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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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막힌 인생을 듣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편하게 기대고 있던 등이 나도 모르게 곧추세워져요. 내가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을 두고 뭐가 이렇게 시시하담, 싶어 권태를 느꼈던 것을 상대가 알까 싶어 미안해지는 때가 그런 때예요. 어제 같은 오늘이란 말의 뜻이 권태나 무료가 아니라 별일 없이 무사하다는 뜻이란 것을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구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년이나 병원신세를 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가 하면, 작별인사를 할 틈도 없이 가족과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고, 뱃속에 삼 개월 된 아이를 가지고 있는 상태로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그럴때 보면 마치 이 세상은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가득 차 있는 듯해요.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는 살고 싶었으나 살지 못한 시간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능한 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도 끝없이 절망적이던 이십대가 있었다. 매일같이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내 존재 자체가 버겁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때엔 "서른"이라는 시대가 마치 구원처럼 이 모든 답답함을 끝낸 "안정"을 가지고 올 거라 믿기도 했었다.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는 불현듯, 이십대 때 바라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나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를 숨긴 채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그리곤 내가 꿈꾸던 "서른"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버리고 싶은 나는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신경숙의 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암울한 이십대"를 덮어버린 채 서른을, 마흔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안쓰럽고 더 마음이 가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작년 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이 후, 일 년이 지나고 만나는 신경숙의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 목차를 훑어보곤 제일 먼저 읽기 시작한 것은 제일 마지막에 실려있는 「모르는 여인들」이었다.  "나"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정윤"인 것 같고, "채"는 "단이"같기도 한, 신경숙 소설에서 이미 만났던 것 같은 인물들이 또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길지 않은 과거 서술만으로도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다 알 것 같은 심정이 되어 이야기에 몰입한다.

 "나"는 한창 출판사 일이 바쁜 시점에, 무릎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 때 갑자기 옛 남자친구 "채"에게서 연락이 오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너를 생각하곤 했다"며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나"는 이십년 만에 만나는 "채"에게서 암선고를 받은 아내가 가족들에게서 도망친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는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짧은 단편을 읽는데 어느 단락들에선가 '이건 내 이야기인데'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닿는 느낌 때문에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아주머니, 노트 한 권을 두고 소통하는 채의 아내와 집안 일을 돌봐주는 아주머니, 채의 아내가 병원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의 이야기는 서른을 넘어 경험한 일들로 공감 영역대가 확장된 나에게 또 다른 울림을 남긴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것처럼 혼자 살아온 줄 알았던 인생은 결코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주고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나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이 "어른"을 만든다는 것도...... 
  

   
 
...내가 새삼스런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했던 나의 문장들도 사실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아직도 설렌다. _'작가의 말'에서

 
   

 

대학시절 방바닥에 엎드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던 『외딴방』에서부터 서른이 훌쩍 넘어 읽는 『모르는 여인들』까지, 내가 성장(?)하는 만큼 신경숙의 글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비판하기도 하는 신경숙 식의 슬픔과 우울의 미학, 특유의 인물과 과거 스토리의 반복이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오래도록 신경숙의 작품들이 내 곁에, 그리고 연결된 모든 사람들 곁에 놓일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이 저지르는 숱한 오류와 뜻밖의 강인함과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향한 말 걸기이기도 한 나의 작품들이 가능하면 슬픔에 빠진 사람들 곁에 오랫동안 놓여 있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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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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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안녕한 여름 - 서른, 북유럽, 45 Days 그리고 돌아오다
홍시야 지음 / 소모(SOMO)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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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습한 날씨에 지쳐 우울해지던 어느 날 

『서른의 안녕한 여름』이 도착했다. 



그림을 그리는 홍시야가 45일동안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쓴 짧막한 글과 작은 사진들,

그리고 쪼물쪼물 그려낸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게 담긴 책이다.

 특별한 기대없이

"어딘가에 닿게 되겠지"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홍시야의 모습이

휴가도 가지 못한 채 습한 공기만 들이 마시느라 마음마저 눅눅해진 나에겐

오히려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소모에서 나오는 책들이 그러하듯

깔끔한 표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홍시야의 꼬물꼬물 그림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번졌고

스르륵 넘겨본 책장 사이로는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일 거리 거리의 보물들이 찍힌 사진들이 빼곡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졌다.



