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기가 되는 사기 - 지혜가 꼬리를 무는 77가지 이야기 슬기로운 동양고전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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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적인 서명이 없이 태사공서 혹은 태사공기를 줄여서 태사공(太史公)이라 불렸던 책을

삼국시대부터 태사공서의 전문 명칭있고 역사서의통칭인 사기(史記)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기는 본가, 표, 서, 서가와 열전 다섯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역사상 제왕 등 정치의

중심인물들이 기술된 본기, 세가, 열전등을 통해 인물 중심의 새로운 역사서는 창립하였고

역사서 부분의 주요부분인 본기와 열전의 한 글자씩을 따서 기전체역사서라고 부른다.

예리한 통찰력과 객관적인 냉철함을 가진 사마천의 '사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파헤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며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탄위관지(嘆爲觀止).

오나라 왕자 계찰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소(招箾)의 춤을 보고 한말인 이 사자성어는

'더할 나위 없다', '감탄해 마지 않는다'의 의미를 가지며 관지의(觀止矣) 혹은 탄관지의

(嘆觀止矣)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에 어떤 연주가 더 남아 있더라도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즐겼으므로 더이상 들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초소의 연주를 극찬하는 계찰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경치나 예술작품, 예술적 표현이나 학문이나 기능이 완벽하거나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경우 사용하는 이 단어는 진심이 부족한 우리에게 진심을 보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물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여 여기에서 더할 것이 없음을 뜻하는

탄위관지라는 극찬을 들을 만한 누군가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법지불행 자우귀척'

법령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귀족과 왕의 친족들이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는 말이다. 무릇

규칙과 법규는 상하를 막론하고 지켜야 하는 것인데 솔선수범을 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더

잘 지키지 않으니 어찌 백성들이 지키겠느냐는 뜻으로 사용한다. 어찌보면 지금의 우리에게

적합한말이 아닌가 싶다. 기득권층에 있거나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만지는 이들이면 너나

할것 없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다. 마치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을 하듯이 그렇게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것에 이르기까지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기웃거리며 눈먼 돈을 주워 먹기

바쁘고 정해 놓은 규칙과 법규는 교묘하고 적절하게 빠져나가면 서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보고 배울게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역대 중국의 국가주석과 고위층들은 국제 정세와 관련하여 성어와 경구들을 즐겨 사용해왔다.

최근 사드(THAD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배치와 관련하여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던진

'항장무검 의재패공'(항장이 칼춤을 추는데 그 뜻은 패공에게 있다)이라는 말은 중국 정통

역사서이자 고전 중의 고전이라 손 꼽히는 사마천의 '사기' 중 '항우본기의 홍문연'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을 사용한 저의는 유방은 중국이고 항우는 미국인데 칼춤을 추는 자는

한국이라는 논리이다. 유방과 항우가 싸우는 것과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국이

미국 사드 배치를 승인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 해석했다. 칼춤을 추는 자가 유방을

죽이려고 하듯이 한국이 미국을 도와 중국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교묘한 것은

이 고사의 인용 배경에 깔린 고사의 결과를 보아야 한다. 천하를 쟁취한 자는 영웅 항우가

아닌 유방이었다는 점이다. 결과는 미국에 해당하는 항우가 중국에 해당하는 중국에게 졌고

칼춤을 추는 한국이 미국을 도와 사드를 배치하여도 결국에는 중국이 미국을 이기고 천하를

얻는 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렇듯 중국 외교나 국가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 고사성어는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과 직결되므로 그 진위를 정확히 파악하여야 그에 맞선

대처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성어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 문화의 현상이라기 보다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전체의

범위 내에서 중국인의 사유체제를 이해하는데필수적인 요소이다. 단순히 옛 현자들이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해야 하고, 그 속 뜻을 알아야 하며 역사적 배경

마저도 숙지해야만 바르게 파악하고 대처 할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기 보다는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 중심으로 기술되어 읽기가 편하고 수월하다. 미처 알지 못하던 역사의

단면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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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기가 되는 삼국지 - 지혜가 꼬리를 무는 77가지 이야기 슬기로운 동양고전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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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 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와 교훈으로 가득차 있으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 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 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제갈량은 무릇 학자라면 경전을 정밀히 탐구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탈피하여 대략(대략,큰 줄거리)을 살피는 독서법을 사용했다. 그는 무슨

책이든 책의 큰 줄거리, 즉 핵심을 파악하는데 힘쓰는 실용적 학문에 정통했다. 혼돈 그

자체였던 춘추전국시대 속에 글자 한자 한자를 탐구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난세를

종식시키길 갈망했던 그에게는 고리타분한 일이었다. 그는 학문 뿐 아니라 국가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이전의 방식과 관습에서 벗어나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할만 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가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된다.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 '삼국지'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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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소셜리즘 - 불평등·AI·기후변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브렛 킹.리처드 페티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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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소셜리즘(Technosocialism)은 기술을 뜻하는 테크노(Technology)와 사회주의를

