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람과 장소에 대한 영상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해서 집에 있는 동안엔 다큐여행 채널을 고정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관련 지역의 영상을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데 일부러 찾지 않는데도 신기할 만큼 타이밍이 잘 들어맞고는 한다. 예를 들면,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읽을 땐 여정의 경유지였던 시베리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거친 자연환경을 보며 체홉이 묘사했던 정경이나 그곳의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며 겪었던 이런저런 고생담들을 좀 더 실감 나게 연상해 볼 수 있었다. 또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읽을 땐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TV를 보면 거짓말처럼 터키 영상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산문을 읽을 땐 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알제리와 관련된 영상을 찾을 수 없어 각종 지식백과나 블로그들을 검색하며 다소나마 갈증을 해소해야만 했다. 카뮈의 문장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장소에 대한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가기만 했고,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관련된 장소의 자료들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도 같다. 카뮈가 본 곳을 보고, 그 꽃과 나무를 느끼며, 같은 태양과 바다를(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서야 카뮈의 정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카뮈의 '태양'이 가장 궁금했는데 찾다 찾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사람의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이방인」의 뫼르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태양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그렇게 카뮈에게 다가가는 길은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유형의, 이를테면 작가에게로의 여정을 즐기는 독자에게 안성맞춤의 책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나에겐 읽는 운이 따른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필이면 카뮈를 읽고 있는 동안, 마침 이런저런 것들을 궁금해하던 차에 이렇게 정리된 자료집이 출간된 것이니 말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이 구성한 「나눔의 세계」는 알베르 카뮈의 정신적인 여정을 담은 책으로, 카뮈의 작품이나 그가 지향하는 바들을 시간적인 순서가 아닌 공간적인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카뮈의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지중해로부터 유럽을 거쳐 세계로 향하는 동안 그의 정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수록된 사진이나 다양한 텍스트(카뮈의 작품, 원고, 서한, 신문기사, 호소문 등)를 통해 보여준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종종 따라 적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실물을 접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묵직했으며(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보다 더 큰 판형이다), 수록되어 있는 자료들도 풍부했다. 카뮈의 글들을 읽으며 이미 찾아보았던 자료들도 있었지만 카뮈가 경험한 바로 그 시간들의 생생한 기록을 보다 보니, 이미 그의 작품을 통해 읽었던 문장들도 시각적인 자료들로 인해 더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카뮈의 사진들이었다. 드라마를 지니고 있는, 여운이 풍부한 그의 얼굴은 마치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몰입하여 연기하고 떠나간 배우처럼, 모습 자체로 작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탈리아로 들어간다. 나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그 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볼 수 있다. 처음 마주치게 되는 비늘 같은 기와를 인 집들, 유화작용으로 인하여 푸르게 된 벽에 달라붙은 포도나무들이 그것이다. 마당에 널어놓은 첫 빨랫줄,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들,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차림 같은 것들이다. "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누구에게나 자신의 영혼에 꼭 들어맞는 장소나 풍경, 사람, 글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스위스적인 정돈된 풍경보다는 조금은 왁자지껄한 이탈리아적 풍경을 좋아한다. 생활의 소음이 들리는, 풍부한 색소로 가득하며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마음속엔 만족스러운 고요함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겉은 다소 소란스럽지만 나의 마음 안쪽은 평화로운 정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풍경 한가운데에 있게 되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내 마음속에 그 정경과 소리, 향기들을 그려 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카뮈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런 평화로움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내적으로 충만해진 고요함에 금이 가도록 만드는, 외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무상으로 주어진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 이미 가득 부풀어 오른 고요를 마음껏 누린 사람으로서, 이젠 다시 삶으로 돌아오라고, 사람에게로 향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카뮈의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카뮈의 성장에 일조한, 그가 바라보았던 풍경들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미완성 작인 「최초의 인간」 도입부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연상될 만큼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으로 시작되는데 섬세한 표현이 압권인 프루스트와는 달리, 카뮈에게선 자연의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나의 단 하나뿐인 재산이었던 아름다움의 장관 속에서 자랐던 나는 우선 충만함으로 시작했었다. " - 「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취기에 취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도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카뮈의 전 작품과 그의 사회 참여와 삶 자체를 관통하는 정오의 사상이 형성된 곳은 바로 거기, "햇빛 때문에 캄캄해지는 들판 "이다. " - 「나눔의 세계」, 카트린 카뮈

 

 

 

카뮈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로 그의 태양과 바다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이라는 헐벗은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장시켜 주었던 것은 지나칠 정도로 충만한 자연이었고, 그 지나침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절도를, 타인에게로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인 것에 대한 경험은 균형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카뮈의 시선에도 한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범위라는 게 있었을 것이고, 시대적인 상황 역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오의 사상'이 태어나게 되기까지는 안과 겉, 긍정과 부정을 모두 직시하며 그 어느 것도 배제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있었다.

