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치의 줄리안 - 팬데믹 시대와 그 이후를 위한 지혜
매튜 폭스 지음, 이창엽 옮김 / 삼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리치의 줄리안-팬데믹 시대와 그 이후를 위한 지혜』  

▪︎원제: 《Julian of Norwich-Wisdom in a Time of Pandemic—and Byound》(노리치의 줄리안: 세계대유행 시기의 지혜—그리고 그 너머), (iUniverse, 2020.)
▪︎[티모테오 야고보 마태오] 매튜 폭스(Timothy James ˝Matthew ˝ Fox , 1940~) 지음/이창엽(1968~) 옮김, 128×188×16mm 264쪽 302g, 삼인 펴냄, 2022.
---

‘노리치의 율리아나‘라고 하면 익숙할 이름인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1415경)은 영어식 표기이다. 생몰 연대를 우리나라 시대로 보면 고려 말 조선 초 시기이다(고려 충정왕1년~조선 태종 15년).
『보여주신 것』(Showings)과 『하느님 사랑의 계시』(Revelations of Divine Love, 신성한 사랑의 계시)라는 두 저작을 남겼으니 잉글랜드 언어로 여성이 쓴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은 줄리안이 서른부터 평생동안 편집하고 완성한 일곱 가지 교훈을 해설한 책이다.
『원복』(《Original Blessing: A Primer in Creation Spirituality Presented in Four Paths, Twenty-Six Themes, and Two Questions》, 1983., 황종열 레오 옮김, 분도출판사, 2001.)과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어머니 땅의 치유와 지구 르네상스의 탄생』(《The coming of the cosmic Christ: The Healing of Mother Earth and the Birth of a Global Renaissance》, 1988., 송형만 옮김, 분도출판사, 2002.)으로 유명한 지은이는 현대 들어 가장 큰 세계대유행(팬데믹)인 코로나19를 겪으며, 이미 흑사병 대유행을 겪었던 줄리안의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학 개념을 담아 한 권으로 요약하여 정리했다.

    첫째, 어둠을 직면
    둘째, 선함, 기쁨, 경외
    셋째, 자연과 하느님은 하나
    넷째, 여성적 신과 하느님의 모성
    다섯째, 비이원론을 맛봄
    여섯째, 우리 감각성을 신뢰
    일곱째, 악을 이기는 사랑의 힘은 안녕으로 이끔

위의 일곱 가지 교훈을 다시 창조영성에서 영적 여정을 언급하는 네 가지 길로 나누어 본다.
    첫째 길: 긍정의 길, 경외와 경탄, 기쁨과 환희의 길
    둘째 길: 부정의 길
    셋째 길: 창조의 길
    넷째 길: 변형의 길

줄리안이 쓴 책을 후세 몇 세기 동안 철저히 무시한 결과 가정해 볼 수 있는 사건을 예로 든다. 개신교 종교개혁 발생, 토착 문화와 특정 인종 말살, 노예 제도, 두 차례 세계 대전, 지구 파괴와 기후변화 등이다. 이런 재앙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줄리안 이후 칠백 년이 지나고 수차 대유행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나 했더니 금세 잊고 밀쳐 버리고자 한다. 그 편이 훨씬 수월하다. 아닌 줄 어렴풋이 알지만 시선을 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 수명이 짧아 백 년도 못 넘기니 이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태어나 살면서 배우고 익힐 즈음이면 다시 돌아가야 하니 깨닫고 실천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 천 년을 반복하며 살아 왔지만 축적된 양이 적어서라면? 앞으로 천 년을 더 지내면 조금 달라질까?
---
▪︎책 한 권 읽고나서, 한 문단 고르기▪︎
˝
우리 인간들에게 여러 세기 동안, 특히 산업혁명부터 오늘날까지, 동기를 주었던 자연 파괴가 절정에 이른 시대에, 우리가 맑은 마음과 생각으로 땅과 자연이 거룩하다고 여기는 줄리안의 생각을 듣는 것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아울러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생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토머스 베리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을 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거룩함을 경험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을 것이른 것도 사실이다.˝
-128쪽- <3장 자연과 하느님은 하나다 – 우주적 그리스도> 중에서.
˝
---
#노리치의줄리안_팬데믹시대와그이후를위한지혜 #Julian_of_Norwich #Wisdom_in_a_Time_of_Pandemic_and_Byound #매튜폭스 #MatthewFox #이창엽 #삼인 #여성성 #어머니 #범재신론 #panentheism #환시 #코로나19 #covid19 #흑사병 #blackdeath #세계대유행 #팬데믹 #pandemic
#책 #독서 #책읽기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 #books #readingbooks
<===>
https://www.facebook.com/share/p/15SQkT2ipV/

