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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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느다란 햇빛이 바르르 떨면서 덧문 사이로 들어와, 불규칙하게 벽과 테이블을 비춘다. 이 육중한 긴 테이블은 내가 브르타뉴 지방에 살 때 쓰던 것인데 이사하면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이 책상에서 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카드놀이도 한다. 햇빛은 붉은책이 도는 회벽 위에서는 붉은색으로, 아프리카 유목민들이 쓰던 푸른 면 카펫 위에서는 푸른색으로 변하곤 한다. 책들로 가득 찬 찬장들, 소파들, 서랍장들은 십오 년 동안 나와 함께 두 세 군데의

프랑스 시골 지역들을 돌아다녔다. 유선형의 가는 팔걸이가 달려 있어 마치 손목이 가는 시골 여자들처럼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소파들, 손가락을 접어 살짝 튕기면 방울 같은 소리를 내는 노란색의 작은 접시들, 크림색 유약을 바른 두꺼운 흰 접시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이곳에서 우리의 고향을 되찾았음에 놀라고 만다. 이곳에서 육십 킬로 떨어진 무리옹이라는 마을에 있는 우리 아버지의 고향집,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을 누가 내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여러 곳에서, 때로는 억센 팔에 의지하여 위안을 얻곤 했다. 정말 그랬다.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그렇다면 소금기어린 이 푸른 해안, 토마토와 피망을 먹으면서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이곳은 이중으로 나의 고향이 된다. 얼마나 큰 호사인가! 그것도 모른 채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던가! 공기는 가볍고, 포도 그루 위에서 일찍 익어버린 포도송이는 햇빛으로 말라 쭈글쭈글하지만 그 맛이 잼처럼 달다. 마늘 맛 또한 일품이다. 갈라질 정도로 건조한 땅의 위엄 있는 궁핍, 소박한 농민들이 가르쳐준 우아한 게으름, 오, 뒤늦게 찾아온 나의 행복이여...... 불평하지 말자.

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전히 젊었더라면, 모난 나의 젊음은 겹겹이 쌓여 번쩍거리는 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솔잎에, 용설란에, 성게 가시에, 송진이 끈적거리는 관목들에, 그리고 이파리 뒷면이 맹수의 혓바닥처럼 생긴 무화과나무에 찔릴 때마다 피를 흘리곤 했을 것이다. 얼마나 근사한 고장인가!

(중략)

  한 친구는 늘 내 포도밭을 측량하고, 계단 하나 없이 바로 바다로 통하는 이 집을 왔다갔다하면서 이렇게 단언한다. "결국, 이 집은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당신에게 꼭 맞는군요." 나는 여전히 "그래, 그래"라고 대답한다. 마치 그가,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당신은 변하지 않는군요!"라고 나에게 단언할 때처럼 말이다. 그것은 "우리는 당신이 더

상 변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답니다!"는 의미이다.

  그러도록 노력해보련다......" (p19~22)

『여명』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콜레트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프로방스의 시골 집에서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포도밭과 화단을 가꾸고 동물들을 보살피며 보내는 그녀의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은 행복했던 유년 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회상으로 연결된다. 두 번의 이혼과 파격적인 연애로 떠들썩했던 젊은 시절은 가고 홀로 누리는 고독 속에 충만해지는 날들이다. 그런 그녀에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려 한다. 그것도 15살이나 어린 남자, 그리고 알고 지내는 처녀가 사랑에 빠져있다고 고백한 그 남자가 그녀의 곁을 맴돈다. 




  "빨갛게 빛나는 제라늄과 사람들의 흰 옷, 그리고 폭발해버린 위성들처럼 붉은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수박이 있는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여름. 이 계절이 끝날 때까지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덜 친근해진다면 결과는 달라질까? 하지만 그 무엇도 나의 행복한 여름을 방해하진 못한다. 푸른 소금과 맑은 물이 있는 여름,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내며 바람 때문에 대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여름, 마늘을 줄줄이 엮어 달아놓는 그런 여름을......

