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루저의 나라 -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고혜련 지음 / 정은문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에서 동아시아예술사를 공부하신 고혜련 박사의 책입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외국인이 본 당시 조선에 대한 책들도 주로 영미권에 치중되어 있고, 간혹 러시아 외교관이 본 대한제국에 대한 책은 보았지만 독일인이 본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조선은 일단 호기심을 자극할인한 요소가 있습니다.

이 글은 저자가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 도서관에서 찿아낸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조선을 여행한 세 독일인의 조선 답사기입니다.

세편의 답사기는 각각 독립적으로 아무 순서없이 읽어도 무방합니다. 첫번째 프러시아 제국의 산림청 공무원 크노헨하우어의 강원도 당고개 금광 답사기로 대한제국 당시 제국주의 열강세력에게 고종이 광물채굴권을 주고 이익의 25%를 상납받아 고종의 비자금인 내탕금(內帑金)을 조성하고 고종은 이 돈으로 헤이그 밀사를 파견(1907)하고 의병 지원을 합니다. 즉 대한제국 당시 고종이 열강에 이권을 나누어줘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던 사실이 이 구체적 사례로 보아 재정여건이 열악한 대한제국의 궁여지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러시아의 일개 공무원인 크노헨하우어는 25%수익 상납을 부정적으로 보고 고종이 탐욕스럽다고 평가합니다. 그건 그들 독일인의 시각이고 내탕금의 존재를 몰라 가능한 생각이죠.

이 찻번째 답사기는 사실 그냥 답사기가 아니고 크노헨하우러가 프러시아로 돌아간 이후 1901년 베를린 독일 식민지협회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두번째는 독일의 동아시아 예술사가 에쎈의 답사기로 1913년 조선의 경성과 이왕가박물관 등을 둘러본 글입니다. 이책의 저자와는 학문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저자는 이 글을 소개하기 전 독일의 동아시아 예술사의 학맥 계보를 설명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책의 제목에 들어간 ‘유아한 루저’라는 말은 이 두번째 글에서 나온말로 에쎈은 경제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담배나 피우는 양반 계급을 ‘우아한 루저’로 생각했습니다. 독일제국의 동아시아 예술 특히 공예분야가 전문인 에쎈은 당시 조선에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사회의 최하층인 천민이라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인 양반은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체 성리학적 질서에만 순응해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의미로 ‘우아한 루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냉소에도 에쎈은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조선의 우월한 문화가 이어지지 않는 걸 안타까와 합니다.

세번째 글은 독일의 지리학자 라흐텐자흐의 백두산여행기입니다. 1933년도 글입니다. 이베리아 반도를 연구하는 지리학자인 라흐텐자흐는 한반도의 지리와 이베리아를 비교연구하기 위해 조선을 찿아 한반도 전역의 자리를 탐사했는데, 책에는 이 중 백두산 탐사기만 실려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강도’라고 표현된 백두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는데 조선의 독립군의 일부가 아닐까 저자는 추정합니다.

저자가 각 답사기 앞에 설명한 각 시기에 대한 배경설명은 간략하지만 꽤 밀도가 높은 글입니다. 특히 머리말의 ‘대한제국의 낯선 이방인’은 독일 위주로 정리되어 있지만 대한제국의 근대화노력에 독일인들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구한말의 독일인 뮐렌도르프는 중국 텐진에 주재하던 독일 외교관 출신으로 대한제국이 구미국가들과 조약을 맺고 외교협상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비록 독일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중립을 지켰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 유럽인들이 조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아는 경우는 20세기 초 구미에 밀어닥친 일본문화의 영향으로 일본의 시각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 책의 번역판본에 대한 정보는 일러두기에 나와있고 각종 인용출처는 본문에 병기되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도판목록이외 관련 출처도서목록이 없는 건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총 313쪽으로 쉽게 읽히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21세기의 일본은 과거처럼 선진국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별로 생산적인 나라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과거에 얽매인 나라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미로운 대한제국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여지껏 보아오던 국가론적 입장이나 기존의 정치사 입장에서 고종의 통치와 대한제국을 보았던 연구와 달리 이 책은 ‘극장국가(Theater State)’라는 관점에서 고종과 대한제국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퍼포먼스 (Performance)에 초점을 맞춰 대한제국의 성립과 몰락을 조명했습니다.

분석의 틀인 ‘극장국가’라는 개념은 약간의 추가설명이 필요합니다.

극장국가는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Clifford Geertz)가 1981년 저술한 인도네시아 발리의 국가의례를 분석한 저서에서 최초 소개된 개념입니다.