이 책장들을 한 장 한 장 다 넘기다보면

꼭 어딘가에 가 닿게 될 것 같은 기분. 



서른.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나이인가.

그럼에도 홍시야는 서른의 나이에 45일간의 유럽 여행을 떠나면서도

"어떤 것도 서두르고 싶지 않은 여행입니다.

빈 노트를 갖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나를 탓하거나

그 어떤 것에 애쓰고 싶지 않은 여행"이라며 여유가 있다.

그래, 어쩌면 이것도 서른이기 때문에 내보일 수 있는 배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싹 비운 마음으로 시작해서인지

홍시야의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걷는 여행에서는

마술처럼, 우연한 행운처럼 멋진 일들이 일어난다.

 

핀란드의 바닷가를 산책하다 RECATTA라는 빨간 통나무 카페를 발견하고

눅시오 공원에서는 라마라는 친구를 만나 홍차를 얻어마시는 행운을 만난다.

코펜하겐에서는 일본인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하기도 하고

스칸센에서는 삐삐를 만나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달빛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낸다.

파리 튈르리 공원 호수 앞에서는 해지는 풍경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암스테르담, 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는 파울로 코헬료의 책 한 권을 사들고

뿌듯해한다.

 



 

비록 내가 직접 떠난 여행은 아니지만

마치 내가 RECATTA를 발견한 듯,

내가 라마나 일본인 친구를 만난 듯,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림들을 맘껏 보고

숲이 우거진 공원 길을 누비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서점에선 보통이나 사강, 하루키의 책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

 

여행의 재미란 이런 것이었지!

여행에서 얻는 보물들은 언제나 뜻하지 않았던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되었지.

문득 나의 지난 여행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끄집어 내 보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 풀죽어있던 세포들이 파다닥 기운을 차린다.

 

 

요만큼만으로도 족한 책이다.

소모만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편집에

슈크림같은 홍시야의 몽글몽글한 그림.

그곳에서 안녕을 전하는 그녀의 글은

 짧막하고 수수해서 아는 후배의 싸이월드를 구경하듯이

파릇파릇한 느낌이다.

 



이십대처럼 뜨겁진 않지만 따뜻한 마음.

과도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아 덜 부담스러운 자아.

이것 저것 다 보려는 욕심에서 3분의 1정도는 덜어낸 여유가 있는 삼십대.

홍시야처럼 천천히 걸으면 

언제나 "안녕한 여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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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샤넬 - 우아한 여자를 만드는 11가지 자기창조법 Wannabe Series
카렌 카보 지음, 이영래 옮김 / 웅진윙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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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나친 옷치레는 지나친 노력과 매우 유사하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의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신의 옷이 당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세상에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백합에 금도금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고리타분한 국어 선생님처럼 들려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샤넬은 '약간' 모자란 듯 입으라고 충고한다.
  

단순함은 우아함과 동일시된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 체인벨트는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모든 목걸이와 팔찌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보석상자의 맨아래층에서 나와 당신의 목을 두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술 장식 부츠에 무늬가 들어간 보라색 스타킹은?

 샤넬의 스타일에 관한 한 세월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한 것은 거의 없다. 그 하나는 스트로 보터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일리시한 여성의 옷장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두세 벌의 슈트라는 생각이었다. 이 개념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에서는 '매치'에 대해 너무 좁게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지적은 정당하다. 외모에 대한 전국가적인 강박에도 불구하고 옷을 입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친구와 가족에게는 물론이고 온 세상에 자신이 자아도취에 빠진 멍청이이며 그리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리는 행위다. 자기 생각에 골몬한 지루한 멍청이보다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거울 앞에 섰을 때도 샤넬의 충고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스카프를 두른 대신 목걸이를 빼놓았고 자켓의 브로치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하다 욕심을 버렸다.  

   
  집을 떠나기 전에 거울을 보고 액세서리를 하나 빼 놓아라  
   
   
  항상 약간은 모자란 듯이 입는 편이 더 나은 법이다.  
   