뜻하는 소셜리즘(Sicialism)의 합성어다. 집단의 필요를 강조하는 소셜리즘, 그 요구를

훨씬 더 낮은 경재적 비용과 정치적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술력, 결국 새로운

기술이 비용을 절감시켜 집단의 노력을 줄이면서도 원하는 것 이샹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이론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간은 불과 30년 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은 충격적인 문장이나 분명한 사실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 2022년 기준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2011-

2020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했을때 1.09도 상승한 상태며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0ppm으로 20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주요

원인으로는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이며, 지구의 온도가 0.5도 추가 상승할

때마다 기상이변 현상의 빈도와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자카르타, 키리바시 등이 점점 바다로 가라앉고 있으며 해수면이

1m 상승시 바다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로 네덜란드, 베네치아, 몰디브 등이 있다.

매년 바다는 '인간에 의해 기록된 가장 뜨거운 해'를 경신 중이다. 뿐만아니라 평균 기온이

2도 높아지면 북극해는 얼음 없는 여름을 맞이 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 최대 탄소

흡수원인(모든 육지의 1/4의 탄소를 흡수) 아마존은 무분별한 벌채로 탄소 흡수량 보다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체인

온실가스(6대 온실가스 - 이산화탄소 CO2, 메탄 CH4, 아산화질소 N2O, 수소불화탄소

NFCs, 과불화탄소 PFCs, 육불화황 SF6)등이 대기에서 마치 비닐하우스의 비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이 때문에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기후

변화는 날씨를 좀 더 덥게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전세계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들며 모든 국가에서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역시

기후 변화에서 기인하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단순한 '기후변화'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국가에 미치는

'가후재난'이다.

저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인텔리전트 트윈'intelligent twin'이라는 도시

전역 인공지능 시스템을 사용하는 '선전(深圳)'을 예로 들며 스마트 정부를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5G 엣지 컴퓨팅을 이용해 교통단속, 교통혼잡해결, 통제와 지휘를 하고 있고

이미지 인식 장비(중국은 1초에 14억명의 얼굴을 스캔할수 있다고 함)를 이용해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통재, 앰블런스 출동, 화재나 다른 응급서비스 차량이 필요한지 자동으로

판단하여 지휘하는데 이는 현재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의 911 대응시간과 응급치료

서비스(EMS) 비용 효과 측면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실제로 선전에서는 경찰이 과속,

안전벨트 미착용, 후미등 미점등 등으로 차를 세우지 않고 등록되어 있는 운전자의

휴대폰으로 벌금 통지서가 발송된다.

이제 우리 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해결해야 할 정치적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 실존의 원리인 불평등, 차별, 인종주의와 같이 경제적 불확실성의 영향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은 계속 될것이고 이는 종교, 성, 인종, 계급에 관한 인간의

지배력 또는 우월성에 대한 반계몽적 관점들의 써움이 될것이다. 또한 온도 상승은 농법,

작물적합성, 토지 이용등에 중대한 변화를 유발한다. 프랑스의 포도주 생산 지역이 온도

상승에 따라 수확량이 감소하고 우리나라도 경작 한계선이 점차 상승하여 대구 명물이던

사과가 충주를 지나 아제는 강원도 평창이나 영월에서 수확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 측면이나 가상세계와 디지털 복제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세계 등은

향후 우리가 고려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미래를 원하다면 과거를 벗어나라'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시장의 합리성과 국경을

초월하는 철학이 기반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의 변곡점을 맞는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부채, 실업, 기아, 생태난민위기,팬데믹과 의료문제,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의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를 이렇게 만든 기존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포기할

때만 우리에게 마래가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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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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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뭐라 짚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불편한 느낌'에 대해 저자는 열가지의 질문으로 '불편한'

작품을 그린 거장들과 그들을 만들어 낸'시스템'과 마주서며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까지

대놓고 이야기 하기도 어려웠던 그것을. 그러면서 저자는 '삶을 냉소하기 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동일한 조건'. 역사는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승자에게 모든

권력을 헌납하고 그 대부분은 남자다. 이 간단한 명제가 여성이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다. 만약 학습이나 연마 혹은 습득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어땠을까?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출발하며 요한 조파니(Johan zoffany)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든다. 왕립 아카데미는 1768년에 설립된 영국 미술

분야 최고의 기관이다. 정원은 40명으로 34명은 국왕이 지명하고 나머지는 정회원의

선거로 선출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한 38명은 모두 남자다. 미술인을 양성하고 서로

교류하며 연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곳에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여성 회원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당시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누드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고 벽면에 걸린 초상화로 등장한다.

이렇듯 여성에겐 정당한 기회 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여성 미술가가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어이가 없는 질문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누드'와 '벌거벗음'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의

견해는 그동안 정리되지 않던 질문에 훌륭한 답이 된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우리 대부분이 벌거벗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 누드라는 단어는 제대로만 사용된다면 어떠한 불편한 의미도 함축하지 않는다.

