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1950년 일제강점 해방 후 5년간의 대한민국의 국가형성의 역사를 취약국가( vulnerable state)의 개념으로 바라본 연구서.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참고도서 목록에 저자의 동일 제목 박사학위 논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논문을 기반으로 지은 책으로 추정합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자원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이 있는데( RBV;Resource Based View),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논의의 촛점도 RBV와 유사합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 두 연합국 점령군(occupied force)이 한반도에 진주하고 소련과 미국이 당시 일본땅이던 한반도에 점령통치를 시작합니다.

해방이후 많은 국민들이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 단일정부를 세우기 원했지만 북쪽은 이미 소련의 지원으로 국가형성을 시작하고 있었고 남한은 뒤늦게 국가건설을 시작합니다.

패전후 한반도에서 물러난 일본은 이땅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 사회인프라를 비롯한 물적자원과 인재의 부족이 심각하여 국가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겁니다.

대륙참략기지로 한반도의 경제체제를 만들어 놓은 일제 덕분에 전기발전 시설과 각종 공장들이 모두 북한지역에 몰려있어 남한은 분단이 되고 각각의 정부가 들어섰어도 북한으로부터 송전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한제국시기부터 박정희 군사정부시기까지 한국의 전력산업발달애 대해서는 ‘한국근현대 전력산업사,1898-1961(푸른역사,2021)’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국가형성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여 치안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해야 한다는 점인데, 해방이후 바로 시작된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시기 한국은 특히 치안의 공백상황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1공화국 초기 대한민국 밈시정부를 계승하고 반일세력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던 대한민국은 인재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부일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군대와 경찰의 경우 인재부족이 심각하고 광복군 출신자들의 무능으로 국가운영이 어려워지자 받아들이게 된 지점이라고 합니다.

즉 일본군으로 중국에서 중일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일본군 출신들이 군대에 들어가 한반도 남부에서 벌어진 내란을 진압하게 되고, 일본 순사로 일했던 이들이 경찰로 다시 기용되어 치안유지를 위해 일했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 의문이 남는게, 일본경찰로 일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특별히 더 필요한 전문지식이 무엇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국가폭력인 고문기술 같은 걸 의미하는 건지 불분명합니다.

이에 비하면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에 일본군 출신이 등용된건 다소 이해는 됩니다. 독립투사와 중국의
팔로군을 토벌하기 위해 실전경험을 가진 것이라면 그리고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것이라면 일본 군사학교 출신자들이 당시 혼란스런 상황에서 유용했음 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일세력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미군정시기 해방이후 제대로된 물적 인적 기반없이 한반도 남부가 공산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유지되어야 했는데,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생각하는 전략적 우위에서 한국은 유럽과 일본에 비해 뒤쳐져 있어 미국의 원조가 충분치 않았던 겁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코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미국은 유럽과 일본을 전략적으로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정은 누가해도 상관없는 한국의 행정업무와 치안업무에 일제시대에 일했던 이들을 거의 그대로 쓰려고 했습니다.

미국입장에서는 한반도와 일본 모두 일제를 점령한 것이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이런 결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초기 임정을 계승하고 균등주의를 주장하며 사회민주주의 색채를 띈 것도 이런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남한은 자본가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고 경장 전의 원칙에 따른 이승만 정부와 중도파의 토지개혁으로 지주층은 몰락하게 됩니다.

이 빈자리에 서북지역(주로 평안도)출신 자본가들이 나타나 정부로부터 적산 (敵産)을 배분받아 자본가 계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실 일제시기를 거치고 해방의 혼란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자본가 계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현재 한국의 사회를 규명하는 중요한 사항 중 하나입니다.

제헌헌법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계획경제와 사회민주주의, 기업의 국유화, 기회균등, 8시간 노동 등을 명시하고 있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의 대재벌기업들이 형성되었는지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안을 잘 이해해야 왜 2023년 현재 지난 2008년 이후 철지나 폐기된 지 오래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적 규제완화정책을 왜 재계에서 아직도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추측입니다만 애초 일제의 경제적 독점으로 자본가 계급이 생성되지 않았던 한국에 갑자기 대기업이 나타나는 방법은 국유기업이 민간불하 방법 이외에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주의적 시장주의 경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와 경제의 유착으로 보지 않고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자본가 계층 형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별도로 다시 다룰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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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간된 신간입니다.