  나에 대한 비알의 감정, 그리고 비알에 대한 젊은 엘렌 클레망의 사랑과 원망...... 나는 본의 아니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글을 쓴다. 남들에게 웃거리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그렇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곧 잊어버릴 이야기이다. 매일같이 불면의 밤을 보내시던 어머니, 당신은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밤을 지새우고 있나요? 지친 말을 와 내 손과 어깨로 짐을 끌어주어야 할 순간에, 진흙투성이 개를 옷 안에 품어 안아야할 순간에, 적의에 찬 시선으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 내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달래고 보호해주어야 할 순간에, 혹은 치명적인 파멸을 향하여 휘청거리는 사랑의 무게를 내 팔에 실어야 할 순간에, 당신은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내가 만일 보통 사람들처럼 은근슬쩍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만다면, 나를 용서하세요. "내 나이에는 단 하나의 미덕밖에 없단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지." 당신입니다. 그런 말을 하신 분은.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당신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신발에 진흙을 거의 묻히지 않은 채 밖을 돌아다니던 당신을 나는 기억합니다. 아직도 햇살이 따사로운 좁은 골목에서 편안한 자세로 똬리를 틀고 있는 작은 뱀

을 피해 발길을 돌리던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p82~83



  그녀의 기억은 끊임없이 어머니에게로, 유년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재현되는 어머니는 정이 많은 시골 아낙네이면서도 나이들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품위를 지켰던 숙녀이다. 매 순간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그녀의 서술은 한 명의 딸로서, 그 자체만으로 인상적이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강렬한 인상으로 삶을 살고 어머니와 동일시 되고자 끝없이 갈망하는 마음은 낯설기도 하다. 유년 시절에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어머니였지만 성장 이후 벗어나고 싶은 그늘같은 대상이 되어버린 나에게는. 그렇기에 어머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절대적 친밀함과 어떤 숭고함은 차라리 부러웠다고 고백해야겠다. 인생의 모델이자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어머니'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리라.  

 

 실제로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했던 작가 콜레트, 그녀는 인생의 황혼기에 16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했다고 한다. 『여명』에 등장하는 연하의 남자는 세 번째 남편을 모델로 삼았지 싶어진다. 금기와 터부를 깨고 사랑과 인생에 솔직하고 주체적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여명』에서 콜레트는 비알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으로 대표되는 고독의 기쁨과 평화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여 흔들리지 않는다. 쉽사리 사랑에 빠지고 그 감정과 대상에 기대거나 속박되곤 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그녀는 이제 자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는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늙었구나'라고 생각되는 나이(소설 속에서 그녀의 나이는 오십이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에서도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그런 단단함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사랑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의 치기가 아닌 지혜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돌아보며 서두르지않을 뿐이다. 대신 그녀는 여전히 생기있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자연을 찬미한다. 그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늙지 않을 것이다.

 



  "창백한 푸른빛이 내 방으로 들어오고, 아주 연한 붉은빛이 그 푸른 빛을 어지럽힌다. 새벽이다. 새벽빛은 밤으로부터 빠져나와 긴장한듯 찬란하게 흐른다. 내일 아침 이 시간에 나는 첫번째 포도 수확을 위해 포도송이를 따고 있을 것이다. 내일모레 이 시간이면, 이 시간보다 일찍, 나는...... 아니 그렇게 앞서가지 말자, 그렇게 서두르지 말자!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순간의 목마름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

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

p175~176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자기 고백적인 문장이 이어지는 책은 소설인지 에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초반까지만해도 줄거리를 파악할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 책을 읽는데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감각적으로 서술한 문장들을 읽노라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생생한 미적 감각 속으로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그녀의 문장을 만나면, 몇몇 작가들이 칭송하는 '콜레트'의 매력이 무엇인지 오감으로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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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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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사전의 겉표지는 찢어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는 녹색 비닐 재질이다. 가볍고 내 손바닥보다 더 작다. 세숫비누 크기만 한 사전이다. 뒷면에 이탈리아 단어 약 4천 개를 수록했다고 적혀 있다.

  우피치 박물관의 한적한 갤러리를 돌아다니다가 여동생이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그 사전을 펼쳤다. 영어 부분을 찾아서 이탈리아어로 모자가 어떤 단어인지 익혀뒀다. 분명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겠지만 이러저러해서 난 우리가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박물관 경비원에게 말했다. 놀랍게도 경비원이 내 말을 알아들었고 우린 금방 모자를 되찾았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갈 때마다 이 사전을 지니고 다녔다. 난 사전을 늘 가방 안에 넣고 다닌다. 길을 찾을 때나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갈 때, 신문 기사를 읽으려 할 때면 단어들을 찾는다. 사전이 날 안내해주고 보호해주고 모든 걸 설명해준다.