즉, 극장국가는 국가의례나 국가공식행사와 같은 과시적 스펙터클의 극적 효과를 통해 국가의 효력을 유지한다(p16)는 점입니다.

바꿔 말하면 극장국가의 보여지는 스펙터클의 극적 효과가 사라지면 국가의 효력 역시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경우 고종이 을미사변을 겪고 사실상 일본이 그를 경복궁에 감금시키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播遷)을 단행하고 이후 경운궁(덕수궁)으로 이어(移御)하고 정동의 구미대사관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로 칭합니다.
청일전쟁으로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던 청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일본이 들어오자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을 잠시 물러나게 한 상태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겁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실상 힘이 없었던 고종은 자신의 황제즉위, 명성황후의 장례 등을 기획하고 주연을 맡으며 신민들에게 황제가 실제한다는 스펙터클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 프로젝트의 일부로 청과의 사대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迎恩門)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건설하는 퍼포먼스도 벌인 것이죠.

책의 3장은 이러한 정치적 퍼포먼스의 배경으로서 추진된 한성도시개조사업이 소개됩니다. 어쩌면 현재의 서울공간의 개발에 대한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사업으로 친미파로 최초 미국 워싱턴 공사관에서 일을 했던 박정양과 이채연이 주도하여 경운궁을 중심으로 방사상의 근대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 사업으로 현재 종로2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이 조성되었고, 교보빌딩 앞의 고종즉위 40쥬년 칭경기념비전이 만들어집니다.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이었지만 한성도시개조사업에 대한 존재자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만큼 고종이 행한 행적에 대해 대중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 생소한 도시계획에 대해 언급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고종이 행한 황제로서의 정치적 퍼포먼스는 절대주의적 전제군주로서 제국의 신민(臣民)들에게 황제의 존재를 보여줄 수 있었을 뿐이고 그 기간도 10여년에 불과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한 후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제했고, 이후 남산에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고종이 생각했던 한성의 근대도시계획은 틀어지게 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최초의 실내극장이었던 협률사(協律社)의 발생 기원을 추적하면서 실외에서 이루어진 대한제국의 황제의 거둥(擧動), 황제의 초상화인 어진(御眞)봉안행렬등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 이런 스펙터클이 보여주는 극적 효과도 사라져 대한제국의 현실 (reality)을 신민들이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현실과 허구가 서로 엉켜있던 스펙터클이 사라지고 허구적인 퍼포먼스가 모두 실내의 극장 무대로 집중되자 현실이 눈에 보이게 된 것입니다.

본문 349쪽으로 적당한 크기의 연구서입니다만 상세한 주석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책과 몇가지 관련 연구서를 추가적으로 소개합니다.

Geertz, Clifford.,Negara: The Theatre State In Nineteenth-Century Bali(Princeton,1981)

Takeshi, Fusitani, Splendid Monarchy: Power and Pageantry in Modern Japan (California,1998)

두 책 모두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으며, 두번째 책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국가의례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직접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전제권이 강한 권력일수록 더욱더 의례에 집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출신 고대사학자인 저자가 정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사(前史)입니다.

본문 345쪽으로 총 4부로 구성된 책입니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초기 수장한 유물도 역시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인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이론적 역사적 논거를 만들기 위해 평양의 낙랑고분과 가야 신라의 고분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그 유물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목적이 정치적인 만큼 출토된 유물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연관성, 근대를 대표하는 일본과 서구제국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조선의 문화가 지체된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조선총독부 하부 조직으로 시작되어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라는 산업박람회 미술관에서 시작되었고, 조선의 역사적 유물을 발굴 전시하는데 조선인들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유적의 발굴과 그 보고서는 전적으로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의 예산으로 충당되었고, 발굴은 도쿄제국대학 (東京帝國大學)과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출신의 고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들이 발굴을 주도하고 발굴계획 역시 제국대학출신 조선총독부 관료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정체적 역사관에 입각해 조선의 역사를 서술한 겁니다.

1920-30년대 조선의 고분발굴을 주도하던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고고학을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말이지만 그 시각이 정체사관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당시 총독부 박물관 주위에 있었던 일부 유학파 출신 지식인들이 미군정의 명령에 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새출발을 했습니다.