구한말 고종 재임시 서울에서 초대 러시아 공사를 지냈던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의 평전입니다.

내용은 거의 90%이상 베베르가 조선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1860년대부터 189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을 다룹니다.

이 책은 러시아 외교관의 외교활동을 러시아 사료를 통해 접근했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한국계 러시아 역사연구자인 벨라 보리소브나 박의 러시아어 저서를 한러관계사를 전공한 두 전공자께서 한국어로 번역한 책입니다.

글의 대부분이 외교문서의 인용이 많은데다 번역투도 있어 아무래도 한국 연구자가 직접 저술한 책처럼 가독성이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1840년 아편전쟁이후 영국이 영향력을 동아시아지역으로 점차 넓히고 있었고 시베리아로 동진을 해서 연해주에까지 진출한 러시아도 조선과 함경도에서 국경을 맞대면서 조선문제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베베르라는 러시아 외교관은 중국전문가로 외교관에 들어선 인물로 최초에 중국으로 부임했다 조선에 초대 러시아공사로 부임해 1884년 조선과 러시아와의 수교조약을 체결한 실무자였으며 조선과 러시아와의 육로교역을 위한 조러육로통상장정을 체결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조선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이 조건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갑신정변(甲申政變,1884), 갑오개혁(甲午改革,1894), 을미사변 (乙未事變,1895),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1895) 등을 현장에서 지켜본 외교관 중 한명이었습니다.

아마 외교관 베베르가 한국 근대사에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인 것은 그 자신이 고종과 가까운 고종의 정책자문을 해왔다는 사실과 최초 조선에 러시아공사관을 개설하고 제정러시아와 조선간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역사적 고비마다 일제의 조선의 주권 침해에 맞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고 그 다음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1896)이 일어나는데 이 정치적 행위로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점령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게 됩니다.

을미사변이라 사실상 경복궁에 감금상태였던 고종은 자신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고 동학농민봉기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들어온 일본군은 궁궐을 에워싸는 등 그들의 침략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관파천과 러시아의 개입은 갑오개혁을 주도하던 친일내각을 붕괴시키고, 정국의 반전을 이루게 되고, 고종은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친일내각을 경질하고 러시아 니콜라이2세 대관식에 민영환과 윤치호를 특사로 보내 러시아 군사고문과 러시아 병력지원을 요청합니다.

러시아 외무성은 한반도에서 이익이 서로 부딪치는 일본과 무력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일본이 조선을 그대로 점령하게 놔둘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외교 기조를 이어갑니다.

고종의 러시아 병력 요청도 일본군과의 충돌을 우려하여 베베르의 오랜 요청 끝에 성사됩니다.

하지만 1890년대 후반 러시아는 조선보다 만주와 연해주에 더 많은 외교적 관심을 가지게 되고 조선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베베르가 일본의 영향력 강화에 맞서는 러시아의 외교정책 전환을 촉구했지만 러시아 외무성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이익우위를 인정하면서 대조선정책을 소극적으로 일관합니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일본과 다시 맞붙을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걸 1890년대 말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와 일본은 1880년대 청의 대조선 간섭이 강화되어 조선을 속국처럼 대할 당시는 모두 청국에 대항하여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었고 청일전쟁(1894-1895)를 치룬 이후에도 일본은 유럽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를 매우 버거워 했습니다

하지만 청이 조선에서 물러나자 러시아와 조선은 대조선 정책을 두고 러시아와 맞서지만 일본은 러시아를 상대하면서 교묘하게 러시아를 회피합니다.

일본에게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울주재 서구 외교관들의 존재는 관리를 해야만 하는 걸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전반적인 책 내용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위애서 언급한 구한말의 정치적 격변은 각각의 사건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존재합니다.

