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전주님의 서재 (전주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8 Oct 2026 13:14:5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전주</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전주</description></image><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진심, 무아, 일심, 불교 - [불교에 진심 - 삶에서 미끄러져도 그곳이 부처님 손바닥 위라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50574</link><pubDate>Fri, 02 Oct 2026 1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505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8711&TPaperId=175505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0/52/coveroff/k5721387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8711&TPaperId=175505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교에 진심 - 삶에서 미끄러져도 그곳이 부처님 손바닥 위라면</a><br/>박사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저자가 불교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 중, 고3 시절 시내버스 앞문에 옆구리를 부딪힌 통증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갔다가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받고 격리된 이야기를 읽고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어느 날 옆구리를 목조 가구 귀퉁이에 찧었고, 그 통증을 치료하다가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죽었다. 저자 박사가 1980년대에 살았기에 망정이지 1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꼼짝 없이, 불교도 만나지 못하고 영겁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br>학사 논문이라고 하면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대학교 졸업 논문을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그렇게 하나 모르겠다. 내 학사 논문 주제는 '불교의 무아 사상'이었다. 사반세기 전 일이지만, 뚜렷한 느낌은 이걸 더 파고 들었다가는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달콤한 꿀이 있는 꽃 도롱 안으로 삐끗하면 빠질 뻔한 상황이었을까. 다행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학위 논문으로만 대충 제출하고 끝났다. 내내 그 느낌을 안고 살다가 최근에 한자경 교수가 출간한 &lt;무아와 일심&gt;을 읽으면서 무아 사상에 드리운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이런 나보다 작가 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불교와 함께 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박사답다. '나답게'를 영어 알파벳으로 적고 아이디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 쉬운 모습은 아니지만, 작가 박사는 &lt;불교에 진심&gt;에서 그런 모습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보기 좋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0/52/cover150/k5721387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005206</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이 백지 - [백지 앞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889</link><pubDate>Thu, 01 Oct 2026 14: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8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654&TPaperId=175488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0/coveroff/k7321376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654&TPaperId=175488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지 앞에서</a><br/>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내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기록이 사라진 적은 두 번 있다. 한 번은 000을 거부하고 000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 대학교 학과실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대학노트에 적은 일기장을 불태운 일이다. 두 번째는 3개월과 5년 3개월 동안 000과 000에서 아버지에게 쓴 봉함 엽서인데, 나와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엽서를 담은 상자가 없어진 걸 알았다. 가끔 시골집에 들를 때마다 벽장에, 창고에 놓여 있던 상자를 언젠가는 꺼내서 봐야지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불태우셨을 것 같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어느 날 아버지 옆에 누워 인공 시절(한국전쟁 전후) 아버지 삶을 궁금해한 후, 그 상자를 태우셨을까?&nbsp;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어머니를 여의면서 어머니께도 여쭤보지 못하였다. 부모님과&nbsp;함께 살았던 형은 최근에 방 정리를 하면서 찾았다고 봉함&nbsp;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내 일기와 같은 그 편지를 읽으시면서 어떤 심정이셨을까? 난 한 번도 여쭙지 못했다.일기는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망신을 당한 일. 내가 초래한, 언젠가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내게 닥치고 나는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안 쓰면 잊을 수 있잖아. 미래의 너를 속일 수 있어. 안 쓰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만약 네 감정을 쓰기 시작한다면..... 넌 주체하지 못할 거야. 