당시 경성제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던 후지타 료사쿠 (藤田亮策),그를 이어 총독부 박물관 주임이었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로부터 박물관 업무를 인계받은 이가 독일 뮌헨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 (金載元)입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은 1920-30년대 당시 발굴된 가야고분의 유물로서 정립된 이론이고 일본은 왜가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가야지역을 찍어 고분발굴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보고서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발굴보고서 작성과 연구에 일본 최고의 두뇌들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고고학 초기 전사가 모두 일본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고고학과 역사학은 이런 식민사관의 학맥과 끊을 수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이를 계승한 서울대 역사학 학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이책의 총평을 하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선 최근에 나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라는 점이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중복되는 내용이 많이 발견되는 건 흠입니다.

두번째 일제의 고적발굴조사의 의사결정과정, 즉 학자와 총독부 관료들의 입장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입니다. 이들은 조선의 고적발굴업무에 결코 일사불란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조선의 고고학 발굴사업이 철저히 일본의 제국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물론 발굴목적은 조선의 ‘정체성(停滯性)’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진 고대사’라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하대학교 정종현 교수의 책으로 제가 읽은 두번 째 책입니다.

전작,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2019)’가 워낙 강렬하게 다가온 탓으로 같은 저자의 이 책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출신의 지식인들의 계보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이래 한국 기득권층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역작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 책이 전작의 후속적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전작보다는 평가를 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한국역사연구회의 웹진 <역사랑(歷史廊)>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기 대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짧은 글들이 연재되기 때문에 각 인물들에 대한 삶과 시대에 대한 서술이 생략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의 삶이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에 걸쳐있다보니 각 시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패망과정이나 한국의 분단과정이 간단하게 서술될 성격도 아니고 특히 일제패망이후 미군정 진주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 미군정 시기, 그리고 정부수립과 한국전쟁 시기까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별다른 언급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연구자가 아닌 국문학 연구자의 글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성을 더 바라기는 어렵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지식사회학의 관점애서 바라본 일제하 기득권층 연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다룬 많은 글들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 경력이 있는 군사독재정권이 의도적으로 역사서술에서 제외해 버려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도 받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삶이 복원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파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김사국, 김사민 형제의 글을 역사 복원 측면에서 의의가 있고, 정반대편에서 일제에 철저하게 부역한 밀정(密偵), 선우순 선우갑 형제의 일화도 일제부역자들이 끼친 악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 봐야할 인물로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세웠고 정부수립 후 우파인 한민당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김성수와 일제시대 최대기업 중 하나였던 경성방직과 삼양사를 세운 김연수 형제에 대한 글입니다.

근본적으로 당시 조선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큰 기업과 언론사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 자명한데, 과연 이들을 ‘민족자본가’, ‘민족언론’을 세운 위인이라고 치켜세우는게 맞느냐 하는 의심입니다.

저는 이들이 모호하게 처신해서 나름 부와 명예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의 친일 행적은 논란이 있을지언정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벌려 품질이 일본 제품보다 좋지 않은 경성방직의 제품을 국민들이 구매해서 부를 축적했눈데 그 후손들이 아무런 공헌도 없이 그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일제 패망이후 산업시설이 북한지역보다 현저하게 적었던 남한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큰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현재 한국 재벌들의 기원을 밝히는 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남긴 적산 (敵産)이 미군정에 의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대략 280쪽에 이르는 작은 책으로 앞으로 좀 더 내용 보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제시기와 해방이후를 다루는 책으로 현대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입문으로 일독하기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 읽은 조선에 관한 책입니다. 17세기 조선 현종(顯宗)때 일어난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2008년 나온 책이고 아마도 대기근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량은 320쪽 분량으로 대중역사서로 적당한 분량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14년 초판 4쇄로 아마 기후와 연관된 17세기 역사서가 드물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나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학계에서 17세기를 ‘소빙기(little ice age)’로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화에 그에 따른 대기근의 영향이 농업경제(農業經濟)가 근간인 17세기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핍니다.

시기에서 보듯 이 시기는 조선이 청의 침략을 받아 굴복한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 12월-1637년 1월) 이후의 시기입니다.

병자호란 이전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유교적 이상주의, 명분론을 내세운 서인이 집권하고 그 명분론때문에 당시 후금, 즉 청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인조이후 효종 그리고 그 이후인 현종 당시가 이 대기근의 시기로 저자인 김덕진 교수는 17세기 특히 현종 당시는 대기근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종당시 일어났던 예송논쟁도, 그리고 김육이 실시한 조세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한 것도 현종 재위 당시를 강타한 끊임없는 자연재해, 특히 경신대기근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17세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던 16세기나 18세기 철인군주였던 정조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종은 그 후대임금인 숙종보다 대중적인 주목이 덜합니다. 장희빈과 숙중 그리고 숙종 당시의 정치적 격변이 사극의 좋은 소재가 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신대기근의 참혹한 실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참혹한 실상과 견줄만한 자연재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농사를 지울 수 없게 된 농민과 여러 하층민들은 굶주려 관청으로 달려가 밥을 달라고 하고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자식을 버리거나 줄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임금과 국가는 비축해둔 식량을 모두 털어 백성을 구제합니다.

