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belleunhi님의 서재 (belleunhi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28 Sep 2026 05:55:30 +0900</lastBuildDate><image><title>belleunhi</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elleunhi</description></image><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느님을 공부한다는 것 - [신학, 하느님과 이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519308</link><pubDate>Wed, 16 Sep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5193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8558&TPaperId=175193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46/86/coveroff/89321185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8558&TPaperId=175193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학, 하느님과 이성</a><br/>미하엘 제발트 지음, 신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04월<br/></td></tr></table><br/>독서의 계절이라고 가톨릭출판사에서 책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와 9·10월의 도서는 자발적 선택입니다.<br>여기저기 봉사를 해봤지만 가장 보람된 봉사를 꼽으라면 저는 가톨릭출판사 도서 봉사를 꼽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서평을 쓰면 책도 주고, 해마다 굿즈도 한 보따리 보내주고, 독서모임으로 출판사에 가는 날에는 맛있는 간식도 꼭 챙겨주십니다.<br>그래서 언젠가 어떤 분이 “다른 데는 돈 내고 가도 이렇게까지 안 챙겨주는데 여기는 우리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라고 하셔서 다 같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br>가톨릭출판사는 책을 나누는 일만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참 잘 내어주는 고마운 곳입니다.<br>이번에 선물로 받은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조선 천주교의 출판 활동과 한글 교리서의 역사를 따라가며 신앙이 책과 글을 통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살펴보는 책입니다. 조선시대 천주교 출판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좋습니다.<br>오늘은 가톨릭북클럽 9·10월의 도서 『신학, 하느님과 이성』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br>이 책은 조직신학 입문서입니다. 제목부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저는 꼭 이런 책이 땡기더라고요. 제 손으로 골랐으니 뭐…. 낙장불입. ㅋ<br>먼저 책의 내용을 아주 짧게 소개해보겠습니다.<br>1장은 신학이라는 학문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해당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신학과 신학자가 존재하며, 어떤 신학도 하느님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신학이라고 부르는 공부가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기본적인 방향을 잡아줍니다.<br>2장의 제목은 ‘신학－학문의 별종’입니다.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신학이라는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신학이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역사신학·실천신학·교파신학 등 여러 신학 분야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살핍니다. 하느님을 연구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학문처럼 연구 대상을 눈앞에 놓을 수 없는 신학의 독특한 처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br>3장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직접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학문적으로 성찰하고, 인간의 실제 삶을 다루면서 사변적인 사고도 수행하며, 신앙을 고백하면서 스스로를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하는 신학의 여러 얼굴을 보여줍니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다룹니다.<br>4장은 조직신학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교의신학은 무엇을 믿는지, 기초신학은 그 믿음이 어떤 근거 위에 서 있는지, 윤리신학은 그 믿음으로부터 어떤 삶이 이어지는지를 묻습니다. 각각의 분야가 하나의 신앙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입니다.<br>5장에서는 조직신학이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되는지를 다룹니다. 신학에도 역사적 조건과 시대적 한계가 있으며 신학의 언어 역시 계속 검토되어야 합니다. 신학자가 무엇을 근거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신앙의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주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묻습니다.<br>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6장 ‘이성과 하느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은 인간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과 최근의 여러 시도도 살펴봅니다. 인간의 이성이 어디까지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오래 붙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입니다.<br>7장은 교회가 고백하는 하느님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계시를 다룹니다. 인간이 이성으로 하느님에 대해 추론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가 실제로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br>마지막 8장은 ‘계셔야 하는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희망,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다루며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들 앞에서 신학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br>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br>우리는 “하느님은 인간의 머리로 다 알 수 없는 분”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느님은 공부해서 아는 분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인간의 도덕 기준 안에 가두어 말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런데 왜 신학은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킬까요.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레포트를 쓰고, 심지어 신학 박사도 있습니다.<br>신심과 지식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신학 박사님들은 왜 그렇게 많은 걸까요.<br>현대인들은 무엇이든 이해하려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근거를 찾고, 개념을 구분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쉽게 비합리적인 것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인지와 설명을 중시하는 시대에 종교가 아무 설명 없이 “믿으라”고만 한다면 사람들은 종교를 미신처럼 여기기도 하겠지요.<br>그래서 신학이라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br>신학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언어를 갖게 합니다. 신앙과 미신을 구별하고, 내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을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br>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는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질문하고, 그 끝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도 알아가는 일이 신학 공부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br>그러다 또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br>종교가 너무 거룩한 곳에만 머물면 세상과 동떨어졌다고 합니다. 시대의 변화와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 이번에는 종교가 세속화되었다고 합니다.<br>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어렵습니다.<br>다만 현대인과 종교가 만나는 데에는 이성과 함께 마음과 체험의 자리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은 내가 믿는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하고, 체험은 그 믿음이 실제 삶과 연결되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를 알고 있어도 삶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신앙은 멀게 느껴질 것이고, 강렬한 체험만 있으면서 그것을 성찰할 언어가 없다면 그 체험의 의미를 오래 붙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br>그래서 결국 신앙에는 생각하는 일과 살아보는 일이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br>책의 마지막에서 신학은 교회와 사회 안에서 계속 질문하고 논쟁하며 성찰해야 하는 과제로 제시됩니다.<br>『신학, 하느님과 이성』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읽다가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지?”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ㅋ<br>그래도 이 책 덕분에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br>하느님을 인간의 머리로 다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왜 하느님을 공부하는가.<br>아직 제 답은 이 정도입니다.<br>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잘 알기 위해서.