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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양장)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움 속 사춘기 재석이.외제차 탄 할아버지를 만나 빛을 보고 바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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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25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맛있는 저녁 드시고, 따뜻한 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1-25 18: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국은 뭘 할지..ㅠㅠ

서니데이 2016-01-25 18:12   좋아요 1 | URL
저녁이면 저희 엄마도 늘 하시는 이야기인데요.^^
저희집은 메뉴 선택권은 전적으로 엄마가 가지고 계셔서.^^
 
혼자 가서 미안해 - 걱정 많고 겁 많은 유부녀의 3개월간의 유럽 가출기
권남연 글.사진 / 꿈꾸는발자국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유부녀 가출하다.

 책 제목을 본 순간 갖고 싶었다. 나도 언제가 미안하지만 '혼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나도 저자처럼 엄마고 아내고 며느리고 딸이다. 하지만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 몇 시간뿐. 그 시간마저 엄마에게 "책 읽는 시간을 줄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저자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로 월경까지 끊길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소심하게 또 나는 책을 펼치고 마음만 여행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여자 혼자 여행

 언젠가부터 나는 여행기를 읽지 않았다. 어느 아나운서는 지나치게 자신이 맺은 인맥에 대한 자랑 글이 대부분이었다. 지도를 뛰쳐나가라던 혼자 여행하기로 유명했던 여성 작가는 과장 거짓 내용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나와 다른 조건 사람들이 여행하는 여행기는 이질감이 들기 마련이다. 이 책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듯 나와 같은 조건과 상황인 저자는 나를 편하게 같이 여행으로 안내했다. 
 작가는 내게 알려준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말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때로 외롭지만 적어도 하이킹을 하는 동안에는 외로울 새가 없다. 오히려 혼자라서 더 좋기도 하다. 온전히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온전히 내 페이스대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43)
혼자 여행하면 이렇게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우울함을 이겨내는 일도,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모두 나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면서 강해진다.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찾게 된다. 당시에는 서러울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꽤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간다.(77-78)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매력에 빠질 무렵 큰 어려움에도 봉착한다. 다름 아닌 다른 남자들의 과도한 추태. 여행하는 혼자인 여자에게 쉽게 호의를 가장해 희롱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일단 조심하고 볼 것.
특히 인사를 가장한 스킨십에 요주의!! 탕탕!!(125)

이 책은 진짜다. 진짜 평범한 유부녀의 여행기. 그렇기에 혼자 여행하면서 느낌과 남자들 때문에 겪었던 곤란들이 제대로 전달됐다

멀리 있기에 보이는 것들

 저자가 가는 여행에 대한 감동과 행복은 덤이다. 여행을 통해 놓고 온 자신이 지켜야 하는 자리에 대해서도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결코 그 안에 있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혼자 여행하면서 혼자이기에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남편 부재에 대해 뼈져리게 느낀다. 여행 막바지에 신혼여행으로 간 터키에 다시 온 저자는 혼자 온 터키는 예전같이 좋은 느낌이 아님을 통해 절절히 깨닫는다. 그렇기에 전화로 남편에게 자신이 겪은 남자에 대한 곤란을 얘기했을 때 화가 난 남편을 이해한다.

결국 의심도, 질투도, 오해도, 사랑이 있기에 존재하는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겐 확신이 있었다. 이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확신. 세상 누구보다도 날 걱정하고, 위해주고,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확신. 비록 때때로 오해하고, 의심하고, 질투하고, 맘에 없는 말로 상처 주기도 하지만 본심은 날 누구보다도 믿고 싶어 한다는 것. 그래서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내줄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그 마음을 알아줘야 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했다.(151)

 시할머니에 대한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는 저자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타인 탓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다.