https://www.instagram.com/p/DCEgQMWT85k/?igsh=eHVwbTdjZWd4ZXZ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도란 소박하지만 편리한 가이드
바브 시스키에비츠 지음, 서영필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도란-소박하지만 편리한 가이드』

▪︎원서《The Handy Little Guide: Prayer》(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OSV, Inc.) 97×152×13mm 72쪽
▪︎[바르바라]바브 시스키에비츠 OFS(Barb Grady Szyszkiewicz, OFS)지음/ 서영필 안젤로 SSP 옮김, 120×183×6mm 94쪽 119g, 성바오로 펴냄, 2024.
---
스레드에 들어가면 누구나 작은 배를 탄다. 배 이름은 ‘에야이(AI)‘이다. 올라타고 ‘에야 디야~‘ 출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다 보면 가장 많은 글이 대나무 밭 카페 임금님 귀타령이다. 다음은 일상의 간단한 궁금증 해결이다. 그중 그리스도교 교파를 막론하고 가끔 ˝이렇게 기도해도 돼?˝ — 눈을 떠도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질문도 많고 답변도 가지각색이다. 그렇게 서로 묻고 답하고 또 묻고 또 답하고 격려하고 타박하며 소통하는 공간이다. 더욱이 대부분 예삿말 평어 대화라 스스럼이 없다.

그래, 바로 이 책이다. 바뻐 죽겠는데 책을 들이밀면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세상이라지만 막상 이 책을 보니 그런 걱정이 싹 사라진다. 왜냐고? 얇아서! 게다가 글자까지 엄청나게 크다. 무려 순 본문만 보면 69쪽 남짓에 글꼴 크기 12포인트이다. 원서명 부제처럼 그저 내 손 안에 쏙 작은 안내서랄까. 주머니에 쏙 수진본(袖珍本)이랄까. 간단한 소책자(brief booklet)이니 감을 못 잡겠다면 당장 실물 책자를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읽어 보시라. 그리고 해 보시라!

원서 시리즈를 보니 이 책만이 아닐 것이기에 다음 기대가 크다.
---
▪︎책 한 권 읽고나서, 문단 하나 고르기▪︎
˝
•••청하고 찾고 두드려 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나는 충분히 잘 기도를 한 것인가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분과 나누는 것은 옳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방식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도가 하느님의 목록에서 올바른 항목에 표시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다거나 앞으로도 응답받지 못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기도에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76쪽– 「이런 경우에는 어떻개 하나요?–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요?」 중에서.
˝
---
#기도란_소박하지만편리한가이드 #TheHandyLittleGuide_Prayer #OurSundayVisitor #OSV #바브_시스키에비츠 #BarbSzyszkiewiczOFS #재속프란치스코회 #OFS #서영필_안젤로 #SSP #성바오로
#책 #독서 #책읽기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 #books #readingbooks
<===>
https://www.instagram.com/p/DBlwIhATHhG/?igsh=bjFiOWRkamU0cDl3

https://www.facebook.com/share/p/1JgN3FTYG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로버의 후회 수집
미키 브래머 지음, 김영옥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로버의 후회수집』