 

 

 

"유일한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며, 유일한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다. 알베르 카뮈를 생각할 때는 이 출발점을 꼭 상기하자.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글을 씀으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작가들이 있다면 카뮈는 자신의 글처럼 살았던, 아니 오히려 자신이 사는 대로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방인'이자 '최초의 인간'이었던 그였기에, 태양이 주는 만족과 공허를 알았기에, 더더욱 살고자 했기에 말이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부조리를 직시하며, 그에 반항하고, 더불어 사랑하기를 외쳤던 카뮈의 정신은 '정오의 사상'이 태동한 그 출발점을 감각적으로 공유함으로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어떻게 심화되어 나갔는지를, 그가 썼던 글이나 자취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 「나눔의 세계」는 카뮈에 대한 훌륭한 자료집이었다. 궁금했던 카뮈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고, 그가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또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며 어떤 글을 썼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카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묵직한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1914년의 사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더 가까워졌다. 전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절망이 어떤 극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면 불쑥 무관심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와 더불어 숙명이라는 느낌과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 - '전쟁', 1939년 9월 17일, <르 수아르 레퓌블리캥>

 

 

 

"아마도 어느 세대나 저마다 이 세계를 개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세대는 세계를 개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대의 과업은 아마도 더욱 중대할 것입니다. 그 과업은 바로 이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 - 「스웨덴 강연」, 1957년 12월 10일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 길을 잃지 않기,

세계 속에 잠들어 있는 자기의 것을 잃지 않기. " - 「작가수첩 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6-03-12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카뮈는 `이방인` 만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교과서로도 사용했었구요. 전집을 작년에 구해서 고이 모셔놓았는데, 읽을 틈이 나지 않습니다. 소설과 기본적인 고전문학을 좀더 읽고 전집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장소나 사람을 떠올리는 건 참 좋은 경험인데, 님처럼 TV로 그렇게 만나질 수도 있네요.

물고기자리 2016-03-12 10:35   좋아요 0 | URL
카뮈 전집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도 한 권씩 모으고 있습니다.ㅎ

제가 집에 있을 땐 보든 안 보든 배경화면처럼 다큐여행 채널을 틀어 놓거든요. 예전에도 지리 과목을 무척 좋아했었고, 다양한 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궁금해했었는데 책도 그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

일부러 찾아 볼 때도 있지만 책을 읽을 때, 우연찮게 관련 장소의 영상을 보게 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더라고요.^^
 

 

 

알베르 카뮈「최초의 인간」을 읽는 동안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1960년 카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당시 강한 충격으로 튕겨져나간 작은 검정 가방 안에서 '쓰다 만 초고'의 상태로 발견된 육필 원고를 편집한 이 소설은 아직 소설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였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느닷없이 바뀌기도 하고, 판독 불가능한 글자는 빈칸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쓰고 삭제해야 할 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부분도, 중복된 장도 있는가 하면, 원고 사이사이에 끼여 있던 낱장들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맨 얼굴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이 소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심 미안해하고 있었다. 다듬어지기 전의 이야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을, 그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이었지만 어쩐지 훔쳐 읽는 것 같은 수치스러운 마음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개방하기 전의 비포장도로를 남몰래 달리듯, 덜컥거리는 생생한 감각으로 한 사람의 삶 속을 허락 없이 침범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느낌 때문에, 미안한 마음과 감동이 어우러져 있는 이 복잡한 심경 덕분에 카뮈와 이 책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는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 속에서 무엇이든 혼자 알아가야 할 '최초의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역사와 전통이 없는, 장애와 가난마저 짊어지고 있는 그의 가족에겐 그나마의 얄팍한 과거마저도 무의미해진다. 가난한 고아였던 자크의 아버지 역시 '최초의 인간'이었지만, 현재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사망한 후론 가족들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곱씹을만한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은 없을뿐더러 오직 현재에 집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크에겐 아무리 가지고 누려도 모자람이 없는 태양이 있고, 미친 듯이 사랑하며, 전심전력으로 사랑받기를 열망하는 아름다운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떨리고 부드럽고 뜨거운 시선이 어찌나 깊은 뜻을 담고 그를 향하고 있었는지 아이는 뒷걸음치며 머뭇거리다가 그만 밖으로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를 사랑한다니까> 하고 그는 층계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 (p102) 

 

 

 

어릴 때 병을 앓아 미미한 청력을 지닌 어머니는 문맹인 데다가 아주 적은 어휘로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말 없는 체념을 강요받아 혼자 격리된 채,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 없이, 모습은 아름답지만 거의 접근이 불가능한 채로, 항상 웃음 짓고 있기에, 그의 마음이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기에 더욱더 접근이 불가능한 채로, 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쉬는 날도 없이 고달픈 노동을 반복하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아무런 원한도 없어져 버린, 남의 것이건 내 것이건 일체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듯 한 어머니의 무심한 시선은 늘 발코니 너머의 거리로 향해져 있다. 어머니의 주변엔 침범할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자크 역시 그 침묵 앞에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는 끔찍한 공허가, 가슴 아픈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어서..... " (p45)

 

 

 

