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옛날에 왕은 과거 시험을 보지 않음에도 왕의 신분에 맞는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하루 일과가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
세자는 더욱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뽑게 되는 인재들에게 묻고 답하는 것이 일상이기도 합니다.
이 책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에서는 조선시대 시행된 과거시험에서 책문과 대책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시험에서 임금이 출제한 전시 책문과 응시자의 답안 대책이 있습니다. 전시는 복시에 선발된 사람에게 임금이 친히 치르게 하던 과거입니다.
합격자를 재시험하여 등급을 결정하였습니다. 대책은 벼슬이 있는 사람이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여 쓴 글을 말합니다.
책문과 대책은 기본적으로 각 시대가 무엇을 현안으로 생각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배경이 되는 시대를 깊이 이해하고 응시자 개인의 철학과 역사 인식, 현실 분석이 집약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개인의 사유가 정치, 경제, 문화, 행정, 복지 등 다양한 영역과 만나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응시자가 가진 지적 소양의 총체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 측면에서도 가장 정돈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에는 신숙주, 강희맹, 임숙영, 양사언, 정양용 등 다양한 인물을 만납니다.
조선 역사에 있어 피바람이 불었던 왕은 연산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산군 1년에 문과 증광시에서 이목이 장원을 차지합니다.
이목은 사림의 영수 김종직에게 글을 배웠고 평소 바른말을 잘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무오사화 때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목은 인재 선발보다는 인재 육성에 대해 강조했지만 무호사화로 인재들은 숨어버립니다.
조선 중기 문신으로 권별이 있습니다. 권벌은 문신으로 병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대과에 급제했으나 합격이 취소되어 3년 후 다시 과거에 응시했습니다. 권벌은 강직한 성품으로 이름을 날렸고 을사사화 때 사림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임금은 혼자서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모아 똑똑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되어 고집이 생기고 독단에 빠지면 판단 능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잘못해도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