▪︎원서: 《The Collected Regrets of Clover: An Uplifting Story about Living a Full, Beautiful Life》(클로버가 수집한 후회: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에 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 148×218×30mm 320쪽, Viking, 2023.
▪︎미키 브래머(Mikki Brammer) 지음/김영옥 옮김, 138×205×22mm 444쪽 542g, 인플루엔셜 펴냄, 2023.
---
서른여섯 살 클로버 브룩스는 뉴욕에 사는 임종 도우미(death doula)이다.
다섯 살 때 유치원 담임 하일랜드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다가 의자에 앉은 채 돌아가시는 것을 무덤덤하게 지켜 보았다. 여섯 살 초등학교 일학년 때 두 밤만 자고나면 양쯔 강 휴가 여행지에서 돌아올 부모님은 배 사고로 돌아가셨다. 남은 가족은 패트릭 외할아버지 뿐. 그로부터 외할아버지를 따라 인종의 용광로 뉴욕으로 가서 외할아버지 아파트에서 단둘이 살았다.

스물네 살 캄보디아 여행 중이던 날 외할아버지마저  밤늦게 컬럼비아 대학 교수실 의자에서 뇌졸중으로 홀로 돌아가셨다. 역시 임종도 못했다. 죽음학 교수가 되려던 진로를 임종 도우미로 바꾼 계기였다.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같은 아파트 이웃인 리오 드레이크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고, 마지막 말을 조언 공책에 기록했다: ˝아름답게 죽는 방법은 결국 아름답게 사는 것뿐이야.˝

친구도 거의 없이 임종 도우미를 하고 살면서 의뢰인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말을 의식적으로 기록했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을 세 범주로 나누어 이름을 붙인 공책에 기록했다.
‘달리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일‘ - 후회,
‘살아온 과정에서 배운 것‘ - 조언,
‘마침내 드러낼 준비가 된 비밀‘  - 고백
여행 때문에 부모 임종도 외할아버지 임종도 못한 클로버 브룩스가 서른여섯 살 은둔을 벗어나 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에 들고 가는 공책의 제목은 ‘모험‘ 이다. 네팔에서부터 마음에 담았던 이와 나누고 싶은 모험을 석 달 동안 써가며 프랑스 코르시카 섬 언덕에 올랐다.

클로디아는 매장과 화장 중 어느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 클로버에게 바로 화장이라고 메뉴판 고르듯 태연히 대답한다(「27」 220쪽). 살면서 즐길 수 없는데 세상에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없다며 수장은 매력적이라고 하는 클로디아의 마음을 읽었다. 그 마음 그대로 코르시카 섬 보니파시오 절벽을 치고 멀리 사라지는 클로디아의 모습을 보았다.
---
▪︎책 한 권 읽고나서, 한 문단 고르기▪︎
˝
노년층의 패션이 특정한 연령대, 주로 30대나 40대에 자신들이 선호하던 스타일에서 멈추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로웠다. 흔히 (이미 옷이 충분히 있으니 새로 사들일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절약이 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스스로 전성기라 여겼던 나날에 대한 향수 때문으로 보이기도 했다. 살아갈 날이 지나온 날보다 더 많던 그때를 말이다.
-20쪽- <3> 중에서.
˝
---
▪︎˝옥에티˝▪︎
•80쪽 밑에서 9줄: ‘······발음이 가장 어려운 말은 ‘제유법‘이다.‘
‘제유법(提喻法)‘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순간 당황! 뭐가 어렵지? 아하, 알겠다—뜻을 옮기기보다는 원문 낱말을 음차 표기하였으면 금방 이해를 할텐데!  ‘써네크더킈‘, ‘씨느크덯끠‘, ‘시네도키‘, ‘씨네돜희‘ ······‘synecdoche[/səˈnekdəkē/]‘
•105쪽 위에서 11줄: ‘지불‘은 ‘지급‘.
•171쪽 7줄: ‘포니테일‘은 우리말 ‘말총머리‘?
---
#클로버의후회수집 #The_Collected_Regrets_of_Clover #An_Uplifting_Story_about_Living_a_Full_Beautiful_Life #Viking #미키브래머 #MikkiBrammer #김영옥 #인플루엔셜 #임종도우미 #death_doula #임종후회목록 #임종조언목록 #임종고백목록
#책 #독서 #책읽기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 #books #readingbooks
<===>
https://www.instagram.com/p/DBvjuyQTltQ/?igsh=NW10aWxrZ3doeTBi