<br>그리고 많이 안다는 것이 믿음의 크기를 말해주지는 않더라도, 잘못 믿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46/86/cover150/89321185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468640</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책 자체가 잘 쓴 글의 표본 -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 - 글쓰기로 자기 세계를 만든 열두 작가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519301</link><pubDate>Wed, 16 Sep 2026 08: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519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1764&TPaperId=17519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5/65/coveroff/k0521317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1764&TPaperId=17519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은 어떻게 씁니까 - 글쓰기로 자기 세계를 만든 열두 작가들</a><br/>강원국 지음 / 디플롯 / 2026년 09월<br/></td></tr></table><br/>말도 잘 못하고, 글도 잘 못 써서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 나가 천연덕스럽게 줄줄 말을 하고 싶어서 도슨트 학교까지 다녔다. 글을 잘 쓰고 싶었지만 일기조차 계속 쓰는 게 쉽지 않았다. 강제적으로라도 글을 쓰려고 시작한 게 서평이다.처음엔 얼마나 낯이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아는 사람 중엔 아무도 내 글 안 읽었을 거야. 다들 안 읽고 좋아요만 눌러주는 걸 거야.’ 하다가 나중엔 ‘어쩌라고~! 오늘만 사나? 난 오래 살 거거든!’ 하는 마음이 됐다. 예순에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겠다며 장기 프로젝트를 세워 가는 중이다.그 와중에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의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가 나왔단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 솔깃했다.“문장은 훔치는 것이다.”서문의 제목을 보는데 미술사 책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가 떠올랐다. 그렇지. 피카소도 엄청 베꼈지. 훔치는 거나 베끼는 거나.『당신은 어떻게 씁니까?』에 소개된 열두 작가는 글만 잘 쓴 게 아니라 제대로 살았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제대로 살았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예술가들 중에는 “작가가 도덕적인 거랑 작품이 무슨 상관이냐?”, “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작품을 연결시키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그런 생각에는 좀처럼 동의가 되지 않는다.작가들과의 인터뷰에는 비법이라면 비법이고, 다 아는 이야기라고 보면 또 다 아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책 참 희한하다. 글 잘 쓰는 비법이 뭐 있나 싶어 들여다봤는데, 나도 모르게 책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요즘 SNS를 보면 글 잘 쓰는 법을 알려준다며, 웃기려고 쓴 건지 진지하게 쓴 건지 구분도 안 되는 휘황찬란한 미사여구가 가득한 글들이 있다. 이 책에는 그런 문장이 하나도 없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에피소드고 이미 아는 이야기인데도 식상하지 않다. 술술 읽힌다. 심지어 재미있다.둘째가 두세 살 때쯤이었으니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연천 DMZ 앞 마을로 1박 2일 시골 체험을 갔었다. 거기서 식판에 밥을 받아 먹는데, 입에 넣는 순간 내가 평생 먹어온 밥과 맛이 달랐다.그전에는 밥이 맛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냥 밥이니까 먹었다. 죽을 때까지 빵만 먹고 살아라 하면 오히려 좋다고 할 때였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처럼 밥맛이 다 똑같을 것 같지만, 철원쌀도 이 맛이 아니고 여주·이천쌀도 이 맛이 아니었다.이 책을 읽다가 맨 처음 백학쌀을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평범한데 다르다.아, 이래서 대통령의 글을 쓰던 사람이구나.책에서 정지아 작가는 글쓰기 비법으로 힘을 빼고 쓰라고 한다. 그렇다. 모든 게 마찬가지다. 사람이 미숙할 때는 어깨에 힘주고 큰소리도 치고 허세도 부리지만, 나이가 들고 노련해지면 만화 속 배추도사 무도사처럼 홍냥홍냥~ 툭 치는데 상대방은 다 쓰러지는 법이다.열두 작가에게 각자의 글쓰기 비법을 듣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작 그 인터뷰를 쓴 강원국 작가의 힘 쏙 뺀 노련함에 놀라버렸다.&nbsp;<br>“쓰기 전에 이미 다 써놓는다.”문장은 고칠 수 있어도 구조가 무너지면 글이 무너지니까.<br>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25/65/cover150/k0521317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256530</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451352</link><pubDate>Fri, 14 Aug 2026 22: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4513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53&TPaperId=174513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8/31/coveroff/893211995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53&TPaperId=174513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a><br/>홍성남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안녕하세요~ 찬미예수님!가톨릭출판사 북클럽 7·8월 북리뷰는 바로바로~~~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의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nbsp;홍성남 신부님은 다른 신부님들하고는 좀 다르십니다. 보통 신부님들은 차분하고 다정하고 상냥하신데, 혹시라도 그런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면 어떻게 신부님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지요. 그런데 속에 있는말 다 던지셔도 오히려 더 좋아하는 신부님이 홍성남 신부님이십니다. ^^ 아주 시원시원하십니다.&nbsp;<br>어제 복숭아밭에 가서 파치 복숭아를 샀는데요. 한 박스에 만 원이더라고요? 두 봉다리나 사 오느라 팔이 아팠습니다. 제가 또 운전을 얼마나 잘하는지 복숭아가 봉지 밖으로 탈출해서 온 차 안을 굴러다니더라고요. 안 그래도 아픈 복숭아를 제가 아주 사랑으로 막 굴려줬습니다. 흠 난 데만 도려내고 먹는데 아고~ 단물이 줄줄 흐르네요. 맛있습니다.&nbsp;파치 복숭아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단점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장점을 키우고, 하지 말아야 할 것보다 해야 할 것에 마음을 쓰라고 홍성남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nbsp;늘 만나는 사람을 만나고, 늘 하던 일을 하고, 늘 가던 곳을 가는 우리의 삶은 봉쇄생활 같다고 하십니다. 봉쇄수도원은 답답해서 못 살 것 같지만 막상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들은 늘 웃고 산다고 합니다. 피정 가서 봉쇄수녀원에 새벽미사를 드리러 가보면 실제로 수녀님들이 얼마나 잘 웃으시는지요. 아주 작은 일에도 맑고 곱고 높은 소리로 까르르르르르 웃으시는데, 세속에서는 그런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되게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홍성남신부님은 인생에는 풀리지 않는 괴로움과 힘든 일이 가득하지만 즐기다 보면 차선도 최선이 되니, 털어내고 즐겁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즐거움은 갇힌 문을 여는 열쇠라고요.&nbsp;<br>책에는 병이 있는 곳 가까이에 그 병을 고칠 실마리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힘들 때는 어릴 적 나를 들여다보며 내 안의 어린아이를 안고 실컷 울어보라고도 합니다. 내 마음속 오래 묵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씻어내는 일도 결국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겁니다.<br>사람은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내 눈에 타인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때에도 우리는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쩌면 나의 행복으로도 돌아오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nbsp;<br>책 읽는 내내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자주 듣는 “안녕하십니까 홍성남 신부입니다.” 가 귓가를 맴돌며 시각 청각에 달콤한 복숭아의 미각까지~ 아주 맛있는 공감각 독서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nbsp;<br>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묵은 때를 씻어내시며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8/31/cover150/893211995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383175</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많은 점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듯 -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 주님이 세우시고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427741</link><pubDate>Sun, 02 Aug 2026 0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4277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37&TPaperId=174277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1/3/coveroff/89321199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119937&TPaperId=174277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 주님이 세우시고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a><br/>손희송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

