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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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사전의 겉표지는 찢어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는 녹색 비닐 재질이다. 가볍고 내 손바닥보다 더 작다. 세숫비누 크기만 한 사전이다. 뒷면에 이탈리아 단어 약 4천 개를 수록했다고 적혀 있다.

  우피치 박물관의 한적한 갤러리를 돌아다니다가 여동생이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그 사전을 펼쳤다. 영어 부분을 찾아서 이탈리아어로 모자가 어떤 단어인지 익혀뒀다. 분명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겠지만 이러저러해서 난 우리가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박물관 경비원에게 말했다. 놀랍게도 경비원이 내 말을 알아들었고 우린 금방 모자를 되찾았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갈 때마다 이 사전을 지니고 다녔다. 난 사전을 늘 가방 안에 넣고 다닌다. 길을 찾을 때나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갈 때, 신문 기사를 읽으려 할 때면 단어들을 찾는다. 사전이 날 안내해주고 보호해주고 모든 걸 설명해준다.

......

  사전 첫 장 한쪽 구석에 난 이렇게 썼다.

  "시도하다(provare a) = 노력하다(cercare di)"

  이 조합, 이 어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끈질긴 시도, 끊임없는 시험 이외에 다름아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사전」(p15-17), 줌파 라히리



 



  이탈리아로 여행을 갈 때면 손바닥만한 회화책을 항상 챙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고 간 책은 번번이 여행 가방 속 들어간 자리에 그대로 놓여 이탈이아의 공기 한 번 쐬어보지 못한 채 돌아오곤 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과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매번 시도는 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은 없었다.

 나에게 "시도하다 = 한 번 해보다"였다. 이 작은 책에서 '시도하다'의 전혀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도하다 = 노력하다"

 매번 시도는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던 나는 미국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썼다는 이 책을 손에 들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소설을 쓰고 유수의 상까지 받은 미국의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홀연히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해 모든 글은 이탈리아어로 쓰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탈리아어의 실제 세상으로 뛰어들어 부닥쳤던 불안과 걱정, 이탈리아어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동경, 시행착오과 당혹스러움의 경험들,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쓴 짧은 단편 소설 두 편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쌓아 온 노력의 성과물에서 스스로 떨어져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녀. 이탈리아를 좋아하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글을 쓰는 작가가 모국어까지 뒤로한 채 새로 익힌 완전하지 않은 외국어로 글을 쓰기로 했다는 결심과 시도는 충격적이었다. 그 용기와 도전이 놀라웠고, 그녀가 뛰어넘은 한계가 부러웠다. 후천적으로, 그것도 나이가 들어 익히기 시작한 언어로 작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해낸 그녀가 내 앞에서 희망의 빛처럼 반짝거렸다.




  내 분열된 정체성 때문에, 아마 성격 때문에 난 불완전한, 다시 말해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다. 동일시하는 언어가 부족한 탓이다. 미국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벵골어를 외국인 억양 없이 완벽하게 말하고자 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뭣보다 내가 완벽히 그분들의 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서 였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한편 난 미국인으로 온전히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내가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했음에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뿌리를 박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난 두 가지 면이 있었고, 둘 다 불완전했다.내가 느꼈던 불안, 간혹 지금도 느끼는 불안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실망스럽다는 느낌에서 온 것이다.

  여기 이탈리아에서 난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매일 말을 하면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불완전과 맞부딪힌다. 이 애매모호한 선이 흔적을 남기며 어디든 날 따라온다. 날 배신하고 내가 이탈리아어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성인이고 작가인 내가 왜 불완전과의 이 새로운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명확하게 이해가 될 때의 황홀감,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자극한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불완료과거 (p93-94) 




  벵골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줌파 라히리는 벵골어를 사용하는 부모님때문에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자라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완벽하게 사용하게 되었지만 부모님의 모국어인 벵골어에 대해서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이민자로서 겪는 모국어에 대한 감정적 불완전함은 언제나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모국어가 될 수 없다는 불완전함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되었을까. 소설가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그녀는 그녀가 처한 안정적인 상황-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자기가 원하는 명확한 단어를 찾아 글을 쓸 수 있는-이 오히려 창작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이전의, '익명'의 작가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 또한 모국어(영어)라는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불완전한 세상, 완벽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외국어의 세상으로 자신을 옮겨놓게 한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외부에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는 사전이나 메모장, 펜이 필요 없는 날을 꿈꾸고 살아야 할까? 내가 영어로 책을 읽듯이 도구 없이 이탈리아어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을 꿈꾸어야 할까? 이런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게 옳은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게 많아도 나는 아주 활동적이고 열심인 이탈리아어 독자면 족하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한계가 있는 조건을 더 좋아한다. 무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한계가 있음에도 지평선은 끝없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다른 언어로 읽는다는 건 성장과 가능성의 끝없는 상태를 내포한다. 배우는 초심자로서의 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으리라.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사전을 가지고 읽기 (p42-43)




  노력을 좋아하고 한계가 있는 조건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자신과 이탈리아어 사이의 거리-모국어가 아니기때문에 아직은 완벽하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배열할 수 없는-가 채워지는 순간 더 이상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변의 것을 가능한 익숙한 것으로 배치하고 싶어하는 나이가 되어 외국어 공부마저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어지던 나에게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우려는 그녀의 모습은 신선한 경종이 되었다.  모르던 단어의 뜻을 알았을 때, 같은 의미의 여러 단어를 수집하고, 통역사 없이 대중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가 느꼈을 기쁨과 희열을 어슴푸레하게 짐작한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는 순간부터 삶은 생기와 기쁨을 잃어버린다. 배움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삶은 지속적인 기쁨을 약속할 것이다. 그녀는 내 안에 있던 성장의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라 말한다. 


  이 작은 책은 줌파 라히리보다 크다. 그녀가 영어를 버리고 새로 익힌 이탈리아어로 쓴 책은 단순한 문장과 읽기 쉬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작(영어로 쓴)에서 읽었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과 섬세한 분위기는 없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긴 시간 이탈리아어에 쏟은 그녀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매순간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그녀의 장대 끝이 어딘가 닿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녀가 열어 보여준 가능성의 세계가 이 작은 책을 커다랗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고 영문 소설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줌파 라히리처럼 몇 페이지를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표시해 두었다 단어들의 뜻을 찾아 나만의 메모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몰랐던 단어의 뜻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뜻을 알게 된 단어로 완성될 문장의 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도하다 = 한 번 해보다"의 정의는 이제 폐기하도록 하자. 이제 "시도하다 = 노력하다"가 되었다.

(이 글에서 언급한 배움과 노력은 비단 외국어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그 시작이 언제이든, 우리는 노력하는 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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