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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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학자이신 오찬호 작가가 본 한국사회의 ‘소통’의 문제에 대한 책입니다.

‘맥락(context)’을 고려하지 않는 용어의 ’오용(abuse)’ 이 불러온 불통과 비판부재의 상황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이고, 이 현상이 대결적 정치구도와 맞물려 한국정치의 대결구도를 더 악화시킵니다.

책제목인 ‘납작한 말들’이란 맥락이 제거된 체 잘못 사용되거나 오용된 말들을 뜻합니다.

이책에도 언급된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은 잘못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인데 소위 ‘보수청년’들이라는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방법원으로 몰려가 청사를 파괴하고 윤석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붙잡으려는 ‘난동’을 부릴때 개신교 목사인 전광훈씨가 주장했던 내용입니다(p240) 언론을 통해 이 내용을 접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온 역사맥락을 모른 체, 혹은 일부러 제거한체 오용을 부추기는 주로 보수진영 평론가나 패널들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도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자유’라는 이름아래 추진되었던 괴랄한 정책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하나가 대선후보였던 극우 정치인 이준석의 ’지역별 최저임금제도‘입니다. ’최저임금‘이 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최저선이라는 의미를 망각 혹은 일부러 배제한체, 지역과 업종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는 무려 ’대선공약‘입니다. 이준석이라는 자칭 엘리트 정치인은 차별이 사라져야 할 사회에 지역별 업종별로 ’더욱더 차별‘을 하겠다는 반사회적 발상을 들고 나온 점입니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은’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고 지금은 탄핵된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도 일정한 공이 있는 정치인인데, 차별을 당연시하는 매우 반민주적인 정책을 태연히 내놓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사회의 불평등 해소 방안을 찿아야 할텐데 이 극우 정치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일관되게 초법적이고 반사회적이다’라고 지적을 하셨는데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치인이 지금의 청년세대를 대표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정치인이지만 정치수법이 너무 고루하고 보수정당의 악습만 배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처구니가 없던 ‘더 일할 자유’를 주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정책에 대한 글에 대한 것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120시간 노동‘발언을 해 논란을 자초했고,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자들의 일할 자유‘를 주장하며 황당함을 가중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발상을 하고 발표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 검사출신 대통령은 엘리트의식에 쩔어서 노동자들은 그냥 개돼지같은 버러지로 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저자는 윤 전대통령의 주120 시간 노동발언이 산업혁명초기 영국의 공장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이라고 평가했으며 그의 노동정책이 ’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경제를 모르는 것도 알겠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것도 알겠는데 이런 황당한 정책은 윤대통령을 포함한 파워엘리트들이 세상을 얼마나 ‘그들이 사는 세상’과 ‘저 밑의 것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누어 보는지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오찬호 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하고 정부의 사회/ 교육정책을 비판하시는데 힘드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회제도의 역사적 기원을 알아야 이해를 할텐데, 한국은 전반적으로 역사교육을 너무 등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이 한국사 세계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사, 건축사, 도시사, 물리학사, 생물학사 등 각 분과 학문별로 있을텐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기 않아서 교육을 안하고 그래서 역사적 시각이 결여된 사람들이 맥락없이 말을 하고 말의 오용이 심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에서 맥락은 지식의 거의 모든것과 같은 것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래서 기술자가 중요한만큼 기술철학자와 기술사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너무 기술자 위주가 아닌지 되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지금 일어나는 현상 자체만 분석하는 건 반쪽분석이며 반드시 맥락을 고려하고,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지 역사적 연원을 찿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사학과는 없애자는 주장을 들으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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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의 출판자본과 일본/ 식민지 조선의 독자와의 관계를 다른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 중 실제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독자는 매우 소수였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상태에서 일본의 거대 출판자본이 자국과 식민지 조선에 어떤 기획과 광고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시장을 확장해 왔는지 다룹니다.

일본의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1910년대 후반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열풍이 이는 것을 지켜보고 지식 상품으로서 ‘사회주의’저작을 판매할 전략을 세웁니다.

