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는 약 500년이 넘게 왕조를 이어왔고 조선 왕은 27명이라고 합니다. 이 책 《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은 그 중 9명의 왕을 선택해 리더십을 소개합니다.
조선의 천재 왕이라고 하면 세종과 정조를 꼽을 수 있는데 학문에 매우 뛰어났고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한 애민 군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우 다른 리더십으로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조직 구성원들을 믿어 주고 소통하는 리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 위기를 극복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리더 등 리더십을 참여시키고 어떤 방향으로 집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책 《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에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선조, 광해군, 영조, 정조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봅니다.
태조 이성계는 무장으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정도전과의 만남은 새로운 생각과 시야를 갖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정도전은 충실한 참모였고, 그런 참모가 있었기에 조선 왕조 500년 사상적 기틀을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기존 의정부서사제를 육조직계제로 바꿔 6조의 판서 이하 관료들을 장악했습니다.
태종을 평가함에 있어 왕이 되기 전에는 포악하고 잔인함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왕이 된 후에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방향을 잡고 중앙 집권 정치로 올바른 순항할 수 있도록 큰 틀을 잡은 혁혁한 공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종 집권 초기는 전혀 기강이 서지 않는 시기로 왕의 권위조차 찾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세종은 사람의 흠은 작게 보고 능력을 크게 보는 군주로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인재로 많이 필요했습니다.
세종은 부정이나 부패와 연결돼 파직된 공직자라도 자신의 정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등용했습니다.
광해군의 자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고 합니다. 선조는 세자인 광해군에게 분조를 맡겨 전쟁터를 누비며 흩어진 민심을 수습케 했습니다.
선주는 의주까지 피신한 상황에서 광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요동으로 망명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입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 불타버린 궁궐을 재건해 왕실의 위엄을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정조는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 태어났고 사도세자가 죽고 영조의 기대는 오롯이 정조에게 옮겨갔습니다.
정도의 첫 번째 키워드는 개혁이었고 권력가들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닌 백성 모두가 잘 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정조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개혁을 위해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 능력을 갖춘 인재의 양성이 우선 과제임을 알고 규장각에서 인재 양성을 합니다.
정조는 실력 있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개역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견고히 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