옳고 그름을 알려줄 정신적인 유산도, 따라야 할 권위도 없다 보니 매일매일 새로운 태양처럼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러니 그 나날들은 첫날의 기쁨이자 채워지지 않는 공허였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아버지가 목격했던 단두대에 대한 이미지는 그가 유일하게 물려받은 유산이자 고통이었다. 하지만 자크에겐, 아니 카뮈에겐 어머니의 침묵이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공허를 이겨낼 수 있을만한, 무한한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어머니의 침묵은 오히려 그를 삶으로 치닫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 어머니의 저 탄복할 만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혹은 사랑을 찾으려는 한 사나이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더 그 작품의 중심으로 삼아보겠노라고..... " - 「안과 겉」에 부친 서문, 카뮈

 

 

 

사실 카뮈의 시선엔 어머니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에겐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일일 것이다. 카뮈에게 그토록 예민한 시선을 만들어 준 것은, 삶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준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순수한 침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그 침묵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래서 더 사랑했고, 그만큼 마음 아파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거리로 향해져 있는 어머니의 무심한 시선은 어디에서든 여전히 카뮈를 따라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카뮈에겐 태양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세상이 주는 가장 호화로운 것을 무상으로 받아 온몸으로 누리는 놀이가 있었고, (그 한편으론 현실감각이 뛰어난 할머니의 무정한 채찍질도 있었지만) 내면의 굶주림을 채워 줄 학교와 책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엔 어린 카뮈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카뮈가 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했던 바로 그분, 알제의 옛 초등학교 스승이신 루이 제르맹이다. 이 소설에도 실명으로 등장하며 따뜻한 일화를 채워가는 그분의 이야기는 장 그르니에와의 연결점만 생각하게 했던 카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카뮈의 어린 시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전문은 「아버지의 여행가방」에 수록되어 있는데 카뮈는 그 연설을 루이 제르맹에게 바친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선생님이 그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 주신 모범이 없었더라면 그런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 카뮈의 편지, 1957년 11월 19일

 

 

 

「최초의 인간」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그분의 교실에서 어린 자크(어쩌면 카뮈)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배려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느낀다. 또한 가난과 무지로 인하여 삶이 안으로 닫혀 버린 것 같았던 그에게, 세상으로의 출구를 열어 준 것은 기분 좋은 잉크 냄새를 풍기는 수많은 책들이었다. 일상의 굶주림보다 더 강렬했던 내면의 굶주림을 책들이 채워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최초의 인간'이었기에 알고자 하는 열망은 더더욱 강렬했고,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진부함 역시 쉽게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려받은 정신이 없었기에 자유로운 정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오랑 지방의 이런 해변에서는 여름 아침이 날마다 세계의 첫 아침 같아 보인다. 황혼은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황혼인 양, 해질 무렵 온갖 빛깔을 짙게 물들이는 마지막 광선이 장엄한 임종을 알린다. (...) 이곳이야말로 때 묻지 않은 순수의 땅이다. " - 「결혼·여름」, 카뮈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다 보니 그동안 읽었던 그의 다른 책들 역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다녀온 「이방인」의 뫼르소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거리의 풍경이, 그 장면의 묘사가 왜 그렇게 서글프게 느껴졌는지도 알 것 같았다. 카뮈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쓰지 않았고, 바꾸어 말하면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을 꾸밈없이 정직하게 썼던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기에 공허와 침묵을 이해했고, 이 세상의 무심함을 깨달았으며, 그럼에도 매일 다시 태어나 임종을 맞이하는 오랑의 저 해변처럼 새로운 정신을 갈망하며 살아갈 수 있었음을 말이다.

 

 

 

어떤 면에선, 서른 살쯤 이후부터의 나 역시 '최초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전에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매일 새로운 정신으로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태양이자 바다이며, 나의 제르맹 선생님이었던 책들 덕분인 것 같다.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며 오늘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들 말이다.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정신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카뮈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살아있었다면 명작으로 남게 될 소설이었을 테지만 나는 이 미완의 소설이 고마웠다. 훔쳐 읽는 듯한 미안했던 마음은 이렇게라도 읽은 흔적을 남겨보는 것으로 조금은 덜어보고자 한다..

 

 

 

"자, 이제는 다음과 같은 카뮈의 금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 -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6-02-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2 18:25   좋아요 1 | URL
벌써 금요일이네요^^ 서니데이 님도 근사한 저녁 보내세요ㅎ

프레이야 2016-02-12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소중한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2-12 18: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늘 프레이야 님의 소중한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ㅎ

서니데이 2016-02-1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4 20: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초콜릿 같은 저녁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7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8 09:09   좋아요 1 | URL
저녁 인사를 받았는데 오전이 되었네요ㅎ 서니데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좋은하루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19 13:28   좋아요 1 | URL
네, 낮에 만나니 더 반갑네요^^
 

 

 