처음엔 그저 시할머니가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자꾸 스트레스를 주니까 아랫사람 된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게도 있었다. 그렇게 무조건 참기만 해서는 알 될 일이었다. 신랑을 위해, 할머니를 위해,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280)

 참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 쉽지만 그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던 사실을 여행을 통해 '혼자'가 된 저자는 답을 얻는다. 타인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도 생각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왜 삶 속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았는지. 내 감정이 먼저 존중받아야 타인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저자 여행을 통해 엿보았다

지극히 사람다운 여행기

 이 책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지극히 인간적인 여행기. 나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 다는 사실이다. 항상 예약 때문에 힘들어한다. 교통비 또한 무시할만한 가격이 아니라 버스를 타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를 보면서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임에 같이 손에 땀을 쥐며 책에 빠져 들어간다. 북유럽에서 겪은 호텔을 잡은 일은 내가 저자가 되어 같이 화를 냈다. 카드 내용을 고치지 않았다고 환불이 없는 룸 취소가 됐다는 사실로 오간 이메일은 어이가 없었다. 버스가 이유 없이 승차를 거부하고 얻어 탄 한국인 관광객 렌터카를 타다가 오히려 속도위반으로 범칙금을 내는 모습을 보며 괜한 죄책감을 느낀 부분도 재밌었다.
 동유럽에 진입하면서 여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예뻐 위축된 모습에 공감했다. 같은 주부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선물처럼 펼쳐졌다. 폴란드에서 접시! 작은 짐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한 저자 소신을 깨뜨린 주범 그릇들. 이 그릇 때문에 작가 짐은 두 배로 늘어난다. 이를 사수하기 위해 겪는 저자 고난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싱가포르에서 냄비랑 프라이팬을 사 오느라 쌀포대 같은 가방을 사서 낑낑 갖고 들어온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소중한

 생일을 타국에서 혼자 맞는 저자. 그런 마음을 아는지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청춘이 참 좋다는 얘기를 건네준다. 딱히 한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석 달 만에 먹는 한식은 두 세배 비싼 가격에도 집밥만큼 맛있다. 며칠 후면 볼 수 있는 남편 모습에 가슴 설레한다. 
 읽기에 다소 글자가 작다. 책 안에 지도도 없어 겨우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저자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유추하며 읽어야 했다. 큰 챕터로 나뉜 형식이 아니고 그저 가는 여정에 따라 글을 읽어야 해서 산만해 보이기도 했다. 글 또한 소박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뿐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하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저자의 용감한 결정. 그리고 누구보다 솔직한 마음을 담은 여행기. 작가의 시각으로 담은 깔끔하고 아름다운 사진들. 이 소중한 자료가 모여 책이 됐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으니 남편이 그런다.
"언젠가 너도 혼자 여행 가봐."
웃으면서 난 답한다.
"마음이라도 고맙네."

마음이라도 머나먼 유럽에 떠나게 해 준 이 책에게 참으로 고맙다.


책을 선물해 주신 꿈꾸는 발자국 출판사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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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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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밌었던 책으로 추천합니다.

이 책은 팟 캐스트에 제목을 치면 거의 대부분 독서 관련 팟캐스트가 나온다.
그 정도로 어느정도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이니 이 추천이 부끄럽지 않다.

이 작가가 한 권으로 끝내려고 했던 책이 인기를 많이 얻자 그 후편인 `일곱번째 파도`란 후편 책도 냈다.
하지만 난 딱!!이 책 한 권으로 족하다.
나는 윤리적 결벽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이상 나가는 주인공은 실망이다.
만나지 않는 사람과 나눈 편지를 10년 결혼 생활의 권태에 대한 도피처로 사용하고 해프닝으로 끝낸 딱 이 책 한 권이면 됐다.

소설이란 내가 할 수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들에 대해 진행시키는 매개체가 아닐까 한다.
다만 시작은 분명히 있을법한 일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예술이다.
나라면 분명히 할 수 있는 실수로 이 책이 시작된다.

참!이 책은 오로지 이메일로 이루어진 서간문 스타일이다.

에미는 잡지 구독을 끝내기 위해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 철자가 잘못됐다.
잘못된 메일을 받음으로 시작된 언어심리학 교수 레오와 10년 차 두 아이 엄마 에미가 이메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한 이유는 이거다.
에미의 상황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현실 권태를 느낄 수 있다.

레오, 가족 소개는 이걸로 끝내죠. 우리 대화에서 아이들 얘기는 빼고 싶어요. 몇 달 전 저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저랑 수다를 떠는 게 당신에게는 일종의 `마를레네 극복 요법`이라고 하셨죠?(물론 거는 이게 아직도 유효한지 모릅니다. 기회가 되면 말해주세요!)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당신의 메일을 읽는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가족 타임아웃`이에요. 이 시간이 일상 밖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섬에 당신과 단둘이서만 머물고 싶어요. 당신만 괜찮다면요.(149)

내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이런 소설을 읽고 에미에게 빠지는 것.
정말 건전하다!

