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2개 학교 - 인생의 단계마다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홍정길.박남숙 지음 / 북클라우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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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러 길이 있다. 그 길은 어떤 길이든 선택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 책임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칠수도 혹은 일부분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의 무게는 분명 본인의 몫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생의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홍정길 목사의 의지가 담긴 책이다.

인생을 12개의 학교로 분류하여 각각의 학교의 필요성과 목적과 삶의 방법들에 대에 쉽게 풀어 나가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게 도움을 준다.

특별히 청년기의 자아정체감 확립은 혼돈과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청년 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이 있다.

. "청년의 시기가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이다."

물론 익히 알고들 있을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성경에 "맛보아 알라"라는 말이 나온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아무리 귀한 음식이라도 그것을 맛보아 알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그 진미를 모르기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년의 때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기이며 그 시기를 잘 보내야지만 바른 자아정체성과 가치관이 확립 된다. 일방적인 지시와 강요로 보내온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무언가 자신이 결정해서 선택해야 하는 청년기를 맞는 이들에게 "정체감 유예"는 분명 찾아 오게 된다. 이 위기의 시기를 잘 견디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게 된다. 그 시행착오가 그들의 인생을 탄탄하게 만들어 줄것이고 이 시기가 그들의 황금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그들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학교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으나 왕의 명령보다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였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정확한 가치관을 세우고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청년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청년의 때는 분명 기다림과 인내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조급함과 성급함은 오히려 그의 인생에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기다려 주자. 그리고 견뎌주자. 우리가 기다려 주는 만큼 더 성장할 것이고 견뎌주는 만큼 더 깊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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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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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참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의 세계는 독특한 그 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각각의

방법들에 대해 적은 글로 다양한 요리들을 선 보인다.

 

특별히 눈에 들어 온 요리는 정말 별것 아닌 "소고기, 양파, 피망 볶음"이라는 요리이다.

마치 심야식당에 늘 찾아와 프랑크 소세지를 시켜 먹는 사람처럼 나에겐 정말 특별한 요리인데 

놀랐던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 먹었던 방식과 정말 똑 같다는 것이다. 하물며 마지막에 맥주를

가볍게 끼얹는것 까지..

보는 내내 먹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결국 마트로 달려가 재료를 준비하고 열심히 만들어서

정말 오랫만에 맛있는 주말 점심을 먹기도 했다. 소고기의 달콤함과 피망의 아삭함과 숙주의 부드러움과 양파의 매콤달콤함이 어울어져서 나오는 맛에 맥주로 잡내를 제거한 소박하지만 행복이 담겨 있는 요리, 20대의 유학시절 너무 배가 고파서 만들어 먹었던 첫번째 요리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만들어준 추억이 담긴 "소고기, 양파, 피망 볶음"

 

이책을 통해 그 때의 아련한 추억과 군침 돌게하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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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처를 축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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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축복 어떻게 보면 서로 이질적이고 연합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상처를 축복을 향한 시작점이라고 볼 수도 있고 상처 그 자체를 이미 축복과는

거리가 먼 아픔으로 기억 할 수도 있으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것의 결론으로 "완전한 사랑"을 제시한다.

완전한 사랑, 참 좋은 말이다. 참 좋은 이상이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하는것이 완전한 사랑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책을 읽어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이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이곳이 행복이고 삶이다.

행복은 미래에 존재하는것도 과거에 존재했던 것도 아닌 지금 이곳이 바로 행복이다.

그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에 연연해 하면서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행복을 무참히 밟아 버리거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러면 무엇 할 것인가. 지금 난 행복하지 않은데..

 

책을 읽는 내내 이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과연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한 사랑" 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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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문학 트렌드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김시천 기획.대담, 박석준 외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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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기만 할것 같은 인문학을 쉽게 풀어 써내려가며 여러가지 학문과의 접목을 시도한 이 책은

인문학의 트랜드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 같은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여러가지 학문적 토론과 대화들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의 스펙트럼을 확인 할 수 있었고

특별히 음식 인문학이라는 테마는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 했다.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들이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함을 알려준다.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음식은 삶 그 자체였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의 음식은 삶의 지표였고 먹는것이 풍족해진

지금의 음식은 건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음식의 의미들은 각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폐기율"이라는 단어를 통해 동서양의 음식을 대하는 모습의 차이를 보여 주기도 한다. 소를

예를 들자면 동양에서는 소의 고기 부위 외에 곱창과 막창 같은 내장도 요리해서 먹고, 뼈는 고아 먹고 심지어 소의 귀지 마저도 약재로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머리와 다리,꼬리등을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나라와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각 문화권의 특성에 따라 혐오 음식이 구한 음식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버려지는 음식이 고가의 음식으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포괄적의미에서 종교도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렇듯 음식은 각 나라와 문화권의 상황에 따라 음식으로 혹은 버려지는 폐기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을 어떤 자세로 먹고 만드냐에 달려 있는것 같다. 음식 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음식은 사회상이며 문화상이며 현실적 세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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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의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존 파이퍼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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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교회로서의 위치를 잃어 버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하며

무너져버린 강단의 초라함을 어떻게든 세워 보려 애쓰는 많은 목회자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 책을 대한다.

말씀이 살아 있지 않은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말씀이 선포 되어야 할 강단에서 신변잡기나 심리와 상담 위주의 사람들의 감성만을 자극하는 연설들이 반복되는 한 교회는 자정의 의지마저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파이퍼는 칼뱅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마치 내게 빛이 확 비치는 것처럼...이렇게 참된 경건의 빛과 지식을 꽤 받고 나니".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하고 나니 그의 삶은 마치 어둠 가운데 있던 캄캄함이 갑자기 비쳐드는 빛에 힘을 잃어 버리듯 환해 진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다. 말씀은 분명 "빛"으로 오셨다. 그가 빛으로 오셨기에 세상의 어둠은 그를 감당할 수 없고 쫒겨 갈 수 밖에 없다.

이전 까지만 해도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이라는 빛과 영광의 아름다움이 죽어 있었다면 그 빛을 통하여 새 생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죽음에서 살아나 눈을 떴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고후4:4)라고 표현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령의 내적조명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에는 자체의 영광이 담겨 있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모든 자취이며 그 영광이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믿음의 길이 견고해 지며 흔들림 없는 바른 믿음이 나아오게 된다.

 

현실의 암울함과 어둠에 한탄만 할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두껍게 쳐져 있는 커튼과 장막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게 빛이 확 비치는.."그 찬란한 영광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에게 두껍게 쳐져있는 많은 장막과 어두움에 대해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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