누드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무방비의 웅크린 몸이

아니라 균형잡히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몸, 즉 재구성된 신체이다'(누드 : 이상적

형태에 대한 탐구 중, 1956) 즉, 벗은 상태를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신체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꺼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누드다. 여기에 저자는 여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보여주기 위한 실체이며

'누드'라는 서양 미술 속의 개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

여성 누드는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늘상 그려져 왔지만 다리 사이에

있는 성기와 음모가 그려지는 것은 금기로 여져왔다. 어느 그림이든 누드의 주인공은

다리를 모으거나 꼬거나 손이나 천을 얹어서 그 사이가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는

방법으로 외설의 함정을 피하며 고급 예술로서의 안정을 추구했다. 물론 귀스티브 코르베

(Gustave Caurbet) 같은 화가는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 앞에 보여달라'고

말하며 기존 미술 관습을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작품을 묘사해 실제 음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을 그렀다. 그러나 정작 그의 그림은 100여년이 지날 동안 아주 은밀히

극소수만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뿐 아니라 세상 만사에 불편한 시선을 가진 자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쾌하거나 거북하지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 할 말을 했다는, 혹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준다. 인간으로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성별의 다른 시각에

대한 충분히 의미있는 진술이며 흥미로운 시도였다. '불편한 시선'이 이제는 그냥 '시선'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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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병 -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 김형석 교수의 명고전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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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은 각자 자기의 길을 걷고 있으나 사실은 신념도 없는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P16

고독의 반대는 사랑이다. P247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사람과 소통하고 글을 쓰며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쉽고 정감있는 수필을 쓰게 되며 이를 수상(隨想)이라 부르는 선생의 글들이 모여 '고독이라는 병'이라는 제하의 책으로 태어났고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 왔다. 20여년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여전히 설렌다. 밀레니엄을 앞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길. 누구나 길을 간다. 각자의 길이 다르기에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걷고 싶은 길 뿐 아니라 걷고 싶지 않은 길도 가야만 하고 그 길 위에 서 있다가 옆으로 비껴서며 생을 마친다. 생각이 발현 된 이후로 우리는 늘 '무엇이 진정한 인생의 길이며 어떻게 참다룬 생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며 산다. 그 길 위에서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의 갈림길을 만나고 늘 선택의 기로에 서며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은 떠나온 목적과 이유가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살며 그 길을 이어간다. 무엇이 참된 길인가에 대해 성경은 대단히 명쾌하다. 예수는 그 길을 묻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한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이 말이 아쉽게도 우리 삶에서는 살아 있지 못하고 힘도 없다. 목적과 의미와 나아갈 길을 알려주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성전 뜰 만 밟고 다닌다.

죽음은 필연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머뭇거릴수도 주저할수도 없이 죽음은 철라이며 살아왔던 삶에 대한 기억이 된다. 선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60년, 21900환, 그리고 매일 1환'은 여러모로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삶을 산다기 보다 죽음을 향해 간다. 선생의 표현대로 '매일 매일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죽음은 절박한 사실이며 엄숙한 현실이다. 죽음은 삶의 종말인 동시에 결산이고 인간은 죽기 위해 산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이야기한다. 사망이 끝임은 분명하나 죽음 이후의 새로움이 존재한다. 종말인 동시에 새로운 삶의 출발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며 살고 죽는다.

선생이 미워하는 것들 중 두번째를 차지하는 '종교의 가치를 모르는 종교가'들에 적극 공감한다.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들을 가장 천박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이게도 그런 영향을 끼친다. 진정한 종교는 선량함과 약함에서 시작되고 가난과 겸손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기에 종교는 태생적으로 세속적인 지위와 명성과 부를 가질 수 없다. 이를 가지는 순간 종교는 종교로서의 본질을 버리고 세상이 되며 어떠한 종교든 타락하고 변질된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순간 종교는 세상의 지탄거리와 걱정거리가 된다. 성경 속의 다윗이 그랬다. 순전하고 양과 같던 그가 권력과 세속에 빠지자 선생의 말을 빌리면 '기막힐 정도로 답답한 과오'를 범하고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가혹할 수 없을 정도로 진노하신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선생이 제자와 나눈 대화처럼 철학을 배우는 것보다 철학을 해야하는데 잘 안되듯이 우리는 신앙을 배우는 것보다 신앙을 사는 일에 더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니체나 하이데거는 '고독'은 우리가 온 곳도 무(無), 가는 곳도 무, 머물던 곳도 무인것을 느끼는 자아 속에 깊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고독을 느끼며 얻을 수 없는 사랑을 품은 이가 누구보다도 고독해 진다. 실존적인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영원을 얻을 수 없는 한 언제나 고독 속에 산다. 그래서 선생은 영원에의 고독은 죽을 수도 없는 고독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독의 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영원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입을 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직 신앙을 접하지 못했거나 이제 막 신앙을 시작하는 분들이 선생님의 말처럼 부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신앙적인 부분이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메세지들을 통해 조금은 쉽게 그리스도를 접하는 기회가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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