러시아 사료를 중심으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조명한 책으로는

김영수 교수의 ‘미쩰의 시기(눈보라의 시기) :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경인문화사,2012)’를 보시기 바랍니다.

민영환의 러시아 니콜라이2세 대관식 참석에 관한 김영수 교수의 책도 유익합니다.
미국을 통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러시아 차르를 알현하고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연해주를 거쳐 인천에 다다르는 사행길을 다룹니다.

100년전의 세계일주: 대한제국의 운명을 건 민영환의 비밀외교 (EBS Books,2020)

흔히 긍정적으로 해석되던 친일 개화파의 갑오개혁과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이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연구서도 있습니다. 책분량이 상당해 그냥 참고로 소개합니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청계,2017)’입이다.
갑오개혁은 친일파들이 일본을 등에 없고 사실상 조선의 주권을 침해하는 또 하나의 왜란이라면 측면에서 접근한 해석으로 사실상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에서 조선을 침략했던 규슈의 삿쵸동맹(薩長同盟)의 후예들이 300여년아 지난 후 친일파 앞잡이들은 내세워 다시 난을 일으켰다는 관점으로 갑오 개혁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이어는 사실상 고종의 러시아망명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해석입니다.

해외로의 망명이 여의치 않으니 일본이 접근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인 러시아공사관으로 망명을 해서 의병들의 봉기를 지휘했다는 지점을 설명합니다.

다음으로 망국의 군주로 기억되던 고종을 근대적 군주로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책이 아마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2000)’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종의 우유부단한 이미지는 서양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의 조선애 관한 개괄적 역사서애서 비롯된 면이 크고 일제가 의도적으로 고종의 능력을 폄하해 유약한 군주로 만들어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고종은 재위 40년이 넘었던 통치자로 오랫동안 통치한 18세기의 영조만큼 오래 재위한 임금이기도 하고 스스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입장에서 조선을 개화로 이끈 군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구한말은 조선의 마지막 시기이기도 하지만 조선에 처음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시기이기도 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기입니다.
일제의 흔적이 남기전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 아직 유교적 사고방식을 지닌 상태이지만 변화하는 환경과 정세에 이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19세기를 휩쓸었던 민란이 일어난 원인이 정조 사후 발생한 세도정치라는 점에서 이들이 역사에 끼친 악영향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세기 100여년간 그 이전에 확립되었던 조선의 정치제도가 무너져내린 겁니다.


이들이 모든 걸 망가뜨려놓아 고종은 재위기간 내내 군대를 양성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된 군대가 전혀없고 국가자체 재정도 부족하니 청나라와 러시아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에게 병자호란 (丙子胡亂,1636)에서 패하고 국왕이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의 예를 지내고 심양으로 왕세자도 인질로 보내고 백성들도 인질로 보냈는데도 도대체어떻게 했길래 250여년 만에 군대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집권층인 양반사대부들에게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 안하고 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무신을 천대하고 돈버는 상업활동을 천대해서 화을 자초한 것입니다.

같은 양반인데도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차별하고 문과급제의 기회를 주지 않던 나라였습니다.

19세기초를 흔들었던 ‘홍경래의 난(1811-1812)’이 평안도에서 지역 지배층의 불만으로 일어났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김선주,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난 (푸른역사, 2020)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서울과 경기지방 출신 양반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한거죠.

19세기에도 기원전 7세기 쯤의 고대 중국 문헌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 상황이 황당하고 할 수밖에 달리 생각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조선후기시대에 관해 읽어본 책들을 보면 결국 이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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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1968년 미국에서 출판된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관련된 책입니다.

Beyond Vietnam: The United States and Asia(Alfred. A. Knopf,1968)


위의 책이 오늘 소개할 책으로 출간된 지 53년이 되었습니다. 이런 고서를 소개하는 건 1968년 당시의 상황을 당시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당시의 상황이 현대사로 포함되어 있어 현재시점에서 비교가 가능한 것도 고서를 읽는 이유입니다.