......

  사전 첫 장 한쪽 구석에 난 이렇게 썼다.

  "시도하다(provare a) = 노력하다(cercare di)"

  이 조합, 이 어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끈질긴 시도, 끊임없는 시험 이외에 다름아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사전」(p15-17), 줌파 라히리



 



  이탈리아로 여행을 갈 때면 손바닥만한 회화책을 항상 챙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고 간 책은 번번이 여행 가방 속 들어간 자리에 그대로 놓여 이탈이아의 공기 한 번 쐬어보지 못한 채 돌아오곤 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과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매번 시도는 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은 없었다.

 나에게 "시도하다 = 한 번 해보다"였다. 이 작은 책에서 '시도하다'의 전혀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도하다 = 노력하다"

 매번 시도는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던 나는 미국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썼다는 이 책을 손에 들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소설을 쓰고 유수의 상까지 받은 미국의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홀연히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해 모든 글은 이탈리아어로 쓰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탈리아어의 실제 세상으로 뛰어들어 부닥쳤던 불안과 걱정, 이탈리아어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동경, 시행착오과 당혹스러움의 경험들,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쓴 짧은 단편 소설 두 편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쌓아 온 노력의 성과물에서 스스로 떨어져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녀. 이탈리아를 좋아하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글을 쓰는 작가가 모국어까지 뒤로한 채 새로 익힌 완전하지 않은 외국어로 글을 쓰기로 했다는 결심과 시도는 충격적이었다. 그 용기와 도전이 놀라웠고, 그녀가 뛰어넘은 한계가 부러웠다. 후천적으로, 그것도 나이가 들어 익히기 시작한 언어로 작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해낸 그녀가 내 앞에서 희망의 빛처럼 반짝거렸다.




  내 분열된 정체성 때문에, 아마 성격 때문에 난 불완전한, 다시 말해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다. 동일시하는 언어가 부족한 탓이다. 미국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벵골어를 외국인 억양 없이 완벽하게 말하고자 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뭣보다 내가 완벽히 그분들의 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한편 난 미국인으로 온전히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내가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했음에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뿌리를 박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난 두 가지 면이 있었고, 둘 다 불완전했다.내가 느꼈던 불안, 간혹 지금도 느끼는 불안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실망스럽다는 느낌에서 온 것이다.

  여기 이탈리아에서 난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매일 말을 하면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불완전과 맞부딪힌다. 이 애매모호한 선이 흔적을 남기며 어디든 날 따라온다. 날 배신하고 내가 이탈리아어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성인이고 작가인 내가 왜 불완전과의 이 새로운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명확하게 이해가 될 때의 황홀감,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자극한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불완료과거 (p93-94) 




  벵골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줌파 라히리는 벵골어를 사용하는 부모님때문에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자라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완벽하게 사용하게 되었지만 부모님의 모국어인 벵골어에 대해서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이민자로서 겪는 모국어에 대한 감정적 불완전함은 언제나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모국어가 될 수 없다는 불완전함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되었을까. 소설가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그녀는 그녀가 처한 안정적인 상황-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자기가 원하는 명확한 단어를 찾아 글을 쓸 수 있는-이 오히려 창작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이전의, '익명'의 작가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 또한 모국어(영어)라는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불완전한 세상, 완벽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외국어의 세상으로 자신을 옮겨놓게 한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외부에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는 사전이나 메모장, 펜이 필요 없는 날을 꿈꾸고 살아야 할까? 내가 영어로 책을 읽듯이 도구 없이 이탈리아어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을 꿈꾸어야 할까? 이런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게 옳은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게 많아도 나는 아주 활동적이고 열심인 이탈리아어 독자면 족하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한계가 있는 조건을 더 좋아한다. 무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한계가 있음에도 지평선은 끝없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다른 언어로 읽는다는 건 성장과 가능성의 끝없는 상태를 내포한다. 배우는 초심자로서의 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으리라.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사전을 가지고 읽기 (p42-43)




  노력을 좋아하고 한계가 있는 조건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자신과 이탈리아어 사이의 거리-모국어가 아니기때문에 아직은 완벽하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배열할 수 없는-가 채워지는 순간 더 이상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변의 것을 가능한 익숙한 것으로 배치하고 싶어하는 나이가 되어 외국어 공부마저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어지던 나에게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우려는 그녀의 모습은 신선한 경종이 되었다.  모르던 단어의 뜻을 알았을 때, 같은 의미의 여러 단어를 수집하고, 통역사 없이 대중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가 느꼈을 기쁨과 희열을 어슴푸레하게 짐작한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는 순간부터 삶은 생기와 기쁨을 잃어버린다. 배움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삶은 지속적인 기쁨을 약속할 것이다. 그녀는 내 안에 있던 성장의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라 말한다. 