에미가 얼굴도 목소리도 듣지 않은 레오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내용도 있다.
사실 에미는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와 아내 자리를 대신해 10년째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자신을 좋아하는 두 아이와 나이 많고 이해심과 배려가 넘치는 남편 안에 그녀는 아마도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안정만이 존재하는 껍데기뿐인 공동체라는 생각에 이른다.

레오.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오랫동안 그 누구와도, 당신과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어요. 이런 식의 감정 교류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저 스스로도 놀랐답니다. 당신에게 보낸 이메일들에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에미다운 에미가 될 수 있었어요. `현실의 삶`에서는 무난하게 버텨나가려면 끊임없이 자기감정과 타협을 해야 해요. 이럴 땐 과잉 반응을 해선 안 돼! 이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이 상황에서는 그걸 못 본 척해야 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맞추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일상에서 오만 가지 자질구레한 역할을 떠맡고, 구조 전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잡아 평형을 유지해야 해요. 저 또한 그 구조의 일부니까요.(169)

남자인 작가는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여자들의 방황을 정확하게 잘 포착했다.
그래서 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에미의 이 도발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실제로 만날 듯 만나지 못한다.

에미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라는 미아라는 친구가 있다.
에미는 인연이 아닌 마를레네와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레오에게 미아를 소개해준다.
미아를 통해 옛 여자친구를 아주 깔끔하게 끝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에미의 실수였다.
미아는 물론 좋은 여자였을지 모른다.
투박하게 생긴 이 작가는 어쩜 여자들 세계도 꿰뚫듯 잘 안다.
미아는 안정적인 가정과 멀쩡한 총각 교수의 사랑을 받는 에미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러나 레오가 멀어지고 에미의 가정이 휘청거릴 때 미아는 다시 에미에게 다가와 친구`짓`을 한다.
미아와 레오의 만남은 결국 에미가 레오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을 확실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에미가 간절히 레오와의 만남을 원할 때 레오는 이렇게 거절한다.

우린 골라인에서 출발하는 셈이에요. 따라서 나아갈 방향은 하나밖에 없죠. 되돌아가는 것.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질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내가 아는 에미보다 못하다면 실망스러울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아는 에미보다 못할 겁니다! 내가 당신이 아는 레오보다 못하다면 당신도 우울하겠지요.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이 아는 레오보다 못할 겁니다. 우린 만나면 미몽에서 깨어나 헤어질 테고, 일 년 동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타게 기다리면서 몇 달씩 지지고 볶았으나 막상 먹어보니 입에 맞지 않는 기름진 식사를 하고 났을 때처럼 속이 거북하겠지요.(278-279)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최대한 빨리 후편도 읽어보고 싶다.
물론 내 도의적 결론은 이 책 한 권으로 족하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에 두고 편지로 싸우는 그 유치함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들 삼시 세끼 차려주고 씻겨 주고 다치지 않게 해 주는 삶에서..
가끔 책을 통한 이 정도의 이탈만으로 즐겁다니 참 난 소박하다.(자화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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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24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밌었는데, 그 후일담은 궁금하지 않아서.... 그냥 딱 여기가지만! 하는 느낌? ㅎㅎ 그래서 후편은 일부러 보지 않았답니다^^

책한엄마 2016-01-24 21:45   좋아요 1 | URL
전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봐 버렸어요. 오로라님의 선택이 탁월하셨습니다.다만 작가 외모는 털보 아저씨던데 어쩜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까요?짝짝짝!!