1968년이면 아직 베트남전쟁(1960-1975)이 종결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은 1961년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서 있었고, 1965년 한국과 일본사이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고 베트남전에 한국군이 파견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저자 라이샤우워 교수는 1961-1965년 기간동안 주일미국대사를 지낸 분으로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아직 농업국가였고 경제개발계획이 진행중이었으며 아직 경부고속도로도 완공되기 전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국공내전(Chinese Civil War, 國共內戰,1927-1950)을 숭리로 이끈 마오쩌뚱(毛澤東)이 아직 살아있었고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1965년 북베트남에 대규모 폭격을 했지만 전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고 남베트남 지역에서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찿는데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전문가인 저자는 일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데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근대화/서구화애 성공한 나라로 다른 저개발된 아시아의 나라와 다르고 미국의 중요한 아시아정책 파트너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한국과 만주에서 식민화를 시킨 역사는 고스란히 설명이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패전이후 미군이 일본을 점령하고 일본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시켰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언급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군정을 실시하면서 일제 시대 전범과 친일파들을 그대로 중용시켜 두 사회의 체제붕괴를 막고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세력에 대응하는 봉쇄정선을 구축했습니다. 미국입장에서 패전이전까지 일본이었던 한국에서 친일파들이 일제 당시의 직무를 그대로 해방 후에도 하는 건 미국이 묵인하고 당시 아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입장에서 취할 단기적 해결책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일본과 한국에서의 미국 점령군(occupied force)이 행한 군정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육군정보 계통에서 일을 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연구를 한 미국의 제1세대 일본/동아시아 전문가로서 1961-1965년까지 주일대사를 지낸 분이라서 아무래도 친일적인 성향이 보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패전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65년 도쿄올림픽도 치루고 해서 아시아에서 선진국 반열에 든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인 중국을 봉쇄하는 차원에서 서태평양에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당시는 미국이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장개석 (蔣介石) 총통이 다스리는 타이완을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50년 전에도 국공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쫓겨간 장 총통의 타이완이 미완의 내전의 결과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고,현재 중국-타이완 관계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과 타이완의 ‘독립정책’이 충돌하는데다가 타이완 해협과 타이완 자체의 전략적 중요성(미군 해군기지 존재+세계최대 반도체 와이퍼 생산국)으로 인해 미국-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50여년 전 중국의 경제규모가 보잘 것 없는 후진국이고 중국의 군사력과 해군력이 고려할 바가 없는 정도라고 생각된 것인데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경제력은 이미 일본을 넘어섰고 군사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 미국과 서구유럽권에서는 현재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있고 중국과의 전쟁가능성까지 나오고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사안입니다.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거의 황화(黃禍, yellow peril)로 생각될 정도로 매우 무자비합니다.

서구유럽권과 영미권 선진국들이 18세기 이래 처음으로 중국의 힘을 인식하게 되고 헤게모니 자체가 흔들리게 되자 위기감이 증폭된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감이 커지자 서구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저술과 강연들을 지속하면서 공산주의 체제의 미개함을 강조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소수의 엘리트와 부자 중심의 과두정치체제(oligarchy)로 변해가고 있고 불평등이 심화해 가고 있는데 한가하게 아직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만을 강조하는 건 좀 어딘가 어설퍼 보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철저히 미국 국무부 담당자 입장에서 쓰여진 미국의 국익 극대화 방안에 따른 책이고 1968년 당시 미국은 국공내전 이후 중국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사실과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경험이 당시 최대 이슈였던 베트남 전쟁 참전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찿을 수 있던 역사적 교훈이라고 설명합니다.

196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면서 아직도 미국외교가 19세기의 외교를 답습하고 있고 서구중심적 외교로 일관하여 비서구권인 아시아에 대한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1968년 당시 미국에는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아시아 언어에 능통한 지역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불안정한 저개발국이 대부분인 아시아 지역은 당시 전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던 지역으로 결국 미국입장에서는 이 지역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결국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다고 보았으며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인 일본이 그 선도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우위는 2021년 현재까지도 유효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분이 말하지 않은 행간에 결국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가 잠복해 있는 셈입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선택해 중국의 해양진출울 봉쇄(containment)하는 교두보로 삼았고 한국전쟁을 통해 중국 본토를 압록강을 넘어 진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이후 일본이 한국과 중국 타이완에 행한 식민지 지배 역사를 묻어둔 체 아시아 지역의 경제발전에 몰두하게 한 셈입니다.

