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 말보다 확실한 그림 한 점의 위로
조안나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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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예찬하는 꾸준함의 힘이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라는 책으로 의미를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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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 말보다 확실한 그림 한 점의 위로
조안나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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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성과 꾸준함에 기대 글을 쓰는 작가 조안나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매일 들여다보았던 그림에 대한 책이다. ‘프리랜서로 살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는 나의 성실성을 중시하게 된다’고 말하는 작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보면서 미국 시골 생활의 지루함을 달랬다. 그렇게 보낸 일상을 그림과 함께 풀어낸 글이 성실하게 쌓여 하나의 책이 되었다. 그녀가 예찬하는 꾸준함의 힘이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라는 책으로 의미를 엮어냈다.

그녀가 만나는 세계는 언제나 ‘글’이라는 하나의 통로로 연결된다. 이번에는 그림에 대한 에세이지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이전의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의식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보는 시간을 넣으라고, 그러면 그 시간들이 쌓여 무언가가 된다고. 굳이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일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 이고 ‘어떤 불행한 순간이 와도 다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나는 그녀처럼 매일 읽는 책과 끄적이는 글에 기대어 살고 있다. 꾸준히 쓰는 글이 책이 되고 꾸준함이 쌓여 의미를 만든다는 걸 그녀의 삶(작가 조안나는 한 두 해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책을 출간하고 있다.)이 증명해준다. ‘#매일쓰는글’이라는 태그를 붙여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도 쓸 거리가 없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미루었다. 그런 나를 그녀의 책이 등 떠민다. 우선은 노트북 앞에 앉으라고. 매일 매일 뭐라도 적어보라고.

책 속 가득한 그림을 보다 보면 이미 읽은 것 같아(그녀의 책에서는 일상성과 꾸준함, 자기만의 취향 찾기와 같은 내용이 자주 반복된다) 익숙한 글이 지겨울 새 없이 넘어간다. 모네, 피카소, 잭슨 폴락, 몬드리안, 마티스 등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베르트 모리조, 데이비드 헤팅거, 수잔 제인 월프, 까미유 코로와 로버트 라이먼처럼 생소한 화가의 그림을 섞어 책을 구성한 것도 흥미롭다. 무용수를 그린 아름다운 그림으로만 알고 있던 드가의 그림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용수들의 얼굴이 뭉뚱그려져 괴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것, 르누아르는 풍경보다 행복한 표정을 그리는데 몰두했다는 사실, 화려한 인물화로만 알고 있는 클림트가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빛은 기억에 의지하여 실내에서 표현해낸 것이라는 언급 등 ‘그녀만의 시선’으로 읽어낸 그림과 화가에 얽힌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같은 그림을 보고 남들과 다른 글을 쓰려면 어떤 시선을 가져야할까’ 고민했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익숙했던 그림이 궁금해져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두드러지는 결과물 없이 지속하는 일에 지쳐갈 때, ‘미련하게 이걸 해서 뭘 하나’싶은 의문이 들 때 조안나의 책을 펼치자. 당장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도 꾸준히 지속하면 힘이 생긴다. 꾸준하게 쌓인 것이 스스로 의미를 구축한다. 거리의 풍경을 눈이 올 때나 비가 올 때나 반복해서 그렸던 피사로, 같은 풍경을 여러 각도로 다시 그리며 입체주의의 시초를 마련했던 세잔, 은퇴 후 자신의 작업실에서 비슷한 모양의 병과 화병을 단순한 색조로 반복하여 그렸던 모란디의 작업이 그랬다. 되풀이하여 반복하는 사이 조금씩 성장했고, 그들만의 화풍과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위대한 화가의 삶이 아니더라도 내 손에 있는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한 권이 보여준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하는 일, 지겹게 반복하는 일상이 쌓여 책이 되기도 한다고.

“적어도 종이와 펜을 앞에 두고 그날의 날씨라도 적어야 한다. 잠시 쉴 때는 눈을 감고 다시 나아갈 힘을 모으는 무명의 화가처럼. 해가 뜬 날에도, 눈이 한가득 온 날에도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바쁘게 갈 길을 가는 저 사람들처럼. 그들을 놓치지 않고 그림에 담았던 피사로처럼. 앞날에 대한 불안은 잠시 접어두고 내 할 일을 해나가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창작이다.”