힘들겠지’&nbsp;최은영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내 스무 살 되던 해, 그리고 쉰 살을 앞둔 12월을 떠올렸다.2년 전에 이주혜의 소설 &lt;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gt;을 읽고, 그 소설 속 글쓰기 강사가 한 말,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를 메모지에 적고 모니터 옆에 붙여 놓았다. 가끔씩 보았는데, 사무실을 옮기면서 버렸나 보다. 외웠을 테니 버려도 되겠지 했나 보다. 엊그제, 그 문장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은 거 있지. 그래서 구글 검색해서 알아냈고, 카톡 프사에 적어 두었다.&nbsp;잊는 일과 헤어지는 일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다. 다르다면, 최은영은 잊지 않기 위해 쓰고, 이주혜는 잊기 위해 쓰는 걸까? 같다면, 이주혜의 헤어짐이란 만남의 다른 형식이고 잊지 않음의 또다른 방식일 테다.<br>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 &lt;복자에게&gt;에서 얻은 표현을 빌리면, 포슬포슬하다. 아프고 눈물 나지만 따뜻했다. &lt;백지 앞에서&gt;에 쓴 작가 최은영도 그러했다. 병을 잘 이겨서, 오래오래 포슬포슬한 그의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0/cover150/k7321376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70049</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래도 훈민정음은 최고!!! - [한글, 불편한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88</link><pubDate>Thu, 01 Oct 2026 1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5486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off/k0521399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5486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글, 불편한 진실</a><br/>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장지연 교수의 &lt;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gt;를 읽은 후에 김진명 작가의 &lt;세종의 나라&gt;를 읽고 있는 중에 강명관 교수의 책이 출간되었다. 도발적인 제목이었지만, 이미 장지연 교수의 글에서 익혔던 내용이라 그 충격은 덜했다.<br>1420년 9월, 세종은 부민고소금지법 제정.1431년 1월, 부민고소법 제한적 복구1433년, 부민고소법 폐기1443년 12월 훈민정음 창제2년 9개월 후1446년 9월 &lt;훈민정음&gt; 완성(어제서문, 예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된 &lt;훈민정음&gt; 완성.<br>한글이 가장 필요한 곳은 외국어 학습이었다. 한글은 외국어 어휘의 발음을 표현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요긴한 도구였다. 한자의 음과 뜻이 스승의 입으로 전수되던 것이 한글로 대체되었다.언해는 경서에 대한 학습을 쉽게 했다.시골의 무식한 자들이 어려서부터 언문으로 경서를 익히고 외워 과거에 합격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지도 못하는 수준,&nbsp;시골 선비들이 언문 토가 달리 경서를 읽고 강경과에 급제하기도 한다.경서의 언해야말로 사족들이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일 것이다.훈민정음 창제 의도 정설, 세종의 어제서문,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어리석은 백성의 일용을 위해 세종이 만든 것이다.반론,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훈민정음 창제 의도 1, 민중을 가르치겠다는 훈민의 의도, 2.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민중에게 표현 수단을 주겠다는 의도, 3. 민중의 일상생활의 사용에 편리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1.은 한글 사용 주체가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이 한글로 텍스트를 만들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2, 3은 한글을 사용하는 주체가 민중이다. 1에서는 민중이 대상이고, 2, 3에서는 민중이 주체다.세종은 부민고소법을 폐지한다. 지방수령에 대해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 이것을 세종이 폐지한다. 이를 두고 강명관 교수는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라고 주장한다.&nbsp; 강교수에 따르면, 세종이 비록 한글을 만들었지만, 백성의 한글 사용을 위한 구체적 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럴 여력이 없지 않았나? 부민고소법을 페지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발하는 사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을 것 같은데.암튼 부민고소법의 폐기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해 수령의 비위와 불법과 과잉 수탈을 고소할 수 없게 되었다. 수령 관할하의 재판에서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민중은 굳이 한글로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노비나 농민이 한글로 쓴 기록물이 거의 없다. 종이를 구할 형편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nbsp;&nbsp;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글 사용자는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고 사용 영역은 넓었다. 범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그 범용성에 감탄했다. 정인지의 말마따나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 한자의 한국식 발음과 북경에서의 발음 간(향음과 화음) 괴리를 심각하게 여겼던 세종.강명관 교수의 주장을 한 문단으로. 304쪽.한글은 민중을 위해 만든 문자였지만, 정작 세종은 부민고소법의 폐지에 찬동함으로써 백성들이 한글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했다 그는 민중이 한글을 일용할 어떤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민중의 적극적인 한글 사용은 민중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만드는 길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열리지 않았다. 