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이신 강명관씨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초기저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2003)’이후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한문이 전문이시다보니 조선시대 전반에 결친 한문전적(典籍)을 해석하시는데 탁월하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제자체가 조선후기의 사회사, 신분사, 상업사, 재정사와 연관이 있지만 저자는 이책이 ‘상업사’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또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조선, 특히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책은 제목에서 보듯, ‘노비’신분의 쇠고기 도살 및 판매자와 그 수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쇠고기를 도살하고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노비는 다른 어떤곳도 아닌 조선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이 될 수 있는 조합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우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7-18세기의 상황을 2023년 현재로 대입하면, 국가가 교육관련된 재장을 서울대에 보내지 않아 서울대에서 소를 잡아 판매한 돈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기숙사 및 식비를 대며 고시를 준비시키는 상황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체제가 19세기 말 갑오경장(甲午更張,1895)으로 조선의 신분제(身分制)가 혁파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괴이(怪異)하다고 생각한 점 몇가지를 아래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조선이 제대로된 행정력(行政力)을 갗춘 사회였는가?‘ 에 대한 점입니다. 신분제사회인 조선에서 수많은 양반들이 과거(科擧)를 본 이유는 그들이 국가를 왕과 ‘함께’ 다스리는 관료(官僚)가 되기 위해서였죠. 이를 위해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경전을 읽었고 결국 관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노비들을 경제적으로 수탈( exploitation)하면서도, 노비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제도적인 개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료의 최악의 경우인데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해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300년 이상을 말입니다. 조선이 유교적 법치국가니, 유교적 도덕정치를 한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300년 이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건 조선의 양반 위주의 관료행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양반관료들은 하물며 국왕이 시정명령을 내려도 시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두번째, 성균관을 케이스로 본 조선의 재정체제가 너무 허술해서 놀랐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균관이라는 최고교육기관에 초기부터 국가재정을 충분히 배정하지도 않았고, 군주도 고위관리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에서만 일을 할 수 있는 노비인 반인(泮人)들에게 그들의 노동제공 댓가로 소를 도살하고 쇠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푸줏간인 현방(懸房)에 대한 독점적 운영권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반인들이 먹고살길을 도모하라는 것이 원래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성균관은 자신에게 속한 노비들을 착취해 쇠고기를 팔아 모은 이익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조선후기들어 이들의 수탈은 점점 가혹해져 갔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성균관이란 고등교육기관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반인들을 수탈하던 기관은 성균관만이 아닙니다. 소위 삼법사(三法司)로 불리던 권력기관으로 한성부(漢城府), 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에서 속전(贖錢)이라는 면목으로 반인들의 현방에서 수탈을 해왔습니다. 속전이란 말은 쉽게 법을 어긴 사항에 대한 벌금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또 기막히고 낯선 조선사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넷째, 조선은 농업기반의 사회로 소를 잡는 일은 기본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조선개국이후 1895년 갑오개혁이전까지 그랬습니다. 반인들이 생계를 위해 현방을 열었지만 불법인 쇠고기를 팔았기 때문에 일종의 영업세인 속전을 권력담당기관인 삼법사에 내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농업이 산업의 근본이고 나라의 근본이라는 명분에서 소를 잡는 것이 불법이지만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양반층 특히 고위관리와 벌열들이었고 특히 선현을 위한 제사에 쇠고기는 필수였습니다.

결국 쇠고기 도축이 불법이라는 명분과 쇠고기 소비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무시한 상태로 수백년을 지내오게 됩니다. 반인들은 속전을 피할 길이 없었고 결국 구조적으로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속전 수탈을 위해 불법상태를 방치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양반계층은 나이브하고 졸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이었죠.

다섯째, 조선후기 재정의 허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재정부족에 시달려 자신에게 속한 반인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던 성균관은 물론이고 법률을 집행하던 권부인 형조, 한성부, 사헌부도 현방을 착취하는 방법이외에 재정문제를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군주도 고위 양반관료도 명분만 이야기하고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비들을 무엄하다고만 할 뿐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해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성적인 재정문제를 온전히 노비들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는 명분론자들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5장은 반인들이 당하던 수탈의 온갖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책의 가장 긴 글이기도 하죠.