 

단순함은 우아함과 동일시된다는 샤넬 스타일의 정수는 애플 아이폰을 떠올리게 한다. 버튼을 없애고 흰색과 검은색으로 단순화시킨 아이폰의 우아한 외관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으로 무장된 실용성이 없더라도 손에 넣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전세계 여성의 위시리스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샤넬의 퀼팅 백과 수트의 매력도 바로 단순함이 만들어낸 우아함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빼어나지 않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창조해 낸 샤넬은 패션계의 스티브 잡스와 견줄만 하다. 부풀린 머리에 커다란 모자, 허리를 꽉 조인 코르셋, 거추장스러운 치마자락처럼 여성들을 여성으로 분장시키기에 몰두했던 시대에 샤넬은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옷을 만들어 냈다.


 
샤넬의 바지와 퀼팅 백

샤넬은 몸을 꽉 조여 억압했던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무릎근처까지 올라간 치마를 통해 여성들을 땅에 닿는 긴 치마로부터 해방시켰고 편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다. 또한 지금은 여성의 로망이 된 2.55 퀼팅 백도 가방에 끈을 달아 어깨에 맬 수 있게 한 샤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샤넬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확대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단순하면서 편하고 실용적인,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시대의 아이콘' 샤넬.   

 명품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했던 내가 어느 날 백화점 쇼윈도의 샤넬 퀼팅백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마주한 이후로 '샤넬'은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남들이 무얼 입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샤넬의 고집과 확신을 알게 되니 '샤넬백=사치품'이라는 공식을 의심하게 된다. 샤넬은 적절한 것을 얻을 때까지 슈트를 스물다섯 번 해체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 절대 남자친구들에게 금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으며 일을 할 수 없는 일요일을 제일 싫어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현대식 우아한 여자'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맥 노트북과 아이폰은 검은색과 흰색 수트, 진주를 사랑한 샤넬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우아함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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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 라디오
정현주 지음 / 소모(SOMO)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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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밤은 시간이 아닌 공간

밤이 되면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다. 조명은 다 꺼두고, 스탠드 두어개만 켜둔 채로 음악도 틀지 않는다. 오직 책에만 집중하는 게 좋다. 책장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되면 밤은 시간이 아닌 공간이 된다. 노란 백열등 불빛과 따스한 어둠이 나를 안아주는 공간
 
   

 
조명은 다 꺼두고 스태드만 한 개 켜 둔 채로, 조금전까지도 흘러나오던 '브로컬리 너마저'를 정지시키고 이 글을 쓴다. 어느새 우리 집에선 내가 앉아 있는 이 공간만 남겨진듯 하다. '착착착착, 착착착착' 키보드 소리도  '탁탁탁탁, 탁탁탁탁' 타자기 소리로 변할 것만 같다.

참 이쁜 책을 만났다.
언젠가 아끼는 친구에게 이쁜 책을 사서 "이쁜 옷보다 이쁜 책을 사는게 더 좋더라"라고 메모를 남겨 선물했다. 이쁜 옷보다 이쁜 책에 더 약한 내게 조그마하지만 간결한 이 책은 첫인상부터 좋았다. 

아껴읽고 싶을만큼 이쁘고 소중한 글들은 야금야금 조물조물 씹어서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문장은 때로 벚꽃처럼 눈부시게 흩날리다가 목련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은 해바라기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리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소나무잎처럼 매일 매일 푸르르고 있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매일 매일의 담금질을 버텨낸 글이기 때문이겠다.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

적당히 사회 경험을 쌓고 학교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으려고 했는데 매일 쓰는 글에 중독이 되고 말았다.......내가 쓴 원고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정도로 즉각적이다.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소통하는 즐거움에 맛이 들려 10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부끄러웠던 글쓰기였는데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가끔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 매일 쓰는 글이 나를 키웠다.
 