당시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 민족주의(nationalism)가 확산되고 민족분쟁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것은 지역의 문제로 관여하지 않고 미국은 단지 은행가처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원조를 각국의 경제개발 계획에 맞게 자원분배의 역할만 하는 것이 더 맞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아시아 각국의 독자적 결정은 각국이 하고 미국은 단순히 지원만 해야 미국에게 전가되는 책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일본학을 연구한 저명한 학자이기 때문에 이분의 주장이 상당부분 실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아직 뭐라 더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요새 1960년대에 나온 책을 몇 권 읽어보니 왜 사람들이 고서를 찿아 읽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사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당대의 현안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떠한 평가를 내렸고 어떤 의견을 내는 지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이 어떠한지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외교와 각국 국제관계 상황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20세기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외교의 한 장면이 역사화되는 과정을 1968년 출판된 저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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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세대를 전후해서 1980-1990년대 20대 청년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유시민’이라는 이름은 ‘작가’,’지식소매상’,’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보다는 ‘항소이유서’를 쓴 1980년대 운동권의 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그 항소이유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종편채널의 예능프로인 ‘알쓸신잡’에서 언급되어 다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그가 정치인이 되기 전 약 30여년 전에 출간되었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1992)’을 읽은 것이 첫번째입니다.

이 책은 원래 2011년 출간된 초판본의 개정판으로 특이하게도 작가는 초판을 이미 읽었을 경우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개정판 서문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책이 홉스와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 서양의 대표적인 ‘국가이론 ‘에 대해 서술한 입문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개정신판이 출간된 것도 2016년 겨울에 있었던 ‘촛불시위’와 그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이후 작가가 문장을 손볼 필요가 있어서 개정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징을 몇가지 요약합니다.

첫째, 내용이 충실한 ‘국가론’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홉스의 국가론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좋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둘째, 2011년-2017년 기준 한국의 현실정치 상황과 이 서양의 학자들이 주장한 국가이론이 어떤 면에서 현실설명이 가능하고 어떤 면에서 한국에 적용될 수 없는지 적절하게 설명됩니다. 알수없는 용어와 정의를 그대로 직역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책과는 차별되는 점입니다.

셋째, 이 책의 논조와 작가의 시각은 분명하게 ‘중도적 자유주의’의 시각으로 보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등 대한민국 초기의 통치자들과 1-5공화국꺼지의 정부가 극단적 국가주의 전체주의적 성격이 있다고 밝혔고 저는 이 평가에 동의합니다.

대통령을 ‘국부’로 떠받들거나,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고 국민이 국가의 일부로 국민 ‘개인’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목표에 매진하도록 한 박정희 군부정권 모두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주의 정부였습니다.
한국 군부정권의 통치스타일은 서양과 비교하면 나찌독일의 히틀러, 구 소련의 스탈린과 통치스타일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자체가 비스마르크 시절의 프러시아로부터 법률체계와 군사제도 등에서 영향을 받았고 일제가 세운 만주국 출신 엘리트들과 군인들이 초기 대한민국 정치권을 장악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에 1945년 해방이후 1980년대에 이르는 긴 기간동안 한국의 정치와 국가를 보는 시각이 ‘국가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초기의 지배 엘리트들이 아직도 민주주의/ 자유주의 대한민국을 만든 지도자들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한국 현대사를 좀더 세밀하게 보셔야 하고 이 책도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마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책의 내용은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의 철학자들이 오래전에 주장했던 국가에 대한 이론에 비추어 두 보수정권의 성격이 전체주의, 국가주의적 성격이 크다는 겁니다.