세종은 지배계급의 대표자였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는 한글에 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가장 강한 객관성을 지닌 훈민정음에 대한 평가로 보인다.&nbsp;내가 보기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의도,강명관의 주장대로 지배계급의 지배 체제 강화 의도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이라 해도, 조선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역성 혁명으로 건국한 나라라는 점에서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지배계급을 설득하는 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 민본의 정신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지배계급, 곧 사족이 더 많이 활용하였다.강명관의 실증대로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들은 민중이 아닌 지배계급이었다. 이는 세종의 의도와 일치하는 결과라 하겠다.세종의 민본주의를 오늘날 현대의 민주주의와 동일시할 수 없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지배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지배 논리이다. 민이 근본이라는 것은 민 없이 왕 노릇하기는 불가능하니 민을 잘 다독이고 민이 왕을 추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민이 가장 귀하다는 것. 왕 없는 민은 가능하지만, 민 없는 왕은 존재할 수 없으니 군주가 가장 가벼울 수밖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150/k052139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73463</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훈민정음의 쓸모에 관한 역사 -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56</link><pubDate>Thu, 01 Oct 2026 1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833055&TPaperId=175486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37/35/coveroff/k4828330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833055&TPaperId=175486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a><br/>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06월<br/></td></tr></table><br/>장지연 교수님의 글은 &lt;경향신문&gt; 칼럼에서 처음 읽었다. 나는 역사 과목을 좋아했고 관심이 많다. 교수님의 칼럼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lt;장지연의 역사 상상력&gt;이란 제목으로 꽤 긴 글을 싣고 있다. 아직 보지 않은 &lt;왕과 사는 남자&gt; 관련 3월 24일자 글, &lt;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gt;을 읽었다. 역사 관련 영화, 소설을 접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나중에 언제라도 그 영화를 볼 텐데, 미리 어떻게 봐야 할지&nbsp;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음독 구결: 한자음에 어미나 조사를 한국어로 붙여 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결을 붙인 것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한다.&nbsp;읽은 데 번거로움은 없지만,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nbsp;음독 구결은 한문에 익숙한 식자층에 유용한 독법으로, 암송에 유리하다.&nbsp;훈민정음의 개발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nbsp;음독 구결이 한자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면, 언해본은 한자를 보지 않고서도 구송을 할 수 있게 한다. 보이는 대로 읽고 읊고 외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nbsp;한문 글쓰기는 못 했다지만 경전 자구를 읊어 댈 수 있는 교양층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석독 구결: 한자의 뜻을 풀어서 읽는 것을 의미, 한문 훈독에 포함되지만 한자 순이 아니라 우리말 어순에 따라 글자 순서를 바꿔가며 읽는 것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원문을 이해하고 공부하며 읽기에는 편리하지만 상당히 번거롭다. 한자의 뜻을 생각하며 왼쪽 구결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자동으로 한문 문장을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세종의 야심은 백성들이 쉽게 여겨 날로 쓰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하고 심지어는 한자의 발음까지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다.경전이니까, 성현의 말씀을 왜곡 없이 발음하기 위함.훈민정음 창제 직후 삼강행실도나 유교 경전 언해가 성과 없이 중단된 것에 비해 &lt;동국정운&gt; 같은 운서 편찬은 이뤄짐. 이는 ‘훈민정음 발음기호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정황 증거임.훈민정음은 양반의 문자권력과 중국을 추종했던 권위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당대 지배층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보편 문화를 함부로 교정하려고 한 야심만만한 기획 때문에 비판에 부닥친 것이다. 새로운 문자는 경전과 음운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훈민정음은 엄청난 기세로 보급되었다.한글 독음만 달리거나 구결이 붙은 한시를 필사하는 방식은 한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나가는 데는 문제가 있었지만, 필사한 내용이 담고 있는 교양의 확대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조선 시대에 여성만이 훈민정음을 사용했고 엘리트 남성은 이를 천시하여 사용하지 않았다고 도식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훈민정음은 드러나지 않을 뿐 모든 문자교육의 기초였다. 한글을 익히면서 문자교육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문 공부로 나아갔다.