저는 요즘 엄청나게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뭐,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늘 눈앞의 일을 하나씩 처리하며
하루하루 살아 나가는 듯합니다.

그 와중에 주말 동안 아주 잠깐 짬이 생겨 가톨릭출판사 북클럽 7·8월의 도서, 손희송 주교님의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북리뷰를 시작합니다.

교회론이죠~ ^^ 이 책은.

작년 우리 신학원 수업 때 나형성 신부님께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의 『교회론』을 배웠습니다. 윤주현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책이었는데, 저자 특가로 책값도 대폭 빼주셨습니다. 가톨릭대학교는 방학이 빠른 만큼 개강도 빨라서 학기 시작이 마침 책이 재판되어 나올 무렵이었습니다. 한 달 넘게 교재를 기다리며 책 없이 한동안 수업했던 기억도 납니다. ㅋ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의 『교회론』은 교회론의 거의 모든 내용이 담긴 두껍고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핵심을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교회는 성령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라는 말로 모아집니다. 생각도 다르고 마음도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한 분을 바라보며 모여 하나가 된다는 일을 성령의 기적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일하신다는 표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0년쯤 전 운전면허 1종 보통을 땄는데요. 면허를 따자마자 트럭을 어떻게 운전하는지는 그 자리에서 다 잊어버렸습니다. 뭐든 어렵게 배워야 나중에 쉽게 할 수 있다는 남편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억지로 1종 보통을 땄으니, 이제 내가 탈 수 있는 차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처음 차가 온 날, “오늘은 직진만 해야지.” 하고 나갔다가 제3경인고속도로에 바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동네에 고속도로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첫 운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나니 그 뒤로는 고속도로든 서울 시내든 피곤해서 못 다니지, 어려워서 못 다닌 적은 없습니다.

