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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평점 :
뉴턴의 아틀리에에 들러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음으로 가득한 아틀리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우주 속에 뉴턴의 아틀리에가 있었다. 삶과 죽음의 철학이 과학과 예술과 함께 우주를 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온 음악, 시 등을 찾아 듣고, 읽었다. 그림이나 디자인은 책에서 설명하는 것을 느꼈다. 글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듣고, 보고, 느꼈다. 과학과 예술 작품에 담긴 철학적 사고가 이처럼 편안하면서도 깊이 있게 이어질 수 있을까 감탄하며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부분은 읽고 또 읽었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을 이해해 보려고 여러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으니 책에 주어진 것으로 만족이다.
뉴턴의 아틀리에에 더 오래 있고 싶었던 이유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던가 과학자가 바라본 예술, 예술가가 바라본 과학, 또는 그것에 담긴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만은 아니다. 그것들이 바라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자세, 배려하는 삶, 차이를 인정하므로 소외됨이 없는 사회, 그래서 평등함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옳음’을 과학의 논리와 예술적 감각으로 설득하고 있다.
‘동굴에 그림을 그리며 인간이 된(p.381)’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種)이 되어(p.40), ’이어지고 싶은 열망을 담아서’ 글자를 만들고, ‘글자는 그리움을 기다림 속에 실어 나르며(p.74)’ 그렇게 인간과 인간을 연결했다. 그 인간들은 다들 결이 달라서 ‘마음이 비단결이라도 결이 다르다면 같이 일하기 쉽지 않은(p.111)’ 경우도 있었다. 결이 다른 인간들은 평균치를 만들고 ‘의(義)의 부재인 불의(不義)는 단지 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갑질이라는 실체가 되어 세상을 배회(p.331)’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롭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인간들은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Fürchte dich nicht, ich bin bei dir(두려워 말라, 내가 네 곁에 있으리라).” (p.135) 이 한 문장을 부여잡고 또 하루를 보낸다.
뉴턴의 아틀리에에서 만난 과학자와 디자이너는 이런 우리의 현실에 대해
특정한 기준에서는 정의되지 않는 능력들,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아 사장되는 다채로운 재능들을 놓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낭비가 아닐까?(p.258)
입체파 화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깨달았듯이 모든 존재는 평등하게 원자로 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은 구의 정신을 오롯이 품고 있다. 편평해 보이는 세상의 저 깊숙한 곳에 구의 중심이 있어, 세상의 모든 곳은 평등하다는 것을 말이다.(p.298)
라고 말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럽다고.
우리는 별에서 온 원자들이 우리 몸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는 과학의 진실을 안다. 인간은 필멸이라도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는 불멸임을 안다. 이 사실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필멸의 생명이란, 원자들을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조립한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 아님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 속 유구한 생명의 흐름은 지속될 것을 알고도 개체의 소멸을 애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명의 인간 개체는 생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경험과 지식과 기억의 온전한 집적체일진대, 그것이 죽음으로 스러지는 엄청난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살아간다는 기쁨, 육체 감각의 강렬함, 억제하기 어려운 열망, 넘쳐흐르는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p.134)
뉴턴의 아틀리에를 나서면서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려 사는 인간인 내가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그 ‘못했음’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갖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세상에 ‘아는 만큼 안 보이’는 것 보다 몰라서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고, 나의 점은 여전히 동사 ‘배우다’라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무한의 반복을 멈추고 유한에 머무는 순간 그 유한의 크기는 부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점은 물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점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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