여섯째, 노비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한 조선의 권부와 성균관의 사례는 직접적으로 한 미국학자의 논쟁적 주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교수(James B. Palais)는 조선이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해서 한국의 학자들을 분개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선형적 역사발전사관으로 볼 때, 조선이 노예제사회라는 주장은 그보다 진보한 서양의 자본주의사회보다 ‘정체된’사회라는 의미여서 한국학자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선형적 역사관은 그저 19세기 서양에서나온 시각의 하나일 뿐 그대로 믿는 이들도 별로 없어 위의 주장에 너무 감정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팔레교수는 조선후기 조선인구의 상당한 부분 즉 약 절반 이상이 노비들이었고 이들이 위의 예에서 보듯 실질적으로 성균관과 삼법사의 경제적 재정적 기반이 된게 사실이라면 학자의 주장으로 음미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 아는바처럼 조선의 양반들을 수신(修身)을 한다고 전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육체적 노동은 모두 노비를 포함한 상민계층에서 전담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성균관의 관노비인 반인들은 자신이 속한 성균관과 권부인 삼법사 그리고 나중에는 궁궐의 궁방까지도 일부 재정을 책임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고위층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후기 인구 증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가 되는지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조선이 노예제 경제를 물적기반으로 하는 ‘노예제 사회’라고 해석하는 건 논리적으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국학자들이 할일은 반박자료를 찿아 반론을 제기해야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반인들과 현방 그리고 권력기관들의 수탈관계를 보고는 조선은 최소 경제적, 재정적 측면에서 ‘노예제 사회’가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책의 물리적 면을 보겠습니다.

책은 총 9장이고 본문만 540여쪽입니다. 그 뒤로 약14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주석이 있습니다.

2023년 2월에 나온 책이고, 조선후기 사회와 신분제 그리고 조선후기 상업과 특히 쇠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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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Paperback, 영국판) - 『사피엔스』원서
Harari, Yuval Noah / Vintage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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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2015년 영국에서 출판된 판본으로 읽었는데 총 20장에 걸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고, 어떻게 생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지를 저자 자신만의 논리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생물학과 고인류학(Paleoanthropology)부터 진화론(Evolutionary Biology), 고고학, 전쟁사, 심리학, 과학사 등등 수많은 분과학문의 내용을 포괄한데다가 영어식 유머까지 포함되어 내용이 결코 쉽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역사의 ‘진보’라고 배워왔던 논업혁명 ( the agricultural revolution)이 과연 진보인지를 논의하는데서 시작되어 과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까지 이 책은 전체가 ㅇ 이가 흔히 배워왔던 역사에 대해 그리고 문명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서양국가들이 현재의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유가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무역에서 비롯되었다는 밝히기 꾸려하는 초기 자본주의 발전의 원인도 거리낌없이 밝힙니다.

아무튼 우리가 알고있던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유기체가 아닌 존재 (inorganic being)은 2023년 현재와 같이 인공지능( ChatGPT)가 개발되기 전이었는데도 그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도의 발달된 데이터베이스인 ‘인공지능‘은 결코 인산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이 놀랍지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개인적으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는 시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지배층이 자신의 연구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과장되게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고 봅니다.

수많은 단순반복적인 일은 기계로 대체되겠지만 논리를 뛰어넘는 영감(inspiration), 감성, 그리고 돌발상황의 대처에 기계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명적인 단점은 이 기계에 집어넣는 정보는 모두 사람이 가공해야하고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사람없이 기계가 사람처럼 될 수 있는가에 무척 회의적입니다.

또 한가지, 역사를 긴 시간에 걸쳐 서술할 필요가 있는지 역시 회의적입니다. 통합된 역사서술 자체가 개별적으로 다른 과거를 가진 다양한 사회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 서술보다 특정 국가와 특정시기에 대한 서술과 해석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역사에서 중요한 케이스를 고찰하고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면 과거의 경험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사나 외교사의 경우 선대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고 그 상황과 의사결정과정을 면밀하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과거의 선례를 짓밟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문제가 있는 것도, 흑해 연안에서 발생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평가하면서 국제정치 , 안보 전문가들이 자꾸 제2차세계대전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context) 입니다.

