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온다, 로봇 와이즈만 미래과학 1
김성화.권수진 지음, 이철민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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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것이고 일정부분 이미 있는 로봇시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너무 안일하고 무신경하다는 생각이 들던차에 아이들 교육용 도서로 만들어졌을

법한 책을 통해 쉽고 정확한 이해를 있었다.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고, 주변의 세계에 반응할 알아야 한다는 정의는 로봇이

단순한 기계장치나 인형이 아니라 사람에게 감각이 있다면 로봇은 센서라는

전기회로장치를 통해 반응하는 유기적 물체라는 의미이다.  

1948 월터 박사에 의해 최초의 전기회로와 모터가 있는 로봇을 만든 것을 시점으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로봇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휴머노이드 로봇' 원하며 그러기 위해서 로봇은 기계 장치와

모터를 넘어 손과 두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하며 안정성도 갖춰야 하고 사람이

두발로 걷는 것처럼 로봇도 걷기를 원하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완성되지 못하고 진행

중이며 희망사항이다. 사람과 같이 발을 들어 올릴 다른 한발로 균형을 잡는

것이나 관절들의 유기적 작용으로 '철커덕 철커덕' 소리를 내는 WL-301 아니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사람을 돕는 로봇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욕심인것 같다. 

물론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C-3PO 사람이 연기했음에도 자체로 충격이었다.

최초의 '로봇회사원'이었던 아시모의 계단에서 구르는 굴욕은 아직까지 가야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인공지능과학자들은 인간이 언젠가 기계의 몸을 입고 사이보그로 진화하게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니 사이보그를 넘어 강력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탄생해 스스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혁명적인 탄생이 일어 날지도 모른다고 경고 한다.  이렇게

되면 로봇들이 '인간이 지구에 있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에까지

이르자 아시모프의 '로봇의 제작의 3대원칙' 다시금 생각났다. 

'로봇은 인간을 해치지 않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들 스스로 진화가 가능하다면 어쩌면 우리가 정복하고 빼앗아 누리던 지구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로봇들에게 빼앗길수도 있을것 같다는 저자의 충고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닌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계속 생각난다.

"어쩌면 우주에는 수많은 우주가 있고,

우주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지적 생명체는 

그렇게 진화한

'기계지능'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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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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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이 말을 한다'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후이지만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기억하며

무언가 흔적을 남겨 주려고 하는데 이것을 통해 사인이나 범인을 특정할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책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은 사람의 시신을 통해 2,

3 범죄를 예방하고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의학자의 노력과 현실이

담겨있다. 


'CSI'라는 미드를 통해 많이 알려진 법의학자라는 일을 하는 저자의 첫마디는 이렇다.

"죽음을 피할 없고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이는 법의학이 사망의

원인과 종류를 판단하는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의 인간으로서 고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가진다는 말이다. 


'죽음을 통한 삶의 이야기' 

타살자의 수보다 자살자의 수가 30배가 많은 현실 속에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져 분쟁의 소지를 많이 가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고 시신에는 삶이 그대로 뭍어 있기에 아름다운 죽음이 필요하고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제멋대로 살다가 죽고 남겨진 시신이 말하는 나의

엉망진창인 삶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건 남겨진 자의 수치인 것이다. 


우리나라 첫번째 법의학자인 문국진교수와 장기려 박사와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3년을 쏟아 부은 노력을 정열을 버리지 마라' 장기려 박사의 충고는 어쩌면 너무도

쉽고 포기하고 그만둬 버리는 현실의 우리를 향한 질타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을

잡은 문국진교수는 유학생활을 거쳐 우리나라 법의학계의 시작이 된다.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동시에 사회 윤리학과 맞닿아 있다. 단순하게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이것이 바른 것인가 아닌가를 밝혀야 한다.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것이 아마도

어디서부터 사람으로 볼것인가 일것이다. 물리학자, 화학자, 생명과학자들이 보는 사람에 대한

관점은 다르다. 수태부터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카톨릭,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을 사람으로 보는 생태근본주의자들 과는 달리 형법에서는 '진통'

람으로 보고,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민법에서는 자궁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때 사람으로 본다. 이렇듯 언제부터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다

