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조선에 관한 책입니다. 17세기 조선 현종(顯宗)때 일어난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2008년 나온 책이고 아마도 대기근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량은 320쪽 분량으로 대중역사서로 적당한 분량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14년 초판 4쇄로 아마 기후와 연관된 17세기 역사서가 드물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나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학계에서 17세기를 ‘소빙기(little ice age)’로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화에 그에 따른 대기근의 영향이 농업경제(農業經濟)가 근간인 17세기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핍니다.
시기에서 보듯 이 시기는 조선이 청의 침략을 받아 굴복한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 12월-1637년 1월) 이후의 시기입니다.
병자호란 이전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유교적 이상주의, 명분론을 내세운 서인이 집권하고 그 명분론때문에 당시 후금, 즉 청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인조이후 효종 그리고 그 이후인 현종 당시가 이 대기근의 시기로 저자인 김덕진 교수는 17세기 특히 현종 당시는 대기근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종당시 일어났던 예송논쟁도, 그리고 김육이 실시한 조세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한 것도 현종 재위 당시를 강타한 끊임없는 자연재해, 특히 경신대기근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17세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던 16세기나 18세기 철인군주였던 정조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종은 그 후대임금인 숙종보다 대중적인 주목이 덜합니다. 장희빈과 숙중 그리고 숙종 당시의 정치적 격변이 사극의 좋은 소재가 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신대기근의 참혹한 실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참혹한 실상과 견줄만한 자연재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농사를 지울 수 없게 된 농민과 여러 하층민들은 굶주려 관청으로 달려가 밥을 달라고 하고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자식을 버리거나 줄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임금과 국가는 비축해둔 식량을 모두 털어 백성을 구제합니다.
고위관료들은 이 와중에도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고 재원조달 방안을 궁리하지만, 이런 모든 결정과정이 정치과정이기에 정파에 따른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백성들을 구휼(救恤)하는 과정에서 부정이 일어나고 폭리를 취하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저자가 조선후기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라 현종 재위시의 진휼책(賑恤策)을 알기쉽게 설명하셨고 당시 최대 당파였던 남인과 서인과의 관계도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조선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인(西人)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현종이 실시하던 구휼정책을 비판하고 백성들에게 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산림의 영수이면서도 백성들의 후생은 생각하지도 않고 현종이 어떻게든 재정을 마련해 굶주린 백성을 먹으려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수하를 시켜 비판으로 일관한 송시열의 행동은 납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즉 왕실 정치에 영향력은 커도 백성의 삶에 별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조선 중기의 중요한 논쟁인 예송( 禮訟)이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나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송논쟁이라는 것이 장자가 아닌 현종이 즉위한 이후 선대왕 효종의 계비의 장례에 대한 상복의례에 대한 것인데, 이런 하등의 생산성이 없는 논쟁에 조정의 고위관료와 유생들이 논쟁하는 것이 맞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의 입장에서 봐도 현종의 재위시가 모두 가근으로 시작해서 끝났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자식을 버리거나 죽이고 부모를 버리고 먹을 것을 찾아 유랑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고고한 유학자들의 명분논쟁을 한 것이죠. 당대 일반 백성들도 이런 고위관료들과 송시열같은 유학자들의 이해 못했을겁니다.
제가 보기에 송시열은 지나친 명분론으로 조선의 역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명나라와 주자만 숭상한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라고 평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7세기 이후 19세기 그리고 20세기초까지 서인 특히 완고한 서인 노론의 명분론과 외척세력들이 조선사회의 성장잠재력을 좀먹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시작이 송시열이기 때문입니다.
송시열과 대척점에 서서 사실상 대기근 극복을 위한 정책을 주도란 남인출신 재상 허적(許積)은 이책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실질적인 구휼정책을 주도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해냈습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의 강도는 오히려 현재보다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현 보수정부의 각자도생식 복지정책보다 말입니다.
주목할 점은 대기근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첫째 숙종때 재정확보를 위해상평통보라는 화폐를 발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찍어서 재정확보를 한 것이죠.
둘째, 역시 국가 재정확보를 위해 부자들에게 신분이동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돈을 얼마씩 내면 가령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올려준 것입니다. 대기근이 사회계급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돈을 주고 산 신분이동이 처음 허용된 때도 대기근 이전인 임진왜란 직후로 당시도 전쟁으로 국가재정상황이 엉망이어서 다른 재원조달방식이 없어서 이런 조치를 취했고 현종 당시가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일정하지 않은 농업생산량과 기후에 따라 변화는 작황은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기에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농본사회인 조선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17새기의 이런 먹고 사는 문제는 조선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을 당시까지 길고 긴 영향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에도 농업국가였고, 대부분의 공업시설은 북한지역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업사회의 근간은 1970년대 공업화계획이 이루어져 현실화되기 전까지 한국사회의 근간은 농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세와 근대역사륵 볼 때 농업생산성은 생각보다 매우 큰 함의를 가진 걸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17세기 조선을 덮친 대기근 이외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두 대기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두 책은 기근(Famine)과 관련해 꼭 읽고 싶은 책들입니다.
Red Famine(Doubleday,2018)
스탈린 시기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에서 일어난 대기근이 관한 책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근래 더욱 주목받은 책입니다. 스탈린의 계획경제정책으로 인한 참사라는 일반적 평가를 받습니다.
Mao’s Great Famine(Bloomsbury,2018)
위의 책과 비슷한 맥락( 공산주의 계획경제)이지만 1958-1962년 마오쩌뚱 치하 중국에서 일어난 기근에 대한 책입니다. 약 45백만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은 비극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도 번역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서구의 역사가들이 저술한 것으로 보수적인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산주의를 평가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적 시각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을 놔두고 어미가 죽거나하는 경우도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버리거나 죽치거나 먹는 경우도 았었다고 하니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심란하고 울적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기본적인 먹거리가 해결되지 못해 결국은 사회가 요동치게 된다는 걸 경신대기근의 사례로 알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