   

 
라디오 작가인 저자는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라는 로고를 건 홈페이지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회사에서 일찍 나올 뿐 "꿈 속에서까지 원고를 쓰는 퇴근하지 않는 프리랜서"이다. <러브 앤 프리>의 "너의 소름을 믿어라"를 따라 10년을 넘게 라디오 작가에 매진해 온 그녀의 열정은 그녀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소한 일상', '나의 그녀들', '그녀, 사랑을 말하다', '즐거운 워커홀릭', '마이 페이버릿 씽' 그리고 '에피소드'라는 여섯개의 이야기와 Daily Novel로 구성된 이 책을 그저그런 감상적인 글이겠거니 하고 지나친다면 지치고 외로운 어느날 밤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단순한 위안만이 아닌, 나에 대한 긍정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이다. 사랑때문에 눈물 흘리는 현주씨, 나와 같은 몽상가 수진, 여행을 꿈꾸는 주연, 철부지 애기 엄마 연정, 절대 꺾이지 않는 우리 언니, 나만 보면 잘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시는 우리 엄마...그녀들이 이뻐진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인생의 길이 어딘가로 통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네비게이션은 필요없어요

[길은 다 통해 있다]-그것은 오래 헤매본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고 믿음이다. 한 때 지구가 좁다 하고 돌아다니던 여행자였던 그녀, 수도 없이 길을 잃고 찾아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조용한 미소 뒤에 숨어 있는 담담한 자신감의 비밀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반드시 길을 찾게 된다.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한다.
 
네비게이션 따위는 필요없다. 길이란 다 통해 있는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정말이지 네비게이션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는 더 많은 길을 배워야 하고 헤매면서 발견한 재미난 길들이 우리를 웃게 할 것이니까.

길을 믿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PS. 벽돌색의 앞표지엔 달랑 타자기 하나 박혀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은 somo의 특징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단아한 구성과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사진과 그림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책이 참 이쁘다. '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쁘다 이쁘다' 하던 날,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려보던 날 펼쳐든 최승자 시집엔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가 있었다.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

이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저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어느 때인가는 너무 아름다워서 만져보면
모두가 造花였다
또 어느 때인가는 하염없이 흔들리는 게 이뻐서
만져보면 모두가 生花였다 造花보다 이뻤다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었다)

 

 

 


.
조명은 다 꺼두고 스태드만 한 개 켜 둔 채로, 조금전까지도 흘러나오던 '브로컬리 너마저'를 정지시키고 이 글을 쓴다. 어느새 우리 집에선 내가 앉아 있는 이 공간만 남겨진듯 하다. '착착착착, 착착착착' 키보드 소리도  '탁탁탁탁, 탁탁탁탁' 타자기 소리로 변할 것만 같다.

 

참 이쁜 책을 만났다.

언젠가 아끼는 친구에게 이쁜 책을 사서 "이쁜 옷보다 이쁜 책을 사는게 더 좋더라"라고 메모를 남겨 선물했다. 이쁜 옷보다 이쁜 책에 더 약한 내게 조그마하지만 간결한 이 책은 첫인상부터 좋았다.

 

아껴읽고 싶을만큼 이쁘고 소중한 글들은 야금야금 조물조물 씹어서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문장은 때로 벚꽃처럼 눈부시게 흩날리다가 목련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은 해바라기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리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소나무잎처럼 매일 매일 푸르르고 있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매일 매일의 담금질을 버텨낸 글이기 때문이겠다.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

 

적당히 사회 경험을 쌓고 학교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으려고 했는데 매일 쓰는 글에 중독이 되고 말았다.......내가 쓴 원고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정도로 즉각적이다.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소통하는 즐거운에 맛이 들려 10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부끄러웠던 글쓰기였는데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가끔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 매일 쓰는 글이 나를 키웠다."

