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belleunhi님의 서재 (belleunhi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19 Jul 2026 02:12:17 +0900</lastBuildDate><image><title>belleunhi</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elleunhi</description></image><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인간의 생각 - [쿨투라 CULTURA 2026.7 - Vol.145, AI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93972</link><pubDate>Wed, 15 Jul 2026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939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807&TPaperId=173939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88/coveroff/k1521308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807&TPaperId=173939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쿨투라 CULTURA 2026.7 - Vol.145, AI 시대</a><br/>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6년 06월<br/></td></tr></table><br/>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인간의 생각<br>AI가 만든 이미지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 이미지 안에도 철학과 인문학적 사유가 스며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과 예술가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존재가 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2026년 7월호를 접하게 되었다.<br>이번 호의 테마는 ‘AI 시대’지만 잡지는 곧바로 AI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비롯해 조형아트서울, 석주 윤영자 10주기 기념전 등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미술 기사들이 앞부분에 실려 있었다. 인간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예술의 현장을 먼저 보여 준 뒤 AI 음악과 미술, 영화로 넘어가는 순서가 좋았다. 익숙한 예술의 현장에서 현재의 AI 예술로 이동하는 흐름도 자연스러웠다.<br>AI 테마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되살려 그의 노래를 듣는 이야기였다. 익숙한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사람은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끼고, 실제 인물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AI와 감정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지만 AI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과 AI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 교류라고 불러도 되는지 궁금해졌다.<br>나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흥미로운 차이를 경험했다. 내가 어떤 문제에 관해 할 말도 없고 의견도 없는 상태에서 답을 요구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반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과 의견을 먼저 제시하면 결과도 달라졌다. AI가 내 생각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생각해야 AI도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br>기사중에 AI 문체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AI글이라는것을 지각하고는 거부감 때문에 더 읽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필자는 AI가 만들어 준 글을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여겼을 것이고, 편집 과정에서도 그 문체가 걸러지지 않은 듯했다. 그 글을 보면서 AI를 사용하려면 먼저 AI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br>글이든 이미지든 아직은 AI 특유의 표현과 방식이 눈에 띌 때가 많다. AI가 만들어 준 결과를 그대로 내놓으면 사용자의 생각과 개성은 드러나기 어렵다. 생성된 문장과 이미지에 자신의 관점과 문체를 입히고, 사실관계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더 중요하다.<br>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는 책으로 정보를 얻어야 제대로 된 공부이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일은 가볍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와 글쓰기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AI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AI로 만든 글과 이미지를 낮게 평가하는 시선이 있지만, 앞으로는 사용 여부보다 결과의 완성도와 사용자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br>《쿨투라》 7월호를 읽고 나니 AI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많은 일을 도와주더라도 남들과 다른 시선과 의견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AI가 내놓은 결과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바꿀 것인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88/cover150/k1521308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368875</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를 읽고 -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바로 알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48112</link><pubDate>Mon, 22 Jun 2026 0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481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817198&TPaperId=173481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6/32/coveroff/89848171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817198&TPaperId=173481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바로 알기</a><br/>류한영 지음 / 생활성서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찬미예수님~^^&nbsp;안녕하세요~&nbsp;&nbsp;오늘은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한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 6월 15일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선종 165주기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하면 흔히 '조선의 두 번째 신부', '땀의 순교자'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 역시 신학원을 다니며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배웠고, 부모님과 형제들의 신앙 이야기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최양업 신부님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br>&nbsp;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이야기할 때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의 가계(家系)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은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 그리고 박해로 흩어진 가정을 끝까지 지켜낸 형제들의 서사는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특히 노비들에게조차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게 했다는 일화는 지금 들어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신분과 계급이 엄격하던 시대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복음 정신이 최양업 신부님의 가정 안에 이미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br>&nbsp;이 책은 최양업 신부님 개인의 삶에 깊이 시선을 집중합니다. 