https://www.facebook.com/share/p/14krt36xG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말테의 수기 - 문예 세계문학선 041 문예 세계문학선 4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박환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말테의 수기』

▪︎원서명: 《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말테 라우리스 브리게 수기)(1910)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본명: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레나토 가롤로 굴리엘모 요한 요셉 마리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 1875-1926) 지음/박환덕(1933~) 옮김, 문예 세계문학선 41, 문예출판사 펴냄, 교보문고 이펍전자책, 2006.
---

매일 묵상글을 보내주는 어느 분이 그저께 글에서 죽음과 연관하여 언급한 것을 보고 다시 찾아 읽었다. 나나 그분이나 처음 읽었던 적이 아마 마흔 해는 족히 지났으리라 싶다. 나는 밀어 제쳐두었다가 망각하는 혜택을 입었고 그분은 불러내어 묵상 실마리로 삼는 해석의 은사를 받았다. 처음 읽었던 이십 대 당시에는 사회에 내던져진 내 이야기처럼 공감했고 무엇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도 같이 썼다. 다시 읽는 지금은 낯선 도시 원룸에서 외로움과 불안감을 떨쳐버리려는 스물여덟 남자 청년 무명 시인이 살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았다.

시대를 불문하고 미래란 항상 불투명하지 않은가. 호호 불며 닦아 먼지 한 점 없는 깨끗한 유리창이지만 바깥쪽은 손쓸 수 없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내다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기보다 없다는 말이 제격이다.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창문을 열 수 없다.어렸을 적 겪은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 죽은 이를 보던 환영, 아버지 죽음에 이어 쓸쓸히 맞으리라 예상하는 자신의 죽음이 두렵다. 꾸밈없이 솔직하다.

말테에게는 쓰는 것만이 두려움을 떨칠 길이고 방법이었다. 사물과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쓰는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이었다. 잊혀지는 기억 흐름을 쓰기로 되살렸다. 예민하고 불안하고 외롭기에 쓸 것이 보였다.

다시 읽고 나니 프루스트를 만나면 잃어버린 시간도 되찾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아주 조금 든다.
---

▪︎책 한 권 읽고나서, 문단 하나 고르기▪︎
˝
내가 이미 말했던가?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그렇다. 나는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투르나, 그러나 부지런히 수업하리라.
예를 들면 나는 오늘날까지,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몇억이라는 인간이 살고 있으나, 얼굴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다.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물론 그러한 얼굴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더러워지고 주름이 잡혀, 여행 중에 끼고 있던 장갑처럼 느슨해져버린다. 그들은 검소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얼굴을 바꾸지 않고 한 번도 씻지를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주장을 하나, 그 누구도 반증해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얼굴을 네다섯 개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사용하지 않는 얼굴은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그것을 쟁여두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그 얼굴을 씌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 얼굴을 쓰고 외출할 경우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도 이상스럽지는 않다. 얼굴은 여하튼 얼굴이니까.
그런데 또 무서울 정도로 차례차례 재빨리 얼굴을 바꿔, 금방 낡아버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아무리 바꾸어도 없어질 것 같지 않다가 40세를 전후해서 이미 최후의 얼굴에 이르러버린다. 물론 이 얼굴에도 특유의 비극이 생긴다. 이러한 사람들은 얼굴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일주일이 채 못 되어 최후의 얼굴도 쪼개지고, 구멍 뚫리고, 여기저기가 종이처럼 얇아지고, 차츰 얼굴도 뭣도 아닌 살갗이 나온다. 그들은 그, 얼굴이 아닌 얼굴을 달고 돌아다니는 셈이다.
-「1부」 중에서-
˝
---
#말테의수기 #Die_Aufzeichnungen_des_Malte_Laurids_Brigge #말테라우리스브리게의수기 #라이너마리아릴케 #RainerMariaRilke #박환덕 #문예출판사
#책 #독서 #책읽기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 #books #readingbooks
<===>
https://www.instagram.com/p/C-iC9_IzNkk/?igsh=MWxzcGs1NXIxZHRrMw==