에이바 2016-01-25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꿀꿀이님. 저는 이 책을 데이빗 테넌트가 출연한 BBC 라디오 드라마로 알게 되었답니다. 좋아하는 배우 목소리로 들으니 더 좋더라고요. 반가워서 댓글을 남깁니다 ㅎㅎ

책한엄마 2016-01-25 18:00   좋아요 0 | URL
아니!!라디오 드라마요?@0@엄청 두근거릴 것 같아요.물론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아 안타깝긴 하네요.저도 반갑습니다.^^

에이바 2016-01-25 18:17   좋아요 1 | URL
책 내용과 거의 동일할 거예요. 팟캐스트 청취는 종료되었지만 테넌트 팬들이 유투브에 올려놨는데 시간나실 때 한번 들어보셔도... 주인공들이 이메일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한게 불발되고 했던 기억이 나요. https://youtu.be/RjoZNppoYFE?t=37s ///// 근데 더 찾아보니까 한글자막 버전도 있어요. http://tvpot.daum.net/v/fN6KzqRhzfo$

책한엄마 2016-01-25 18:20   좋아요 0 | URL
어머!!감사합니다.^^
귀중한 보물을 얻은 느낌이네요!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김영하 작가님을 ‘보다’라는 산문집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산문집은 세 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야기에 두 번째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집어 들었다. 말한다고 하기에 도대체 무얼 말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글 쓰는 게 업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강의란 당연히 자신이 잘 하는 일에 대한 강의이겠지. 의도치 않게 이 책은 또 글쓰기에 대한 책이었다. 왜 글을 써야하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 김영하는 왜 글을 쓰고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에 대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실 이 책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그런 게 요즘 계속 읽고 있는 책이 작문이나 글쓰기에 대한 책이고 가볍게 읽는다는 생각으로 집어든 이 책마저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란 사실 때문이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달달 암기하여 생각보다 남의 생각이나 결과를 외운 것에 대한 것으로만 우열을 적용하는 게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고 그에 대해 이해한 것을 에세이라는 글의 형식으로 제출하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요구하는 교육을 펼친다. 왜 우리는 틀린 답 4개와 맞는 답 1개 혹은 그 반대되는 답안지에 그냥 꽃표만 하는 수동적인 공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백지에 한 글자 한 글자 내가 소화한 지식을 쏟아내는 수단으로 글을 써야 할까? 김영하 작가님은 이에 이렇게 대답한다.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057)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060)

이 책을 통해 김영하는 독자들이 수동적으로 남의 글을 읽고 있음에 탈피해서 스스로도 창조를 하라고 독려한다. 어쩌면 자신처럼 작가가 되라는 조언은 쉽게 나올 수 없는 영역이다. 이른바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기에 ‘너도 내 일을 해봐.’라는 생각보다는 ‘이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인 줄 알아?’라며 자신의 업계에 대해 배타적인 위치에 충분히 설 수 있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 내 스스로를 위해 필요하고 더 나아가 가정의 안정과 타인이 글을 읽으면서 느낄 영향력에 대해 알려준다.
특히 글을 통해 내 인생과 희노애락을 표현함으로써 내면에 잠자고 있던 예술가의 모습을 꺼내라고 한다. 특히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제안한 방법이 참신하다. 그는 문예창작과 학생에게 반대욕망을 이용해서 차라리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단편을 쓸 수 없고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장편소설을 창작하기 못하게 하면서 갈급함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항상 무언가 쓰라고 강요만 받다가 쓰지 말라는 명령에 따른 반사적 욕망을 이용한 지혜였으리라. 또한 글을 쓸 때 부모님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글을 쓰라고, 그것이 진정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조우하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블로그 서로 이웃이다. 가끔 내가 부모님이 보시기에 극단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면 3분 안에 검열이 들어간다. 그래서 엄청나게 순화된 글 모음이 바로 이 블로그이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과 전에 랄랄라님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계속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글이 무뎌졌거나 부모님이 관대해졌거나 둘 중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겠다. 이 부분을 읽고 정말 심각하게 내 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자, 이제 우리가 마음속의 악마를 잠재우고 자기 예술을 시작하려고 할 때, 이제는 밖에서 적들이 나타납니다. 배우자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회사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현실적인 이유들을 들어 여러분이 하려는 작업을 막아섭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묻습니다. 이건 정말 마법의 질문입니다. “그건 해서 뭐하려고 그래?”힘이 쭉 빠집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요.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유용한 것도 생산하지 않고 우리 앞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직장을 얻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방치해두었던 우리 마음속의 ‘어린 예술가’를 구할 수는 있습니다.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077)

