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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수염은 없다
정진영 지음 / 우주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일단 이 책은 한국에서 나온 여성 에세이라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젠더 이슈에 대해 굉장히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있었다. 책 소개를 볼 때에 대한민국에서 30여 년을 여자로 살면서 겪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들의 모음이라는 말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책에서 다룰 에피소드가 궁금해졌고 책의 크기도 적당하고 크지 않아서 출퇴근할 때 버스에서 읽기에 매우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책의 프롤로그부터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현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뒤를 가리는 여자들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대학생 때 동아리 선배들과 이야기하다가 저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그게 왜 기분이 나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요즘은 불법촬영이 난무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조심하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책 초반에는 화장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맨 얼굴을 쳐다보고 이렇게 하면 더 예뻐 보일 것 같다, 꾸미니 좋다 등 평가하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 긍정적인 의미로 말했더라도 평가는 평가일 뿐이라는 말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조차도 몇 년 전에는 화장을 안 하고 온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누구냐고 장난쳤던 경험이 있는데 좀 부끄러워졌다.
확실히 어떤 말을 할 때 스스로 검열을 거치고 말을 해야 한다고 몸소 느꼈다.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성범죄에 노출된 사람은 2차 가해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추문에 휩싸였다는 자체만으로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며 자책해서는 안 된다.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옷차림을 바로 하고 늦게 다니지 않는 것이 아니고 성범죄의 형량을 늘려서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못하게 해야 한다.
책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동아리 선배가 왜 다른 여자애들은 인중에 조금씩 나는 수염을 깎는데 왜 너는 그렇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다. 정작 본인은 팔과 다리에 털이 수북하게 있고, 수염도 눈에 띄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적을 하는 게 타인이 봐도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몰래 카메라 문제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극악무도한 범죄 장면을 촘촘히 다루는 미디어 등 다양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처럼 여자로 살면서 겪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들의 모음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