https://www.facebook.com/share/p/XHgQWavgY5yBEiYS/?mibextid=oFDkn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
이수연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

다른 제목: 《The Girl in a Phone Booth》(공중전화 부스 안의 아이)
이수연 지음, 140×205×22mm 368쪽 474g, 클레이하우스 펴냄, 2024.
---
▪︎01.
지은이는 소설 등장인물의 다양한 삶을 모두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인 듯 소설인 SF 요소를 더한 ‘자살생존자‘ 이야기이다. ‘자살생존자‘라고 하니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여 살고 있는 이라고만 짐작했는데, 자살 당사자와 관계가 있는 모든 이를 말한다고 한다. 자살을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심리적으로 상처를 겪은 사람이다. 주로 유가족이겠고 친지까지 아우른다.
▪︎02.
작품 안에서 주인공이 운영하는 ‘심리부검센터‘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심리부검‘이란 고인의 삶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조사 면담 형식의 상담 프로그램이다. 자살 원인과 까닭을 분석하고 끼친 영향을 알아내면서 남은 이가 고인의 삶을 정리하고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모든 상담이 그렇듯이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와 라포(rapport) 형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소설 속에서 신뢰와 공감을 잘 묘사했다. 어디 상담만 그럴까. 일상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읽는이도 지나온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눌러 놓았던 마음을 꺼내어 본다.
▪︎03.
사랑했던 이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 할까. 공중전화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 오죽할까? 종교가 담당해왔던 이승과 저승을 잇는 끈이 공중전화를 통한다. 그곳 공중전화 부스도 과거의 유물이라 철거된다면, 생활사 박물관으로 옮겨진다면 어디서 끈을 잡을까? 기억하고도 싶지 않았던 엄마가 등장하고, 아빠 마음을 듣던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서 강지안은 자신의  다섯 단계를 마무리한다.
▪︎04.
아픔은 남의 것이다. 막상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느끼지 못한다. 아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건강한 줄 알다가 점점 피폐해지고 결국에는 남에게 아프냐는 말을 듣는다. 들어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 앞에서 겪는 애도 또는 상실의 다섯 단계(DABDA)인: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정(Denial),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는 분노(Anger), 혹시나 나의 잘못은 아닐까 하면서도 질문과 자책이 오가는 타협(Bargaining), 무기력하고 공허해지는 우울(Depression), 부정적 정서에서 탈피해 현실을 인식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Acceptance) 중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05.
부정-분노-타협(협상, 거래)-우울(좌절)-수용 순서라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겹칠 수도 뒤바뀌어 닥쳐올 수도 있다. 사람마다 사안마다 걸리는 시간도 다 다르니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바로 상담이 필요한 이유이다. 눈여겨 보고 상담하고 권유하고 인도해 주어야 한다. 정작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오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지 않도록 조만간 국민건강보험 보험급여 항목에 오를 날도 기대한다.
▪︎06.
지은이는 긴 투병 끝에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원제: 《Autopsy of a Suicidal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 Shneidman, 1918~2009) 지음/조용범 옮김, 학지사, 2014)에서 처음 ‘심리부검‘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연구하여 기획한 소설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글로 말한다. 그러기에 그동안 여러 글을 읽으며 지은이를 보고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 지은이는 보고 싶다. 북토크를 한다면 꼭 가서 길었던 삶을 들어보고 싶다.
---
▪︎07. 관련 작품▪︎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 원제: 《Autopsy of a Suicidal Mind》(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 Shneidman, 1918~2009) 지음/조용범 옮김, 학지사, 2014.)