훈민정음이 문자교육의 기초로 활용되자 한문을 교육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음을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싶은 욕구나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차자를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훈민정음은 막힌 데 없이 이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훈민정음 덕택에 우리말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게 살아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의성어 의태어는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이자 결과이다.훈민정음 창제 직후부터 왕실 여성들이 언문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한문 글쓰기의 압축성, 모호성은 오해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언문은 그 가능성을 축소시켰다.조선 시대의 문자 생활은 젠더화되어 있었다. 다 같이 한글을 쓰더라도 그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상층 남성 엘리트가 한글에서 감정 피난처를 찾았다면 여성은 한글을 통해 자신을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왕실 여성의 언문 교지나 편지는 절묘한 위치, 한문 문식력이 상당하다 할지라도 일부러 등급이 낮은 문자를 사용하여,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의지는 없음을 보일 수 있었다. 정치의 장에 회색의 지대를 열어 놓았다.장지연 교수의 바람은 역사적 상상력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혔으면 하는 것이다. 역사적 신비주의, 신비로움, 무작정 위대함에서 벗어나, 여러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보기에 장지연 교수의 열망이 몰려 있는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37/35/cover150/k4828330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373557</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내가 끝내려고 하고 있는 것은? - [마침표의 순간들 - 아직 끝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철학 연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45</link><pubDate>Thu, 01 Oct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86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8639&TPaperId=175486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71/coveroff/k2721386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8639&TPaperId=175486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침표의 순간들 - 아직 끝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철학 연습</a><br/>소피 갈라브뤼 지음, 박명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소피 갈라브뤼, 어지간히 나올 이름일 것 같다. 깊고 깊은 마음과 사유를 담은 글에서 글쓴이가 ‘소피 갈라브뤼’를 언급하고 그가 쓴 책의 한국어 번역 책, “마침표의 순간들”이란 제목을 주석에서 볼 것 같다.‘아직 끝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철학 연습’이란 부제를 적으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끝내려고 하고 있는지 그 ‘무엇’이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무엇을 끝내려고 하는가. 아무것도 끝내려고 하지 않으면서 끝남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나는.들뢰즈, “알코올 중독자란 끊임없이 술을 끊는 사람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마지막 한 잔에 머물지요........다른 모든 잔들은 마지막 한 잔을 기다리는 그의 방식일 뿐이지요.”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중장년이나 노년 사이에서만 유통하지 않을 것 같다. 1990년생, 2026년 올해 서른 여섯, 나보다 딱 20년 늦게 태어났고, 청년의 끄트머리에 있는 철학자가 끝, 마지막, 마침표에 대해 사유하고 문자로 표현하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한창때를 살고 있는 그에게 그것들에 관한 것들을 읽을 수 있다니. 나는 그것들을 꼭 나이의 문제로만 보았다. 태어난 이후 매시간이 끝, 마지막, 마침표의 순간인데도 말이다.모든 마지막은 언젠가는 오고야 만다.&nbsp;지루함에도 나름의 효능이 있다. 지루함은 상상력과 반항심과 사고력을 길러준다.보부아르가 지적하듯,일이라는 것은 강요된 것이든 선택된 것이든 근본적으로 양면적이다.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얽매이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사회에 통합시키는 수단이 되며, 우리의 능력을 길러주거나 유지시켜 준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단 하나의 활동으로 축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노년의 활력을 유지하는 열쇠가 있다.우리는 끝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친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남기게 되더라도 그렇게 한다.직업적 경험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인 은퇴의 전망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자기 일을 더는 못 견텨 하는 사람에게나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은퇴는 곧 소외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퇴직으로 인한 단절은 종종 사회적 죽음의 동의어가 되며, 삶의 폐기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떠남은 세속적 삶의 절정인 동시에 궁극적인 끝을 향하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진다.'마지막 순간’이 새로운 결심이나 자기 변화를 향한 의지를 나타낼 때 우리는 그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이라는 개념보다 ‘이행’, ‘전환’, ‘쇄신’이라는 개념을 선호하다.은퇴란 자신의 일부가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또 하나의 마지막 순간’을 선언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엄청난 도전을 부과한다.