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김훈 작가의 문체를 좋아했지만 읽은 책은 소설집 ‘강산무진(2006)’ 밖에 없어 다른 책들이 궁금했던 차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짧지만 강하고 꾸미지 않는 단문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소설이라는 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개봉에 맞춰 새로운 장정으로 화려하게 꾸민 책이 나왔지만 저는 최초의 판본을 선택해 읽었습니다.
그래서 중고서점을 뒤져 한권 구할 수 있었는데 책 자체도 수수하고 글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이고 영화를 본후 원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해 보니, 김윤석, 이병헌 주연의 영화 ‘남한산성 (횡동혁 감독,2017)’ 은 원작을 상당히 잘 표현한 작품이더군요.
추운 겨울 눈 덮힌 남한산성으로 파천한 조선 조정의 막다른 길과 살기 위해 청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던 치욕의 역사를 소설은 담담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은 임금이던 광해군을 폐하고 인조를 왕으로 내세우는 ‘반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데, 당시 골수 대명 사대주의자들은 광해군이 펼친 명나라 청나라 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못마땅히 여겨 그를 내치고 인조를 왕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정권을 잡았으면 정치를 제대로 했어야 함에도 성리학의 명분에 사로잡혀 대명 사대주의 외교를 고집해 당시 중국의 패권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간과해 버리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불러 일으키게 되고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인조는 청에게 항복의 예를 하는 굴욕을 맛보게 됩니다.
책에 나오는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논쟁은 유장하기는 하나 허망합니다.
살아야 후사를 도모할 수 있다는 충신 최명길이 왜 조정에서 신료들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아야만 하는지,, 영의정 김류와 김상헌이 주장하는 명과의 의리가 남한산성 안에서의 절박함 사이에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논쟁을 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광해군이 명 청 등거리 외교를 행한 것도 임진왜란 당시 전쟁으로 국가가 얼마나 피폐해지는 지 몸소 체험한 후 어렵게 정권을 잡은 후 이루어 낸 것인데 결국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이후 또 다시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명분론에 집착한 당시 기득권 세력 서인들의 오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 아픈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영광된 역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은 조선 중기 전란에 휩싸였던 조선의 격변기를 돌아보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역사비평사, 2000)’ 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