  이 작은 책은 줌파 라히리보다 크다. 그녀가 영어를 버리고 새로 익힌 이탈리아어로 쓴 책은 단순한 문장과 읽기 쉬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작(영어로 쓴)에서 읽었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과 섬세한 분위기는 없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긴 시간 이탈리아어에 쏟은 그녀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매순간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그녀의 장대 끝이 어딘가 닿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녀가 열어 보여준 가능성의 세계가 이 작은 책을 커다랗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고 영문 소설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줌파 라히리처럼 몇 페이지를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표시해 두었다 단어들의 뜻을 찾아 나만의 메모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몰랐던 단어의 뜻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뜻을 알게 된 단어로 완성될 문장의 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도하다 = 한 번 해보다"의 정의는 이제 폐기하도록 하자. 이제 "시도하다 = 노력하다"가 되었다.

(이 글에서 언급한 배움과 노력은 비단 외국어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그 시작이 언제이든, 우리는 노력하는 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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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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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교 씨는요, 하고 무재 씨가 젓가락으로 계란을 자르며 말했다.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

네.

무재 씨는 반으로 자른 계란을 집어서 내 그릇에 넣어 주고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멀리 떨어진 면옥의 벽에 걸린 거울을 보니 무재 씨의 맞은편에서 나는 얼굴을 매우 붉히며 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느냐고 무재 씨가 물었다. 탕이 너무 뜨거워서, 라고 말하며 나는 냅킨으로 땀이 밴 이마를 눌렀다.

『백의 그림자』 황정은 p39-40

 

 

 


 

 

 

따옴표도 없이 오가는 대화가 유독 생생했다. 가끔 누가 한 말인지 헷갈려 다시 읽어야 했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문장과 대화하는 문장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것이 물감이 잘 번진 수채화 같았다. 대화하는 문장들 사이에는 여백이 많았고 그 여백 사이에서 나는 오래 서성거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그 속에 가만히 서 있자 '눈꺼풀이 젖어서 묵직해졌다. 아래쪽으로 늘어진 열 개의 손가락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하나는 먹먹함이었고, 또 하나는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안도와 안심, 그리고 다만, 이라는 그칠 수 없는 바람도 있었다.


은교와 무재는 철거를 앞두고 있는 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다. 상가 전체의 단합 소풍을 갔던 날 은교는 숲 속에서 그림자가 일어나는 경험을 하는데 그림자를 따라가려는 은교를 무재가 붙잡는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종종 이야기도 나누며 가까워진다. 『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담백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둘이 일하는 전자상가는 발전을 내세우는 도시 속에서 '소외된 공간'으로 대표되는 곳이다. 도시는 그 지역을 '슬럼'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작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곳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라 선을 긋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려한다. 당장 철거를 앞두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은교와 무재 주위에 있다. 계속 보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과 불현듯 그림자가 일어섰다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에서는 사회가 휘두르는 폭력에 소리없이 스러지는 사람들, 어쩔 도리 없이 그림자가 일어서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의 연애 이야기이지만 사회의 폭력에 노출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 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일 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그랬군요. (p94-95)


무재 씨는 오른손에 마른 메밀 면 한 줌을 쥐고 서서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다.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는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p143-144)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고 인생이 원래 허망하지만 더욱 허망한 삶이 있다는 것을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책은 커다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은 돌맹이같다. 비록 작지만 떨어진 어딘가에 분명히 파문을 남기는 것처럼.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의욕과

기운을 잃어버린, 그래서 결국 그림자가 일어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헛헛한 이야기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건 조용한 배려와 바람 때문이겠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국 한 그릇을 내어주는, 무재와 은교 사이의 의연한 사랑 같은 것이 사람들을 살아가게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무작위로 건내는 1+1 따위가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는 꼬마 전구 하나, 배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따끈한 한 그릇'이 필요하다. 그런 배려들이 모여 세상을 더 촘촘하게 엮어줄 것이라는 바람이 읽힌다. 그 바람은 은근하지만 퍽이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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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 시각에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세상의 거대하고 긴박한 어둠 속에서 출