보니 저자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라고 부른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관촌수필' 작가 이문구선생과 영화배우 그레이스 리의 유언은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죽음과 장례에 관한 기본틀을 많이 흔들어 놓았다. 혼수상태가 되면

이틀을 넘기지 말고, 화장을 하고,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이문구 작가의 유언은 향후 우리가

취해야 임종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하면 장례식장에 국화가 놓이는 것이 싫어 자신이

좋아하는 장미를, 자신은 후회없는 삶을 살았기에 슬퍼하기 보다는 경쾌한 탱고를 그것도 곡을

지정해서 틀어 달라고 주문한 그레이스 리의 유언에선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있다. 


100명의 삶이 있다면 100가지의 죽음이 있고 100가지의 원인이 존재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을 기억해야 것이다.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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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 - 생명의 탄생부터 우주의 끝까지
모리 다쓰야 지음, 전화윤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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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장에서 반가운 단어를 만났다. 

'산수'. 학창시절 수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좋아하지도 않기에 사회생활하는데

어렵지 않을 수준인 산수라고 불렀던 나의 모습이 투영되는 듯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단어인 '산수' 선택한 저자의 문장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인간은 죽는가'

사느냐에 대한 질문은 쉽게 접해 봤지만 죽느냐에 대한 질문은 낯설다. 질문에

대답하려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것이 설명 되어야만 대답이

가능한 거대한 질문인데 저자는 문장부터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과학은 대답할

없다. 그들은 증명할 없는 것은 답하지 못한다. 아직 그들은 진화도 제대로

증명해내지 못하기에 질문에 답을 없다. 그렇다면 종교는 증명이 가능한가? 그들

역시 답변 없다. 물론 장황하게 이런저런 이유들을 전술하겠지만 그건 그들만의

이야기이지 증명되는 일은 아니다. 그후로 사는것과 죽는것은 무엇이며 죽음은 어떻게

증명되는지 등등의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첫번째 질문부터 어렵다. 


이렇게 쉽지 않은 질문들이 드디어 최대의 난제를 만난다. 

'나는 누구인가?' 

대학원 학기 수업 제목이었다. 학기동안 매주 세시간씩의 수업을 나름 공부 한다는

사람 12명이 머리에 쥐가 나도록 싸웠으나 결국 '정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고 말았던

주제를 책에서 다시 만나니 무겁던 머리가 무거워 진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우리가 나눈 대화 하나인 '인지는 주관적이다'라는 문장을 접하니 감회가 새로워지고

반갑다.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자신만의 감정이고, 생각이고,

의식이다. 이것은 얼마든지 재단이 가능하며 조형도 가능하다. 말은 마음만 먹으면

인지는 바뀔수도 있다는 말이다. 메타인지라고 불리는 인간의 고차원 인지 기능은 우리가

인지하는 대부분의 것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대체현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증명한다.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의식은 시스템을 통해 조작할 있다는 말이다. 이를

활용했던 대표적인 영화가 매트릭스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이다. 


책은 제목이 절묘하다.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 일상을 살아가며 무심코 지나 버렸지만 언젠가 맞닥뜨리게

질문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심도 깊게 설명해 준다. 분명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책을

제대로 읽고 소화한다면 뜻밖의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얻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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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생의 교활한 시험 기술 - 읽기만 해도 점수가 올라간다!
니시오카 잇세이 지음, 황선종 옮김 / 갤리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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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나오는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그는 시험에 합격하는 방법을 '점수를 많이 

받으면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고득점 이외의

방법은 없다. 여기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고 엉덩이에

진물이 정도로 공부를 했어도 점수를 받으면 원하는 아무것도 얻을 없다.

저자는 이러한 시험 앞에 '교활한'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시험 잘보는 방법을

전수한다.


주관식 출제자와 캐치볼을 하라는 문구처럼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도에 맞게 답을 기술하는것이 점수를 높이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질문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질문자가 묻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우선이고 질문에 맞게 답안을 적어야 한다. 출제자의 의도에서

벗어나거나 모자라면 점수를 얻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알것 같은 자그마한

진리를 대부분이 망각하거나 등안시하여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대학때 리포트를 쓰거나 논술형 시험을 볼때 글자수를 늘려서 공간을 채웠던 방법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생각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 내서 배열한 어떻게든 글자수를 늘려보려고 애썼던 시절 하루는

교수님이 시험을 시작하자 마자 칠판에 "억지로 글자 늘리면 늘리는 글자 만큼

감점'이라고 적으셨고 그날 우리 대부분은 시험을 망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뿐인가.