은퇴는 수익성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함정이다.마지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죽음의 순간은 근원적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71/cover150/k2721386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47176</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소설 &amp;lt;복자에게&amp;gt;에서 맛본 생선조림 같은 다채로운 삶 - [복자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2762</link><pubDate>Tue, 29 Sep 2026 0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5427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496&TPaperId=175427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77/7/coveroff/89546744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496&TPaperId=175427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복자에게</a><br/>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09월<br/></td></tr></table><br/>&nbsp; 복자는 농담을 양말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양말과 같은 농담’, 그런 농담을 닮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복자가 눈썹을 그려준 반려견의 얼굴과 같은 것일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살아가는 삶이란 어떠할까.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상호 간 유쾌한 놀림과 자기 비하를 주고받으며 웃었다면, 둘 사이는 위아래가 없는 평등한 관계임을 입증한다고 썼다. (전중환, ‘즐겁고 유쾌한 웃음’, 경향신문, 2026. 7. 9.) 농담이 오가는 쾌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살아갈 것 같다.&nbsp; &lt;복자에게&gt;를 조금씩 읽은 지 3일째 되는 날, 이야기가 들쩍지근하니 몸에 감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영초롱이 끌고 가는 이야기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밀물처럼 들어와 갯벌 같은 내 일상에 문득문득 들고났다. 꼭 다시 바로 펼쳐봐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40쪽 넘어가는 길목에서 잠시 멈췄다. 금요일 3교시 수업, 교탁에 교과서를 올려두자마자, 한 학생이 맨 뒷자리에 선 채로 페트병과 우유갑을 각각 하나씩 양손에 들고 책상 위로 던져서 바로 세우는 짓을 반복한다. 입학 후 3개월 내내 여러 형태로 말썽의 중심에 있는 학생이다. 그만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하니, 이것만 세우고 앉겠다고 하면서 쿵쿵 소리를 내면서 계속한다. 엄한 목소리로 자리에 앉으라 하니 그제야 털썩 앉는다. 이내 덥다면서 냉난방기 조절기가 있는 앞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조절기에 손을 댄다. 교사의 허락 없이 자리 이동을 했다고 알리고, 어서 들어가라 했더니, 못 들은 척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끄어어어’ 하는 소리를 낸다. 이름을 부르며 수업 중에 이상한 소리 내지 말라 하니 자기가 안 그랬단다. 뻔뻔한 거짓말에 자기도 어이없는지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닫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엎드린 채 잔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평상심을 회복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책상 위에 놓인 &lt;복자에게&gt;를 펼치니, 이 문장이 곧바로 읽힌다. “죄를 견디는 일보다 사람을 견디는 일이 힘들고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달까.” 판사 이영초롱이 좌천성 인사 발령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주도에 도착해서 한 독백이다. 3년 후에는 그 학생이 졸업을 하니, 기한 없는 견딤이 아니어서 다행일까. 홍유가 이영초롱에게 말했던 “칼을 버리면 부처가 된다.”라는 말을 새겨야겠다고 다짐했다.&nbsp; 1주일이 지난 후, 다른 반 교실을 막 들어서자마자 어떤 학생이 삐딱하게 앉은 채로 대뜸 오늘 수업하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수업 준비를 먼저 하고, 내가 출석을 확인한 후에 질문하라 했더니, 사물함에 가서 교과서를 들고 와서는 자기 책상 위에 ‘빡’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복도로 불러내어 조목조목 타이르는 내내 턱을 곧추세우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본다. 14살 중학교 1학년 아이가. 교실로 들어와 수업을 진행하는데, 건너편에 있는 학생 일에 나서서 참견하고, 옆자리에 있는 학생과 킥킥대며 이야기한다. 수업 중간마다 제지, 지적, 훈계 등을 하느라 수업이 엉망이 되었다. 끝날 무렵, 한두 명의 학생 지도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여러 학생에게 사과하니, 그 학생이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예’라고 답한다. 뻔뻔하고 조롱 섞인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그 학생 머리를 잡고 고개 숙이라고 말하면서 내리눌렀다. 손끝에 힘을 꽉 쥐었다. 종료령을 듣자마자 교실에서 나왔다. 이날, 7교시 수업이 없어서 교무실에 있는데, 다른 선생님에게 이끌려 그 학생과 다른 학생이 교무실에 왔다. 교사가 있는 데에서 다른 학생과 대화하면서 욕설을 내뱉었단다. 그 교사는 두 학생에게 상황 설명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후 교실로 갔다. 글을 쓰는 내내 상대 학생과 언쟁하고 멍청이 운운하며 떠든다. 둘을 일어나게 해서 거리를 두게 한 채 한 명은 사물함을 보고, 그 학생은 출입문을 보고 서 있게 했다. 자꾸 고개를 돌리자 문 보고 똑바로 서 있으라 지시했다. 내 일을 하다 그 학생을 보니 나를 보고 있다. “문 보고 서 있으라 했지.”라는 내 말을 거부한다. 다가가서 목덜미를 잡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게 했다. 버티면서 뒤돌아보는 눈빛이 이글거린다. 교실에 갔던 그 교사가 들어와서 나를 제지하고, 그 학생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따라 나가면서 내가 “개망나니 같은 놈, 교사 지시 불이행하는 놈”이라고 소리를 지르니, 끌려가는 중에 뒤를 돌아보면서 나를 내내 노려본다. 