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요다의 서재 (요다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1819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를 좋아하게 되었으나 따로 나눌 사람이 별 없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5 Aug 2026 00:59:12 +0900</lastBuildDate><image><title>요다</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860181953489937.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8601819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요다</description></image><item><author>요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바벨의 도서 - [픽션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18195/17437202</link><pubDate>Fri, 07 Aug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6018195/174372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53&TPaperId=174372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off/893746275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753&TPaperId=174372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픽션들</a><br/>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br/></td></tr></table><br/><h1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375rem] font-bold">바벨의 도서관</h1><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도서관, 그리고 찾을 수 없는 책</h2>정교하고 우아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 보르헤스는 이번에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육각형의 전시실과 층수가 무한히 있어 보이는 기하학적 구조에,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책이 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가?처음에 사람들은 환희에 차서 도서관을 뒤졌다.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 편람의 편람을 찾으려는 사람, 신성한 책을 찾으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책은 25개의 알파벳과 부호로 순열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이다. 대부분 의미없는 문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더구나 책의 배열에는 기준이 없다. 그러니 분명히 원하는 책이 도서관 어딘가에 있는데 찾을 수 없게 된다. 화난 사람들은 책을 불태우기도 했고, 우연을 사용하여 스스로 책을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떤 신성한 책이 어떤 전열실에 있다는 이야기나 그것을 보았다는 사람에 대한 믿음도 생기기도 했다.<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흔들리는 결정론, 1941년</h2>보르헤스는 1941년 이 소설을 썼다. 세계는 이차대전의 소용돌이에 들어 있었고 지적 세계 또한 폭풍과 같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19세기까지 세계의 원리를 찾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과론을 찾는 것이었고 그 귀결은 결정론이었다. 볼츠만이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확률을 도입했을 때 물리학자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양자역학에서 전자의 분포를 확률로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저항했다. 공고하던 결정론이 흔들렸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산술을 포함하는 공리계는 완전하지 않다. 완전한 진리체계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 체계가 흔들린 것이다. 칸토르의 집합론은 수학을 무한집합의 토대 위에 올려놓았지만 기존의 상식을 크게 흔들었다. 힐베르트가 말한 것처럼 칸토르가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할 것인가?<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확률론이 슬그머니 결정론이 되는 순간</h2>보르헤스는 왜 이런 폭풍과 같은 시기에 이상한 도서관을 만들었을까? 위의 줄거리로 보면 지식을 찾는 우화처럼 보이지만, 내 생각에는 확률적 세계와 무한수로 이루어진 우주에 대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알파벳과 문장 부호로 만들 수 있는 책의 모든 경우의 수를 우리의 사고 속에서 나열할 수 있고 그 수는 너무나 큰 수이지만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보르헤스는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는 제시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햄릿』 같은 책도 이 도서관 어딘가에 '결정'되어 있다고 설정한다. 그러면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더라도 이 도서관에는 햄릿이 이미 존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확률론이 슬그머니 결정론이 된다. 기존의 인과론은 결정되어 있어도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알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보르헤스는 모든 경우의 수가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서 더 강력한 결정론적 세계를 만들었다. 현대 물리학자들도 보르헤스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률도 계산할 수 있으므로(양자역학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계산을 한다) 모든 입자의 운동은 물리적 계산 영역 안에 있으므로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 새로운 결정론은 인류를 더 닫힌 세계로 몰아넣는다. 인류의 문명은 더 나쁜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진리는 있는데 찾을 수 없고, 미신, 전염병, 전쟁으로 인류는 멸망 직전까지 몰려 있게 된다.<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무한이라는 구원</h2>이 결정론을 구원하는 것은 무한이다. 화자는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책의 수는 유한하므로 반드시 반복이 된다고 주장한다.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 이것이 새로운 질서가 된다. 이렇게 무한은 새로운 신학이 된다.산통을 깨는 것 같지만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의 끝을 예고한다. 우주에 무한한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우주의 시간보다도 도서관의 책의 경우의 수가 훨씬 크다. 그래서 반복은 화자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눈먼 화자의 우아한 기도</h2>작중 화자의 일생은 숭고함마저 있다. 젊은 날부터 진리를 찾아 헤맸고 이제는 눈도 멀었다. 그래도 그는 기도한다.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완전한 책을 읽게 해 달라고,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으니 천국이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우주는 존재할 거라고 하며, 반복하는 무질서를 발견한 것으로 우아한 기쁨에 젖는다.<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금고를 지키는 야만</h2><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이 화자는 찾지 못한 진리에 구속되어 있다. 진리 없는 세계에 나아가려 하지 않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진리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좋은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본 인류의 역사에는 야만과 폭력, 좌절만 보인다. 전염병, 야만, 무지의 장벽을 넘어온 인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스스로 우아한 삶을 살았다고 위로한다. 그야말로 절대로 열 수 없는 금고 안에 진리가 있다고 믿으며 금고를 지키고 있으니, 책을 읽을 줄 모르는데 책에 입 맞추고 섬기고 있는 야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h2><h2 class="text-text-100 mt-3 -mb-1 text-[1.125rem] font-bold">목적지 없는 여행자의 유희</h2>

































내가 재미가 없는 보르헤스의 소설을 며칠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며 분석하는 것은, 어디에 원고로 낼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내 글을 봐 줄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지적 유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가 내가 눈이 멀면 나는 좀 많이 서운해하며 또 다른 유희를 찾아 나설 것이다. 보르헤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나는 이곳저곳을 호기심과 즐거움에 따라가고 위험을 피해 가는 여행객이다. 비장함도 없고 때로 막막하기는 하다. 우아함은 모자라지만 좀 덜 씁쓸하고 오히려 유쾌함에 가까운 기쁨이 있을 것 같다. 어떤가, 보르헤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73/13/cover150/893746275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73131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