고위관료들은 이 와중에도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고 재원조달 방안을 궁리하지만, 이런 모든 결정과정이 정치과정이기에 정파에 따른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백성들을 구휼(救恤)하는 과정에서 부정이 일어나고 폭리를 취하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저자가 조선후기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라 현종 재위시의 진휼책(賑恤策)을 알기쉽게 설명하셨고 당시 최대 당파였던 남인과 서인과의 관계도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조선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인(西人)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현종이 실시하던 구휼정책을 비판하고 백성들에게 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산림의 영수이면서도 백성들의 후생은 생각하지도 않고 현종이 어떻게든 재정을 마련해 굶주린 백성을 먹으려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수하를 시켜 비판으로 일관한 송시열의 행동은 납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즉 왕실 정치에 영향력은 커도 백성의 삶에 별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조선 중기의 중요한 논쟁인 예송( 禮訟)이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나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송논쟁이라는 것이 장자가 아닌 현종이 즉위한 이후 선대왕 효종의 계비의 장례에 대한 상복의례에 대한 것인데, 이런 하등의 생산성이 없는 논쟁에 조정의 고위관료와 유생들이 논쟁하는 것이 맞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의 입장에서 봐도 현종의 재위시가 모두 가근으로 시작해서 끝났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자식을 버리거나 죽이고 부모를 버리고 먹을 것을 찾아 유랑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고고한 유학자들의 명분논쟁을 한 것이죠. 당대 일반 백성들도 이런 고위관료들과 송시열같은 유학자들의 이해 못했을겁니다.

제가 보기에 송시열은 지나친 명분론으로 조선의 역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명나라와 주자만 숭상한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라고 평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7세기 이후 19세기 그리고 20세기초까지 서인 특히 완고한 서인 노론의 명분론과 외척세력들이 조선사회의 성장잠재력을 좀먹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시작이 송시열이기 때문입니다.

송시열과 대척점에 서서 사실상 대기근 극복을 위한 정책을 주도란 남인출신 재상 허적(許積)은 이책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실질적인 구휼정책을 주도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해냈습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의 강도는 오히려 현재보다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현 보수정부의 각자도생식 복지정책보다 말입니다.

주목할 점은 대기근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첫째 숙종때 재정확보를 위해상평통보라는 화폐를 발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찍어서 재정확보를 한 것이죠.

둘째, 역시 국가 재정확보를 위해 부자들에게 신분이동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돈을 얼마씩 내면 가령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올려준 것입니다. 대기근이 사회계급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돈을 주고 산 신분이동이 처음 허용된 때도 대기근 이전인 임진왜란 직후로 당시도 전쟁으로 국가재정상황이 엉망이어서 다른 재원조달방식이 없어서 이런 조치를 취했고 현종 당시가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일정하지 않은 농업생산량과 기후에 따라 변화는 작황은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기에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농본사회인 조선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17새기의 이런 먹고 사는 문제는 조선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을 당시까지 길고 긴 영향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에도 농업국가였고, 대부분의 공업시설은 북한지역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업사회의 근간은 1970년대 공업화계획이 이루어져 현실화되기 전까지 한국사회의 근간은 농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세와 근대역사륵 볼 때 농업생산성은 생각보다 매우 큰 함의를 가진 걸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17세기 조선을 덮친 대기근 이외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두 대기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두 책은 기근(Famine)과 관련해 꼭 읽고 싶은 책들입니다.

Red Famine(Doubleday,2018)
스탈린 시기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에서 일어난 대기근이 관한 책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근래 더욱 주목받은 책입니다. 스탈린의 계획경제정책으로 인한 참사라는 일반적 평가를 받습니다.

Mao’s Great Famine(Bloomsbury,2018)
위의 책과 비슷한 맥락( 공산주의 계획경제)이지만 1958-1962년 마오쩌뚱 치하 중국에서 일어난 기근에 대한 책입니다. 약 45백만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은 비극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도 번역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서구의 역사가들이 저술한 것으로 보수적인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산주의를 평가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적 시각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을 놔두고 어미가 죽거나하는 경우도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버리거나 죽치거나 먹는 경우도 았었다고 하니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심란하고 울적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기본적인 먹거리가 해결되지 못해 결국은 사회가 요동치게 된다는 걸 경신대기근의 사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