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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평점 :
대중은 상상하며 그 상상을 이루는 이에게 열광한다. 더구나 그 대상이 출생도, 환경도,
목적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면 더욱더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진다. 보모 사진작가,
역광의 여인, 거리의 사진작가로 알려진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가 그랬다.
시카고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사진으로 일약 '20세기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네임을
얻었고 곧바로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이 책은 유일하게 그의 아카이브 접근 권한을
허락받은 앤 마크스(Ann Marks)에 의해 쓰여졌다.
비비안 마이어는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도 세상을 열정적으로 담아냈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조리개라는 공평한 잣대로 들여다 보며 끊임없이 세상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기억에서 조차 없고 어머니에게는 한번도 제대로된 돌봄을 받은 적이
없던 그녀는 프랑스 농촌 마을에서 그가 남긴 인화된 사진 가운데 절반 가량을 찍었고
그의 방에 전시한 유일한 작품들이 이때 사진이다. 그녀는 이 시기 자연, 그림자, 역광,
반사등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어쩌면 자연을 향한 갈구로 세상과의 단절을 이고내는
그녀만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 온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보모로 일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이외엔 사진에 더욱 매달렸고 이때 순순한 것과 뒤틀린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것들에 집중하게 되며 풍성한 꽃과 더불어 넘쳐
흐를것 같은 쓰레기 더미도 렌즈에 담아낸다. 높은 산봉우리가 아닌 도시의 건물과 지붕을,
전원의 고즈넉한 풍경이 아닌 콘크리트로 둘러 쌓인 도시의 공간들을 랜즈에 담는다.
결핍은 여실히 삶에서 드러나고 작품에 뭍어 난다. 그녀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인 '인간의
애정'은 사람과 사람, 남자와 여자, 아이들, 친구들 뿐만 아니라 늘 시선 밖이라 여겼던
노인들까지 대상이 되며 그들의 몸짓, 표정, 생각과 시선등을 여과없이 담아냈다. 그녀는 사진
속 인물들의 세세한 변화에 주목하며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평범한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저자는 이러한 그녀의 변화에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내적 유대감을 주제로 한 '인간 가족전'이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특이한 것은 그녀의 작품에 대가족의 삶을 묘사하거나 가족 사진에 아버지를 끼워넣은 적이
없으며 미소 짓거나 웃는 남자, 아이와 놀아주는 남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결핍은 그대로
상처로 남아 기억을 지배하는 것 같다.
비비안 마이어는 70세가 될 때까지 40년동안 사진을 찍었고 2009년 4월 21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보모로 일하던 캔스버그 형제들이 그녀의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함께 뛰어
놀며 야생딸기를 채집하던 보호림에 뿌려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직 그녀 앞에 10년이 더
남았는데도 카메라를 영원히 손에서 놓고 만다'고 말한다.
오랫만에 보는 Rolleiflex는 20여년전 한 참 사진에 심취해 있을 당시 구압했던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로 보는 랜즈와 찍는 랜즈가 따로 있고 사진 크기와 비슷한 뷰퍼인더를 가진 명품이다.
지금은 너무도 좋은 디카에 밀려 골동품내지는 메니아 층의 전유물이지만 당시엔 사진
전문가라면 한번 쯤 가져 봤을 카메라다. LEICA는 그때나 지금이나 명품이다.
비비안 마이어에게 사진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한 통로였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향하는 문을 열어 세상과 소통하였으며 자신이 실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녀는 세상에 혼자였고 사진은 그런 그녀의 삶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은 그녀의 눈, 그녀의
호흡, 그녀의 손길, 그녀의 존재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