냇째, 과거의 보수정부 뿐만 아니라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들 진보세력이 ‘신념’에 의거해 무책임한 정치를 해왔다는 지적은 뼈아픈 지점입니다.
평소 진보정치세력이 구호만 외치고 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결과를 이룰때까지 끈길기지도 않고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변절하는 행태 모두가 바로 이들이 ‘책임정치 ‘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한 때 진보진영에 몸담고 정당대표도 한 작가의 지적이기 때문에 이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와 같은 제3자가 보기에 진보세력이 책임을 망각하는 건 바로 ‘무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다음으로 이 책과 관련하여 현 보수야당세력에 대해 한마디 말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역사적으로 국가주의를 추구해 왔던 ‘이념형 보수’내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시장형 보수’ 두 부류 밖에 없는데 두 부류의 공통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주의’와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고위관료와 사법부 출신들이 기득권층을 형성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업가와 재벌을 끌어들여 극단적 저유방임적인 시장주의와 작은정부’만’을 추구합니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도 말입니다.

이들이 늘 주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들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보나 이들의 행태를 보나 전혀 자유민주주의와 맞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상실한 사실이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한 불신의 원인입니다.

항소이유서를 섰던 유명한 586 정치인 출신이지만 분명 유시민 작가는 한국진보세력의 아픈 면을 알고 있고 적절히 지적했으며 책 내용이 결코 과격하지 않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끝으로 한국의 복지제도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꼭 읽어보기기 바랍니다. 특히 복지에 보수 진보가 없다는 점과 한국의 복지제도가 보수정권인 박정희 정권과 김영삼 정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약육강식의 경제적 경쟁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복지제도이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국가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선 보수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현재의 위치에 왔다고 주장하는 것도 터무니없고, 무턱대고 작은 정부만 주장하는 몰상식을 이번 기회에 버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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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oners of Geography: Ten Maps That Explain Everything about the World (Paperback) - '지리의 힘' 원서
Tim Marshall / Scribner Book Company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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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분야에 정통한 영국 출신 언론인이 집필한 지정학(Geopolitics) 입문서입니다.

총 10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마지막 결론이 이어서 나옵니다. 깊이는 없지만 지정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독자들이 일독할만한 책입니다.

이 책의 번역본이 왜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이유는 알겠네요.

정치가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과 정치가들의 의사결정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 결정은 지리적 환경에 결정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물리적 환경( Physical Geography)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에 대해 관심이 있는 현재, 이책을 읽지 않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책에 언급한 지역 중 러시아, 중국, 미국,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극지역이 특히 흥미롭고 가치있는 분석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역사는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위해 노력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유럽 평원지역에서 기원한 이 슬라브 민족의 나라는 북해에서 에게해를 통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려 했지만 불발되었고 이 와중에 크림반도를 두고 서유럽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세력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크림전쟁,1853-1856). 러시아는 이후 북해의 관할권을 두고 터키와도 전쟁을 벌였고, 제1차세계대전(1914-1918)에도 유럽의 동부전선에서 터키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우랄산맥 서쪽 지역에서 부동항 확보가 어렵게 되자 이후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청나라와 조선에 접근합니다. 러시아가 연해주 지역을 장악하고 시베리아 철도를 완성한 것도 모두 부동항 확보의 일환입니다.

일본과도 연해주와 만주지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러일전쟁(1904-1905)을 벌였지만 한반도를 통한 부동항 확보에 실패하고 그 결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밀어낸 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화하게 됩니다.