알베르 카뮈「이방인」은 햇빛으로 가득한 한낮의 정적을 닮은 글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작은 소음들만으로 채워진, 배경음악이 없는 영화를 보는 것과도 비슷했다. 그 기묘한 정적감은 이 소설의 핵심 요소인 듯 여겨지는데 행간의 침묵 덕분에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화영은 '2015년 새 번역에 부치는 말'에서 오늘의 한국어가 허용하는 한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과 단어로 번역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한다. 가장 단순한 것이 항상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고전이므로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 의역 역시 가능한 한 피했다 하니 겁이 덜컥 나기도 했지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아무런 잡념 없이 글의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p97)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이 흐르던 글의 침묵에 어느덧 균열이 생기고 만다. 인공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즉흥적으로 이 일을 벌이고 마는데 소설 속 뫼르소의 감정은 태양을 묘사하는 문장들로 대변되고 있다. 이를테면 "대낮의 빛이 마치 내 따귀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거나 "머릿속에서 태양이 꽝꽝 울렸고", 또는 "쏟아붓는 불비를 맞으며", "빛의 칼날이 솟아날 때마다",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 같은 표현들이다. 뫼르소는 오직 현재만을 감각하며 빛을 즐기지만 그날의 태양은 엄마의 장례식 날과 같은 태양이었다. 통증을 유발하는 그 뜨거움을 견딜 수 없어 대낮의 침묵을 깨뜨리고 마는 것이다.

 

 

 

지중해 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란 존재는 어떤 느낌일지 막연히 상상해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타국에서 경험했던 가장 강렬한 태양은 복잡한 생각을 털어버리게 만드는, 그저 살아 숨 쉬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생명의 빛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빛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나른한 포만감을 느꼈고, 주변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마치 식물처럼 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내 상황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인생이 반전될만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었다. 게다가 무척 겁을 먹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 내 피부에 닿는 빛의 감각이나 공기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다. 타국의 낯선 냄새들까지도 선명히 떠오른다.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성적인 생각이 아닌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온 존재를 비추어주던 태양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던 나의 마음에 일종의 균형을 만들어 주었던 것은 바로 그 태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을 느끼게 해주었던 강렬했던 빛은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 빛을 그리워한다. 카뮈가 고향의 빛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카뮈는 그의 산문집 「안과 겉」에서 안정적인 균형이 아닌, '그 자체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균형'을 언급한다. 그것은 몸짓 하나 잘못하기만 해도 금이 가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그의 모든 사랑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손에서 빠져나가버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말 없는 정열, 불길 밑에 감추어진 쓰디쓴 맛'에 있다고 말이다. 우리의 질문들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리는 세계는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허무'는 태양에 짓눌린 풍경 앞에서가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타국의 태양 아래서 내가 느꼈던 그 감정 역시 허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고 싶게 만드는 찬란한 허무였다. 오직 빛을 따라가는 식물처럼, 꽃피우다 소멸되고 말지언정 한껏 피어오르고 싶은 허무였기 때문이다. 빛의 결핍으로, 오히려 자의식의 과잉 속에 살아가던 내게 태양이 가르쳐준 진실이란 오직 존재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태양의 과잉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기에 오직 빛을 감각하며 살아가다가 막다른 허무를 만난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없었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았던 뫼르소는 부조리를 경험하며 타인들의 유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은 사실주의도 아니고 환상적 장르도 아닙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육화된 신화, 그것도 삶의 살과 열기 속에 깊이 뿌리박은 신화라고 봅니다. " - 알베르 카뮈

 

 

 

정적이 흐르던 글의 침묵은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러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몇 페이지에선 드디어 폭발해 버린다. 소설 속의 정적이 심지가 되어 뜨거운 불비를 쏟아 버리는 것이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즈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처음부터 그저 슬펐다. 아마도 글 속에 담긴 불편한 정적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허튼 몸짓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침묵이었고, 삶의 무게에 입을 다물어버리게 만드는 불편한 침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뫼르소에게 벌어진 일들을 단순히 잘잘못을 가리는 이야기로만 읽다 보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리기 쉽고 너무 빨리 가면 땀을 많이 흘려서 성당 안에 들어가선 오한이 나요." (p44)

 

 

 

"그때 나는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정말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 (p124)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맞이할 죽음도 이렇게 빠져나갈 방법이라곤 없는 것이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오랫동안 단두대로 가기 위해선 그것이 설치된 대 위로 올라가야 된다고,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며 사실인즉 그 기계는 그냥 땅바닥에 지극히 간단히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두대는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이란 이렇게 우러르며 향하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희망 없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린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 (p176)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오직 태양을 향하는 식물처럼, 그저 존재한다는 진실만으로 과묵하게 살아가던 뫼르소를 통해 이 세계의 무심함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세 가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온통 태양과 죽음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삶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폭발시켜 행복을 이야기하는 뫼르소처럼 말이다.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의 찬미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신화를 벗기고, 삶에서 신화를 찾는 소설이라고 말이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6-02-0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1 19:40   좋아요 1 | URL
네, 덕분에 따뜻한 저녁시간이 됐어요^^

cyrus 2016-02-0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세상의 의지. 전집판, 전집판 양장본, 일러스트판. 이번에 또 나왔네요.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6-02-01 20:10   좋아요 1 | URL
김화영 님에 의하면 원문에 가장 밀착되도록 노력했다고 하는데 2015년 새 번역이라 그런지 간결한 문체라 집중하기 좋았어요ㅎ

