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지에 대해서 모두가 각기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좀 더 사람들 취향에 맞추려고 한다. 알다시피, 몇몇 곳에서는 이미 이러한 일이 진행 중이다. 죄, 악의 세력, 죽음과 부활같은 이상하고 낯선 것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자기 계발 서적이나 특정 정치 이념이나, 혹은 정교한 신학 체계, 멋들어진 카페를놓으려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성이고 낯설었던 교회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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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므로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 연구해도알 수 없는 문제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맡겨드리고 우리는 겸손하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임이 마땅하다. 내 주장, 내 해석은틀릴 수가 없다는 경직된 사고야말로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말 한 바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에 해당하며, 사람들로 하 여금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라고 할 수 있 다. 옛 수도사가 말 한 것처럼,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 이며, 인간은그 진리의 청지기일 뿐이다. 진리에 대한 열정보다 진리에 대한 겸손이더 귀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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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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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큰 아이에게 사줬더니 하룻만에 다 읽고는 '엄마도 읽어봐' 하며 툭 던진다.


그런 얘길 해본적 없는 아이라서 그런지 아내도 책을 폈는데 하룻만에 읽더니 '당신도 읽어봐요'라며 건넨다.


나도 하룻만에 읽었다.


이런걸 근미래SF라고 하나?


책의 골자는 책광고에 나온대로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설정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대놓고 생각하게하는 도발적인 구도라서 그런지, 작가의 글쏨씨가 좋아서 그런지 술술 잘 읽힌다. 후반부에서 줄줄줄 교훈이 쏟아져나오긴 하지만 반전과 함께 어우러져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직접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까 한 가족이 같이 독후감을 나눠볼만하다.


스포일러는 아니고, 책의 설정 중에 재미있는 것이 '헬퍼'라는 가사도우미 로봇의 존재였다.


집안의 온갖 잡심부름을 다 해주는 헬퍼를 집집마다 구비해둔다는 설정인데, 자식에게는 밥상 차려주고 청소해주고 옷 챙겨주는 부모 역할을 하는 셈이고, 부모에게는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규범있고 말 잘 듣는 아이들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서로의 필요를 요구하는 관계라면 그건 가사도우미 로봇과 다를바가 뭐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작가가 던진다.


더 나아가 자녀세대의 역할이 착실하게 커서 꿈을 이뤄주고 열심히 일해서 부모세대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부모세대의 역할이 자녀가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뒷바라지해주고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라면, 그건 굳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책도 재미있지만 책에 나온 NC라고 하는 제도와 사회상을 곰곰이 씹어보면 재밌는 질문이 자꾸 나온다.

"그럼, 우린 진짜 친구가 되는 거야. 부모보다 훨씬 가까운!"

"부모들에게서 좋은 면만 찾지 마. 너도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그러지 않으면 그게 너와 그분들 모두를 힘들게 할 테니까."

"우리가 꼭 부모가 되어야 할까? 그냥 친구가 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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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조너선 프랜즌 지음, 공보경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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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소설인 것처럼 뻥치는 출판사의 광고문구 때문에 대단한 기대를 하고 산 것이 아니었다면 재밌고 만족했을 소설이다. 물론 그런 광고가 없었다면 800쪽이 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지 않았겠지만.


비밀을 만드는 이유와 이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소설이라고 점잖게 표현할수도 있겠지만, 그냥 출생의 비밀과 인터넷 폭로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엮어가면서 위키리스크와 저널리즘에 관한 번뜩이는 통찰을 곳곳에서 말하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이런 소설을 쓴다면 아마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나 저널리즘인 척하면서 조회수 올리기용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소재가 되겠지.



이 혁명이나 저 혁명이나 비슷비슷하게 마련임을 안드레아스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혁명성을 큰 소리로 외치는 혁명을 또다시 맞닥뜨렸다. 합법적 혁명-이를테면 과학혁명-은 혁명성을 떠벌리지 않고 그저 발생할 뿐이었다. 약하고 두려움에 차 있으며 불법적인 혁명만이 혁명성을 떠벌렸다. 약하고 두려움에 찬 정부는 사람들을 해방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람들 주변에 벽을 세워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고, 그 정부의 지배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안드레아스는 동독이 감사하게도 역사의 선봉에 서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영원한 싸움이 계속되는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비밀은 권력이었다. 돈도 권력이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점도 권력이었다. 권력, 권력, 권력. 권력을 차지해봤자 지독히 외롭고 억눌리는 삶을 살 뿐인데 세상은 어째서 권력 차지를 위한 아귀다툼을 중심으로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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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수인 세트 - 전2권 수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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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황석영 자서전 '수인'.

