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봄볕 내리는 날 (얄리얄리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0816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2 Sep 2026 13:28:47 +0900</lastBuildDate><image><title>얄리얄리</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8600816451231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600816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얄리얄리</description></image><item><author>얄리얄리</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오디세이 세미나 - [오디세이 세미나 - 인생을 항해하는 데는 나침반이 필요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461283</link><pubDate>Thu, 20 Aug 2026 10: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4612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635093&TPaperId=174612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012/94/coveroff/k7426350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635093&TPaperId=174612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디세이 세미나 - 인생을 항해하는 데는 나침반이 필요하다</a><br/>대니얼 멘델슨 지음, 민국홍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04월<br/></td></tr></table><br/>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던 80세 넘은 아버지와 아들이 청강생과 교수로 만난다면?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한 인생의 여행'에 대해서, 익명성과 정체성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적지 않은 생각(어쩌면 '회한'이라는 감정이 포함된)을 하게 해 주었다.<br>[오디세이]에는 오디세우스가 유아 시설 자기 이름을 부여받는 날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은 Odysseus라는 이름에서 odyne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이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오디세우스란 이름은 물론 이 서사시의 뿌리다. 이 방대한 여행 이야기의 영웅은 문자 그대로 ‘고통의 인간’이란 뜻이다. 그는 여행하는 사람이자 고통 받는 사람이다. (p.36~37)<br>[오디세이]의 첫 번째 단어가 '남자'라는 뜻의 andra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사시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시에 나오는 영웅이자 오랫동안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젊은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영웅인 주인공 오디세우스에 집중한다. (중략) 마지막 권에서는 인생의 모험이 끝난 '한 남자'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보여준다. 바로 오디세우스가 마지막으로 재회하는 나이 많은 그의 아버지 이야기다. 지금은 인생에 지쳐 혼자 머무는 노쇠한 노인데 말이다. 소년, 성인, 노인 등 3세대에 걸친 남자들을 다루고 있다. 이 서사시가 그리는 여행 가운데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인생의 여행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p.45)<br>겉모습만 알 수 있는 익명성과 본연의 모습인 정체성 사이의 긴장은 [오디세이]의 플롯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목숨은 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절한 시점에 정체를 밝히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영웅은 처음에는 아들, 다음에는 아내, 마지막으로는 아버지 등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친구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p.60)<br><br>'노스토스'는 고통이란 다른 그리스어 algos와 합쳐져 우리가 어떤 특별한 것에 대해 그리움으로 고민할 때 가지는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감정을 우아하게 표현할 때 쓰는 단어가 된다. 그 단어가 바로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집(home)을 그리워하면서 갖게 되는 고통'이란 뜻인데, 우리도 알다시피 나이를 먹게 되면 집이란 것은 장소이자 시간도 의미한다. (p.128)<br>"누가 자기를 낳아준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 있을까?" 텔레마코스가 [오디세이] 초반부에서 고통스럽게 묻는 말이다. 누가 정말로 알고 있을까? 우리는 부모한테 전혀 미스터리가 아닌데 부모는 그 반대로 우리한테 미스터리 그 자체다. (p.207)<br>오디세우스가 죽은 자들의 나라인 하데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전통적으로 Nekyia(네키아)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리스어는 neykys(시체)란 단어에서 출발하는데 산 자가 죽은 자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죽은 자의 유령을 소환하는 의식을 의미한다. (중략) 시간이 흐르면서 말을 못하는 좀비를 부르는 의식을 의미하는 nekyia는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귀환하는 긴 여정의 반환점을 돌기 직전에 일어난 이야기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당신이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p.234~235)<br>&nbsp;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비극의 특정 줄거리는 인정(anagnorisis)의 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다른 줄거리들은 갑작스러운 운명의 완전한 역전 상황, 즉 metabasis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줄거리는 인정의 순간이 동시에 운명의 역전 상황이 되었을 때라고 설파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이런 이중 줄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연극으로 간주한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내가 진짜 어머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그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p.336)<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012/94/cover150/k7426350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0129463</link></image></item><item><author>얄리얄리</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당나라, 동유라시아의 대제국 - [당나라 - 동유라시아의 대제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426472</link><pubDate>Sat, 01 Aug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4264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1642&TPaperId=174264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1/coveroff/k1220316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1642&TPaperId=174264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나라 - 동유라시아의 대제국</a><br/>모리베 유타카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09월<br/></td></tr></table><br/>618년부터 907년까지, 그 이전과 이후 기간까지 합친다면 중국의 어느 왕조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동안 존속해 왔고, 후세에 영향을 미친 당나라에 대한 개괄적 역사서이다.전반적인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약 300년은 역사에서 생각보다 긴 기간. 따라서 짜임새 있는 내용의 '연계'보다는 나열에 머물렀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br>다만, 저자의 가장 마지막 주장은 그동안 우리가 좁게는 당나라, 넓게는 중국사를 접해 온 관점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당나라의 가장 큰 영향 또는 공헌(?)은 요, 금, 원, 청 등 소위 '정복 왕조'를 비롯하여 서하, 위구르, 셀주크 등 광범위한 유라시아 민족 또는 국가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일종의 test bed가 되었다는 것.<br>"290년 동안 동유라시아 지역에 군림한 당조의 역사적 존재 의의 중 하나는 이러한 중앙유라시아형 왕조를 준비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455)<br>한 가지 빼먹은게 있어서 추가..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인물이다.당나라 시대 활동한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는 '이정기'라는 또 다른 고구려 유민이 등장한다. 그는 안사의 난 이후 현재 산동 지방을 지배한 절도사로서, 당나라 말기 소위 '번진시대'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1/cover150/k1220316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010149</link></image></item><item><author>얄리얄리</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톰 아저씨의 오두막 - [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335840</link><pubDate>Mon, 15 Jun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6008164/173358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918&TPaperId=173358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01/27/coveroff/89546139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918&TPaperId=173358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a><br/>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02월<br/></td></tr></table><br/>살면서 보면 대체로 절충, 타협이 가장 좋은 경우가 많지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어야 하는 것이 있는 법. 노예제가 그렇다. 읽으면서 여러 아쉬운 점도 느꼈지만, 어떤 부분은 19세기 중반이란 시대를 감안하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br>노예제와 관련해 '북부=선(善)'은 편견이다. 북부 백인들 역시 흑인들을 혐오하고 싫어했다. 그들은 흑인들이 학대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흑인들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 (1권, p.319)<br>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굶어 죽게 할 수 있다. 아이가 다른 데로 팔려가는 것과 아이가 집에 있으면서 굶어 죽는 것, 무엇이 더 나쁜가. (중략)&nbsp;한 인간 집단이 자신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다른 인간 집단을 사용한다는 것. 그게 노예제의 본질이다. (2권, p.32~33)<br>괴물 같은 노예제에 대항해 싸우고, 여차하면 그 싸움에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냉담한 모습, 사회적 죄악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2권, p.182)<br>악랄한 노예주가 아닌, 오히려 '선량한' 노예주가 노예제를 지탱한다는 역설. "관대한 농장주들이 아예 없다면 이 악랄한 노예제는 단 한 시간도 못 버틴다." (2권, p.229)<br>노예도 폭군일 될 기회를 얻으면 그렇게 된다. 농장주는 노예들을 서로 반복하게 만들어 지배했다. (2권, p.238)<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01/27/cover150/89546139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01274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