시험 시작 오분전에 핵심단어만 암기하거나 단어의 글자만 자신만 아는 문자로 책상에

적어 놓고 몰래 보기도 했던 그시절 우리에게 하셨던 교수님의 한마디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청춘은 흐르지만 성적은 영원하다" 한마디 때문에 우린 정말 목숨걸고,

무슨짓을해서든 성적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됐었는데 일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것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짜피 시험이라는 관문을 평생 넘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얻을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시험이 사람을 괜찮지 않도록 만드는 인생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기왕에 넘어야 관문이라면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관문을 통과하는것도

지혜다. 책은 우리에게 그런 지혜를 전해준다. 책을 읽으며 '! 이거 아는건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냥 알고만 있지 말고 활용하고 이용하고 사용해서

자신에게 유익한 상황을 만들어 보자. 책의 제목처럼 '교활한 수험생'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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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 내 삶의 의미를 찾는 네 가지 질문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 지음, 김경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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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종교에서 의미를 찾고 있지만 종교는 이상 예전의

권위도 신뢰도 가지지 못한다. 종교가 한때 의미를 찾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지금은

수없이 많은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듯 의미규명이 불투명해진 세상 속에서

' 답게 사는것' 어렵다. 먼저 출발부터 어렵다. ' 답다는 ' 무엇인가에서

벌써 말문이 막힌다. 대답할 명분도, 주제도, 내용도 우리는 가지지 못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저자는 ' 삶의 의미는 오직 나만이 결정할 있다' 선언한다.

인생이 무게를 알기에, 삶의 버거움을 겪고 있기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수긍은 된다.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대단한 목표나 가치관도 가지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며 가족과 사람들을 돌보며 조금 나은

미래를 향해 작지만 한걸음 내딛는것 자체가 이미 '존재의 의미'이며 '살아갈 의미'이다. 


저자의 '너를 뛰어 넘는 기쁨을 누려 봤는가?'라는 챕터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한계를 구분지어 놓고 산다. 어쩌면 평생 번도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한계를 뛰어넘는 기쁨을 말한다. '천장'이라고

표현하는 한계, 혹은 벽을 뛰어 넘을 비로소 별을 있게 되고 밖을 있게 된다.

스스로를 제한하려 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은 어쩌면 지금

보다 훨씬 나은 미래일 것이다. 그러면서 허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종종 한계를 뛰어 넘어 보겠다는 무모함을 가지게 되고 무모함은 스스로 허상을

만들게 되고 허상을 향해 어이없이 빈주먹을 날리게 되는 오류를 범한다. 허상은 아무리

깨고 넘으려 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허상을

버려야 한다. 허상은 욕망의 분신이다. 욕망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며 ' 다운 ' 아닌

만들어진 나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렇게 허상에서 벗어나면 관점의 변화가 생기고 바라보는

것이 달라진다. 시각도 넓어지고 편향적이고 굴곡된 시선이 바르게 펴진다. 이때부터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그래서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에서는 이것을 '초월적 경험'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왜곡과 편협함에서 벗어나 관대한 시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쉽지 않다. 지식적 방대함과 깊이가 책장을 넘기기 부담스럽게 무겁다. 그러나 다양성과

풍부함에 금방 매료된다. 저자의 말처럼 삶을 산산조각내는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충만한 삶을 살도록 성장시킨다. 그래서 역경과 어려움을 즐길 아는

지혜로움과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부딪혀 보고 견뎌보고 애쓰고 힘써 보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실패할지라도 그만큼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의미의 '이라고 말하는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닿는다. 

"인간다운 삶은 자기가 아닌 다른 , 다른 사람을 향한다. 채워야 의미이자 언젠가 만나게

다른 사람. 자신을 잊을수록,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명분을 얻음으로써

사람다운 삶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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