다른 것도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처음 배울 때 혼이 쏙 빠지도록 어렵게 배워두면 그다음은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데 신앙 공부는 다른 공부와 조금 다릅니다. 신앙 공부의 결과는 실천으로 드러나고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기에, 말귀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의 『교회론』이 교회론의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면, 손희송 주교님의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는 교회론을 신앙인의 삶으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교회론』이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는 “우리는 왜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냅니다.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희생과 부활,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신약 교회의 연속성과 새로움, 은사, 공의회, 사도와 성인, 신자와 전례, 사제직과 신앙인의 사명까지 교회론의 핵심이 두루 담겨 있습니다. 중간중간 『교회 헌장』을 비롯한 교회의 문헌도 내용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방대한 교회론의 중심 내용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일반 신자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낸 알짜배기 책입니다.

가톨릭출판사 서평 4년 차쯤 되면 대충 직원 같은 마음으로~ 🤣

책장에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의 『교회론』 한 권 든든하게 꽂아두고, 손희송 주교님의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를 읽으시면 교회론의 깊이와 신앙생활의 실천을 함께 챙기는 독서가 되실 겁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 정기전 포스터도 몇 번이 좋은지 골라주시고 가세요~ 😄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1/3/cover150/89321199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10344</link></image></item><item><author>belleunhi</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인간의 생각 - [쿨투라 CULTURA 2026.7 - Vol.145, AI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93972</link><pubDate>Wed, 15 Jul 2026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5688183/173939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807&TPaperId=173939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88/coveroff/k1521308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807&TPaperId=173939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쿨투라 CULTURA 2026.7 - Vol.145, AI 시대</a><br/>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6년 06월<br/></td></tr></table><br/>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인간의 생각<br>AI가 만든 이미지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 이미지 안에도 철학과 인문학적 사유가 스며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과 예술가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존재가 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2026년 7월호를 접하게 되었다.<br>이번 호의 테마는 ‘AI 시대’지만 잡지는 곧바로 AI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비롯해 조형아트서울, 석주 윤영자 10주기 기념전 등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미술 기사들이 앞부분에 실려 있었다. 인간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예술의 현장을 먼저 보여 준 뒤 AI 음악과 미술, 영화로 넘어가는 순서가 좋았다. 익숙한 예술의 현장에서 현재의 AI 예술로 이동하는 흐름도 자연스러웠다.<br>AI 테마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되살려 그의 노래를 듣는 이야기였다. 익숙한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사람은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끼고, 실제 인물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AI와 감정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지만 AI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과 AI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 교류라고 불러도 되는지 궁금해졌다.<br>나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흥미로운 차이를 경험했다. 내가 어떤 문제에 관해 할 말도 없고 의견도 없는 상태에서 답을 요구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반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과 의견을 먼저 제시하면 결과도 달라졌다. AI가 내 생각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생각해야 AI도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br>기사중에 AI 문체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AI글이라는것을 지각하고는 거부감 때문에 더 읽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필자는 AI가 만들어 준 글을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여겼을 것이고, 편집 과정에서도 그 문체가 걸러지지 않은 듯했다. 그 글을 보면서 AI를 사용하려면 먼저 AI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br>글이든 이미지든 아직은 AI 특유의 표현과 방식이 눈에 띌 때가 많다. AI가 만들어 준 결과를 그대로 내놓으면 사용자의 생각과 개성은 드러나기 어렵다. 생성된 문장과 이미지에 자신의 관점과 문체를 입히고, 사실관계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더 중요하다.<br>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는 책으로 정보를 얻어야 제대로 된 공부이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일은 가볍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와 글쓰기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AI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 같다. 지금은 AI로 만든 글과 이미지를 낮게 평가하는 시선이 있지만, 앞으로는 사용 여부보다 결과의 완성도와 사용자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br>《쿨투라》 7월호를 읽고 나니 AI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많은 일을 도와주더라도 남들과 다른 시선과 의견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AI가 내놓은 결과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바꿀 것인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88/cover150/k1521308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36887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