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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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님의 작품은 어디인지는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소설집 상속을 우연히 처음 읽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수녀에게 인간이 화를 낼 때는 언제냐며 사람은 불의나 부당함이 아니라 자신의 예상이 틀렸을 때 가장 화를 많이 내게 된다는 구절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살짝 불편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은근히 진실에 가까운 때가 많은 문장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고 해야할지 기묘하게 얽힌 인연을 이 작품을 통해 보자면 삶은 뭐고 사랑은 뭘까 감상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웃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살다보면 생각보다 삶은 깊은 것이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고 소소하니 뭉그러지는 성냥개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다시금 문득 떠오르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다소 산만하고 그저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작은 생각들을 소소히 담아 우화처럼 전해주는 이 작품이 저는 선물상자 같아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문학이 꼭 거창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잠시 살다가 마음에 휴식을 얻기 위해 머무는 그늘 정도로서만 있어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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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색(色)끼발랄 무수리 (총2권/완결)
지아진 / Renee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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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도 자연스럽고 소재도 독특한데다가 무엇보다도 서술이 아주 웃음을 자아내는 맛이 있습니다.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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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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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작가의 작품 중에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정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머리 옆에서 망치로 땅땅 맞는 것 같은 충격은 지금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 가시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그러합니다.
요즘 같이 디지털이 일상화된, 어찌보면 가물다 못해 씨가 말라버린 피폐한 문학의 가뭄기에 이런 가상의 역사소설의 모음들로서 저 같은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히 다가올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문학에 조금이라도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가상 역사 소설이지만 하나 하나의 사건마다 작가가 살면서 느꼈을 삶의 단상들이 불쑥불쑥 독자의 머리를 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너는 어떻게 이러한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느냐고.
성석제 작가님 특유의 피식피식 웃게 만들면서도 어느 순간 심장에 쿵 와닿는 묵직한 감성은 참으로 언제 봐도 한결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오래 사셔셔인지 삶의 본질을 궤뚫는 도인의 시선 같은 것이 이 책 안에는 있습니다.
정통역사가 아닌 허구의 역사소설 모음이기 때문에 주위에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읽어보라고 들이대면서 추천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웃거나 울게 되는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해준 이 책에게 참 고맙습니다. 메말랐던 감성을 적셔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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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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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불의를 참지 못해 일어서는 이야기들을 보며 슬픕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것은 몇 년 전에 언론에서 본 한 방송피디의 자살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운동권으로 나름대로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을 추구했던 그가 취직하고 나서 비정규직들에게 실적과 무리한 근무를 강요하고 몰아붙이는 것을 힘겨워했고 그로 인해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직장 내 따돌임이었으며 심지어 비정규직들에게도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떠올라서 울컥했습니다.



언제나 자기 신념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책 속의 딸도 그렇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열심히 공부하던 딸이 어느 순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시위를 가고 그로 인해 딸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은 하락합니다.

게다가 어머니 입장에서 친딸이 동성 애인을 두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동요할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딸이 멋진 이성을 만나 좋은 가정을 꾸리고 금전적으로도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바랐으나 딸은 남들 인생을 돕기를 원한다고 자기 자신의 안위는 밀쳐두며 동성애인과 동거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주인공의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도,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했다가 되려 더 어둡게 변해버리는 슬픈 일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이해를 더 하면 좋을텐데 참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세상살이의 어려움, 그리고 개인의 노력으로서 닿기 힘든 한계에 부닥치며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좌절 등등 정말 현실적인 요소들을 많이 건드립니다.

다시금 읽어보며 곱씹고 싶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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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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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참으로 소설화하기 좋은 소재다. 특히 전쟁에서의 열세와 갖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는 장군처럼 쓰기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중·고등 학생들의 우상이 되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정말로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그는 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모진 고난을 겪었다. 이순신 장군은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싸우면 항상 이겼다. 게다가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우리 역사상 이순신 같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장군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안 좋은 악조건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절대 이기지 못할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고 작렬히 전사한 장군은 드물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는 영화 ‘300’에서 나오는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300의 전사와 함께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용감히 싸워 승리를 거두지만, 그 협곡을 지나는 지름길이 알려지면서 길이 뚫리자 용감히 맞서 싸우다 전원 전사했다는 스파르타의 용감한왕 레오니다스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찬을 받은 시작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삼도 수군 통제사였던 몸에서 한순간에 백의종군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중죄인이라는 그가 면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정이 그를 잡아들인 이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하고 난 뒤에야 그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가두었던 충신을 다시 기용하였고, 다시 전쟁터로 복귀한 장군은 다시금 급승진을 하게 되어 예전과 같은 통제사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뿐인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장군의 후임으로 발탁된 원균의 지휘 하에 벌어진 칠천량 싸움에서 대패한 조선수군은 전선 12척과 병졸 120명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마치 300에 나오는 레오니다스왕처럼 역시 영웅답게 배 12척으로 가히 300척이 넘는 적의 전선을 격파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외에도 불리한 조건속에서 다수의 승리를 거둔다. 물론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부족한 물자와 남아있지 않은 군량탓에 병사들은 끼니를 매일 거르다 시피 했고, 내륙에서 지원되는 원조역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전장에서 승리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 의해 전쟁도중 아들을 잃었다. 어머니 역시 백의종군 당시 돌아가시어 장군에게 남은 피붙이란 없었다. 장군은 홀로남아 고독히 전쟁을 지휘하다가 노량해전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영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순신.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켜 보여주었다. 이순신이 쓴 일기 형식을 통해서 전쟁 중에 이순신이 겪었던 고민, 생각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칼의 노래'에서 보여 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은 이순신도 한 가정의 아들이고, 아버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조정을 능멸한 죄로 의금부에 갇혀 있다가 풀린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몸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수군을 지켰던 이순신은 역시 후대에도 기억되는 영웅 일 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임금이 보냈던 편지들을 보면서 전쟁 중에서 무력했던 선조라는 임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칼을 쓰는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칼을 쓰고 나서 가슴아파하는 모습은 이순신의 따뜻한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 몇 백, 몇 천 명이 죽고 사는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해전에 나서는 모습은 지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뒤로 숨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언의 훈계를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충무공의 심리상태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항상 당시 임금과 내면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며, 책 속의 이순신은 항상 임금의 칼을 두려워하였고 또한 적들의 칼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칼은 맞서 싸울 수 있는 칼이었으나, 임금의 칼은 그러하지 못했다. 저자 김훈은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글을 이어나간다. 특히 이순신과 배설의 언쟁 중에 드러나는 이순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문장을 보노라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심리묘사에 놀라게 된다. 책의 내용 자체는 그리 놀라울 만한 것이 아니나, 저자의 간결한 문체와 이순신에 대한 독특한 해석방법이 책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칼의 노래’는 책 서문에 밝혔던 것처럼, 작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철저히 이순신 장군의 내면과 동화되려 했던 흔적이 책 전체에 묻어 난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몰려 오는 왜군들과 의심 많고 무능한 임금이 겨누는 칼날 위에서 칼로 베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깊은 고뇌와 갈등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전쟁의 참혹함, 자신의 충의를 의심하는 임금, 전쟁의 와중에서도 자신들의 이속만 챙기기 급급한 족속들의 권력 다툼, 단 한 번의 실패가 조선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을 만큼 힘들었던 적과의 싸움,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비로서의 죄책감. 그 어느 것 하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치열한 삶을 사셨지만, 역경속에서도 자신이 믿고자 하는 신념에서 단 한 번도 비껴서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나 힘들고 고단했던 삶을 사셨기에 장군의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그 죽음이 아주 편안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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