더구나 일제의 사상통제와 검열정책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관련 책들을 어떻게 배본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국의 ‘탄압’을 마케팅의 전략으로 이용해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책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합니다.

조선의 경우 소수의 엘리트들이 일본어책을 읽고 토론할수 있는 이들이었고, 조선어로 쓰여진 책들도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그리고 해방후에도 상당수 지식인들은 여전히 일본어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출판자본은 번역을 통하지 않더라도 일본어로 쓰여진 책의 소비층이 있다는 걸 알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조선어 신문인 <동아일보>,<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고, 강연회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검열을 피해 독자에게 직접 책을 발송했습니다.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 만주국이 성립하자 대표적인 사회주의 서적 출판사인 <개조사> 사장은 출판시장 개척을 위해 조선과 만주국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출판자본의 조선시장 공략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사실상 이중언어사용상태( bilingual) 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불공정한 교육정책때문에 1925년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된 대학과 도서관도 없었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중고등과정과 대학과정을 유학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교육환경은 지식인들이 ‘일본친화적’으로 만들었고, 상당수가 ‘친일’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어 연구도 조선어 문학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서 번역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책의 마지막 두개의 장은 일본 여성소설가의 중일전쟁 종군기와 식민지 조선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고, 내선일체 정책이 일본과 조선의 인텔리 여성들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한국전쟁 발발이후 일본은 미군과 연합국의 보급기지로서 역할을 하며 구 일본제국의 군수시설을 재가동하게 되며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지게 되면서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전하면서 ‘점령자’미국이 ‘식민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을 짐작하지 못했던 일본 지식인들이 패전 후 미국에 ‘점령’당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영구점령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일 마지막 장이 눈길을 끈 것은 한국전쟁기 일본의 상황에 대한 매우 드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미국과 연합국이 한국을 신탁통치한다고 결정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혼란이 일어난 건 잘알려져 있지만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점령군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일본에서 전후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같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해방과 한국전쟁이후의 상황은 미군의 일본 한국주둔과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도쿄에 사령부를 차리고 일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맥락상 모두 고려해서 상황에 대한 서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저자께서 오랜시간 일본 도쿄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연구자분들이 훌륭한 역사연구서를 쓰시기도 하고, 일본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의 출판시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상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본 점도 참신했다고 봅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나는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일제시대 한국지식인들에 대한 지식사회학으로는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근대의 책읽기 전반에 대해서는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2014)

을 같이 읽어보면 좋습니다.

끝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애증을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의 가로체계는 일제시대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방이후 수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한국땅에 남긴 흔적을 없앤다고 아직도 일본을 추종하는 파워엘리트들이 있는 한 일제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만주사변 이후 병참기지로 삼은 사실을 기억하면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일본친화적’주장을 할 수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알아야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 정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한국의 독재자들과 전범이거나 그 후손들이던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이후에도 수십년간 일본어를 읽고 쓸줄 알았던 지식인/ 파워엘리트들이 최소 1980년대까지는 한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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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제가 편애하는 작가 중 한명이 황정은 작가입니다.

이 책은 순전히 작기때문에 읽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년전 처음 읽었던 작가의 <백의 그림자> (2010, 민음사)의 영향이라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백의 그림자>가 절판 후 다시 출간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김훈작가님처럼 건조하지는 않지만 매우 간결하고 군더더기없는 작가의 문체가 작가의 시그너처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중 제가 편애하는 두분이 김훈작가님과 황정은 작가님입니다.

각각의 단편을 작중 주인공의 시점에 따라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연결되게 동일 사건을 바라보는 소설의 내러티브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성작가이신만큼 한국현대사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 3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서술방식이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한국인들만 인식을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 한국의 격변은 서구를 비롯한 외국에서는 몇백년에 걸친 과정이 압축적으로 지나온 것입니다.

