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계승범 교수님께서 최근 펴내신 책입니다.

저자께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이전의 연구논문들을 모아서 펴내신 책으로 조선 중기이후 조선사대부들을 집어삼켰던 이데올로기인 사대주의(事大主義)특히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내 조선을 구했다고 여겨 명나라를 아버지로 조선을 자식으로 생각하는 부자관계로 보는 강상(綱常)의 의리가 양국의 외교관계를 규정지었고, 이는 또 근본주의적 성리학을 신봉하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지배엘리트인 양반사대부들의 정체성(identity)를 규정해 대청제국과 새로운 관계를 전혀 정립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의 이런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피할수 있었던 전쟁인 병자호란을 피하지 못한 원인이었고, 조선은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해군이 선조의 마지막 왕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켜 강상(綱常)의 의리를 저버렸다는 명목으로 반정을 일으키고 집권한 인조는 반정의 명목이 무색하게도 아버지인 명을 버리고 짐승처럼 여겨지던 오랑캐인 여진족인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의 예를 다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인 사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었고 수직적 계급사회였던 양반사대부들은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칠까봐 매우 두려워한 상태였습니다.

중국 한족입장에서는 동쪽의 오랑캐(東夷)일 뿐으로 여겨진 조선이 스스로 소중화( 小中華)를 자처하고 이미 민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중국에서도 중국문화전통이 이어지지 않아 조선만이 중화의 후예라고 자처한 인식은 너무 과도한 근본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제활동과 군사력 증강을 소홀히 여기고 윤리와 명분만 중요시 여기는 심약한 척화주의자(斥和主義者)들이 경전이나 인용하면 허황된 논박을 이어가는 사이 배고픈 백성들은 굶어죽고 전쟁터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선은 일 안하는 세습귀족인 양반과 경제활동과 군사력 모두 감당해야 하는 평민들로 갈라진 사실상 두개의 사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조선중기사회를 평가할수는 없지만 분명히 힘을 잃어가는 나라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 강조하고 중국의 현실적 지배자인 만주족의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며 상대하지 않는 처사는 분명히 이상한 처신입니다. 더구나 전쟁을 하면 질줄 알면서도 전쟁불사를 외치는 상소를 한다는 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책에는 힘이 없어 오랑캐로 여겨온 청나라에 굴복을 한 뒤 조선의 사대부들이 청나라에서 보내온 국서의 내용을 위조(僞造)하며 대명사대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안타까운 역사왜곡, 기억조작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현실적 준비를 게을리해서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료의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합니다. 헛된 명분없이는 권력도 유지하지 못할만큼 무능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승범 교수님은 조선중기 광해군, 인조 시기에 대한 책을 여러권 쓰셨는데 제가 읽었던 몇권을 소개합니다.

모후의 반역(역사비평사,2021)

위에서 언급한 인목대비유폐와 인조반정에 대한 책입니다.

중종의 시대(역사비평사,2014)

조선이 어떻게 유교국가가 되었는지를 고찰한 책입니다.

그리고 책후반부에 언급한 대보단(大報壇)과 19세기까지 이어진 대명사대의식에 대한 책도 있습니다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 (서강대 출판부,2011)

위의 책을 읽으면서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대명사대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청나라 몰래 명나라 군주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조선의 지배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9세기 말인 고종 당시까지 제사가 이어졌다는 사실에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군주에 대한 충성은 바뀔 수가 있고, 시원찮은 군주는 백성의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는 정치사상이 유교입니다. 특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인정한 맹자같은 선진유교(先秦儒敎)의 관점에서 볼때 근본주의적 성리학(性理學)은 너무 사변적이고 경직적이며 지나친 윤리학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유교경전에 대한 해석도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각주본이 나오는 게 이런 성리학의 경직성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병자호란과 척화파의 명분론을 읽게되면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답답한 마음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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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가 시작된 이후 한세대(30년)가까이 지나다 보니 1990년대를 평가하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멀지않은 과거로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이 책은 이미 한국에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90년대: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온워드,2023)

1990년대를 청년시절 경험한 X세대(Generation X)로서 제가 즐겨들었던 음악과 영화에 대한 내용을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특히 한때 영화를 즐겨봤던 사람으로서 퀸텐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과 ’펄프픽션(Pulp Fiction,1994)’에 대한 평가를 보게 되어서 입니다.

