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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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던지면
늘 궁금하다.
도대체 인문학이 뭘까?
인문학이 살아야 세상살이가 더 풍요로워진다는데
그렇다면 인문학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이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 아닐까?

이 책은 여러 주제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도정일교수님의 에세지 모음집이다.
삶이 개인의 삶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우리네가 걸어온 혹은 걸어갈 삶이
서로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한 부분이다.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살이의 정답을 찾아가는 여행"

정도가 되지 않을까?
도정일 교수님의 정의는 이렇다.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사유, 표현, 실천의 총합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사람이 사람으로 이 지상에 산다는 것의 의미, 가치, 목적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실천하려는 지적, 심미적, 윤리적 활동을 포괄한다.
더 짧게 요약하면 '삶의 영광'을 확인하고 높이려는 것이 인문학이다..184페이지


인문학이
이렇다 하는 정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정답을 요하는 사람들의 본능이
발휘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연구하고 사람을 보게 하고 사람을 높여주는 것,
그것은 굳이 인문학이 아닌
다른 학문들에서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정일교수님은
다양한 주제에 한가지 주제를 역설한다.

모든 주제는 결국
사람살이에 달린 것이라는 것.

여러 주제 중 가장 강렬했던 주제는
'생물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태어나서 살다가죽었다"라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생물학적 전기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살았고,
무슨 고통을 겪었으며,
무엇을 행복으로 생각했는가라는 대목
- 그의 삶의 자서전은
생물학적 결정의 차원을 벗어난다.

과거 생물학은
인종차별의 근거로서 그 역할을 했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간 존재의 물음에
응답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근 분자생물학, 유전공학의 발달이 가속화 됨에 따라
생물학은 범접할 수 없는 다양한 경로로 인간의 삶을
통찰하게 하며 관여하게 하며 예측하게 한다.

하지만,
생물학은 사람들의 관점에 따른 연구결과의
반전에 반전으로
더이상 그것이 확고한 진리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리차드 도킨스가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
역시 그가 주장하고 싶었던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서 자신의
생물학적 사고를 서술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 나의 생각과도 비슷하게

저자는 생물학의 인간삶에 대한
기여도 혹은 긍정적인 역할에 대하여
넓고 높은 평가를 내리는 한 편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의 근래 동향들 중에는 인문학, 특히 문화론과의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것들이 많고, 이 대목은 21세기 초반의 지적 토론이 어떤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여러가지 담론안에서 인문학만이 답할 수 있는 것들을
골자로 서술하는 줄글 속에서
나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통감하기도 하며
메모를 적어 나갔다.

첫번째는 근원적 질문 던지기에 대한 답이다.

직업의 특성상 아이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데
가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을때가 있다.
여러 질문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았던 질문은

천국은 몇 평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다 들어 갈 수 있을만큼 넓어요?

아핫... ㅎㅎ
웃긴데 막 웃을 수는 없었다.
너무 진지하게 물어본 아이의 눈빛이
간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질문을 했던 아이에게 명쾌한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보다보니 이런 질문이 근원적 질문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도대체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가?"
라는 이런 범주의 질문이 바로 근원적 질문이다.
"근원적 질문은 명쾌한 해답을 허용하지 않고, 추구해봤자 무슨 큰 돈벌이 기회를 제공하지도 않는다.-p.124"

그런데
저자는 이런 근원적 질문이야 말로
인간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인문학이 철학과 비슷하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은 저자에게 있어 이 대답은
'솔직함과 용기'였다고 한다.

자신이 드러낼 수 없는 솔직함과 용기를 던져준 이 질문을 두고
저자는 '인문학이 만인의 인문학'이 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인문학은 대학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에도, 공장에도, 동네 구멍가게에도, 회사 사무실에도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모든 곳에 있어야 하고,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중략)
인문학의 중요한 사회적 효용의 하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진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실패하는 곳에서는
정치가 실패하고,
경제가 실패하고,
사업이 실패한다.

통섭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신학문의 대두를 환영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양한 장르가 개척되어지고 만들어 진다는데
저어할 이유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우후죽순 생겨나는
기본적 고찰없이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그런 신학문에 대하여
저자는 일침을 날린다.

통섭이 그냥 이것저것 뒤섞고 혼합해서 '섞어 비빔밥'을 만들자는 소리여서는 안 된다. 지금껏 없었던 어떤 새로운 학문 연구의 가능성을 여는 데 기여하는 것인가 아닌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기존의 분과체제나 기성의 방법론에 매달리는 고루한 학문 태도로는 그런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가 없다.

여러 담론에 대한 주제들을
때로는 재치있게
혹은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저자의 수려한 글솜씨는
그의 이력을 다시한 번 살펴보게 하였다.

결코 적은 분량의 글이 아닌데
술술 빠르게 읽혀졌던 것은
흥미로운 소재를 알기 쉽고 읽기 쉬운 글로
풀어내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들에 많은 모티브가 되어 주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이
결코 어려운 주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만인의 인문학이 되어야 하며
인간의 삶의 행복에 대한 논의를 이어주어야만 한다는 것,

이 두가지의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내가 가지고 갈
글쓰기의 주제가 될 것 같다.

좋은 책 읽게 기회를 준 다산책방에 감사드린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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