지금행복하자 2016-02-01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이라는 말에 혹~ 합니다. 벌써 두권이 있는데도 말이죠~

물고기자리 2016-02-01 21:13   좋아요 0 | URL
옛 번역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오래된 소설을 읽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설명하는 투의 문장이 없어서 저는 좋더라고요ㅎ

비로그인 2016-02-01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뮈의 이방인은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인 것으로 압니다. 님은 소설을 꽤 심층적으로 읽는 것 같군요. 서평도 아주 잘 쓰시네요. ^^

물고기자리 2016-02-01 21:4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에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평은 아니고요^^ 그저 느껴지는 대로 끄적여 놓은 평범한 감상문입니다ㅎ

짜라투스트라 2016-02-01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아~~ 글이 너무 좋아요^^

물고기자리 2016-02-01 21:15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02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머가 먼지 전혀 몰랐었는데 실존주의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소설도 조금 알 것 같더군요ㅎ

물고기자리 2016-02-02 07:53   좋아요 1 | URL
저는 읽을 때 비평적인 어떤 이론보다는 태양을 비롯한, 뫼르소가 느끼는 여타의 감각들에 집중해서 읽었었어요ㅎ

주인공의 심리를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질 않으니까 오히려 소설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감상에 정답은 없으니 읽는 사람들마다 여러 다른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저는 뫼르소의 입장이 되어본 것만으로도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후련했어요^^

시간이 좀 흘러 다른 느낌으로 집중해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다시 읽고 싶어요ㅎ

고양이라디오 2016-02-02 08: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주인공과 소설에 몰입하는게 가장 좋은 감상법인 것 같아요. 번역도 중요한 것 같고요.
저도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는 익숙해서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을 안하게 되는데 말입니다ㅎ

저도 다시 읽어볼 땐 땡볕에 몸을 좀 드러내봐야겠네요^^

물고기자리 2016-02-02 08:26   좋아요 0 | URL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저는 친절하지 않은 소설 속에서 헤매는 걸 참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판단하려 하기보단 관찰자이자 체험자가 되려고 하는 편이라 비평적 읽기와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요ㅎ

땡볕^^, 저는 소설을 읽는 동안 강렬한 태양이 그리웠어요ㅎㅎ

서니데이 2016-02-0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도 따뜻하고 좋은 저녁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2 1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ㅎ

서니데이 2016-02-04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도 편안한 저녁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2-04 18:48   좋아요 1 | URL
매번 서니데이 님의 안부 글로 저녁시간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ㅎ
 

 

 

나는 단어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떤 생각에 집중하려면 먼저 손가락이 움직여야 하는데 완성된 생각을 써 내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고, 그 모양들을 확인해보아야 비로소 생각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글자를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도 그림보단 활자들이 많은 책을 더 좋아했었다. 순정만화를 읽더라도 그림에 주목하는 순간보단 말풍선 속의 글에 집중하는 순간이 더 길었으며, 읽는 순간과 빨리 이별해야 하는 것이 아쉬워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이 전집류처럼 최대한 길게 이어나가길 바랐던 적도 있었다. 꿈속에서조차도 어느 순간의 이미지에서 급작스럽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클로징 멘트처럼, 독백 형식의 문장으로 꿈의 종결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새로운 형태의 문장들을 만나면 반가워진다. 단어들이 흩뿌려진 위치나 모양들을 살피다 보면 나의 생각들도 새로운 문장으로 재편성되며 의식이 풍부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섬세한 인간 관찰을 담은, 프루스트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만연체 역시 나에겐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어떤 문장 들은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 못지않은 환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작가들이란 모호했던 감정이나 생각에 형태를 만들어 주는 조각가이고, 단어의 연주가이거나 화가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예민한 정신을 지닌 종합 예술가였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홀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 (2권 p4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을 읽을 땐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들었다. 음악이란 듣는 것 자체로도 큰 기쁨이지만 음악이 글로 표현되는 걸 읽는 건 또 다른 감동인 것 같다. 표현하는 사람의 단어들로 다시 한 번 연주되기 때문이다. 빛과 형태와 질감이 부여된 음악은 소리가 아닌 단어의 물결로도 나를 찰랑거리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을 특별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생각하는 방식에 있지 않을까 싶다. 스쳐 지나가는 상황들에 의미가 생기는 건 그 순간을 빚어내어 형태를 만들어준 '생각' 덕분이니 말이다.

 

 

 

"단순히 양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삶의 나날들은 다르다. 그 나날들을 횡단하기 위해 나같이 다소 신경 예민한 사람들은 자동차의 '기어'를 다양하게 조절한다. 올라가는 데 한없이 시간이 걸리는 험하고 힘겨운 나날도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전속력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같은 날도 있다. " (2권 p34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스노비즘'(속물근성)이라고 1권의 각주에서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2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스완'의 사랑이나, 지문이 풍부한 연극의 대본 같기도 했던 인물들의 묘사 역시 소설의 주제에 근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의식의 흐름을 촘촘히 서술해가는 만연체의 글에선 특별히 무엇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주제를 인식하는데 집중하기보단 프루스트의 생각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모든 감각, 감정들을 채집하는 프루스트적 기억법에 말이다.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 (1권 p42)

 

 

 

우리는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나의 내면을 투사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방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해석하고 있는 나에 대한 관찰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판단하는 근거는 밖이 아닌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프루스트처럼 자신을 향한 예민한 관찰력을 지닌 글이 좋다. 어떤 주제에 닿고자 하기 위함이 아니라(인생이 하나의 주제로 정의될 수 있는 건 아니듯이) 모든 사소한 것들을 관찰함으로 나의 반응점들을 늘려가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문장, 새로운 단어들로 나라는 관점을 풍부하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말이다.