특히 ‘펄프 픽션’은 폭략과 함께 나타나는 B급정서를 나타내는 영화로 이미 한물간 스타로 알았던 존 트라볼타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우마 터만과의 댄싱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이전과는 다른 소위 매니악한 정서가 나타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이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입니다.

두번째 영화는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The Matrix,1999)’ 입니다. 이 영화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로 SF의 표피를 가진 블록버스터이지만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로서 노골적으로 홍콩 쿵푸영화를 오마주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Reality)가 무엇인지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꿈일수도 있다는 , 어쩌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르고 지나쳤지만 1990년대는 완전한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가던 시기였고, 책에서 언급하듯 X세대만이 디지털이 없던 아날로그 세상과 가상현실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본 세대로서 아날로그로만 살아온 베이비부머(Baby Boomer)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온 밀레니얼 (Millennial)을 연결해줄 수 있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1990년대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알리던 시대로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만들어진 시대이며, 미국 국내적으로 콜롬바인 고교 총격사건과 오클라오마 연방빌딩 폭파사건이 일어난 시기이며, 미식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 O J Simpson 재판으로 미국 사회가 술렁이던 때였습니다.

또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 (Machael Jordan)이 시카고 불스와 함께 전성기를 이끈 시기였고, 농구화 Air Jordan 이 출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능가할만한 농구선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미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클레런스 토마스의 성추문 관련 청문회도 미국 정치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impeachment)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사실상의 종료가 2001년 9/11테러로 종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1세기의 첫해인 2000년 당시까지도 미국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였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방송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직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11이후 적 아니면 동지로 그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게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책 내용은 저처럼 그 시대를 직접 목격한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경험을 못한 이들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커버해서 평소 대중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읽기 편할 듯 합니다.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 2000년 대선은 미국 정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접전이었고 플로리다주의 개표에 대해 결국 미 대법원의 판결로 아들 부시가 알 고어를 이기고 당선되었습니다.

알 고어 전부통령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해서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 중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는 평가도 상당합니다. 제가 아는 한 대통령선거가 법원판결로 결정된 사례는 이 선거 말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대통령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이후 아들 부시대통령은 미국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명하에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했고, 10년넘게 지속된 전쟁은 이 지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게 되어 사실상 실패한 전쟁수행으로 남게 됩니다.


아버지 부시부터 클린턴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가 신자유주의의 극한 전성기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을 통해 금융기업들이 실물경제와 관계없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장기지속되어온 저금리현상과 함께 지속됩니다.

이 모든 거품은 2007년 금융위기로 터지게 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론적 정책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2024년 현재는 그 직접적 영향을 1990년대에서 받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컴퓨팅,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인터넷의 상용화는 이시기에 시작되었고, 여기서 촉발된 플랫폼 경제체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질서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멀지 않은 과거지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이 전후 미국의 달러 중심 세계체제를 재편했고 소련과 냉전시대에 들어갔다면, 1990년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역사를 바꾼 중요 변곡점이었습니다.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그 부상을 억제하려는 예전같지 않은 미국을 보면서 또 한번의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은 애써 중국이 근대이전 대륙의 헤게모니를 틀어쥐었던 강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여러 정보가 넘쳐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드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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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의 서사 - 독일 통일을 다시 본다
김영희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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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국제문제를 주로 다루어 오셨던 김영희 대기자께서 2016년 쓰신 책입니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본문과 부록으로 저자가 독일과 소련 정치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영미권의 시각 (perspective)을 거치지 않고서 한국의 입장에서 독일과 소련의 지도자 의견을 물은 것이어서 꽤 의미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언론인이 유럽정치 그중에서도 독일정치에 대해 집필한 건 매우 드믄 사례인 것 같습니다.

저자에 대해 알아보니 2020년 세상을 떠나시고 고인이 되셨습니다.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 패전의 결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고 특히 수도 베를린은 동서로 나뉘어 서베를린은 공산주의 국가 동독에 섬처럼 떠 있는 자본주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동베를린을 탈출해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야기는 냉전시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서독 초대총리 콘래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West Policy)이 이후 빌리 브란트총리의 동방정책( East Policy)의 토대가 되고 이후 통일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통일정책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보수적 입장의 언론인이지만 객관적으로 독일의 정치사를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4대 승전국에 의해 분할점령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서독간의 교류가 지속되고 동독의 경우 동유럽 지역과 교류가 지속될 수 있었던 사실이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동서독관계보다 더 적대적이고 독일과 소련처럼 어떤 특정강대국의 영향력으로 한국의 미래가 결정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가 첨예하게 엮인데다 남북한간의 교류의 역사도 미미합니다.

