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캐리어 논캐리어라는 독특한 구조때문에 일본 추리소설 중 형사물은 흔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재가 되곤한다. 경부보로 시작해서 29세에 경시로 승진하는 캐리어와 달리 논캐리어는 아무리 빨리 승진해도 경시가 되려면 45세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캐리어 논캐리어 간의 미묘한 감정싸움,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수사본부가 세워지는 관할경찰서의 형사들은 수사의 주변부에 머물게 되면서 경시청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식의 수사방식, 합동수사에 따른 부서간 미묘한 경쟁과 알력 등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소설의 주된 소재가 되는데 이런 특징때문에 형사들의 심리를 자세하게 그린 추리소설은 항상 재미있기 마련이다. 

 
<소문>은 거기에 조금 독특한 형사콤비를 탄생시켰다. 딸을 키우는 홀아비 형사와 여자 경부보. 이 두명은 의외로 묘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며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동안으로 보이는 외모 뒤에 예리한 감을 감추고 있는 여형사와 배테랑 형사의 추리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독자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형사들의 생활과 업무상 고민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형사물 특유의 소소한 즐거움 역시 잊지 않고 있다.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얘기해보자면 처음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방송에 보도된후 사건 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며 범인은 이사람이다, 싶었다. 살짝 살짝 범인을 감추기위한 연막은 있으나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마지막 한장에 이르러서 나타난 또다른 범인은 정말 의외였다. 의외의 범인과 반전은 항상 환영받기 마련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전에 범인에 대해 의심을 품을만한 행동을 미리 보여주었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복수라는 이유만으로는 뭔가 납득이 되지않기 때문일까...

 
<소문>은 제법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공감이 가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추리소설이다. 일본 형사물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름밤을 함께할만한 즐거운 선택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게키단 히토리 지음, 서혜영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이렇게 답답한 사람들이 있을까. 여기 여섯명의 소심한 인생이 있다. 자유인이 되고 싶다지만 실은 회사일에서 도망쳐서 홈리스가 되고 싶을뿐인 가장, 아이돌의 팬노릇을 너무 착실하게 하다 못해 배가 고파 쓰레기를 뒤져가며 살아야하는 남자,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도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여자, 도박빚으로 다중채무자가 되어 죽으려고 하지만 차마 죽지도 못하고 전화사기를 계획하는 남자, 3년전 단 한번 만났던 엉터리 개그맨을 찾아 도쿄로 상경한 여자, 스트립 쇼걸에게 반해 스트립 쇼장의 사회자를 3년째 하고 있는 삼류 개그맨까지 소심함이 지나쳐서 답답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외톨이들이다.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의 인상적인 부분은 각각의 주인공들이 이해가 안될듯한데도 사실은 그들에게 공감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잃어버린 자신을 찾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섬세한 그들의 심성이 이해되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된다. 우리 역시 사회와 가족구성원으로써의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바보같은 일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이나 배경이 싫지만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노력하고자 하며 살아간다. 현실이 녹록치 않아 힘들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는 동안 오히려 그들을 안아주고 싶어졌다. 괜찮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작가는 이 여섯명의 삶을 한조각의 무거움 없이 표현해 낸다. 단순히 재미있게만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가벼움의 미덕과 눈물 뒤에 오는 웃음의 카타르시스를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삶에 작은 인연으로 교차되며 조그만 희망의 불씨를 던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읽는이의 마음도 그 불씨로 인해 훈훈해진다. 아무리 외톨이일지라도 다른 이의 삶에 손길을 내밀 수 있다, 돌아보면 나를 위하는 누군가가 있다... 이 얼마나 따뜻한 희망인가.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는 게키단 히토리의 첫 소설이다. 인간의 심리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데뷔작 그 이상이라는 평에 나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분량은 짧지만 읽은 후의 느낌은 짧은 분량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소설이었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이 없다면 결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면 흡사 짝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두근거리게 마련이다. 게키단 히토리의 다음 소설이 너무나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반전과는 달리 서술 트릭은 질색하거나 감탄하거나 둘중의 하나가 되기 십상이다. 내경우를 말하자면 굳이 필요없는, '반전을 위한 반전'을 만들기 위한 서술트릭에는 질색했고, 서술트릭으로 인해 사건이 한층 돋보이는 소설은 '속여줘서 즐겁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자의 대표적인 소설이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였기에 <행방불명자> 역시 또 어떻게 속을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행방불명자>는 두가지 사건이 교차되어 펼쳐진다. 일가족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여성 르포라이터와 부녀자 폭행 사건을 우연히 목격한 뒤 범인을 뒤쫓는 새내기 추리소설 작가. 지난 사건을 조사하는 여성 르포라이터라는 설정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낙원>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스토커처럼 누군가의 뒤를 캐며 점점 광기에 싸여가는 추리소설 작가는 딱 <도착의 론도>가 아닌가. <낙원>과 <도착의 론도>가 만났으니 이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박(?)이 되어야하겠지만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힘든 법이다. 일가족 실종의 원인에 깊이 빠져들라치면, 광기어린 추리소설 작가가 방해한다. 사실 추리소설 작가의 스토커짓이 흥미롭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끊기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서로 만나지 않을듯이 평행하던 두가지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범인도 피해자도 모두 밝혀지지만 개운치않은 느낌이 남는다. 서술트릭과 끝없이 반복되는 교차시점을 쓰지않고 시간 순서대로 촘촘하게 잘 짜인 소설로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들은 사실 작가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가 파놓은 함정에 보기좋게 걸려들었고 덕분에 한바탕 두뇌회전을 시켜가며 읽었으니 말이다. 사실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제대로 뒷통수를 한방 날려주는 센스를 가진 작가를 추리소설 팬으로써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멋진 솜씨로 통쾌하게 속여주길 기다리는 독자로써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역시 앞으로의 출간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슴남자 - The fantastic Deer-Man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2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날 갑자기 사슴이 말을 걸어오고 그도 모자라 얼굴마저 사슴처럼 변해간다면?! <사슴 남자>는 단 한줄의 소개만으로도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다. 