한국전쟁이후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경제개발을 통해 산업을 일으켰고, 민주화과정을 통해 독재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급속한 디지털화를 이루었죠. 이런 급박한 변화가 가족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하고 가족구성원들의 각각의 경험은 마치 다른나라를 경험한 듯 구별이 확연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부모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고, 부모세대는 한국전쟁이후 극한의 가난과 대립을 경험했으며, 이후 독재치하의 압축성장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자식세대는 해외를 자유롭게 다니며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사는 패턴을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아날로그의 마지막세대이자 첫 디지털 세대로서 자식에게 컴퓨터가 없는 삶,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이야기하기가 난감합니다. 거기에 이젠 AI까지 추가되어서 어려움이 증폭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살아온 ‘가까운 과거(1970-1990년대)’에 대해 열심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 세상인 과거를 기억하는 건 현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는 객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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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
권성민 지음 / 돌고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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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출판된 신간인데 저는 초판 2쇄를 읽었습니다. 초판 출간 5일만에 2쇄를 찍는 서지기록이 인상적입니다.

스스로 예능피디로 소개하는 저자 권영민씨는 이 책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치/ 계급/ 젠더를 분석합니다 (2부). 자신이 만든 리얼리티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의 못다한 이야기를 풀기위해 쓴 책이고 이 예능을 기획하기 위한 연구가 기반입니다.

SNS가 정치를 지배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서구에서 발생한 자유와 평등의 정치사상에서부터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최초의 부르주아 혁명인 프랑스혁명에서부터 극단적인 인의적 평등을 강조한 러시아 혁명을 거쳐 자본주의사회에서 존재하는 계급과 능력주의, 그리고 18세기부터 시작된 여성들의 정치혁명 페미니즘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이론적 영역을 다릅니다.

정치적 좌파와 우파 또는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보수주의자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약자들을 보살피려는 진보주의자의 관점의 차이, 그리고 역사의 관점을 백인 남성위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제국주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여성/ 소수자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까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분배에 대한 ’결정‘을 담당하고 이익배분을 ’조정‘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이해당사자로서의 정치참여자들의 각기 다른 관점을 두루 살필 수 있습니다.

정치참여자들의 결정을 들여다봐야 하니 여러 유명한 심리학 실험( 스탠포드 감옥실험 같은)도 소개되고 , 한나아렌트의‘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도 소개됩니다. 악인은 관료의 얼굴을 한 매우 성실한 모습으로 보여져 충격을 준 저작이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책이 다루는 젠더( 젠더 ’이퀄리즘‘의 시대)에 대한 글입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의 20-30대 남성들이 느끼는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을 잘 알게 해준 글입니다.

소위 MZ세대에 속한 남성들은 이미 학창시절부터 여성들에게 학업에서부터 순위에 밀려있는데다 남성은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병역의 불리함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 여성들이 ’소수자‘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급진적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병역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남성들보다 불이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보상심리라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가부장제는 사실상 말뿐인 껍데기로 전락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현실이죠. 핵가족화와 더불어 명절제사 관행이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근대적 교육을 받은 조부모세대부터 남녀구별없이 동등한 교육을 받으며 현재 한국여성들은 역사상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똑똑한 세대입니다. 불합리한 상황을 참지 않는 젊은 여성들이 가족제도든 직업에서든 본인의 목표를 성취하려 할 것이고 국방의 의무는 있지만 가장의 역할이 사라진 남성이 자기방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주늑든 남성들이 ’드센‘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저로서는 알수 없었던 시각으로 젊은 남성들의 심리를 잘알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남녀공히 소위 ’정상가족‘을 인정하지 않는 상당히 급진적인 ’개인주의‘가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개인주의자인 저로서는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정상가족을 이루고 사는 저이지만 결혼은 철저한 개인의 선택으로 비혼이든 동성혼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려스러운 건 결국엔 같이 살아가야 할 남성과 여성이 너무 적대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이점은 피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성향상 그리고 여건상 이성을 전혀 만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심지어 ‘자보고 사귄다’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이들도 같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죠.

한국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기때문에 사회가 성숙할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나아가는 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에 대한 무시와 혐오만 아니라면 무엇을 결정하든 개인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편의를 위해 개개인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강요하는 관행은 고쳐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시간을 많이 소요합니다. 다양성을 포용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의견을 조율해야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확인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민주주의자라고 칭하면서 ‘효율’운운하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고, ‘잠재적 독재주의자’로 불러도 아마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효율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겁니다.