이 책은 현재 윤석열정부에서 악화된 남북관계, 대중, 대 러시아관계를 포함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대중적대정책에 대한 상황도 물론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 통일의 과정을 살펴보는게 한반도의ㅡ미래를 생각하는데 분명 좋은 선혜인 건 변함이 없습니다.

책에 잠깐 스치듯 언급이 되었지만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있었던 동유럽국가들이 미국주도로 성립한 NATO에 가입하고 통일독일이 NATO의 추요국이 되었던 점은 이미 통일 당시에도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결국 NATO의 동진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도 NATO가입을 희망했었고, 전쟁이 일어난 2022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시카고 대학의 머시마이어(John Mearsheimer)교수는 전쟁초기부터 서방의 잘못 , 즉 NATO의 지속적인 동진이 러시아의 실존적 위험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전쟁이 촉발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수적인 대학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가 전쟁을 러시아탓으로 돌리지 않고 서구와 미국의 탓으로 돌려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실주의 정치학(Realpolitik)을 추구하는 분의 분석이라 저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분단에 대한 역사를 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일본은 왜 분할점령되지 않았는가입니다.

독일이 먼저 분할점령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 분할점령은 논리적으로 정당한 결정일 수 있는데, 오히려 한반도가 분할되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패전 직후 한반도의 국제법적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서구와 열강이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글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해방이후 현대사는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와 떼어넣고 생각하기 힘들고,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항상 중국과 러시아를 경계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의 적군(red army)은 일본의 홋카이도 침공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사할린과 그 부속열도들만 침공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국내정치적 사건들과 미국/ 소련의 입장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사건의 발생경위를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패전후 일본이 미국의 점령정책에 어떻게 대응해갔는지를 알아야 한국이 미일과 어떤방식으로 대응해야할지 보일겁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아무튼 의문이 계속 듭니다.

한국의 해방직후의 상황에 대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열강들을 포함해 좀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이해당사국들과 현안을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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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의 청일전쟁 - 전쟁과 휴머니즘
조재곤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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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서 한국근대사를 연구하시는 조재곤 교수님이 2024년 출판하신 청일전쟁 연구서입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사료수집에만 10년이 걸렸다고 따로 언급하시기도 했습니다.

책은 총 3부로 본문만 633쪽에 달합니다. 그리고 각국 사료들로부터 인용된 전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릅니다.

우선 이 책이 제가 처음 읽은 ‘청일전쟁사’라는 걸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평가와 제가 전에 읽은 고종(高宗) 당시의 정치사와의 비교만 가능할 뿐 다른 저자가 쓴 청일전쟁사와 조재곤 교수의 책이 어떠한지 판단할 능력은 없습니다.

이책은 매우 흥미롭게도 청일전쟁당시 조선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양상과 함께 조선에서의 보급상황 ( mobilization)을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시대에 대해 잘몰라서 그렇지만 아무튼 제가 아는 한 청일전쟁당시 매이지 일본의 한국 병참기지화와 전쟁보급상황을 이런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의 병참기지화를 생각하면 흔히 제2차세계대전 말 일제의 학병징집과 병참기지화만을 먼저 떠오르는데 일제는 이미 메이지 당시부터 조선을 중국침략의 통로로 생각하고 경부선과 경인선 그리고 경의선 철도를 부설하며 대규모로 조선인들을 청나라와의 전쟁에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1894년에 일어난 전쟁이라 2024년 시점에선 오래된 잊혀진 전쟁일 수 있겠지만 조선땅에서 일어난 청국과 일본과의 전쟁에서 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소거되고 일본이 승리했다는 전황만 남은 건지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인들의 전쟁동원, 조건이 전쟁터가 되서 일어난 참상,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군수조달 방해혐의로 살해되는 사실 등이 역사기술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청일전쟁의 이미지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사진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책의 내용으로 보건데 저는 일본의 역사가들이 청일전쟁을 기술하면서 의도적으로 당시 호전적이고 잔인했던 일본군의 민간인 참살(斬殺)을 의도적으로 은패(隱蔽)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의심됩니다.