 

 

 

"바이올린이 고음으로 올라가 마치 무엇을 기다리듯 머물러 있었다. 기다림은 오래 지속되었고, 바이올린은 자신이 기다리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이미 알아보고, 대상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흥분 속에서, 자기 곁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숨지기 전에 그 대상을 맞이하려는 듯, 또는 놓으면 금세 닫히는 문을 간신히 지탱하듯 마지막 힘을 다해 그 대상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잠시 길을 열어 주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으로 고음을 이어 갔다. " (2권 p269)

 

 

 

우리의 한순간은 때로 이 음악처럼 간절하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대상을 발견하려는 기다림으로, 알아차리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애틋함으로 말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의미는 과거의 시간들보단 현재 잃어가고 있는 이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에게 깨어있기만 한다면 드문드문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어'로 완급을 조절하며, 음악처럼 연이어 흐르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감상을 남기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진정한 감상이란 읽고 싶은 부분들을 다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부분들을 몇 번씩 반복해 읽었는데 우리의 생각을 가장 닮아있는 만연체 글의 특징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요약해 낼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이듯 프루스트의 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은 마음을 그린 풍경화이고, 섬세한 초상화이며, 영혼을 품은 음악이고, 온갖 색소로 아름답게 피어오른 감각의 꽃다발이었다. 그러니 좋은 그림이나 음악에 반응을 하듯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으며 우리의 삶에 무수한 반응점들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촘촘히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들은 당시엔 큰 의미를 찾기 어렵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으로, 음악으로 완성되어 간다. 우린 그 순간들에 깨어있고, 그 모든 감각들을 채집하며 우리의 삶을 주시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1-12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예뻐서...ㅎㅎㄹ

물고기자리 2016-01-12 14:35   좋아요 1 | URL
헐..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는 중에 벌써 댓글을^^ 책이 예뻐서 표지에 긁힘이 생길까 조심스럽더라고요ㅎ

[그장소] 2016-01-12 14:36   좋아요 1 | URL
양장에 그 커버를 하라는건지 ㅡ이게 껍질인지 뭔지 애매할때가 있죠.
ㅎㅎㅎ

초딩 2016-01-12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양은 동사에 서양은 단어에 집중한다고 들었어요 :-)
브레송이 사진은 `단어` 이고 잡지는 그것을 쓰는 `문장`이라고 한 말도 생각 나네요.
:-) 저도 완전 읽을 만반의 태세 중입니다.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6-01-12 15:27   좋아요 1 | URL
인용해 주신 부분들 멋져요!^^
프루스트가 신기한 게 2권을 읽다 보면 어느새 다시 1권을 또 읽고, 그러다 다시 2권을 읽고^^ 무한 루프인 것 같아요ㅎ

blanca 2016-01-12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갈한 글 잘 읽었어요. 저는 나올 때마다 읽으니 이게 자꾸 전체 연결이 안 되고 앞 내용, 지명, 사람 성격 묘사 같은 것들을 잊으니 일관성 있게 연결이 안 되네요. 그래서 어떤 분이 전부 다 번역되어 나오면 한꺼번에 읽어버리겠다, 하신 이야기가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어떤 흐름이 자꾸 끊기니까요. 물고기자리님처럼 반복해서 읽어야 할 텐데 또 그건 그렇게 안 되고. 그런데 정말 책이 너무 예뻐서 좋아요. 겉지 벗겨도 너무 예뻐요.

물고기자리 2016-01-12 16:05   좋아요 0 | URL
연달아 읽으니 좋기는 한데 에너지 소모가 참 커요. 평소보다 꿈도 많아지더라고요ㅎ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어떤 호흡으로 읽어야 하나 걱정도 되는데 아마 부분적으로 재독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ㅎ

저도 겉지 벗겨봤는데 예쁘더라고요^^

살리미 2016-01-12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 글을 읽다가 아! 너무 좋다! 했는데 옆에서 뭐가? 라고 물어요. 그럼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요약하면 그 좋음이 사라져버려서 그냥 그런게 있어... 하고 말거든요. 그런 느낌일까요? 그림을 보듯 음악을 듣듯 반응하며 읽는 책이라니... 문학이란 이렇게 읽어야 하는구나 싶네요.
새해라고 이것 저것 나름 독서계획들을 세우고 집에 있는 책들 모조리 읽어버리겠다고 덤비고 있는데.... 아무래도 소설을 읽을때가 가장 즐겁네요. 좋아하는걸 읽으면 되지 무슨 강박을 갖고 그러나... 싶기도 하고 ㅋㅋ
그나저나 책은 또 왜이리 이쁜지.... 안읽을거라고 다짐하면서도 자꾸 사고 싶어져요^^

물고기자리 2016-01-12 17:28   좋아요 1 | URL
네^^ 개인적인 발견으로서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문학은 스스로 생각할 거릴 찾을 수 있게 해주어서 참 좋아요. 학교 다닐 땐 무엇을 생각할지, 감상해야 할지를 정답처럼 외워야 하는 게 별로였거든요..