 

라디오 작가인 저자는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라는 로고를 건 홈페이지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회사에서 일찍 나올 뿐 "꿈 속에서까지 원고를 쓰는 퇴근하지 않는 프리랜서"이다. <러브 앤 프리>의 "너의 소름을 믿어라"를 따라 10년을 넘게 라디오 작가에 매진해 온 그녀의 열정은 그녀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소한 일상', '나의 그녀들', '그녀, 사랑을 말하다', '즐거운 워커홀릭', '마이 페이버릿 씽' 그리고 '에피소드'라는 여섯개의 이야기와 Daily Novel로 구성된 이 책을 그저그런 감상적인 글이겠거니 하고 지나친다면 지치고 외로운 어느날 밤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단순한 위안만이 아닌, 나에 대한 긍정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이다. 사랑때문에 눈물 흘리는 현주씨, 나와 같은 몽상가 수진, 여행을 꿈꾸는 주연, 철부지 애기 엄마 연정, 절대 꺾이지 않는 우리 언니, 나만 보면 잘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시는 우리 엄마...그녀들이 이뻐진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인생의 길이 어딘가로 통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네비게이션은 필요없어요

 

[길은 다 통해 있다]-그것은 오래 헤매본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고 믿음이다. 한 때 지구가 좁다 하고 돌아다니던 여행자였던 그녀, 수도 없이 길을 잃고 찾아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조용한 미소 뒤에 숨어 있는 담담한 자신감의 비밀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반드시 길을 찾게 된다.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한다.

 

네비게이션 따위는 필요없다. 길이란 다 통해 있는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정말이지 네비게이션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는 더 많은 길을 배워야 하고 헤매면서 발견한 재미난 길들이 우리를 웃게 할 것이니까.

 

길을 믿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PS. 벽돌색의 앞표지엔 달랑 타자기 하나 박혀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은 somo의 특징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단아한 구성과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사진과 그림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책이 참 이쁘다. '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쁘다 이쁘다' 하던 날, '매일 쓰는 글이 진짜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려보던 날 펼쳐든 최승자 시집엔 <더더욱 못 끄겠다 하기 전에>가 있었다.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

 

이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저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어느 때인가는 너무 아름다워서 만져보면

모두가 造花였다

또 어느 떄인가는 하염없이 흔들리는 게 이뻐서

만져보면 모두가 生花였다 造花보다 이뻤다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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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주인님, 드넓은 바다가 저를 당신에게서 갈라놓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베레니스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날이 다시 시작되고 끝났는지요."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배우인 베아트리스가 읊은 <베레니스>의 한 구절이다.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시간과 감정의 유한함에 대한 강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알랭 말리그라스의 집에 모이는 사람들-알랭과 파니, 베르나르와 니꼴, 조제와 자크, 에두아르와 베아트리스-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모래 위에 쌓은 집처럼 위태로운 관계로 얽혀있다. 그들은 권태와 외로움을 "유한한 사랑"이란 감정과 치환해버린 것이다.

 
p136
 나는 공중전화용 토큰을 요청하기 전에 카운터 좌석에서 코냑 한 잔을 마셨다. 그는 조제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 말은 진실일 테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터였다. 그가 그녀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짧음에 대해 말했었다. "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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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과 에두아르의 베아트리스에 대한 사랑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그 자신들을 망가뜨리고 곁에 있는 파니까지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한 달 후, 일 년 후"면 희미해질지도 모르는 열정때문에 그들의 현실은 발목이 꺾인 새처럼 절뚝거리며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 달 후, 일 년 후"면 그칠 감정이기에 우리는 지금 거기에 더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아스라니 사라져가는 것들은 유독 더 아름답고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p186-187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잠시 힘들 주었다.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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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알랭의 집에 다시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베르나르와 조제의 대화로 마무리되는데 이 소설의 결정체라할 만하다. 베르나르는 한 편의 우스꽝스런 연극을 본 것처럼 알랭의 집에 모인 사람들의 그릇된 관계와 그들의 허망한 감정에 대해 깨닫는다. 그렇지만 사강의 소설은 쿨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라는 조제의 경쾌한 낙관은 사강의 목소리가 아닐까싶다.

 이 소설의 희극적인 엔딩은 불현듯,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퍼크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배우들의 그림자 노릇을 한 저희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셨다면 그냥 이 모든 것을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고 생각하십시오. 허황되고 초라한 연극이긴 합니다만 한낮 꿈일 뿐이니 괜찮으실 겁니다. 용서하신다면 다음번엔 더 잘하겠습니다 .저 퍼크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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