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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단편집이라 순서에 대한 의무감이 없어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중 눈에 띄는 제목들이 보이는 전단편집3 - 기괴환상을 먼저 읽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기괴하고 어두운 이야기에서 남다른 면모를 보인다는 소문들, 그리고 80년전의 기괴함은 어떤 것일지에 대한 호기심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먼저 그 소감부터 밝히자면 기괴함, 그로테스크함은 80년전임에도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고, 약간의 옛스러운 느낌마저 80여년전에 써진 것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의아한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의 인상깊은 단편 몇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소제목에 걸맞는 기괴한 이야기로는 '고구마벌레', '벌레', '인간의자'가 단연코 압도적이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사지가 잘려나가고 인간의 모습은 단지 두 눈알만 남아버린, 거대한 고구마 벌레가 되어버린 한 남자, 그리고 밖으로는 둘도없는 열녀로 보이는 그의 부인... 그러나 말과 행동을 못하고 인간으로의 마지막 자존감마저 위협받고 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욕정의 대상으로 대하는 자신에 대해 몸서리치는 부인의 관계. 거대한 고구마 벌레가 되어버린 남자를 계속 상상하게 되는 머리속이 심난해서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자꾸만 뒷얘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읽게 되는 묘한 단편이다.
'벌레'는 이 무슨 미친 소리 같으냐만은 사랑해서 죽여버릴 수 밖에 없다는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단편이다. 극단의 여배우를 짝사랑하게 된 한남자가 스토커처럼 그녀를 따라다니고, 그녀와 다른 남자의 정사를 지켜보면서 점차 묘한 광기로 변해가더니 급기야... 그런데 충격적인 부분은 사랑해서 죽였다는 그 죽임보다 죽음 그 이후이다.
'인간의자'는 가벼운 분위기로 시작해 점차 그 음산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의자를 만드는 장인의 편지를 받은 한 여작가. 그녀가 좋아하던 의자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비밀은?!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사실 이 반전에 에도가와 란포 소설의 장난스러움, 기괴한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묘한 유쾌함이 숨어있다고 할 것이다. '붉은방'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1인 2역' '방공호'에서도 이런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데 '붉은방'은 한남자의 살인 고백과 그 뒤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묘한 불안감이 일품이고 특히 '방공호'의 반전은 남자입장에서는 그로테스크겠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헤프닝으로 느껴지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ㅋㅋ '방공호'식의 소재가 이미 흔하다곤 하지만 역시 언제읽어도 재미있게 읽힘은 분명한 소재인듯하다.
환상에 알맞은 단편으로는 '손가락'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거울 지옥' '메라 박사'가 떠오르는데 그중 '거울 지옥'의 광기에 미쳐가는 캐릭터는 에도가와 란포의 특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메라 박사' 역시 흥미롭게 읽은 단편인데 작가의 후기 중 서양소설을 참고했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전 <토털호러>를 읽다가 '거미'라는 단편을 본 순간 에도가와 란포가 얘기한 소설이 이거구나 하고 '메라 박사'가 떠올랐다. '메라 박사'와 '거미' 모두 마주보고 있는 두개의 건물 중 한 건물에서 일어나는 입주자들의 연쇄자살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둘다 결말을 알 것 같으면서도 호기심에 뒷장을 넘기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두 단편을 함께 읽는다면 서양과 일본의 색다른 추리세계를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도가와 란포가 동시대 작가가 아님을 너무나 안타깝게 하는 단편 두개가 있는데 바로 '악령'과 '공기사나이'이다. 특히 '악령'은 호러, 미스터리, 기괴한 캐릭터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긴장감까지 장르소설의 재미가 총망라된 소설인데 아쉽게도 연재중단으로 단편길이에서 중단돼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말았다ㅜㅜ '공기사나이'는 두명의 추리광 젊은이가 벌이는 헤프닝들이 흥미롭게 이어져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이 역시 미완성되어 아쉬움을 더한다. 이런 미완성작의 아쉬움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무수한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달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출간되는 전단편집2가 그 목마름을 가장 먼저 달래줄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추리소설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은 에도가와 란포가 이제 먼 이름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은 그 의미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