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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일본 소설을 만나러 가다 -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현대 일본 문학의 흐름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정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5월
평점 :
신서의 번역서
이 도서는 제목부터가 신서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원서를 찾아보니, 전형적인 이와나미 신서의 강렬한 빨간 표지! 지식 전달 위주의 일본 도서 종류인 '신서'였다. 번역서는 좀 더 모던한 느낌과 깔끔한 첫인상에, 무겁지 않은 하드커버가 아닌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요즘 참 보기 드문 진중한 궁서체가 원서인 신서와 결을 함께 하는 듯하여 괜히 웃음이 났다.
반세기 일본 현대 문학을 시대별로 정리
제목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도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약 60년간의 현대 일본 문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집필 동기는 현대 소설을 한 권으로 집약한 책이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 시대적 배경과 특징에 따른 작가 및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400페이지가 넘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역시 지면의 제약상 시대정신의 궤도에서 벗어난 몇몇 애정 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누락된 점은 살짝 아쉬웠다. 작가가 아닌 작품을 중심으로, 순문학에 중점을 두되 엔터테인먼트나 논픽션도 포함하여 정리했다. 그럼 시대별 특징을 살펴보자!
1960년 ~ 1970년대
1960년대는 패전 후 정치보다 경제로 관심이 쏠리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대중문학의 발전과는 대조되는 순문학에 대한 회의와 논쟁, 여성 작가들의 대두, 포스트 프롤레타리아 문학인 회사원 소설의 등장과 사소설의 융성을 특징으로 한다. 70년대에는 생산성 향상과 고도의 경제 발전을 기치로 앞만 보고 달려온 일본 사회에서 붉어진 환경 문제와 유해화학물질 사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논픽션이 융성하는가 하면, 역사소설, 전쟁 소설, 청춘 소설이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문학계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키미 류가 데뷔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경제 성장의 정점을 찍으며 도취된 사회 분위기가 문학계에도 반영돼 포스트모던과 문화가 무르익는 시기다. 사회 문제를 꼬집던 논픽션 시대에서 탈리얼리즘으로 노선을 바꾼다. 70년대 청춘 소설의 대폭발의 바통을 이어받아 여전히 그 기세를 몰아가고, 나카가미 겐지,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일본 문학계를 리드한다. 국가론과 가짜 역사가 유행하며,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녀소설이 대두된다. 일본어 원서 입문 소설로 자주 추천되는 '창가의 토토'의 저자 구로야나기 데쓰코와 같은 탤런트들의 자전적 소설이 각광받는다.
1990년대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도 쇼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헤이세이 시대를 맞으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돈의 폭풍우 속으로 휘말린다. 그 와중에 괄목한 만한 것은 여성작가들의 약진과 활약이다. 사회파 추리소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소설, 소녀소설과 청춘소설의 다양한 전개,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한 일 하는 여성에 대한 소설, 불륜 소설이 유행했으며, 진화를 거듭한 포스트모던 문학의 방황, 근대사와 근대문학의 리노베이션을 그 특징으로 한다.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과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일본 사회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 분위기가 문학계에 반영되며,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으로 인해 출판계의 새로운 지각 변동을 맞는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돼 국경을 넘어 뜨거운 인기를 모았던 전차남, 연공,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노부타 프로듀스도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특히, 생산과 소비의 주류층인 10대 여성에게 환영받던 휴대폰 소설이 일시적인 붐을 일으키고 웹 소설로 바통을 터치하며 소멸된 시기이기도 하다. 8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성장한 소녀문학이 전성기를 맞는가 하면, 이 시대의 문학 경향은 테러와 살인, 전쟁, 빈곤이었다.
2010년대
이 시기는 그야말로 일본 역사의 일대 사건,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과 공포로 몰고간다. 탈원전 운동의 움직임, 정권 교체, 역사 수정주의의 만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발달과 종이 미디어의 쇠퇴 속에서 디스토피아 소설이 융성한다. 과로사와 악질 블랙 기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밥벌이의 고단함에 신음하는 노동자와 좁은 취업 관문을 두고 고전하는 취준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한, 전문직, 노인 간병, 재해, 전체주의국가와 소재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더불어 외면받는 순문학의 존립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여전하며, 국제화된 일본어 문학의 발달로 일본 소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마치며...
책을 덮고 나니 역시 국제 정세, 사회적 배경, 시대정신, 문제의식이 작품 속에 투영돼 일본 문학의 계보와 함께 개략적인 일본의 문화사도 훑은 느낌이다. '혹시, 일본 소설 좋아하세요? 그럼 무조건 지갑을 여세요!' 이 책은 정말 일본 소설 애독자라면 단언컨대, 필독서다. 일문과 학생들에게는 부교재로 선택해도 손색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꽤 학술적인 분위기도 감돈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현대 일본 문학의 흐름을 세세하게 살필 수 있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낯선 작가와 작품 속에서 유유히 노닐며 집중과 감탄을 반복하며, 익숙한 저자와 작품과 만나면 괜한 일방향 반가움에 문장을 따라가는 속도가 완만해졌다.
일본 문학이 너무 좋아서 한 때 접었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고, 부족한 실력으로 원서를 찾아 읽고 있다. 주로 대표적인 일본 문예지인 '다빈치'나 도서를 소개한 잡지와 에세이를 참고하거나 기껏해야 서점 대상,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국내에서 화제가 된 번역서 등을 통해 원서를 고르고 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더 크고 넓은 일본 문학의 바다에서 유영할 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워낙 문화적 배경과 지식을 요하는 작품인 데다 저자명, 작품명 등 고유 명사가 쏟아져 좁은 식견으로 원문을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명문으로 번역해 주신 김정희 교수님과 일본의 지식과 교양을 대표하는 이와나미 시리즈를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출간해 주신 AK 출판사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최근에 출간된 관심 있는 도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만요슈 선집'도 같은 출판사의 번역서였다. 와우! 앞으로 관심 있는 신서는 익숙한 우리글로 읽을 수 있다는 설렘과 왠지 책장이 좀 더 비좁아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 센스 만점 부록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명단을 출생 순로 정리했고, 참고 문헌 중에도 읽어보고 싶은 도서가 많았다. 더욱이 부록의 백미는 이와나미 시리즈의 번역서 목록을 수록해 탄성이 터졌다! 일본과 관련된 도서뿐만 아니라 기타 교양 인문서까지 총 60여 편이 넘는 적지 않은 권수가 출간돼 신서에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 줄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정말 최고!
-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