여기 사슴이 되어버린 사슴 남자가 있다. 사슴으로 변해가는 것도 불쌍한데 사슴이 말을 건다고 어디에 호소도 못하고, 본인만 아니라고 부정하는 신경쇠약에다가 가르치는 반 여학생에게 찍혀서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교사다. 이런 남자에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한다고, 이 일은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사슴은 다그친다. 이런 심각한 얘기들을 하면서도 이 남자 면전에다 아무렇지않게 X을 싸면서 말이다.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사슴 남자>는 능청스럽게 독자를 웃긴다. 일본의 신화와 역사를 풀어놓을 때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진지하지만, 맛이 없다는 말도 못한채 후지와라 선생이 주는 막과자를 둘이 나란히 앉아 오도독 거리면서 먹고 있는 주인공을 상상해보면 또 슬그머니 웃음이 터져나온다. 특히 사슴의 '사슴 증상에 대한 신경쇠약 진단'에 이르면 작가에게 감쪽같이 속았음(?)을 알고 헛웃음마저 나온다.

이런 <사슴 남자>의 유쾌함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장르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이 소설은 137회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반전과 복선이 곳곳에 숨어 있는 꼼꼼한 플롯이 인상적이다 . 그래서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거나 재기넘치는 상상력이 있는 소설을 원하는 독자, 허술한 플롯때문에 밋밋하기만 한 소설을 싫어하는 독자들까지 모두 만족시킬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타마키 히로시가 주인공을 맡아 드라마도 제작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어울리기도 힘든 캐스팅이다.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어수룩한 신경쇠약 캐릭터를 연기하는 타마키 히로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만에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상쾌하고 재기발랄한 소설을 만나서 즐거웠다. 마키메 마나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끄럽지만 <하악하악> 이전에는 이외수 작가님의 책을 한번도 접해본적이 없다. <괴물> 즈음인가 몇년전부터 심심치않게 들려오던 이름이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진적도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무릎팍 도사 이외수 편을 보고 이외수 작가님의 책을 그간 한권도 읽지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난과 싸우며 젊은날을 치열하게 사신 분인데 그 여유롭고 넉넉한 유머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작가' '어르신' 이라는 거리감 보다는 푸근한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친근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작품에는 어느정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이라지만  <하악하악>은 작가 이외수보다는 인간 이외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유독 많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농담을 곁들여가며 조언이나 비판도 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풀어놓는 이외수 작가님의 모습이 슬며시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캐안습, 즐 등의 인터넷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젊은 세대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야동 얘기까지... 이정도로 솔직하게 작품속에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하악하악>은 넉넉한 여백을 가진 책이지만 인터넷 악플부터 중국 짝퉁, 비평가, 정치가들에 대해서까지 온갖 생각의 단상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책의 여백만을 본다면 한권의 책값이 무겁게 느껴질테지만 한장한장에 생각을 담아 본다면 한권의 책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책 안에 수록된 한국의 민물고기 65종은 때로는 글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섬세한 그림 솜씨에 감탄하면서 물고기의 이름을 확인하느라 마지막장을 몇번이나 오가며 책장을 넘겼다. 거기에 단순한 책냄새가 아닌 향기로움까지 어우러져 글, 그림, 향기가 멋진 삼박자를 이룬다. 

사는것도 하악하악 버거운데 무거운 책으로 골치 아플 여력도 없는 분들,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가볍기만 해서 책장을 덮어도 무엇 하나 남는게 없는 책은 싫으신 분들께 <하악하악>을 권한다. 스무살 젊은이가 읽어도, 이외수 작가님처럼 나이를 지긋하게 드시고 인생을 논할 위치가 되신 분들도 와닿는 글과 생각이 가득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