효율과 신속함은 기본적으로 돈을 위한 것이며 조직은 독재적일수록 빠르게 움직입니다.

이 책이 예능방송과 정치사회입문서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추천인의 언급에 공감합니다.

정치는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모든 행위가 ‘정치’라고 생각하신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부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진부한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지난 2024년 12월 3일 검사출신 대통령이 육사출신 국방장관과 모의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한국의 엘리트들이 독재친화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강조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349쪽이니 부담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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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책표지에 이끌려 읽은 책입니다.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인 저도 거의 하루만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가 직접 촬영한 화려하고 이국적인 사진 도판이 매우 인상적인 책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북디자이너가 된 것을 보면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덕업일치’를 이룬 분으로 보여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 거의 절반은 우리에게 미지의 나라인 ‘네덜란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은이가 챂아간 고서점과 공공도서관도 흥미롭지만 암스테르담(Amsterdam)과 대학도시 라이덴(Leiden)이라는 도시 자체에 매우 끌렸습니다.

2023년 영국에 잠시갈때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잠시 들렀을 뿐 네덜란드에 가보지 못해 궁금하던 나라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무척 깔끔해 보이고 옛것이 잘 보존된 인상이었습니다.

독일은 베를린(Berlin), 뮌헨(Munchen), 슈투트가르트(Stuttgart)세곳을 커버했고, 일본의 사가(佐賀)와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와 도쿄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를 커버했습니다.

독일은 수많은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가보지 못한 나라라서 가보고 싶은 곳인데 특히 베를린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일본의 경우 예전에 도쿄를 꽤 여러번 방문했었지만 간다의 고서점거리는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난 이후 도쿄를 가보지 못해서 어떻게 분위기가 바뀌었을지 궁금합니다.

특히 고서와 서점관련 컬렉터로 소개된 사가의 양학당 서점 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래한 서점들의 로고를 모아 액자를 만들고, 다이쇼(大正)시대(1912-1926)시기의 일러스트 작가에 대한 대화는 옛것에 대한 관심, 취향과 컬렉션에 대한 열정을 가늠해 볼 수 있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오랜 역사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두 편도 흥미로웠는데 폴란드의 고서점과 바르샤바 대학도서관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라는 나라가 러시아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으로 상기된 측면이 큽니다.

요새 한국의 무기를 대량 구입하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사실 오래된 카톨릭 국가이고, 러시아의 지배도 오래 받는데다, 1939년 히틀러가 처음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세계대전의 유럽전선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 시절을 통과한 폴란드의 오래된 잡지를 보는 것, 그리고 저자가 폴란드에서 일터로 삼았던 바르샤바 대학도서관의 독특한 모습과 자연친화적 환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학도서관인데도 외부인 특히 외국인들도 여권으로 등록하면 대학도서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 정말 부러운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대학도서관을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학 도서관책임자들이 도서관의‘공공성’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도서관 이용자로서 한국의 공공도서관 일반에 대해 좀 더 말씀 드리면 도서관의 도서구입예산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 같고, 제 경험에 따르면 고가도서 구입도 제한에 걸려 있습니다. 누가 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 건물 자체에 대한 투자보다 책을 많이 구입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건물이 아무리 현대적이고 좋아도 대출도서 권수가 너무 적거나 고가도서 구입도 제한이 걸려 읽을 방법이 없다면 도서관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고 공공 도서관의 기본기능을 무시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해외여행을 가면 꼭 그 도시의 서점이나 중고서점을 방문합니다. 저자가 언급했듯 보통 여행자는 박물관과 서점을 가는 편이고 덕후가 아닌 이상, 그리고 유학간 학생이 아닌 이상 방문도시의 도서관까지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방문도시의 공공 도서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방문도시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과 비슷한 톤이지만 한국의 도서관과 얽힌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소개합니다. 아직 읽고 있어서 완독 후 별도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백창민 ,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한겨레 출판,2025)

끝으로 이 책은 해외하면 늘 나오는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가 아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와 폴란드가 소개되어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나라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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