좀 더 나아가 작가는 더 자세히 자신이 직접 글쓰기 지도를 한 경험과 내용을 알려준다. 이 내용은 내 습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글에 자유를 주는 것. 아마도 김영하 작가님의 젊었을 때 단편의 끔찍한 내용들은 제한 없는 그 상상력 안에서 태어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저자는 계속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 계속 물어본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윤리적 몸부림이다. 만약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잊어버리고 오로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삶에 들어가면 이번 문학계의 비극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오늘 미덕 모임에서 리더 님이 얘기했던 문구가 기억이 난다. ‘생각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한 어린이를 작가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한동안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읽은 작가들, 예컨대 췰 베른이나 프란츠 카프카, 코넌 도일 같은 선배 작가들에게서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쪽이 정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점점 더 유년의 기억 쪽으로 탐색 등을 돌리게 됩니다. 내 발밑에 있을지도 모를 길고 음험한 땅굴, 멀리서 들려오는 지뢰의 폭발음, 돼지의 멱을 따는 북한군인들,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주군과 운명을 함께한 스무 살짜리 운전병의 삶 같은 것들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존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해괴한 일들, 원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버립니다. 어쩌면 그 물음표를 문장들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211-212)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미래의 작가를 만들려는 일종의 영업 글이다. 다단계 회사원이 물건을 파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물건을 사는 구입자에게 다단계 회사에 들어오라는 유혹과도 같다. 하지만 엄연히 다단계 회사와 소설이나 책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다단계 회사는 돈을 목적으로 모이지만 책은 내 스스로의 영혼과 마음으로 모인다. 내가 왜 이런지 내 감정이 왜 그런지를 가시적으로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글쓰기이고 더 나아가 허구이지만 어느 정도 내면이 들어있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내 스스로를 알고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리고 느꼈다, 글을 쓴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도서관에 있는 거대한 책들, 심지어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시답지 않은 책들까지도 위대해 보였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올수록 내 맨 얼굴을 보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힘들 때도 있다. 이것을 견디고 책 한 권이란 기나긴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진다니. 책 한 권 만든 사람들에 대해 정말 부러움을 넘어선 경외심이 느껴진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살인 같은 나쁜 행동이 아니라 어쩌면 무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최근의 기분을 남기기 위하여 이렇게 블로그에 짧은 잡담을 남기기도, 사진을 남기며 짧은 설명을 남기기도 한다. 7년 동안 문법도 엉망이고 어법도 엉망일 수 있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부지런히 남겨 놓은 게 내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정말 창피한 과거의 나라도 사랑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남겨 놓는 이유다.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읽다’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https://youtu.be/55O1ODpX3fQ

http://tvcast.naver.com/v/5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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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토끼 2016-01-23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책에대해 많은 이야기 나누어 봤으면 좋겠네요

책한엄마 2016-01-23 21:49   좋아요 1 | URL
저야 말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6-01-24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어요. 글쓰기는 혼자서 즐길 수 놀이입니다. ^^

책한엄마 2016-01-24 17:50   좋아요 0 | URL
네-저도 꽤 오래된 취미랍니다.^^이렇게 같은 취미를 갖은 분들 글을 읽는 재미도 더해져 요즘 삶이 즐거워요.감사합니다.
 
