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봄
K보리 지음 / 두란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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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린 그 남은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의

뜻에 맞게 살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혹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가혹한 현실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그런 가혹한

현실 앞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서서히 변화한다. 점점 자기 자신을 내려 놓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인식하며 그분 앞에 겸손해 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각도 변한다.

절망적이고 암울하기만 상황 앞에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글을

읽는 내내 감정이 이입된다. 마치 내가 그인냥 화도 내다가 눈물도 흘리다가 가슴이 뛰기도 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보리씨,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장기려 선생을 기억하게 할 만치 정직하고 성실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이었던 레지던트 윤선생과의 인사 중 하나이다. 이 말 속에 담긴 의미가 가슴을 울린다. 이제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강하라는 윤선생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가슴 절절히 환자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런 의사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면서 장기려 선생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자는 장기려 선생을 떠오르게 하는 윤선생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았을 수도 있다. 아니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환자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강한 집념과 책임감 마저 보여주는 윤선생의 모습을 통해 삶에 대한 애착과 의미가 생겼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글귀가 나를 붙든다.

"내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죽음을 맞닥드려본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얼마나 절박한 말인지 모른다. 언제나 반복되어지는 삶이 아닌 아주 특별한 귀가이다. 죽음을 맞이해 본 사람이 그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 할 수 있는 말. "내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 말을 한 분의 선교사님을 통해 들어 보았다. 이슬람권에서 선교하시는 그 분은 살해의 위협과 테러의 위협 앞에 늘 놓여 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귀국할 때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가 살아서 집에 돌아간다"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얼마나 절실했을지, 또한 얼마나 기대했을지가 여실히 전해진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집은 그런 곳이다. 쉼과 허용과 살아 있음이 증명되어지는 삶의 공간이다. 그 공간안에 살아 있음이 다시금 감사해진다.

 

마지막으로 그의 편지 중 한 구절을 적어 본다.

"제가 왜 슬퍼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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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산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김현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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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점점 들어 가면서 생긴 버릇들이 있다.

별일 아닌것에 화를 내거나 조급해 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정 반대로 뭔가

큰일 인것 같은데 태연하고 별로 요동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을 향해 무심해 진다는 말과 어느정도 일맥상통한

점이 있어 흥미가 생겼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해서 반드시 더 나아지지만은 않는다. 더 똑똑해 진다거나

더 예의가 생긴다거나 더 바른 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게 좋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 저자의 말대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강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물론 단점만 돋보이는건 아니다. 장점도 있지만

워낙에 단점들이 도드라지다 보니 그 장점들을 다 희석 시켜버린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로 부터 '꼰대'라는 소릴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점들이 세상을 힘들게

하거나 삶 자체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는것은 아니다. 다만 이미 우리안에 내재된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요리를 하다보면

어느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지 어느 과정은 다른 일과 같이 해도 되는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덜 신경써도 무방한 것들을

스스로 발견해 내는 시간의 연속인 것이다. 그 연속의 시간을 얼마나 현명하게

보내느냐에 우리가 젊은 이들에게 '꼰대'라는 소릴 듣느냐 '멋지다'라는 말을 듣느냐가 

결정될것 같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목표를 삼아야 하는 것은 삶을 깨우치거나 현명해 지려는 것보다 '도무지 미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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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한국사 -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고성윤 지음 / 나는나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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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건 어떤 상황이건 역사는 이어지고 존재하고 살아있다.