캐나다에 올 때 수업교재 외에 몇권을 더 챙겨왔는데, 지난해 나온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읽어야지, 하고 일부러 사서 왔다. 겨울 방학을 맞아 완독.



나는 4.19세대는 진짜 별 고민 없이 사회에 편입한 줄 알았다. 극심한 탄압을 오랫동안 받았던 것도 아니고 이념적인 그늘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4.19세대인 이기택 이명박 같은 정치인들을 봐도 그렇고, 서울 시내에 있는 4.19혁명기념관도 얼마나 짱짱한지, 저 사람들은 그냥 어린 시절에 의분을 낸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요즘 20대,30대들이 386세대나 나 같은 X세대를 보는 시선이 아마 그럴 것이다. 언제나 내가 겪지 않은 고통은 가벼워 보이거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을 보면서 제대로 알게 됐는데, 황석영은 경복고 2학년 때 4.19시위에 어정쩡 참가했다가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그 트라우마가 그를 평생 쫓아다닌 것 아닌가 싶다. 그의 친구들도 4.19 이후로 방황하다 요절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폐인이 되기도 했다. 그도 고교시절에 이미 문재를 떨칠 정도로 필력을 드러냈지만 4.19를 겪은 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했다. 황석영의 성장소설인 '개밥바라기별'이나 비슷한 또래인 이문열의 '젊은날의초상' 같은 작품들에 나오는 택도 아닌 무모한 낭만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지만 그가 한국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에 맞서 늘 글과 삶으로 싸우며 살았기에 그대로 한국현대사이기도 하다. 오랜 방황 끝에 어렵사리 문단에 발을 디뎠지만 그 뒤로도 박정희 정권과 투쟁하고 전두환 정권에서 광주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나중에는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정적으로 불행한 일을 겪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유를 추구한 작가에게 분단과 독재로 얽매여 있던 땅은 감옥과 다름 없었고, 이 땅이 감옥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그의 삶은 감옥에 갇히지 않으려 자유를 꿈꾸다 그 꿈 때문에 감옥에 갇혀버리는 수인囚人의 그것이었다.

이 책은 때론 장길산 같고 때론 객지 같고 때론 오래된 정원 같다. 오랜 망명과 수감 생활 얘기 앞뒤로 유년시절과 청년기의 방황, 그 과정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북한에서 만난 김일성이나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김남주 문익환 같은 인물들은 물론이고 감옥에서 만난 절도범과 사기꾼, 어린 시절 영등포 피난민마을에 살던 아이들과 이웃 술주정꾼 아저씨 얘기까지 한사람 한사람 애정을 기울여 마치 열전을 기록하듯 썼다. 그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쟁과 분단의 역사, 70~80년대 문학사, 민주화운동사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간접체험했다.

내가 황석영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고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 있던 '장길산' 덕분이었다. 그 뒤로 삼포가는 길, 객지, 무기의 그늘 같은 소설을 읽으며 그에게서 풍기는 장돌뱅이 분위기랄까, 반항아적이고 풍운아 같은 분위기에 매료됐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9년에 황석영이 방북을 했는데,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로 미국으로 떠도는 것이 안타까웠다.

손님이란 소설은 대학생 때 읽었는데, 분단의 상처를 가장 깊이 드러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박완서 아니면 황석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박완서 선생님은 돌아가셨으니...

그의 자서전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에 나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4.19세대의 이야기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을 눈여겨 보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우리나 우리 윗세대가 겪은 고통과 상처, 투쟁 같은 것에 무관심하지 않을까....

상처와 고통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상이나 대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처와 고통을 겪(었)고 그를 극복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황석영이나 박완서 같은 작가들의 글은 두고두고 널리 읽히면 좋겠다.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났고 나는 잠시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의 결별의 시작이 되디라고는 알지 못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과 함께 깊은 회한이 밀려온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앓고 나서 나는 이제야 내가 양손잡이였던 것을 깨닫는다. 이제는 양손을 벌려 포옹할 수 있게 되었다. 노환 끝에 철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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