아직도 서구에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westernize)된 근대국가로 알려져 있고, 일제가 중일전쟁 당시 저지른 난징대학살(Nanjing massacre )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과거의 전쟁범죄를 은폐하려고 서구국가들을 향해서도 공작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의심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난징 대학살보다 무려 40여년 전에 조선에서 벌였던 평양의 학살과 조선을 거쳐 만주로 이동한 후 일본이 뤼순(旅顺)애서 벌인 대학살이 알려질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난징에서 일본군인들이 중국인들을 일본도로 참수하는 걸 신문에 내서보도하고 심지어 머리자르기 내기까지 하는 극악무도함을 보였는데 이들은 갑자기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군들은 포로로 잡혀온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의 머리를 일본도로 자르는 참수형(斬首刑)을 시행했고 심지어 참수한 머리를 효시(梟示)하기까지 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 매이지 일본은 말로는 군대국가가 되었다고 했으나 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전혀 문명적이지 않은 전근대적 사무라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말로는 군 수뇌부가 포로이 대한 제네바협정를 준수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일선에서 적용된 건 아닌겁니다.

더구나 일본은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의 주역 김옥균이 홍종우에 의해 살해되고 이후 그의 시신이 양화진(楊花津)에서 능지처참(陵(凌)遲處斬)을 당해 머리가 효수되었을 당시 조선을 미개한 나라라고 했던 나라입니다. 친일파인 김옥균이 벌을 받아 그런 면도 있겠지만 10여년 이후 일본군이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향한 수많은 참형(斬刑)사례를 보자면일본이 근대국가라고 서장을 향해 떠드는 건 전부 프로파간다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일본군은 머리자르기와 같은 참혹한 형벌을 지속해 10여년 후 러일전쟁과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서도 계속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잠시 언급했듯이 일본이 메이지 시대이후 서구적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왔고, 그렇게 배워왔지만 이미 메이지 당시에도 제도가 서구화되었고 외교관들이나 정부고위관료들이 서구화되었을지 몰라도 군부와 군인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서구화된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군인들은 아직도 막부시대의 사무라이처럼 칼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거의 봉건적인 수준의 이런 군인들의 처단방식을 저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아미 겉과 속이 다르고 근대적인 외영과 봉건적이고 중세적인 실질과 정신의 이중적 모습이 청일전쟁 당시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현대일본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입헌군주제 국가로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뽑지만 일본의회는 사실상 자민당 독주체제이고 의원들은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됩니다. 특히 메이지 유신 당시 주요 번벌이 나왔던 죠슈번 (長州藩)운 현재 야마구치현(山口縣)이고 이곳 출신 총리가 얼마전 암살당했던 아베신죠(安倍晋三)입니다. 제가 알기로 1945년 이후로 봐도 3대째 정치인 집안입니다.

한국도 최근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결코 한국정치에 긍정적 영향을 준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은 아베 전총리의 경우에서 보듯 3대째 국회의원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극우화하고 있는 현재 일본은 전근대적인 신정일치체제인 패전이전의 천황제 복구를 계속 염원하고 그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저는 일본은 근대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일본인들이 상습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과 한국 포로에 대한 참살은 일본의 공식청일전쟁사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외교적으로 일본은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의 지위에서 해방시켜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땅에 군대를 보낸 것이고 ‘미개한’조선을 깨워 근대화 대열에 동참시키기 위해 ‘시정개선(施政改善)‘을 하겠다는 겁니다.

어디에도 조선의 주권(sovereignty)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미 역사왜곡은 시작된거죠.

책에 일본군들이 조선을 병참기지화해서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경우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마치 처음부터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군하는 지점에 있는 촌락에 들어가 식량과 소 말 등을 징발하고 조선인들을 안부로 대려갑니다. 정당한 급료를 주고 채용한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 동원되는 겁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 텅빈마을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특히 평안도 평양지방은 일본군의 징발로 더욱더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새삼 한국이 20세기에 들어 지금 이야기하는 청일전쟁 이외에 러일전쟁,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 마지막으로 한국전쟁까지 치루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2024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휴전(cease fire)상태이지 아직 종결된 전쟁이 아닙니다.

한국의 상황은 사실 어찌보면 연이은 전쟁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중진국 이상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인데도 우리는 그걸 그저 당연하게 여겨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아무튼 저는 일본이 청일전쟁기부터 역사왜곡을 지속해 현재도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비효율적이지만 지나치게 세밀한 일본의 관료조직이 있기 때문이고 현실정치에선 아직도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삿초 번벌의 후세들이(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용인하에 아직도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서술과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저자가 발굴한 여러 사료적 증거가 이 책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뿌리가 무척 오래되고 깊다는데 매우 무력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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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7 - 전국시대의 시작 춘추전국이야기 7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원국작가의 춘추전국시대사 7번째 책으로 중국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책입니다.