스프링벅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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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연극반인 동준이의 떠들썩한 등장으로 시작한다.
준비하는 연극 주인공이었던 창제의 가출로 엉겁결에 주인공역을 맡은 동준.
그 사이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예슬이가 동준이 옆에서 힘이 되어 준다.
동준이 형은 대학 시험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엄마는 공부 잘 하는 장근이 형에게 대리 시험을 부탁했다.
자신이 부정행위로 떳떳하지 않게 대학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동준이 형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에 엄마는 병에 걸린다.
동준이는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아빠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제껏 읽은 청소년 소설은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이다.
손도끼,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이 스프링 벅.
이 세 권 모두 주인공은 상처를 받고 있고 어른들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어른들의 비밀을 그냥 지켜주기로 결심하는 결말까지 세 권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이 겪는 시련보다 이 청소년 시기에 겪는 이런 어려움들이 왜 나에겐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내 십 대 시절이 그만큼 힘들고 혹독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른에게 의지하던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이 책에서는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어른들에게 창제는 적극적 독립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이는 한 달 동안 가출을 하고 부모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아이까지 버리고 간 예슬이 엄마.
예슬이는 엄마를 미워했지만 정작 만났을 때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이 모순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 능동적 사고를 한다.
동준이 형 사건을 통해 성적 만능주의가 낳은 폐해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또 비주류 과목 선생님을 비하했던 현우라는 아이와 지학 선생님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도 현재 우리 교육이 무얼 놓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 교권을 위해 체벌이 있어야 하는지, 처벌이 시작된 이상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기에 애초부터 체벌은 안 되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었다.
동준이는 엄마의 비밀을 아빠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며 책이 끝난다.
동준이네 가족이 다시 평화를 찾기 위해서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 여러 청소년들이 가진 힘든 일들이 연극 연습 현장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그려졌다.
사실 동준이 형의 죽음이 정말 안타까웠다.
차라리 그냥 부모에게는 죽음을 암시하지만 결국 창제처럼 긴 시간 가출한 것에 그쳤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감히 원작을 각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학의 의미를 순간 망각한 실수였다.
문학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하는 여지를 주는 매개체이다.
그 매개체까지 고치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준비가 덜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링벅`에 나온 청소년 등장인물들 모두 가족들과 문제 하나씩을 안고 산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도 작고 크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문제를 안고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어른들에 의해 재단된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작년 학기말 국어시간, 손장하 선생님이 책도 펴지 않고 칠판에 `풀`이라고 크게 쓰더니 뜬금없이 양 이야기를 꺼냈다.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해.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 먹을 품이 거의 없게 되지.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자기도 풀을 먹으려고 하겠지. 그 와중에 또 제일 뒤에 처진 양들은 역시 먹을 풀이 없게 되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할 테고.
이렇게 뒤의 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앞의 양들은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돼. 그렇게 되면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구 뛰는 거야.
결국 풀을 뜯어 먹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야.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
손장하 선생님은 고개를 아래로 박고 교실 앞에서 뛰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갑자기 웬 일인극?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 몇몇이 웃었다.
˝뛰어, 뛰어. 정신없이 뛰어.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앗, 절벽! 하지만 못 서지. 수천 마리의 양 떼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니?˝
애들이 멍했다.
˝와, 그럴 수도 있어요?˝
˝있다니까.˝
˝그래도 뒤의 양들은 그걸 보고 미리 서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똑똑한 질문이야. 그런데 서면? 그 뒤의 양들이 무서운 속도로 덮쳐와 떠밀려서 바다로 떨어지겠지.˝
손장하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죽 훑어보았다. 모두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짓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경쟁하는 데 습관이 들어서 피 터지게 달리기만 하고 있어. 결과가 보이지 않니?˝
˝대학에 가려면 할 수 없잖아요.˝
˝너희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사니? 지금 이 순간순간이 너희들의 삶이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풀을 뜯어 먹으라고. 풀, 맛있는 풀!˝
선생님이 칠판에 쓴 `풀`부분을 연거푸 두드렸다. 쿵, 쿵, 쿵, 풀, 풀, 풀.
˝향기도 맡고 맛도 음미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삶의 목적은 풀밭 끝 벼랑이 아니고 풀이야, 풀. 지금 너희들 옆에 자가는 싱싱한 풀이라고. 가다가 계획과 다른 길로 가게 되도라도 뭐가 걱정이니? 거기도 풀이 있는데. 못 먹어본 풀이 있어서 더 좋은 수도 있지. 빙둘러 간다고 결코 낭비가 아니야. 생각지 못한 절경을 즐기면서 갈 수도.......˝
선생님은 교탁에 있는 캔을 따서 들이켜고 눈까지 감고 천천히 삼켰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목젖이 쿨럭쿨럭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으음, 맛있군. 그러니까 문제집만 끼고 살지 말고, 아, 공부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라고. 허구한 날 공부하고도 왜 고3이 되면 수학을 포기한다느니, 영어를 포기한다느니, 그딴 소리를 하는지 몰라. 불후의 명작이며 역사, 사회, 종교, 심리학, 미술, 음악.....이 흥미진진한 인류의 유산들을 만나는 데에 왜 시간을 못내냐?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에는 책을 읽어 와서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너희들 성적 좋아하지? 그러면 그 토론으로 성적도 매기지 뭐, 내 취향은 아니지만.˝(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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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니 2016-01-22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또 읽고 싶다^^

책한엄마 2016-01-22 22:47   좋아요 1 | URL
좋았던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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