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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전쟁영웅, 참으로 소설화하기 좋은 소재다. 특히 전쟁에서의 열세와 갖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는 장군처럼 쓰기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고등 학생들의 우상이 되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정말로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그는 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모진 고난을 겪었다. 이순신 장군은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싸우면 항상 이겼다. 게다가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우리 역사상 이순신 같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장군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안 좋은 악조건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절대 이기지 못할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고 작렬히 전사한 장군은 드물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는 영화 ‘300’에서 나오는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300의 전사와 함께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용감히 싸워 승리를 거두지만, 그 협곡을 지나는 지름길이 알려지면서 길이 뚫리자 용감히 맞서 싸우다 전원 전사했다는 스파르타의 용감한왕 레오니다스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찬을 받은 시작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삼도 수군 통제사였던 몸에서 한순간에 백의종군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중죄인이라는 그가 면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정이 그를 잡아들인 이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하고 난 뒤에야 그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가두었던 충신을 다시 기용하였고, 다시 전쟁터로 복귀한 장군은 다시금 급승진을 하게 되어 예전과 같은 통제사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뿐인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장군의 후임으로 발탁된 원균의 지휘 하에 벌어진 칠천량 싸움에서 대패한 조선수군은 전선 12척과 병졸 120명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마치 300에 나오는 레오니다스왕처럼 역시 영웅답게 배 12척으로 가히 300척이 넘는 적의 전선을 격파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외에도 불리한 조건속에서 다수의 승리를 거둔다. 물론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부족한 물자와 남아있지 않은 군량탓에 병사들은 끼니를 매일 거르다 시피 했고, 내륙에서 지원되는 원조역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전장에서 승리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 의해 전쟁도중 아들을 잃었다. 어머니 역시 백의종군 당시 돌아가시어 장군에게 남은 피붙이란 없었다. 장군은 홀로남아 고독히 전쟁을 지휘하다가 노량해전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영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순신.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었다. 이순신이 쓴 일기 형식을 통해서 전쟁 중에 이순신이 겪었던 고민, 생각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칼의 노래'에서 보여 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은 이순신도 한 가정의 아들이고, 아버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조정을 능멸한 죄로 의금부에 갇혀 있다가 풀린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몸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수군을 지켰던 이순신은 역시 후대에도 기억되는 영웅 일 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임금이 보냈던 편지들을 보면서 전쟁 중에서 무력했던 선조라는 임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칼을 쓰는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칼을 쓰고 나서 가슴아파하는 모습은 이순신의 따뜻한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 몇 백, 몇 천 명이 죽고 사는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해전에 나서는 모습은 지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뒤로 숨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언의 훈계를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충무공의 심리상태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항상 당시 임금과 내면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며, 책 속의 이순신은 항상 임금의 칼을 두려워하였고 또한 적들의 칼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칼은 맞서 싸울 수 있는 칼이었으나, 임금의 칼은 그러하지 못했다. 저자 김훈은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글을 이어나간다. 특히 이순신과 배설의 언쟁 중에 드러나는 이순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문장을 보노라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심리묘사에 놀라게 된다. 책의 내용 자체는 그리 놀라울 만한 것이 아니나, 저자의 간결한 문체와 이순신에 대한 독특한 해석방법이 책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칼의 노래’는 책 서문에 밝혔던 것처럼, 작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철저히 이순신 장군의 내면과 동화되려 했던 흔적이 책 전체에 묻어 난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몰려 오는 왜군들과 의심 많고 무능한 임금이 겨누는 칼날 위에서 칼로 베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깊은 고뇌와 갈등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전쟁의 참혹함, 자신의 충의를 의심하는 임금, 전쟁의 와중에서도 자신들의 이속만 챙기기 급급한 족속들의 권력 다툼, 단 한 번의 실패가 조선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을 만큼 힘들었던 적과의 싸움,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비로서의 죄책감. 그 어느 것 하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치열한 삶을 사셨지만, 역경속에서도 자신이 믿고자 하는 신념에서 단 한 번도 비껴서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나 힘들고 고단했던 삶을 사셨기에 장군의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그 죽음이 아주 편안하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