지개떡 건축물을 답사한 것으로 답사 장소는 종로, 충정로, 홍제동, 용산 지역입니다.

무지개떡 건축이 실용적 의미에서 ‘상가 아파트’라면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상가 아파트들이 위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필연적으로 답사는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초의 상가아파트를 찿아가다보니 이런 답사 경로가 짜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상가아파트 건설이 잠시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가 1960년대 후반에서 1971년 정도 되는 짧은 기간동안이었습니다. 하지만 1974년경부터 본격화되는 ‘영동개발’이후 아파트는 모두 근린주구 이론에 따른 단지형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건물의 밀도와 복합도가 낮아졌습니다. 이후 상가아파트라는 건축유형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가 최근의 주상복합아파트의 열기로 관심이 다시 올라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은 2017년 출간되어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읽을 때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대도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수직으로 건물을 짓고 복합도를 높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필요하다해도 복합건축의 핵심인 ‘밀집도(density)’ 자체가 전염병 발발의 영향으로 도전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밀집도를 완화하게 되면 무지개떡 건축의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사회역학적 이슈가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복합건축에 대한 재고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복합화가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거리두기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공간배치가 이루어질 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재택근무(work from home)이 일반화된다면 현재 단지형 아파트 일변도인 거주공간의 개념도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 더 넓은 주거공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를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건축가인 작가께서 개별 건축물 자체에 촛점을 맞춰 건축비평을 하신다면, 이전에 소개해 드린 김시덕 작가님의 ‘서울선언(2017)’, ‘갈등도시 (2019)’는 개별 건축물보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현대의 ‘대서울’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의 흔적을 찿아본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좋든 싫든 식민지 시대가 현재의 서울과 수도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책의 서두에서 선행연구로 초기 아파트를 연구한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2009)’를 언급하셨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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