■『죽음과 죽어감』, 원제: 《On Death and Dying》(1969),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 지음/이진 옮김, 청미 펴냄, 2018.[이레 펴냄, 2008.]

■『죽음과 죽어감에 답하다- 죽음에 관해 가장 많이 묻는 질문들에 답하다』, 원제: 《Questions and Answers on Death and Dying: A Companion Volume to on Death and Dying》(1974),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안진희 옮김, 청미 펴냄, 2018.

■『이반 일리치의 죽음』, 원제: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188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1910) 지음/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24[모노에디션, ‘광인의 수기‘ 합본].
–윤우섭 옮김, 현대지성 펴냄, 2023[현대지성클래식 49, ‘주인과 일꾼‘, ‘세 죽음‘ 합본].
–김연경 옮김, 민음사 펴냄, 2023[세계문학전집 438].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2016[문예세계문학선 122, ‘악마‘, ‘신부 세르게이‘ 합본] .
–이강은 옮김, 창비 펴냄, 2012[창비세계문학 7].

■<리빙: 어떤 인생>, 원제: <Living>, 올리버 허머너스(Oliver Hermanus, 1983~) 감독/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 石黒一雄, 1954~) 각본, 102분, 한국 일본2023[영국2022].

■<이키루>, 원제: <生きる>, 구로사와 아키라(黒澤 明, 1910~1998) 감독, 143분, 한국2004[일본1952].

---
▪︎08. 책 한 권 읽고나서, 문단 하나 고르기▪︎
˝
˝얻은 건 있어?˝
˝글쎄, 저분은 아직 애도의 첫 번째 단계인 ‘부정‘에 있다는 것 정도.˝
˝흠. 아들은?˝
˝세 번째, 타협의 단계. 주된 감정은 죄책감이지.˝
˝흐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퀴블러 로스가 말한 상실의 다섯 가지 단계는 이 일을 시작하며 받은 상담 교육에서 배웠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부정과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하는 단계, 혹시나 나의 잘못은 아닐까 하면서도 질문과 자책이 오가는 타협과 무기력하고 공허해지는 우울의 단계. 그리고 부정적 정서에서 탈피해 현실을 인식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 나는 눈앞에서 일어난 부정의 모습을 보며 그와 그의 아들의 갈등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서로가 같은 던전에 들어갔는데 다른 길로 빠져 막다른 곳이 나와버린 느낌. 나는 던전 RPG 게임이 떠올랐다. 내 상상이 맞다면, 이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다시 서로 만나 새로운 길로 가야 했다.
-222~223쪽- 「4장. 어쩌면 진실보다 중요한」 중에서
˝
---
▪︎09. ˝옥에티˝▪︎
  •그, 그녀
요즈음 지탄받는 낱말이다. 우리말과 우리 사회 문화와는 전혀 어울지 않는 말, 성차별적.
  •225쪽 위에서 3~4줄: 암 선고를 —> 암 진단을,
앞 224쪽 위에서 5줄에는 ‘암 진단‘이다. ‘선고‘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암 진단이 바로 사망으로 이어지던 시절 ‘사형 선고‘를 빗대어 쓰던 말.
---
#마지막마음이들리는공중전화 #이수연 #클레이하우스 #부정_분노_타협_우울_수용 #퀴블러로스 #ElisabethKüblerRoss #죽음앞에서애도상실의다섯가지단계 #DABDA #심리부검 #자살 #자살생존자 #자살완료 #슬픔
#책 #독서 #책읽기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 #books #readingbooks
<===>
https://www.facebook.com/share/p/i1xbBp4EQdaEywwM/?mibextid=oFDknk

https://www.instagram.com/p/C-DG4r3zOaf/?igsh=MXdraDUza2tiYjkz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