종례, 회의, 퇴근 등을 준비하고 귀가하는 내내, 그리고 밤새 나는 불안, 초조, 수치스러움이 뒤섞인 상태로 보냈다.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못했다. 큰소리로 화를 내고 목덜미를 쥔 일에 대한 보호자의 민원과 동료 교사들의 분분한 뒷말이 두렵다. 내일이 걱정된다. 후회스럽다. 언제나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영초롱의 선배 판사인 양선배의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엄마가 집에서 자동차 열쇠를 2시간 동안 애써가며 찾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자기가 숨긴 열쇠를 내밀었다. 엄마의 고통을 즐기는 아들이 수업 시간에 수업 방해하는 학생들을 질책하면서 괴로워하고 화를 내는 교사의 모습을 재미있는 듯 구경하는 일부의 학생을 닮은 것 같다.&nbsp; &lt;복자에게&gt;를 거의 다 읽어가고 있던 무렵, 나도 이영초롱의 친고모인 이정희가 겪었던 1990년대의 삶을, 나의 1990년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10년 동안의 나를 나에게 말하거나 글로써 내 흔적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문질러보고 싶었다. 흔적은 긁힘으로 남겨진다. 긁힘의 세기, 모양새, 긁히고 있는 순간의 상황 등이 그 흔적을 다르게 한다. 박정희 정권부터 이어진 군부 독재가 노태우 정부로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가 1990년대다. 10년 동안 이토록 굵직한 정치적 변혁이 여러 번 일어난 적이 1990년대 말고 또 있었나 싶다. 노동운동은 소련 붕괴 전후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비합법 투쟁을 전면에 내걸었고, 군부 독재에 맞서 분신이라는 극한 투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민정부 수립 이후 투쟁 열기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IMF 구조조정과 김대중 정부 수립 이후 민주주의를 두고 벌어진 투쟁은 제도권에 안착 또는 갇혔다. 스무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고향집을 나오면서 시작된 나의 1990년대는 서른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고향 지역에서 교직을 맡으면서 끝났다. 내 생애에서 굴곡이 가장 심했던 때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의 이십 대가 그랬을 것 같다. &lt;복자에게&gt;의 이정희가 겪은 이십 대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혹독했다. 자살 방조 혐의를 받는 친구 규정의 유죄 입증에 자신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자 규정은 정희와 단절한다. 정희는 자책한다. 정희는 감옥에 있는 규정에게 편지를 쓰면서 화해를 시도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훗날 규정이 출소하고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 준욱을 양육한다.&nbsp; 정희와 규정 간의 이야기 대칭점에 이영초롱과 고복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영초롱은 제주도 옆 고고리섬의 보건소 의사로 일하는 고모(이정희)에게 맡겨져 그 섬에 있는 다랑초등학교로 1999년에 전학한다. 한 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봄날 청보리밭이 유명한 섬, ‘이삭’이라는 뜻의 제주어 ‘고고리’를 이름으로 받은 섬이다. 복자는 낯선 곳에 고립된 이영초롱에게 처음 말을 건넨 또래 친구다. 복자는 기르는 개에게 눈썹을 그려주면서 특별한 존재로 소중하게 여긴다. 장래 희망이 과학자로서, 과학부 활동을 하고 엄정한 개념을 익히기 위해 라디오를 들으면서 표준어를 열심히 학습한다. 둘만 알기로 했던 비밀을 영초롱이 발설하자 복자도 맞서서 비밀을 폭로하면서 거리가 멀어졌다. 영초롱이 이선 고모네 집에 배관공이 자주 온다는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복자는 영초롱의 고모에게 영초롱이 고모의 편지를 부치지 않고 몰래 읽었다고 고자질한 것이다. 복자는 영초롱과 단절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나 영초롱이 성산지원에 판사로 부임하고 복자가 영광의료원을 상대로 산업재해 소송을 벌이는 중에 둘은 오랜만에 만난다.&nbsp; “생선은 구우면 고소해지지만 조리면 맛이 화려해진다.”라는 말은 &lt;복자에게&gt;에서 두세 번 나온다. 생선조림의 맛깔스러움(미각)을 화려함(시각)으로 묘사한 것을 우리네 삶으로 가져오면 ‘다채로움’이 더 적절하다. 아름답고 빛나기도 하지만 암울할 정도로 가혹하고 쓰디쓰고 환멸스럽기까지 하는 것이 인간 삶의 모습이니까. 정희와 규정, 그리고 이선 고모처럼 영초롱과 복자는 늘 현재, 지금을 요망지게(야무지게) 사는 사람이다. 이영초롱은 청소년 시절에 성희롱하는 성인 남성을 마주 보고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당찼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친절하고 다정하지 못한 판사로서 법정에서 피고인을 향해 두 차례 ‘엿 까세요’란 욕설을 해서 징계를 받았다. 엄하기보다는 거친 언사로 갑질하는 판사로 낙인찍혔다. 복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영광의료원 간호사들이 겪은 유산과 기형아 출산 원인이 안전장치 없이 약을 빻는 파우더링 작업에 있으니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을 이끌고 있다. 퇴원한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약 처방 기록을 확인해서 승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고오세는 영초롱이 중학생이 된 후 제주를 떠나 다시 서울로 갈 때 서울 집 주소를 유일하게 물어본 다랑초등학교 또래 아이다. 영초롱이 서울로 전학한 후 영초롱이 틀리게 알려준 주소로 여러 차례 편지를 했고, 답장이 없자 직접 서울까지 찾아온 요망진 아이다. 자기가 쓴 편지를 읽은 남자와 줄곧 알고 지낸다. 그 남자가 연 카페 ‘여름 안에서’를 영초롱은 퇴직 후에 친동생과 함께 찾는다. 그가 건넨 땅콩 한 줌을 받고 영초롱은 오세의 편지를 쥔 느낌을 받았다는데,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엘리자벳은 복자가 소송 중인 영광의료원의 원장 부인이다. 토호(土豪)인 그는 대화 중에 ‘대리출석’의 줄임말인 ‘대출’을 못 알아들어 자존심이 상하자 ‘표독스러운’ 얼굴빛을 보인다. 영초롱에게 과일 깎기를 요청하며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려 든다. 영초롱의 멘토로서, 삼국지와 볼테르의 &lt;관용론&gt; 독서를 권한 고은수 판사는 여러 사람을 수용하는 넉넉한 인품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영초롱의 아빠, 이선 고모, 영초롱의 전 연인 윤호 등 잠깐씩 나오는 여러 인물을 포함해서, &lt;복자에게&gt;가 보여주는 여러 사람의 삶은 무와 감자를 함께 넣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조린 생선 요리 맛처럼 다채롭다.