그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힘이고 용기다.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 마저도 망가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수치스럽더라도 우리의 역사고 부끄럽더라도

우리가 한 일이기에 역사의 흐름은 어느 누구도 막을수도 막아서도 안된다. 그 역사의 흐름 속

한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뒤돌아 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생각해 본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훗날 정조)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지혜와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추진력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후기 마지막 개혁군주였던 정조, 왕세손에 오르는 순간부터

죽음의 위기에 항상 직면해 있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 왕이 되어서도 별반 달라짐 없이 여전히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했던 왕. 그가 즉위 후 처음 꺼낸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당시 노론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던 시절에 본인이 그들과 대척점에 있다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여 노론 일당의 권력 독점을 거부하고 강력한 탕평 정책을 펴겠다는

일성을 날리는 용기있는 왕. 규장각을 강화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고,  상업개혁의 일환인 신해통공을 발행하여 금난전권이라는 폐해에 대항하였던 지혜로운 왕.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온 것은 '상언'과 '격쟁'이라는 제도였다. 백성들과의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방법으로 국왕의 행차시에 글로 적어서 아뢰는 '상언'과 꽹과리를 쳐서 임금의 발길을 잡은 후 대화를 하는 '격쟁'을 통해 수천차례나 백성과의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어진 왕 정조. 특별히 '격쟁'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왕과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고 이를 통해 많은 부패한 관리들과 잘못된 관행들이 수정되고 고쳐지기도 하였다.

소통이 없어 망가져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앞에 이미 몇백년전에 백성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했던 정조의 모습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귀감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듣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개혁하고 다듬는 행동이 수반되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한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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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높이는 일 공부 - 직장 상사는 가르쳐주지 않는 일의 기본
하마다 히데이코 지음, 정지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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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일 정말 잘하네요"일 것이다.

어느 누구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

그것이 직접적인 칭찬이든 좋은 인식이든 고과에 영향을 미치든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과도한 행동들을 보이기도 하고 의욕에 넘치기도 한다. 이 책은 직장 생활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한 아주 간단한 상식들을 적은 책이다. 

 

업무 중 많이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들 중 보고에 대한 글이 눈에 들어 온다.

저자는 최적의 타이밍에 간결하게 보고하라고 주문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 잘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데 말할 경우와 짧고 간결했으면 하는데 장황하게 늘어 놓을 때 참 난감하다. 어떤때는 중간에 중단시키고 내용을 정리한 후에 다시 이야기 하라고 말할때고 있고 야단을 칠 때도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가장 적절한 타임은 상대가 바라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게 어렵다. 그걸 파악하는게 쉽지 않다. 도데체 언제가 상대가 바라는 때라는 것인지 사실 모호하다. 그러기에 때와 장소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없다. 또한 보고의 방법으로 세가지 언칙을 제시한다. 결론부터와 전체 모습과 사실과 의견이라는 부분인데 보고를 받고 보고를 하는 입장에서 이 세가지의 원칙을 지킨다면 "일 잘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며 간결하게 상대방의 니드에 맞춰서 보고한다면 분명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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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으로의 초대 세계기독교고전 53
리차드 백스터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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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 봤을 소리 '회심'.

사전적으로 돌아서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그런데 이 단어가 주는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한번이라도 회심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단어는 생명과도

같을 것이다. 회심의 전제는 '죄'이다. 그리고 본질은 그 '죄'로 부터의 완벽한

돌아섬이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이며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이며 반복하지 않는 것이

회심이다.

 

이책은 하나님의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더 이상 살지 말라" 혹은 "지옥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씀 하신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거역 할 수 없다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버리든지 이 땅에서 쫒아 내던지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긍휼과 오래참음으로 기다려 주신다. 심지어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숨을 몰아 쉬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그 숨을 거두어 가시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수없이 많은 긍휼들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데 급급한데도 여전히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그 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양식을 탐욕스러운 자신의 목구멍과 배를 위하여 사용하는데 여전히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 화를 낼 법도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여전히 기다려 주신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어리석고 우매한 길임을 깨닫고 돌이켜 제대로 살게 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회심은 이러한 기다림과 긍휼함에서 출발한다. 안타까움과 불쌍히 여김을 통해 마음에

찔림과 감동을 얻게 되고 마음과 행동이 완벽히 그것에서 돌아서는 것 그것이 바로 회심이다. 이 회심의 순간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며 기뻐하시는 것이고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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