부르심을 받게 된 과정부터 마카오 유학생 시절의 생활과 교육, 사제품을 받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그리고 조선에 돌아와 사목자로 살아간 삶을 차근차근 따라가게 합니다.<br>&nbsp;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최양업 신부님의 업적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훗날 한국 순교자들이 시복시성되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홍콩 유학 시절에는 순교자 자료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동참하며, 언젠가 조선의 순교자들이 세계 교회 안에서 공경받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순교 성인과 복자들의 시복시성 뒤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신부님 자신의 시복시성은, 오랜 세월 충분한 연구와 자료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해 오히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br>&nbsp;또한 최양업 신부님은 뛰어난 교육자이자 사목자였습니다. 교리를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천주가사를 지으셨으며, 「사향가」, 「공심판가」, 「사심판가」, 「선종가」 등은 신자들의 신앙생활 안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노래는 가장 훌륭한 교리서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셨으며, 음악적 요소를 사목과 신앙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셨습니다.<br>&nbsp;그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의 현실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양반 사회의 폐단과 백성들의 곤경을 안타까워하셨고, 물을 정화하는 방법과 농업 개선 방안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돌보는 일을 결코 따로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사목 통계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도 1,373명 이상의 성인에게 세례를 주셨고, 12,634회의 고해성사를 집전하셨으며, 4,517회의 영성체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순방하신 교우 수만 해도 13,826명에 이릅니다.<br>&nbsp;마침 저는 어제 수원교구 디딤길 구산성지에서 마재성지 구간을 걸었습니다. 아름답게 정비된 길이었고, 2년 넘게 신어 발이 편한 브랜드 트레킹화를 신고 걸었습니다. 그런데도 네 시간 정도 지나자 신발 밑창이 양쪽 다 벌어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허리 통증으로 종일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최양업 신부님은 어떻게 그 옛날 짚신을 신고 그 험한 산길과 고갯길을 수없이 오가셨을까 싶었습니다. 첫 도보순례라 걱정하는 저에게 디딤길 봉사자 한 분이 "고비가 오면 그때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최양업 신부님의 초인적인 사목 여정 역시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br>&nbsp;순례전 미사에서 구산성지에서 담당 신부님께서는 20여 년 전 요당리에서 배론까지 홀로 순례했던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길을 걷던 날이었다고 합니다.&nbsp; 배는 고프고 잠잘 곳도 없어 막막했지만, 길이 꺾이는 곳을 돌아서자마자 마을의 불빛이 나타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와 같다고 하시며 앞이 깜깜하여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을 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반드시 불빛이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삶도 매 순간 그런 믿음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br>&nbsp;책의 후반부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 추진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신자가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엄격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 기적 심사는 단순한 신심을 넘어 의학적 검증과 객관적인 자료가 요구되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교황청 의학자문위원회에서 긍정적인 판단이 내려졌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큰 희망과 기쁨으로 다가옵니다.&nbsp;책을 덮으며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하셨고, 교우들을 위해 평생 길 위에서 숨을 거두셨으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신부님의 거룩한 삶과 덕행이 한국 교회 안에 더욱 널리 알려지고, 하루빨리 시복시성의 영광이 이루어지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6/32/cover150/89848171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63208</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 [신애론 -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12104</link><pubDate>Mon, 01 Jun 2026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121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880&TPaperId=173121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4/68/coveroff/89321198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880&TPaperId=173121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애론 -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a><br/>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지음,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 엮음, 방종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찬미예수님~가톨릭출판사 북클럽 5·6월 서평도서로 『신애론』을 읽었습니다. 공부를 하자는 마음으로 제목에 "론(論)"이 들어간 책을 골랐는데, 받아보고는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책으로 어떻게 서평글을 쓰지?, "지금 이 시대에 중세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어떻게 내세울까 고민하다가 지난주 교리교육학 시간에 그 답을 얻었습니다.창세기에서 여자는 남자가 창조되는 순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나와 보니 이미 남자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역시 여자가 창조되는 순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 여자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인데도 우리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달라질수록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질문을 가지고 다시 읽게 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 오늘날에도 '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베르나르도의 질문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물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중세의 답을 배우기보다 오늘의 언어로 다시 질문하기 위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nbsp;  『신애론』에 베르나르도의 유명한 말이었습니다."