미래예측에 있어서도 그 기본은 과거가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크다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가정을 수긍하는 것이고 그 전제아래 현재의 조건에 따른 변수를 더 추가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예측이 아니라 소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영어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평소 생물학과 인류학 등의 내용에 익숙하다면 읽기 수월하겠지만 사전 지식이 없다면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 소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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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김기혁씨의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중국사 중에서도 ‘마테오 리치’를 공부하신 분이고 물리학을 공부하다 역사학으로 돌아선 이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 면에서 정통 역사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이책도 전통적인 중국사 해석법을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사를 보려는 시도입니다.

책은 오랑캐라는 중국 변방의 민족들이 역사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글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내지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글입니다. 즉 오랑캐라는 소위 미개한 자들로 알려진 중국 변방의 민족이 중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멀리 유럽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대부터 근대시기까지 살핍니다. 당연히 처음 나오는 질문은

오랑캐들은 정말 미개한가? 입니다. 즉 유목문화가 과연 농경문화보다 뒤처진 것이 맞나? 하는 질문입니다.

이 책은 아니라고 답하고 저도 동감합니다. 단지 주류로 인식되지 않았고 그래서 저를 포함해 유목민족에 대해 무지한 것일 뿐입니다.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을 중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유럽이 각기 달리 부릅니다. 이런 상황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죺 ㅠ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그런 면에서 독특한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책의 독특한 점 하나는 중국사와 유목제국사 등과 관련해 영미권의 연구서를 많이 인용한다는 점입니다.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주로 중국과 일본 연구서를 많이 인용하는 경향에 비추어 이 책이 다른 점입니다.

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화이론(華夷論)적 관점을 설명해서 시작하지만 이론적인 틀은 주로 토마스 바필드의 ‘위태로운 변경( The Perilous Frontier,1989)’에서 가져옵니다.

즉 중화제국이 북방의 오랑캐들을 상대할 때 어떤 전략을 썼는가에 관한 토마스 바필드의 틀(Framework)이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 두가지 전략이란 농경사회 외부에 존재하며 농경사회로부터 부차적 이득을 취하는 외경전략( outer frontier strategy) 그리고 농경사회인 제국 내부에 들어와 군사력으로 활동하는 내경전략( inner frontier strategy) 입니다(pp11-12).

중화제국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처음 오랑캐라고 불려던 장강 이남의 나라들은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차츰 중화제국에 동화되어 갔지만 북방의 오란캐들은 나름의 생산성이 있는 목축과 교역을 통해 농경사회와 다른 그들만의 문명으루만들어간 것입니다.

이 책이 농경사회에 비해 유목사회가 뒤떨어졌다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이런 시각은 중국사에서도 문한연구가 아닌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적 연구성과로 유목사회에 대한 편견이 중국사 서술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근대 역사학 서술에 만연한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을 극복 대상으로 봅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으로 대항해시대 이후 지속된 교역( 노예무역 포함)의 이득 그리고 이후 산업혁명이후인 18세기부터이기 때문이고 중국의 경우 15세기까지 이미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유럽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직되게 유럽의 발전을 동아시아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럽이 동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된 건 13세기 몽골의유럽침략 때문으로 특히 일칸국과 킵치크 한국이 유럽의 중세에 미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동양을 비하하는 말로 타타르 혹은 훈(The Hun) 과 같은 말을 쓰고 있고 돌궐 계통의 튀르키예가 세운 오트만 제국의 경우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의 유산을 물려 받았는데도 영미권에서 아직도 야만적인 국가라고 폄훼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영국이 오트만 제국과 연합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던 크림전쟁 당시를 설명해 주는 자료를 보면 영국인들이 튀르키예인들을 얼마나 인종적으로 멸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에 대한 서술이 모호합니다. 중국에 비해 일본이 지킬 전통이나 유산이 없어 서양식 근대화에 빠르게 적응한 건 맞지만 제가 보기엔 일본에 대한 서술이 너무 모호합니다.