오로라 님의 소설 읽기도 기대돼요ᄒ 책이야말로 읽고 싶은 걸 읽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또 본능적으로 필요한 걸 고르게도 되는 것 같고요. 이왕이면 책이 예쁜 것도 좋더라고요^^

cyrus 2016-01-12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권을 읽었을 때 쇼팽의 `녹턴`이랑 드뷔시의 `달빛`이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

물고기자리 2016-01-12 20:18   좋아요 0 | URL
오! 멋진 선택 같아요. 어쩐지 마르셀이 엄마를 기다릴 때의 마음 같기도 하고.. 저는 달빛이 더 좋아요^^

서니데이 2016-01-1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12 21: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ㅎ 서니데이 님도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6-01-14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프로필사진 바꾸셨네요. 새 이미지도 예뻐요.^^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14 20:46   좋아요 1 | URL
넹~ 지루해서 슬쩍 바꿔봤어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ㅎ

서니데이 2016-01-20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오늘 많이 추웠어요.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세요.^^

물고기자리 2016-01-21 14:05   좋아요 1 | URL
헐..! 왜 이제야 댓글을 봤을까요ㅎ 늦었지만 어제 따뜻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서니데이님 덕분이었나 봐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다 보면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여 집중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되는 것은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로 확실한 의미를 지닌 단어를 통해 심상을 스케치하듯 묘사하는 작가에겐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그 목소리가 가장 선명했던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J. D. 샐린저였는데 이미지가 아닌 단어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작가의 글이 가장 쉽게 읽히는 것 같다. 귓가에 바로 속삭여주는 것 같은 캐릭터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심상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이런 소설을 떠올려보면 전체 스토리는 흐릿하더라도 특정한 성정을 지닌 인물이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또 다른 경우는 '그림'이나 '영상'처럼 경험하게 되는 작가인데 최근의 기억으론 오르한 파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 폭의 세밀화를 감상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촘촘히 촬영한 기록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내면의 목소리보단 시각적으로 집중시키는 묘사들에 충실해서 소설 전체의 내용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하게 해준다. 그런데 듣는 것이나 보는 것, 어느 한 쪽으로도 집중시켜 주지 않아 난해했던 작가도 있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인데 목소리로 치자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고, 보이는 시야마저도 마치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듯 지극히 한정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감각을 통제당한 느낌 때문에 되려 더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올라가는 이 가증스러운 계단에서는 바니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내가 매일 저녁마다 느끼는 그 특별한 슬픔을 흡수하고 고정해, 이런 후각적인 것에 대해 별 볼일 없는 내 지성보다는 내 감성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 (p58)

 

 

 

"뭔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나더니, 다음에는 위쪽 창문에서 모래 알갱이를 뿌리듯 가볍고 넓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그 소리가 퍼지고 고르게 되고 리듬을 타고 액체가 되고 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보편적인 음악이 되었다. 비였다. " (p182)

 

 

 

하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은 온 감각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매 문장이 온갖 감각으로 채색된 한 폭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단어로 그 뜻을 곧장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그림을 그려 놓는 듯한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이미지들이 흩어지기 전에 나의 온 감각을 열고 그림 속 정경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프루스트를 쉽게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지겹거나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 집중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짧은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며 그림이 펼쳐지던 공간에서 나의 상념과 프루스트의 정경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는 한다. 몇 페이지에 걸친 문장을 읽을 땐 시간을 거스른 여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억지로 읽으려 애쓸 필요도, 밀려드는 상념을 떠밀어 낼 필요도 없이 프루스트와 나를 동시에 개방하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잠시 멈추어 가며, 음미해 가며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비본 냇가에 물병을 담그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물병은 냇물로 채워지면서도 냇물로 둘러싸여, 한편으로는 단단해진 물처럼 허리가 투명한 '그릇'인 동시에, 흐르는 액체 수정이라는 큰 그릇에 잠긴 '내용물'이기도 해서, 물병 형태 그대로 식탁에 나왔을 때보다 더 감미롭고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청량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청량감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단단하지 않은 물과, 혀로는 음미할 수 없는 액체성 없는 유리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분배되며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 (p29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엔 익히 잘 알려진 문장들이 등장한다. 아름답기만 한 문장이 아니라 소설 속 화자의 심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이 묘사하는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위의 이 문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해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듯, 내가 기억하는 나의 시간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의 빛과 냄새, 소리, 공기의 무게감들이 떠올랐고, 슬픔의 시간들 마저도 고요히 바라볼 수 있었다.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나를 담고 있던 물병이 프루스트의 물결을 만나 투명한 수정처럼 개방되어 청량감 있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영감으로 의식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1권의 역할은 긴 여정을 위한 의식의 개방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의 독창적인 착상은 정신으로서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을 같은 양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 정신이 동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 바꾸어 놓을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 (p154)

