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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래너 미터 지음, 기세찬.권성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평점 :
우리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던 역사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학생 시절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진실에 다가가자 사실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다. 한 예로 우리가 조선시대 일본보다 앞선 문화의 증거로 자랑스럽게 배웠던 조선통신사. 그러나 현대의 글이 아닌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일행이 왕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일본의 앞선 문물과 경제력에 놀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외에 사신들의 기행문인 동사록에도 역시 상업과 출판 경제력 등 일본의 앞선 문물과 경제력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만 이 사실을 알았을까? 당시 지식인인 정약용의 글을 보면 일본의 발전에 대해서 놀라고, 조선의 제자리걸음에 대해서는 한탄을 하고 있었다. 지금 역사학회나 연구회에 가서 조선이 앞선 문물을 전해주기 위해서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다고 하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그렇다면 우리가 중일전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학교에 다닐 때는 국민당군 하면 당나라 군대로 오합지졸에 일본군과 싸우면 패하기만 하고, 인해전술로 버티는 나약한 군대로 배웠다. 일본군에 대한 인식도 당연히 좋지 못하다. 학살과 강간이나 일삼는 미치광이 집단에 오키나와에서 미군에 처참하게 발리고, 만주에서는 소련군에게 녹아내린 어처구니없는 군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약체 일본군에게도 밀린 국민당군은 얼마나 약체일까? 일본은 약자를 상대로는 이렇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이렇게 약하구나.
그러나 국민당군은 전투에서는 계속 밀렸지만, 끝까지 항전해서 최종적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내면서도 미군의 참전과 원폭까지 버티고 버텼으며, 지금은 공산당에게 지위를 내줬지만, UN 상임이사국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일본군도 잔악하지만, 미국이 전시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이전인 1941년 당시에는 아시아 태평양에서 가장 산업화된 강군이었다. 그들은 홍콩과 인도차이나에서 영연방군을 단숨에 무찔렀으며, 필리핀에서는 천조국 미국을 상대로도 항복을 받아냈다. 일본에 밀린 이런 영국군에게 이탈리아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서도 아프리카에서 패퇴했다. 국민당군은 이런 일본군을 상대로 빈약한 무기를 가지고도 끝까지 버틴 것이다. 인해전술은 그들의 장점을 살린 것으로, 한국전에서도 전투에서 승패를 떠나서 인명피해는 항상 중공군이 컸다.
래머 미터(기세찬, 권성욱 역)의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중일전쟁』은 중일전쟁에 관한 가장 권위적인 책으로서, 1937년 개전 전부터 일본과 중국의 갈등과 분쟁, 전쟁의 전개, 진주만과 미국의 참전, 카이로 회담, 승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장제스에 대한 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중일전쟁과 국민당, 장제스를 재평가했으며,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역사를 은폐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저자의 일방적이 주장일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 중국에서도 국민당의 항일업적은 인정하고 있으며, 장제스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중국 장제스 전시관에 가면 그의 업적과 항일투쟁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제 세계는 물론 중국에서도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장제스는 8년의 항전 동안 일본군과 싸운 것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도전을 물리친 사람이었다. 중일전쟁의 주역은 그였으며, 승자 역시 중국인과 그다. 역자인 권성욱의 이전 책인 중일전쟁에 관해서도 읽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더욱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장제스는 왜 그토록 공산주의를 싫어했을까?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로 소련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가 일본군과 끝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군사적인 재능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영향이 컸다. 많은 밀러터리 서적이 전투와 전쟁의 승패에 집중하지만, 이 책은 당시 국민당의 전시경제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 장제스와 국민당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했기에 최종적으로 일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잔혹함은 이 책을 통해서 보니 더욱 놀랍다. 전투에서 국민당군이나 공산당이 승리하면 일본의 무자비한 보복이 중국인들에게 가해졌다. 그들은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8년 이상이나 버티면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개전과 동시에 무너지고 항복했던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군, 연합군이 오자마자 항복한 본토의 이탈리아군과 비교하면 그들은 당연히 재평가되어야 한다.
역사 특히 밀리터리를 좋아해서 학생 시절부터 수십 권의 2차 대전 관련 책을 읽었지만, 중일전쟁에 관한 책은 딱 2권을 읽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읽으니 많은 인물이 다 들어오지는 않는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조조, 주유, 마초 등만이 들어 왔지만, 반복해서 읽고, 다른 책도 읽으니 위연, 고순, 장패, 유복, 위풍 등의 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한 번 정독했다. 반복해서 읽으면 어떤 인물들과 사실들이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