그리고 일제가 아시아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본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류를 아직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하는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쓰신 최근작을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사회평론 아카데미,2022)

한국과 일본만 쓰고 있는 이러한 역사분류체계를 현재 한국의 상황과 과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근현대사 관련해서는 좀더 세부적으로 학문체계가 정리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분명히 일제의 ‘자학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배제하고 새로운 분석틀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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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고전학자 중 한분인 정민교수님의 한국천주교회사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한문학(漢文學)관련된 책을 여러권 내신 분인데도 여태 인연이 닿지 않아 이분의 책을 한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내신 이 책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교회사는 물론이고 인문학 책을 통틀어서 근래 나온 국내 저자의 책 중에 본문만 778쪽에 달하는 책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외 주석과 참고문헌 그리고 색인까지 포함하면 이책은 총 901쪽에 달합니다.

총 12부로 이루어진 본문은 각각 8개장으로 이루어져 총 96장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최근에 보기 힘든 ‘벽돌책’이라서 책의 체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은 조선 정조때 조선에 전해진 서학( 西學), 즉 천주교의 조선포교에 대한 글이며 특히 초기1780년대부터 정조가 죽은 이후 순조원년인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辛酉迫害)까지만 다룹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아주 초기부분만 다룹니다. 범위가 이렇게 특정된 이유는 저자인 정민교수님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을 연구하시는 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18세기, 특히 정약용을 비롯해 주로 남인(南人) 중심의 조선의 후기 지성사를 연구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조 재위 당시 남인과 얽혀 있던 초기 조선 천주교의 연구까지 이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주로 19세기 후반과 일제강점기를 보면 저도 덕분에 그 전반기인 18세기 말 세도정치 전야에 벌어진 조선 지식층의 동요와 서학의 영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다 말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고 몇가지 사항만 간추립니다.

첫째, 한국 천주교에서 최초의 영세자라고 추앙(推仰) 받는 이승훈(李承薰)이라는 인물은 문제적입니다. 첫 영세자이면서도 천주교를 버린다는 배교(背敎) 선언을 세번이나 합니다. 석연치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둘째, 정약용은 초기 조선 천주교의 핵심이었지만 정조의 총애와 본인의 천재성 그리고 배교선언으로 신유박해에서 목숨을 건졌지만 천주교와 인연을 끊지 않았고 최초로 조선에 온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도피를 돕는 등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활약했습니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는 그가 정치적으로 패배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정조가 당시 중용한 남인 재상 채제공( 蔡濟恭)과 남인 세력에게 천주교는 관리를 해야하는 중요한 대상이었습니다. 반대파인 노론(老論)은 물론이고 남인 내에서도 천주교를 배격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천재라고 불리던 정약용을 비롯해 황사영(黃嗣永) 뿐만 아니라 노론의 정통가문 출신으로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척화(斥和)를 주장했던 노론의 거물 김상헌( 金尙憲)의 후손인 김건순(金健淳)까지더 천주교를 믿게된 것입니다.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과 김건순은 천주교를 떠나서도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초기 조선천주교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 놓습니다.

넷째, 천주교가 조선을 파고든 이유는 조선의 사회구조의 모순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정조 사후의 세도정치기로 가는 길목으로 사대부 양반들이 평민을 착취하는 구조가 점점 공고해지는 시기로 19세기 민란의 시기를 앞둔 시점입니다. 공고한 신분질서로 사람대접을 못받았던 평민 노비 계층이 천주교에 호응이 있었고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죽어서 천당을 갈 수 있다는 교리가 하층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천주교는 더구나 국가전복을 기도하던 정감록(鄭鑑錄)과 접점을 가지면서 폭발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정조라는 임금은 흔히 개혁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 다른 유학자들을 압도하는 학자군주로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리학자입니다. 그가 체제공으로 대표되는 남인을 중용해서 그의 재위 당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크지 않았을 뿐 그가 천주교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체포하기 위해 비밀리에 일을 진행했는데 청나라와 외교문제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순조의 수렴첨정(垂簾聽政)을 하면서 척사의
기치를 내걸고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를 일으킵니다. 초기 조선천주교 지도부들은 대부분 참수(斬首)를 당해 죽었습니다.

이들이 참수당한 이유는 공고한 성리학적 지식체제와 조선후기의 신분제를 그 기반부터 흔들리게 할 수 있었던 폭발력때문이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예를 최고로 아는 근본주의적 보수 성리학자들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기를 거부하는 천주교도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400 여년을
이어온 조선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흔들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황사영이 백서를 써서 서양의 군함을 불러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일이 폭발력을 가진 것은 왕권에 외세를 불러들여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대역죄(大逆罪)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어 참수가 아니라 능지처참( 陵遲處斬)에 처해지게됩니다.