춘추(春秋)시대가 전쟁을 치루면서도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고 최소 등에 칼을 꼿는 비열한 속임수를 쓰지 않았던 시대인 반면에 전국시대는 대의명분이 사라진 체 오로지 국익(國益)을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통용이 되던 시대를 말합니다.

기원전 5세기의 일임에도 작가의 전쟁묘사는 현재 세계가 처한 국제정세와 매우 유사합니다.

작사는 결론에 해당하는 제7장에서 ‘전략과 전술’을 설명하면서 프러시아의 철혈재상 ( Iron Chancellor) 비스마르크( Bismarck)위 독일 통일정책과 중국 전국시대 초기 상황을 비교하며 당시의 중국정세도 철저히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국가지도자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국가가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라 군사와 조세를 관장하는 국가주의적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실리를 기준으로 국익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될 수도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현재 패착(敗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한국의 이념외교와는 정반대입니다. 알량한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로 실리를 망각하는 기본이 안된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은 전국시대 초기를 다루었는데 주요한 정세변화는 중원의 동쪽을 장악한 강국 진(晉)이 사실상 3국으로 나뉘어-삼가분진( 三家分晉)- 위(魏), 조(趙), 한(韓)으로 분열되고 위나라가 오기(吳起)의 병법을 채용해 서쪽의 진( 秦) 의 동진을 막았으나 위문후(魏文侯) 사후 위혜왕 (魏惠王)또는 양혜왕(梁惠王)의 실정으로 서쪽의 강국 진의 동진을 허용하게 됩니다. 위의 성급하고 무모한 동쪽 국가 공격을 역이용한 조나라에는 손빈(孫臏)이라는 전술가가 위니라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서쪽의 오랑캐로 인식되어온 진(秦)나라는 위(魏)나라 출신 상앙(商鞅)의 병법을 채용해 위나라가 막고 있던 서하땅을 정복하고 진의 동진을 이루었고 이 진의 진출로 진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마련됩니다.

위에서 보듯 이 책은 주로 법가(法家)를 중심으로 한 전략가들이 주인공으로 작가는 손빈병법의 주인공 손빈은 전략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기의 유교적 법가를 계승했으나 철저히 법가적인 변법으로 일관했던 상앙을 오기의 후계자로 보았습니다.

유교적 명분론과 법가적 실리에 대해 논한 보론도 경제적 논설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위나라 이회가 주장한 생산력의 증대가 바로 국력의 증대라는 주장은 현재의 국력의 척도로 보아도 무방한 현실론으로 중국의 청동기말기 철기 초기의 사상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농경사회인 전국시대 중국에서 오기도 상앙도 모두 중농주의(重農主義)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기는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전략을 선호해 위문후 치하에서 국력의 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전쟁의 전략 그리고 국력의 관점에서 봤을때 그 기본이 경제력 ( economic power)라는 건 중국의 전국시대인 기원전 5세기나 지난 20세기나 현재인 2024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단지 경제력의 기반이 농업이냐 제조업이냐의 차이뿐입니다. 그리고 국력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인구(人口)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인구가 많아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고 단지 사람이 많아야 농사를 지을 여력이 크다는 말정도로 치부될 말이 아닙니다.

인류사상 최초로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소멸 위험에 처한 한국은 노동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상한 방식으로 국가를 아마추어처럼 운영하는 집권세력들은 표면적으로 자유방임형 기업우선의 신자유주의를 우선하면서 사실상 국가의 역할을 방기(放棄)하고 있고, 인구가 주는 와중에도 국민들의 주거상황개선 노동환경개선 그리고 물가통제 등 기본적 국가경제정책에 관심도 의지도 없습니다. 무지에 기반한 방기입니다.

권력의 남용에 있어서는 매우 전제주의(專制主義)적이면서도 민생은 방기하면서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자유방임적 정부형태를 유지하는 매우 기이한 정체(政體)를 가진 겁니다.

최고위층의 권력남용정도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너무 없어 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지경입니다.

고대사가 정치사이면서 전쟁사인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중국식 국가주의의 뿌리를 중국의 법가에서 찿을 수 있다고 봅니다.

과거와 현재는 소름끼칠정도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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