발한다. 집은 무척이나 춥다. 겨울은 향로를 흔들며 마을을 돌아다니지만, 그 향로

에서는 연기나 향내는 나오지 않고 소금과 눈의 불쾌한 쇳소리 같은 솔직함만 나온

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옷을 입고 서둘러 나간다. 잠이 덜 깬 개들이 몇 발짝 따

라오다가 사라진다. 물이 차갑고 단단한 모래에 활기차게 부딪친다. 나는 그것이

바다가 말하는 언어라도 되는 양 귀 기울여 듣는다. 하늘엔 별도 없고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밀물이 들어오는 걸 알 수 있다. 바다가 노래하듯 말하고, 가로등

과 부두의 주황색 불빛 덕에 조금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가느다란 은빛

줄무늬가 들어간 검정 레이스를 흔들어 과시한다. 이따금 개들이 행복한 발로 모래

밭을 질주하다 돌아온다. 우리가 다시 방파제에 이르러 마당을 건너기 전에 밤은

지나가버린다. 우리는 집 문 옆에 서 있다. 우리는 날카롭고 흰 낮으로 이어지는

연푸른 반도에 서 있다. 작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장미 덤불 아래서 뛰어간다.

개들이 기분 좋게 짖어댄다. 

  날마다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휘파람 부는 사람중 겨울의 순간들, 메리 올리버, p137~138




 



 

  얼마전 인왕산 자락길을 걷다 손가락 두 마디 만한 벌이 길가에서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벌레라면 무조건 겁부터 먹는 우리는 벌과 일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섰다. 벌이 어찌나

크던지 노란 얼굴의 커다란 까만 눈, 꼬리부분의 까만 줄무늬가 도드라져 보였다. 징그러웠지만

신기했다. 영화나 만화 속에서 나오는 벌 캐릭터처럼 서서 말이라도 할 것 같았다. 징검다리처럼

나무 판자가 놓여진 길은 어른 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벌의 옆을 지나는 사이 커다란

벌이 갑자기 날아오르기라도 할까봐 우리는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벌

이 어떻게 할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뒤이어 오는 사람들은 흘끗

쳐다보고 그냥 가거나 아예 벌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그러다 결국엔 무심한 아저씨의 운

동화 뒤축에 벌의 몸통이 밟혀버리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순간 벌이 몸을 떠는가 싶

었는데 뒤따르던 아저씨가 발로 밀어 숲 속으로 떨어뜨렸다. 너무 끔찍했다. 커다란 벌이 밟혀 짓

이겨진 것이 상상이 되어 몸서리가쳤다. 그런데 더 끔직한 것은 벌을 밟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냥 걸어가는 아저씨와 그냥 쓰윽 발로 밀어 버리고 말던 또 다른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어쩜 그렇

게 무감각하고 무심할 수 있을까. 


 그런 벌을 발견했다면 하루 종일이고 곁에 앉아 관찰할 사람이 있다. 시인 메리 올리버, 그녀는

아마 관찰을 넘어서 그 벌이 되었을 것이다. 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벌의 마음으로 생각했

을 것이다. 그녀는 집 구석 계단에서 거미줄을 치고 살고있는 거미를 지켜보았다. 암거미가 알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새끼 거미들이 나오는 모습을, 거미줄에 걸린 귀뚜라미를 서서히 잡아

먹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관찰자가 되어 기록했다. 그리곤 그 집을 떠나야할 때 거미줄 가장자

리에 알에서 깨어난새끼 거미들이 가득한 것을 보곤 청소부에게 그 계단을 청소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생명의 변화는 언제

나 놀랍고 신비한 마법과 같은 일이다. 못난 것과 이쁜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에 대한 구별도

없다. 한없이 공평한 눈은 모든 생명의 구석 구석에서 놀라운 발견을 찾아내곤 한다. 그녀는 자연

을 어떤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겸손하게 그 일부가 될 뿐이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시골 마을에서 매일 바닷가와 숲 속을 산책하며 자연과 주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며 소개했던『완벽

한 나날』로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신선한 충격이 떠올라 『휘파람 부는 사람』을 찾

아 읽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의 글은 도시 생활에 뿌옇게 흐려진 눈과 마음을 청량하게