러시아는 동해와 쓰시마해협을 통해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교역루트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19세기 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영국이 거문도를 일시 점령하면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습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한국 근현대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열강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등 친미적이지 않은 국가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세계의 초강대국 자리를 노리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며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미국과 대만문제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에 철도를 건설하고 나일강에 댐을 건설하는 등 영향력을 겅화하고 있습니다. 세계교역의 핵심 교통로인 말라카 해협과 파나마 운하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자 경제발전에 중요한 자원 수입을 위해 아프리카 남미의 나라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에 도로를 연결하고 항구를 조차해 말라카 해협을 우회할 구상을 하고 있고 파나마운하를 대신할 니카라과 대운하를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외교파트너로 이미 한국의 교역에서 중국은 최고의 위상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을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전쟁 휴전을 위해 38도선을 긋고 한국을 분단시킨 것도 결국 당시 공산주의 세력이던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를 기점으로 봉쇄(containment)하기 위해서였고,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이던 일본에 재무장을 사실상 허용하는 것처럼 태도를 바꾼 것도 결국 일본을 방패삼아 태평양에서의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저지가 발칸반도, 중동지역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런던에 거주하다보니 사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상입니다.

최고의 동맹국으로 알려진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서진을 계속하면서 프랑스에게서 루이지애나를 포함한 미시시피강 유역을 구입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해서 캘리포니아,아리조나, 뉴멕시코 지역을 빼앗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진을 계속해 하와이 왕국을 미국으로 통합시키고, 괌과 필리핀까지 식민화하면서 중국해안지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합니다. 19세기 초부터 산업화관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들여와 목화농장(cotton plantation)을 기반으로 면화를 영국 등지에 공급했으며 태평양으로 진출해 포경업을 시작해 러시아 연안인 오오츠크, 배링해 그리고 일본과 조선사이의 동해 근해까지 진출합니다. 그리고 중국에 모피를 교역하기 위해 수달과 바다표범 등을 남획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이들 상업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상의 조그만 군도들을 식민화하고 교역로 확보를 위해 필리핀을 식민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19세기 이후 100년 이상 누려온 태평양에서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해양으로 진출하려던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잘 알지 못하고 알아야 할 이유가 없던 조선의 사정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1945년 해방 당시 일본에 속해 있었고 미국이 일본을 점령( occupation)하고 통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남쪽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이런 점령통치를 하기 전 이미 하와이와 괌 쿠바 필리핀 등을 점령통치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1910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이미 청일전쟁 이후 대만(1895)을 식민화했고, 현재 홋카이도 지역인 에조치의 경우 도쿠가와 막부시절부터 이미 식민화가 되었습니다.
이미 2번의 식민통치 경험을 가지고 조선을 식민화켰고, 이후 중국을 본격 공략하게 된 것입니다. 제1차세계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였던 일본은 패전국이었던 산동의 청도지역을 지배하던 독일세력을 몰아내고 본격 대륙침략을 위해 만주국을 세웁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1917)이후 지속된 러시아 적군과 백군과의 내전에 참여해 시베리아 출병을 합니다. 러시아 백군을 지지하기 위해 시베리아에 출병한 제1차대전동맹국은 일본 뿐 아니라 미국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역사적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북극지역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와 얼음이 녹아 생길 수 있는 저지대 침수와 기후변화 등 부정적 영향에만 집중하던 이전의 시각과 다르게 이 책은 북극에 얼음이 녹아 생기는 각국의 국익다툼과 경제적 효과에 집중합니다.

우선 얼음이 녹아 중국과 북미를 잇는 북극항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과 아직 극한의 환경으로 탐사를 못해 개발되지 못한 자원에 대해 이미 거대 에너지 기업들이 상업적 이용을 위한 탐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미 냉전시대부터 북극지역에 도시를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이지역의 이익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고 북극지역에 영토가 있는 캐나다와 덴마크(그린란드)가 이 지역의 주권과 이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주시해야 합니다. 특이하게도 미국은 북극지역의 이권에 대해서는 러시아만큼 적극적이지 않고 무관심합니다.

물론 이책이 2015년 저술되었으니 현재도 그와 같은 입장인지는 확인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자연지리적 환경요인 그리고 정치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 사실 어느정도 기반지식이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읽으면 늘 대하는 것 중 하나가 지도이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국가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대응해야만 하는 통치자를 비롯한 정치가들이 보입니다.

외교정책, 경제정책 등 국가 정책이 결국 정치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이 와중에 국가간 충돌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공식적 의사결정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정치를 알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와 지리환경을 동시에 고찰하는 지정학이란 새로운 학문영역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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