 

 

 

이 소설은 지극히 관념적인 동시에 지극히 감각적이다. 생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일깨워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 같다. 감각들의 묘사는 마치 마법처럼 아름답고 관념적인 묘사들은 더없이 예리하다. 처음엔 너무 많은 감각들이 동시에 밀려와 저항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같이 흘러가기로 마음먹으니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내면을 향한 단단한 시선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읽는 시선을 약간 돌려보면 늘 나를 볼 수 있었다. 오직 타인을 향한 눈금자를 지니고 있는 듯이 나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고, 우리가 좋아하는 화가에게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볼 때, 또는 지금까지 연필로 스케치한 데생만을 보다가 완성된 그림 앞에 설 때, 또는 피아노 곡만을 듣다가 나중에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입혀서 들었을 때와 같은 기쁨을 주시면서, 손가락으로 탕송빌의 울타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넌 산사 꽃을 좋아하지 않느냐. 이 분홍색 산사 꽃을 좀 보려무나. 정말 예쁘지 않으냐. " " (p245)

 

 

 

나를 이렇게 기쁘게 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서 발견하고 싶다. 발견할 수 있는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이런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정신을 다룬 여정은 나의 정신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실제 삶을 이해하는 덴 많은 시간이 걸리며, 평생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삶을 바라보다 보면 나의 삶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인 단어와 이미지, 감각들로 말이다.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건 나의 시간들이기에 우선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자신의 불편한 고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권은 더없이 좋았고, 위의 인용문처럼 새로운 기쁨이었다. 문장마다 멈추어 감상을 쓰고 싶을 만큼 많은 영감들이 깨어났다. 무엇보다도 경험해봐야 할 소설이었다. 때론 한 권의 소설이 보다 더 많은 걸 압축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1-05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의 소설은 `수학의 정석`과 같은 작품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호기롭게 <수학의 정석>을 펴보지만, 1장 집합 내용만 계속 보다가 작심삼일로 `수포자`가 됩니다. 프루스트의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1권 완독은 성공하지만, 나머지는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제가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

물고기자리 2016-01-05 18:4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1권은 재밌었어요. 이렇게 인물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들며 묘사하는 책들을 좋아하거든요. 꼭 완독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궁금증이 지속되는 한은 계속 읽어보려고 해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책들도 읽어가면서요ㅎ

AgalmA 2016-01-05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서 수영을 하고 계세요....책 속에서 안 돌아올 사람처럼...그게 되면 좋은 걸까, 슬픈 걸까...그래도 우린 바랍니다. 그쵸?

물고기자리 2016-01-05 18:52   좋아요 1 | URL
넹~? 저 수영 안 하는데요?ㅋ 책 속을 헤매는 건 읽는 동안이고요^^, 되려 일상이 좀 바빠서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해요.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ㅎ

AgalmA 2016-01-05 18:55   좋아요 1 | URL
물고기자리님 글은 항상 물흐르듯 흘러 사실 제가 수영하는 기분ㅎㅎ 이런, 투사쟁이 같으니라고))
저도 바빠서 책 볼 시간이 없어 울상. 북플도 웬수~

물고기자리 2016-01-05 19:05   좋아요 1 | URL
투사쟁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ㅋ 제가 성향이 좀 그래요ㅎ

맞아요, 읽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북플도 웬수죠. 올해는 카뮈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갈마 님 때문에 옆길로 샜으니 책임지세욧!ㅋ

AgalmA 2016-01-05 19:16   좋아요 1 | URL
ㅋㅋ 제가 작년에 양철나무꾼님 덕?탓?에 <작가란 무엇인가>에 빠진 격ㅋ 양철나무꾼님 유혹에 무사히 피했어도 물고기자리님 만났겠지만ㅎ 결국 돌아돌아도 만난다니까요. 역시 무서운 책 지옥;
그러나 후회는 없다! ㅎㅎ

물고기자리 2016-01-05 19:11   좋아요 1 | URL
저도 노! 후회입니다^^ 덕분에 좋은 책을 경험했어요. 문장이 너무 길어 옮길 순 없었지만 긴 호흡으로 묘사한 부분들에서 눈을 뗄 수 없더라고요ㅎ 실제로 매 문장마다 감상문 쓰고 싶었어요^^

서니데이 2016-01-06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1-06 18:52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ㅎ 서니데이 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1-07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자리님,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07 22: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ㅎ 서니데이 님도 감기 중이시라면서 이웃들 챙기시느라 쉬지도 못 하시네요^^ 빨리 회복되셨음 좋겠습니다:)

초딩 2016-01-08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게 이책이죠? 담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1-08 18:27   좋아요 1 | URL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 초딩 님 장바구니를 무겁게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도 Agalma 님께 영업당했어요!!ㅋ

초딩 2016-01-08 18:34   좋아요 1 | URL
언제 당해도 좋은 영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