하느님은 사랑받아 마땅한 분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예????? ^^;;; 우리는 사랑을 자유로운 관계와 상호성 안에서 이해하며, 무엇보다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 말이 권위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베르나르도가 말한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처음부터 순수하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존재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두려움과 결핍,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찾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성장하면서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사랑은 인간 욕망을 부정하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여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중세 수도자의 엄격한 가르침이라기보다 인간 내면의 성장을 설명하는 영적 성찰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베르나르도를 무조건 이상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깊은 영성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적극적으로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겸손을 이야기한 성인이 전쟁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책은 이런 부분까지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르나르도를 위대한 성인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 보여줍니다.그래서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기준으로 중세를 판단하기 쉽지만, 중세 역시 자신만의 세계관과 역사적 조건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르나르도는 그 시대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려 했던 사람이며, 그 사랑의 길을 오늘까지 전해 주고 있습니다.『신애론』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왜 가톨릭출판사가 중세를 2026년에 소개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중세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의 우리에게 "당신은 왜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사랑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아마 그것이 이 책을 지금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과 사랑,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4/68/cover150/89321198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546895</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일상의 삶 안에서 만나는 복음 - [복음의 힘 - 복음을 여는 레오 14세 교황의 10가지 단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269766</link><pubDate>Mon, 11 May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2697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10&TPaperId=172697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4/69/coveroff/89321199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10&TPaperId=172697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복음의 힘 - 복음을 여는 레오 14세 교황의 10가지 단어</a><br/>레오 14세 지음, 로렌조 파치니 엮음, 이재협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  &nbsp;  레오 14세 교황님 즉위 1주기를 즈음하여 가톨릭출판사에서 교황님의 연설문들을 모아 엮은 『복음의 힘』을 출간했습니다. 캐스리더스 9기 5·6월의 서평도서로 저는 레오 14세 교황님의  『복음의 힘』을 선택했습니다. 『복음의 힘』을 펼쳐보면 이전 교황이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이  떠오릅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과제로 다른 과목, 다른 교수님의 수업에서 『복음의 기쁨』을 읽고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책을 읽고 느낀점, 그 다음은 북리뷰로 두 차례 읽고 제출했었는데 커리큘럼상 알차게 배우는 과정중이라 학년의 차이가 다른 느낌으로 글을 보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실천이 느껴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었고, 이번 레오 14세 교황님의  『복음의 힘』은 좀 더 인간 내면에 관한 글이 많은 영성적인 글로 보입니다. 책을 보다보면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요, 내가 아는 그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주교 맞나? 싶어 찾아보니 같은 사람 맞구요, 교회의 긴 역사 안에서 라틴어·그리스어·히브리어 이름들이 각 나라 언어로 변형되면서 이름이 많아진거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어 원형에 가까운 학문적·신학적 표기이고, “아우구스티노”는 성인명이나 수도회 전통에서 많이 쓰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자주 언급될까 싶어 또 찾아보았는데요, 레오 14세 교황님이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출신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수도회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보니 이런 디테일은 흘려 듣는편인데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인지가 되었습니다.   &nbsp;    『복음의 힘』에서 인상적인 두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바오로사도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성인은 많은 부분 서로 달랐고, 때로는 복음에 대한 서로 다른 신념으로 충돌도 했습니다. “두 사도의 축일은 같은 날이며, 그들 또한 하나였습니다. 두 성인은 비록 다른날 순교했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묘사했듯 두 성인을 통해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이루는 교회의 모습을 무엇보다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부분라 좋았습니다.   &nbsp;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4장 선교를 통해 배운 것’ 섹션입니다. 하상신학원을 졸업하고 선교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이다 보니, 선교에 대한 레오 14세 교황님의 말씀을 더욱 새겨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선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가톨릭 믿는 사람이 왜 저래?”, “역시 성당 다니는 사람은 다르네”와 같은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이는 꼭 선교사증을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을 대할때도 마찬가입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왜 저래?”, “역시 예술하는 사람이라 다르네”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아직 부족하지만, 삶의 여러 자리에서 보여지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제 김찬수 신부님 강론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결국 복음은 거창한 말보다도,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br> 그러므로 일상의 삶 안에서, 작은 자리에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먼저 사랑받았다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며,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2025년 7월 28일, 페루 젊은이들에게 한 연설. P.73<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4/69/cover150/89321199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54690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