&nbsp; &lt;복자에게&gt;에서 편지는 여럿이다. 정희가 규정에게 보내는 편지, 고오세가 이영초롱에게 쓴 편지, 이영초롱이 고복자에게 쓴 편지 등이다. 편지는 쌍방 소통을 희망하는 일방적인 글쓰기다. 상대를 염두에 두고 나를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이다. 편지는 소통의 물길을 내는 방식이지만 자기중심적 비대면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는 부담을 짊어질 수 있다. 그만큼 편지를 쓰는 사람은 쓰는 행위를 통해 무거움을 덜어낼 수도 있다. 특히 과거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 글쓰기다. 이영초롱의 과거처럼 나의 과거도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법한 과거’일까. 이영초롱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유년 시절, 사법 시험 합격 소식을 직접 전하려고 오랜만에 들른 본가에서 마주한 아빠의 모습 등은 그에게 잊고 지내고 싶었을 옛일 중의 하나이다. &lt;복자에게&gt;는 현재보다 과거를 더 많이 보여준다. 아니, 과거를 더 묵직하게 느끼게 한다. 내게 그런 과거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덜어낼 수 있을까. 영초롱이 법복을 벗은 이유는 영광의료원 간호사 소송과도 관련이 있지만, 법원 내부에서 작성한 판사 성향 분석표에 ‘안전함’이란 평판에도 있다. 요주의 인사도 아니고 윗선에 잘 보인 화이트리스트도 아닌, 들러리 리스트에 자기가 있다는 데 ‘큰 상처’를 입었고, 성산법원에서 보낸 시간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랬는지 나는 모르겠다. &nbsp; 농담을 닮은 삶은 어떠한지, 어떻게 사람을 견디는 삶을 살 수 있는지, 한 줌의 땅콩과 오세의 편지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안전함이란 평판이 영초롱을 왜 무너지게 했는지 궁금하다. 고오세가 이영초롱에 붙인 별명인 ‘앙골아주’는 뭘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서 ‘안 가르쳐줘’란 뜻의 제주말이란다. &lt;복자에게&gt;는 이영초롱처럼 나의 물음에 대해 앙골아주라 한다. 알고 이해하는 건 순전히 내가 할 일이다. 생선조림을 여러 번 만들면서 다채로운 맛을 맛보다 보면 알게 될까 싶다. 더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 이렇게 독후감을 마무리하려는데 라디오 FM 방송에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가 나온다. 종잡을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일어난다. 이 세상의 모든 복자, 그리고 복자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채롭게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지금, 현재를 잘 견디면서 영혼을 탄탄하게 다지며 잘 살라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77/7/cover150/89546744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770777</link></image></item><item><author>전주</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람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의 ‘고달픔’에 대하여 - [노 피플 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435590</link><pubDate>Thu, 06 Aug 2026 1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7323149/174355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607&TPaperId=174355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48/73/coveroff/k5120326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607&TPaperId=174355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 피플 존</a><br/>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br/></td></tr></table><br/>&nbsp;“각자 맡은 일에 집중하시게요. 의사인 저는 치료를, 간호사는 체크를, 보호자님은 식사를요.” 혈액암 말기로 입원 중인 장인어른 주간 간병을 10여 일째 맡고 있었던 날 오전, 나는 회진하던 의사에게, 아버님이 식사를 안 하시려고 하니 선생님께서 아버님께 식사를 잘하셔야 한다는 말씀 한마디 해주시라고 부탁했더니, 의사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했던 말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서운함과 무안당한 데 따른 수치심과 분노를 나는 온종일 삭혀야 했다. 정이현의 소설집 &lt;&lt;노 피플 존&gt;&gt;에 실린 &lt;선의 감정&gt;을 읽으면서 떠오른 기억이었다. 종합병원 내과 전문의인 ‘나’가 오진과 환자 보호자의 의료 사고 항의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마음 전개를 따라 가면서 나는 병원과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을 되짚었다. 예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고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던 일이 불거져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곤혹스럽게 했던 기억들이었다.&nbsp; 정이현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현실과 현재의 삶을 문자로 그려낸 상상의 세계를 보았다. 그의 소설은 막연하지 않다. 내가 어디에선가 겪었을 법한 일이거나 앞으로 단 한 번도 겪지 못할 법한 상황과 일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인 것처럼 보여준다. &lt;빛의 한가운데&gt;에서 ‘나’는 아들이 성범죄에 연루된 상황에 있다. 그 대상은 현재 자신과 가깝게 지내는 아는 동생 미령으로, 젊은 시절에 광고모델로 활동하던 때 얼굴을 아들이 딥페이크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는 부모, 그것도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며 심란할지 짐작이 간다. 그 마음이 소설을 통해 증폭된다. &lt;이모에 관하여&gt;는 직장인 여성의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 그리고 재택 돌보미의 삶 등을 담은 이야기다. 나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결혼한 조카들의 실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lt;사는 사람&gt;을 읽으면서 임장 투어라는 생소한 삶을 알게 되었다. 