닦아준다.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놀랄 만큼 촘촘하다. 그 시

선을 통해 읽는 세상은 EBS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세밀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는 남

다르다. 오랜동안 지식을 쌓아왔지만 지속적인 허기를 느꼈던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그 허기를

채우기로 한다. 증명 가능한 것들 너머의 정신성에서 직관으로 명확하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찾고 그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녀는 마치 인간계와 자연계를 오가는 정령처럼 그녀만이

발견할 수 있는 기운과 노래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그 영혼에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일을 그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를 지나쳐 숲으로 들어왔다. 오솔길 근처에 키 큰 단풍나무 한 그

루가 쓰러져 있다. 지금은 초봄이라 주름진 적살객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한 상태다. 쓰러질

때 받은 충격으로 나무껍질이 여기저기 갈라져다. 하지만 그 단풍나무는 서 있을 때와 거

의 다름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다. 예전처럼 바람 그물 노릇을 잘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이제

그것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나태함은 결코 아니고 여전히 야망과

견줄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걸 휴식이라고 부르자. 나는 그 단풍나무 가지 하나에 앉는다. 나는 한가함을 누려도 괜

찮다. 나는 만족스럽다. 내 집을 지었으니까. 부전나비라고 불리는 청색 나비들이 비밀 장소

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짝거리며 날아오른다. 비들은 작은 청색 옷을 입고 나뭇가지 사이

로 나풀거리며 날다가 내게 다가온다. 한 마리가 잠시 내 손목에 앉는다. 나비들은 나를 단

풍나무와 크게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육중한 몸으로 땅에 누워 햇

살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반쯤 잠들어 있는, 잎사귀에 감싸여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

는 이 나무 궁전과."

p30~31



 "한번은 숲에 들어갔다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푸른밀화부리를 발견했다. 검정에 가까운 짙푸른 깃털과 육중한 부리를 가진 그 새는 무성한 초록 나무 잎사귀들에서 등이 굽은 연초

록색 애벌레를 한 마리씩 쪼아 먹고 있었다. 푸른밀화부리는 이내 잎사귀들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바로 그 순간 나무 꼭대기에서 멕시코파랑지빠귀가 날아왔다. 고향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까지 온 작은 연청록색 개똥지빠귀였다. 그보다 멋진 순간은 경험하기 힘들지만,

내겐 가능했다. 나는 천사 둘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자동차 옆을 지키며 조용히 서 있었

다. 그들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고 발치에서는 불꽃이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순

간, 그런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소중히 간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

려진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 수 겠는가? 빛의 비밀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의 집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재에서 싸구려이

거나 하찮은 걸 모두 치워야 하지 않을까? 늘 희망과 기쁨, 흥분 속에서 살아야하지 않을

까?"

p156~157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기억이 아니라 영혼에 저장된다. 초등학교 과학

반 활동 중 천체 망원경으로 쌍둥이 별을 보았던 밤, 중학교 수련회 때 검은 하늘을 빼곡히 뒤덮

은 별들 사이로 흐르던 은하수를 보았던 밤이 그렇다. 돌고래를 만지고, 조랑말을 쓰다듬었던 느

낌, 손바닥을 쪼던 새의 딱딱한 부리의 감촉도 있다. 다른 세계로 통할 것 같았던 하얗게 눈이 쌓

인 전나무길, 깊은 해저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을 마주했던 거대 수족관, 어둠이 내린 포도밭에

날아다니던 반딧불이와 고대 원형 극장의 옅노란 조명 위로 떠오르던 반딧불이도. 이런 기억들은

특수 인화지에 찍힌 사진처럼 영원히 색이 바래지 않는다. 영혼에 쌓여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메리 올리버의 노랫말처럼 언젠가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반짝이는 연못물이 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은 아니지만 곧 우리는 새끼 양이고 나뭇잎이고 별이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연못

물이다"



 어제 점심을 먹으러 한 일식당을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하얀 나비가 날개짓을 하며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 날개짓이 가을 햇살에 유난히 눈부셨다. 나비는 깜짝 놀란듯 나를 피해 날아갔

다. 아쉬웠다. 잔 별무늬가 그려져있던 원피스 자락 위에 살포시 앉아주지, 싶었던 마음은 메리

올리버의 영향이 아닐까. 잠시 영혼이 깨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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