몇 권의 책을 낸 작가가 풀어낸 다짐이 내가 품고 있는 마음을 고스란히 적어낸 것 같아 반갑다. 그래, 그럼 이제 오늘의 날씨라도 적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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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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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의 소설 속에는 그렇게 비밀의 순간을 쥐고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지극한 섬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섬세함 뒤로 배어 있는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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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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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지나서 돌아보면 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감지했던 순간이 삶에 드문드문 놓여 있다. ‘문득 사건이 발생한다, 평범한 사람이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고뇌한다, 마침내 치명적인 진실을 손에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신이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대개 그 깨달음의 순간에 멈춰 있다고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썼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실린 단편들은 신형철의 ‘범박한 정의’에 대한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앤드루 포터는 내내 교묘하게 숨기어 독자가 마지막에 가서야 진실을 목도하게 하는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진실을 고백하는 쪽을 택했다. 그 순간 나의 삶이 진실에 베이는 것을 보았다고, 묵묵하게 회상하는 주인공이 있을 뿐이다. 알면서도 베이고야 마는 칼날이 삶의 도처에 놓여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기에 더 강하게 그 날을 부여잡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삶이 난폭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포터의 소설 속 주인공은 최소한 아무것도 모른 채 파국에 내던져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상처가 될 것을,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예감하면서 속으로 삼킨다. 나의 상처가 타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때론 말하지 않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법이라도 된다는 듯. 그렇다. 포터의 소설 속에는 진실을 끝내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표제로도 선택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그 중 단연 빛난다. 주인공 헤더는 출중한 외모에 전도유망한 미래가 보장된 콜린과의 결혼을 예감하면서도 자기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로버트와의 만남에서 ‘따스한 일렁임과 부드럽고 포괄적인 온기’를 느낀다. 로버트에게 기우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어 마음 속에 비밀의 방을 만들었던 헤더는 그 방의 존재가 콜린에게 드러났을 때 그녀와 콜린 사이에 놓여있었으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절대적 거리를 목도하게 된다. 헤더가 로버트에게 가졌던 감정과 콜린에게 느낀 사랑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다. 헤더의 감정을 분석하려면 ‘로버트의 책상 위에 놓인 등불의 빛’과 ‘로버트의 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러니 우리의 감정을 형성하는 이론이 있다면 어떤 상황을 구성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아닐까 싶어진다. 앤드루 포터가 촘촘하게 짜낸 문장들 속에는 헤더가 로버트와 보낸 시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시간의 빛과 물질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손에 잡힐 듯 이해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것을 품고 있는 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지, 돌아갈 수 없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인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포터의 소설 속에는 그렇게 비밀의 순간을 쥐고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지극한 섬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섬세함 뒤로 배어 있는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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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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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빨리 졌다. 지평선과 오렌지빛 바다와 숲이 온통 벌겋게 타올랐다. 해는 서쪽의 산 너머로 사라졌다. 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땅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고요한 논들에 하늘이 비쳤다. 숲속에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렸다. 더위는 물러가지 않고 여전했다.” p60

 시적 표현을 담은 간결한 문장이 적요한 풍경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그 문장을 읽다보면 묘사된 풍경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단 하나의 문장이 외롭게 적혀 있는 여백이 많은 페이지에서 조차 글로 풀어 쓰지 않은 무수한 풍경이 일렁여 한참 머물러 있어야 했다. 고독한 삶을 버텨내는 실존에 대한 성찰이 아름답게 수 놓인 작품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작가가 스물 한 살의 어린 나이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짧은 소설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프랑스와 중국의 지배에서 막 벗어나 세를 확장하려는 왕조의 분쟁, 서양의 침입과 포교 활동으로 인한 혼란기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 당시의 모습을 빌어온 것이 분명하지만 시적 은유와 신앙을 넘어선 사랑, 인간 실존에 대한 신성한 사유가 넘실거려 단순한 역사 소설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이야기는 어린 황제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었으나 새로운 세상을 일구겠다는 포부로 베트남으로 출항하는 프랑스 선교단에서 시작한다. 배는 긴 시간이 걸려 간신히 베트남에 도착하지만 프랑스 내의 혁명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는 잊혀져간다. 하지만 그들은 망각과 외로움, 낯선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이어간다.

 베트남으로 떠난 수도사와 수녀들이 서서히 본국(프랑스)에서 잊혀지고 마침내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면서 급기야 자신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곳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군더더기 없는 핵심’만으로 존재하는 어떤 극에 다다르게 된다.

“그들은 망각을 택했었고 그 속에서 무한히 존재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p138

 서서히 잊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의 존재가 잊혀졌다는 것을 자각할 때의 외로움과 절대적 고독을 상상해본다. 세상에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기억조차 하지 않을 때 삶은 어떤 힘으로 지탱될 수 있을까. 한 아이의 엄마인 나는 내 품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작은 아이를 보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아이의 순수한 웃음을 보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고 그런 아이의 보드라운 포옹이 그리워 서둘러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잊혀진다면, 삶은 어떤 형태로 지속될 수 있을까. 아득해진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던 고독의 세계가 세상에서 잊혀지는 삶을 마음 한 켠에서 꿈 꿔 보게 한다. 익숙한 나를 잊어버리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잊혀진 후 내 안의 새로운 존재를 배우고 발견하는 삶, 완벽한 고독에 휩싸일지라도 가장 단순하고 핵심에 가까운 어떤 것을 발견하는 삶을 말이다. 옮긴이 김화영의 표현처럼 “만남을 찾아가는 망각의 여정”이 고요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는 동안 짧은 문장은 느리게 읽혔다. 단문과 단문 사이의 작은 공간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문장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막의 세계에 둘러싸였고 마침내 책장을 덮었을 때 이 작은 책이 형성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잠겨 침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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