고급 아파트를 구매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빈곤층 청년이 아파트를 구하러 다니는 척 하면서 호기심과 만족감, 허세를 충족하려는 모습성과 학원 수강생에게 문제를 유출하면서 적당히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나’의 삶은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lt;단 하나의 아이&gt;에서 화자인 ‘한나’는 일대일 개인 돌봄을 하는 놀이 가정교사, 즉 개인 플레이 튜터다. 포괄적인 돌봄이 아닌, 함께 있기, 숙제 봐주기, 학원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기와 같은 구체적인 일감만 부여하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수요자들은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치고 필요한 돌봄 서비스만 돈으로 구매한다. 돌봄 대상자인 하유의 습관적인 거짓말과 가상의 친구와 주고받는 메시지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nbsp; &lt;실패담 크루&gt;에서 모임의 주축이자 ‘나’를 초대한 성지연은 말로만 꼰대를 거부하는 거대한 꼰대 그 자체다. 자기만의 견고한 철갑성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삶을 즐기고, 다른 이를 지배한다. 시답잖은 실패담을 나누면서 자기 과시와 인맥을 관리하는 가진 자들의 모임 참여자들은 가진 자에 의해 실패를 맛본 진짜 실패담은 차단한다. 돈, 권력, 명예, 능력 등이 많은 이들은 그것들을 자랑하지 않는 듯 말하고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강렬하게 드러낸다. 선을 긋지 않는다지만 일상에서 자기와 다른 수준인 사람과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을 긋는다. 그들에게 사람은 모두 사람이 아니다. &lt;우리가 떠난 해변에&gt;는 방송 작가인 설과 그의 동성 친구 주영, 그리고 남녀가 3일 동안 고립된 공간에서 이름만 알고 지내는 TV 프로그램에서 만나 결혼한 정훈과 혜정의 삶이 나온다. 사람끼리 만났는데, 이별의 끝은 서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 보인다. 내 삶에서 열렬히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 중에 끝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자문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lt;가속 궤도&gt;는 교제 폭력이 더욱 흉포해지는 요즘의 세태에서 사랑이 아닌 집착(스토킹, 성희롱)이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나에 대해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lt;언니&gt;는 조교인 인회 언니에게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 번역을 시키고 결과물은 자신과 부인이 독차지하는 민교수의 횡포를 고발한다. ‘기어코 하는 사람’인 성실한 인회 언니가 복학 거부, 논문 학기 중에 지도교수 교체 등의 대우를 받으면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오래된 현재의 일이다.  소설집 제목 &lt;&lt;노 피플 존&gt;&gt;은 이 책에 실린 9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구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사람이 없는 구역’일까. 아이의 출입을 불허하는 구역이란 뜻의 ‘노 키즈 존’의 키즈 대신에 피플을 넣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lt;실패담 크루&gt;의 모임, &lt;우리가 떠난 해변에&gt;의 러브 애드벌룬 프로그램, &lt;가속 궤도&gt; 안에 있는 소진의 내면, &lt;이모에 관하여&gt;에서 재연과 재택 돌보미 간의 관계, &lt;사는 사람&gt;에서 임장 투어하는 삶, &lt;언니&gt;에서 민교수의 행태, &lt;선의 감정&gt;의 병원, &lt;빛의 한가운데&gt;에서 아들의 성범죄를 겪는 부모의 삶, &lt;단 하나의 아이&gt;의 유아동 보육 플랫폼 케이 파라디소 등과 같은 것들에서는 사람은 있어도 사람이 없는 역설의 장이다.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거나 거부되는 장은 보편적 권리와 가치를 지니는 사람이 없는 구역이다. 그래서 &lt;&lt;노 피플 존&gt;&gt;에 등장하는 여럿의‘나’와 은서 엄마인 재연이 건네는 정서는 ‘고달픔’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애초에 삶은 고통이라 했다. 그렇다 해도 ‘피플 존’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간간이 있다. 그곳에는 보통의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고달픔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이 세상에 노 피플 존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nbsp; 소설 읽기의 효능감을 생각한다. 소설은 낯선 세계, 익숙하지 않은 세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일로 이끈다. 소설 읽기의 매력은 호기심을 불러오고 충족하고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란 데 있겠다. 이에 더하면 소설은 내가 이미 겪었거나 진행 중인 일의 일부나 전부가 있는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더 크게 하고 밀접하게 만든다. &lt;선의 감정&gt;, &lt;빛의 한가운데&gt;가 그렇다. &lt;&lt;노 피플 존&gt;&gt;에 실린 소설 9편 중에서 &lt;이모에 관하여&gt;를 빼고 나머지 8편 모두 ‘나’가 화자로 등장하니 그 기능은 더욱 컸다. 현재의 내 삶이 어떤 분위기인지에 따라 소설이 다가오는 정도가 다를 것 같다. &lt;실패담 크루&gt;의 모임 주최자인 성지연은 &lt;&lt;노 피플 존&gt;&gt;에 실린 소설 속 여러 실패담을 하찮게 여길 것 같다. 고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지연이 주변호사의 대형 로펌 정식 채용 실패담을 가로막은 이유는 실패가 아닌 단지 결핍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핍을 경험한 적 없는 성지연에게 결핍은 혐오의 대상이지 공감의 영역은 아니다. 나는 다행히 성지연이 아니다. 고달픈 삶에 충분히 공감할 만큼 내 삶은 고달프다. 그래도 나는 &lt;&lt;노 피플 존&gt;&gt; 안에 있는 고달픈 이들처럼 살아가는 현실의 여러 사람과 토닥토닥 위로와 격려를 나누면서 살아가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48/73/cover150/k5120326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48730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