조선의 보수적 성리학적 질서는 이미 청나라에 16세기부터 예수회 신부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도 19세기가 다 되도록 소중화(小中華)인식에 깊이 침잠해 조산에서 활동하던 천주교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기득권과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공고히 결합된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료비판에 대해 언급합니다.

주목할 것은 천주교에서 금과옥조로 받들어지는 이승훈이 쓴 것으로 알려진 ‘만천유고’이 위서(僞書)라는 사실과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이 쓴것으로 알려진 ‘성교요지(聖敎要旨)‘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William A F Martin, 1827-1916)이 쓴 상자쌍천(常字雙千)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입니다.

자료의 대조를 통해 검증한 것이므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주교계를 둘러싼 과거사료의 집착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천주교에서 쓰는 용어들이 기독교에서 쓰는 용어들로 근거없이 바뀌어 있는데도 선학이 자료를 오독내지 오해했거나 무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상황을 상식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19세기에 산 미국인의 책이 18세기에 죽은 조선 천주교 지도자의 책으로 바뀐 것이니 더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김건순과 관련하여 이 인물에 얽힌 또 다른 선비 강이천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2011)

이책은 ‘정감록’과 천주교의 영향 뿐만 아니라 문체(文體, Style)을 둘러싼 보수적 철학군주 정조와 천재 김건순 그리고 강이천의 문화투쟁을 다룬 글입니다.

재미도 있고 정민교수도 이책을 실제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의 경우 한동안 개혁군주로서 조선의 후기 문화를 꽃피운 임금으로 서술되다가 보수적 철학군주로 그리고 서도세자의 아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니치게 뛰어난 성리학적 철학군주였기 때문에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때문에 후대 임금들이 외척의 세도정치에 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본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지 본인보다 못한 임금은 감당이 안되는 제도적 결함을 만들어 놓은 체 죽은 겁니다.

최근에 읽은 정조의 통치에 대해서는

정조평전 (민음사,2018)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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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5 - 오월쟁패, 춘추 질서의 해체 춘추전국이야기 5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남부, 즉 중국의 강남(江南)지역을 둘러싸고 패자(霸者)인 초(楚)나라와 그 패권에 도전하는 오( 吳)나라와 월( 越)나라의 쟁투를 그린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특히 춘추시대의 패권국인 초(楚)와 진( 晉)나라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남방의 오랑캐 국가인 오(吳)와 월(越)나라가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특히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능력에 걸맞지 않게 초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권귝이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강국 초나라는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고도 다시 부활하고 오나라는 월나라 왕 구천 (句踐)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춘추의 질서는 말기가 되자 무너지기 시작해 전쟁의 규칙, 즉 초상을 당한 나라를 공격하지 않는다거나, 칼받이로 포로를 전쟁터로 보내지 않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교전 규칙이 사라지게 됩니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고 이기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오로지 힘이 있는 국가만이 살아남는 살벌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원칙이 서서히 자리잡습니다.

특히 남방의 오랑캐를 자처한 월( 越)나라의 재상 범려(范蠡)는 월나라는 중원(中原)의 의리가 지킬 이유가 없는 금수(禽獸)와 같은 이들이라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언급한 월나라의 왕, 구천과 오나라의 왕 부차이외에도 오나라가 패권국 초나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책사 오자서(伍子胥)가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초평왕( 楚平王)에게 아버지와 형을 잃은 초나라 사람 오자서(伍子胥)가 원한을 품고 오나라에서 복수를 준비하고 끝내 복수하는 복수극이야기이며,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굴욕을 당했던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복수를 하는 또 한편의 복수극을 품고 있습니다.

처절한 복수를 위해 인간이 얼마나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침내 한 인간에 대한 원한을 어떻게 복수로 보여주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춘추시대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살벌한 전쟁을 배경으로 복수극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책은 마치 무협지를 보듯 술술 잘 읽힙니다.

중국 고대의 전쟁사를 좌전, 국어, 사기 등 사서들에서 나온 이야기를 근거로 다시 재구성한 작가의 능력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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