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루조당 파효 서루조당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먼 과거에 문자가 생기고 기록한 뭉치들이 쌓이면서 책이라는 것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지구상에 만들어진 책은 전 인류와 맞먹고도 남을 것 같기도 한다. 이렇게 깊이 따지고 보면 책이라는 건 대단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으로 인해 현재는 많은 이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새로운 시리즈 서루조당. 이건 세상에 인쇄되서 나온 모든 책에 의한 책에 대한, 책을 위한 기묘한 이야기다. 묘하게 섬뜩한 분위기나 전체적인 느낌은 교고쿠 나츠히코식 비블리아 고서당이다. 다만, 비블리아 고서당은 책과 이어진 숨겨진 사연을 찾는 것이지만 서루조당은 한 사람, 즉 개화기의 변화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안내해줄 책을 찾아준다는 게 다르다. 그래도 시대적 트랜드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소재를 부분적 요소만 바꾸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전개와 느낌을 보여주기 때문에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처럼 마냥 인기작을 따라한 아류작이라고 볼 수는 없다.(커피점 탈레랑에 대한 점은 대부분의 일본 독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일본 아마존 서평란을 조금만 번역해보면 알 수 있다.)
 서루조당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서루조당 입구에 걸려 있으며, 책표지에도 그려져 있는 弔(조상할 조)라는 한자였다. 이 글자의 뜻을 알기만 했는데도 벌써 섬뜩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弔(조상할 조)는 조문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제목인 서루조당은 대략 이런 뜻이리라.
 書 글 서
 樓 다락 루
 弔 조상할 조
 堂 집 당
 다락에 있는 글(책)을 조문하는 가게(제 나름의 해석이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책에 대한 교고쿠 나츠히코의 철학을 많이 보았는데, 주로 책 안에서 기묘한 존재를 꺼내 설명하던 것과 달리 서루조당은 아예 책 자체를 기묘한 존재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책이란, 무덤이자 시체라고 한다. 그런 책을 읽는 독서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한다. 나도 한 때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책 하나하나의 내용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축에 있는 시공간이며, 책을 잔뜩 모아 놓는 것은 여러 시공간이 모인 우주이며, 읽을 때는 시간축이 움직여 세계가 살아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시간이 죽어버린 책의 무덤이라고.(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읽고 얻은 이미지다.)
 길을 잃은 자에게 지도를 건내주듯이 서루조당에서는 이 말이 진리로 안내해주는 안내말이다.

 "당신은 -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첫 번째 탐서, 임종

 갑작스럽게 도쿄 한구석에 집을 마련하고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나. 일자리 없이 거리를 배외하던 중, 한 책방의 사환과 얘기를 나누다가 기이한 책방에 대해 듣게 된다. 마침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참이던 그는 문제의 책방을 방문하게 된다. 책방의 이름은 서루조당. 해가 떠 있는데도 음침한 어둠을 띄는 그곳에서 책방 주인과 얘기를 나누던 중, 신경증을 앓고 있는 누추한 남자 손님이 찾아오는데...
 서루조당이라는 세계를 알아가는 입문장이자, 실존하는 세계와 허구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고찰을 느낄 수 있는 파트였다.
 주로 보여야 할 것과 보이지 말아야 대한 고찰로, 괴이한 현상을 당연시 받아들이던 중세적인 세계관과 미신으로 치부하는 현대적인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단순히 있는 것은 보이고 있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있어야 하지 않을 게 보인다면 정신에 병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걸 바꾸어 생각하면 어떨까?
 오히려 있어서 안 되는 걸 보아서 그걸 부정하려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보았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현실이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 역시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던 나머지, 너무 쓸데없는 고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한 당시 우키요에 화가가 서양화에 대해 생각하던 바와 거기서 느끼는 박탈감을 보며 한 예술가가 시대적 흐름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서루조당의 손님이 과거 메이지 시대에 실존 인물이었고, 그 손님이 사간 책이 후에 놀라운 흔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실존인물을 이용한 창작이겠지만 역시 세상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일까?

 두 번째 탐서, 발심

 새로 신설된 다리를 건너보기 위해 거리로 나온 나.
 별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다가 근처 책방에 들리기로 한다. 그런데 길을 잃고 우편집중국으로 갔다가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젊은 서생을 목격한다. 그 후, 목적지인 책방에 가서 책을 추천 받던 중, 아까 본 그 서생이 다시 나타나는데...
 문학에 대한 내용이 주로 많지만 실제로는 미신, 더 넓게는 토속 문화와 현대적 감각의 충돌이 더 많았다. 지금도 귀신이라던가 현실적이지 않은 괴담은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즐길 사람은 즐기고 아닌 사람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막 세상이 변화하던 시기에는 그런 관점이 하나의 큰 고민거리였나보다. 확실히 미신이나 귀신을 좋아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거기에 미신은 속 된 것이라 쓸모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조당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예.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것이라곤 없습니다. 세상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자가 있을 뿐이지요."-142p

 나 역시 귀신이나 요괴를 좋아한다. 단순히 공포스러운 존재라기 보다는 이런 게 나타난 기원이라던가, 무언가의 상징, 또는 토속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에 비하면 너무나 사장된 게 많은지라, 하나하나 살리다 보면 뭔가 엄청난게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한다.
 토속적인 부분이 많지만, 문학적인 부분 역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문학이란 순수하게 사람사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고, 그에 반하는 건 문학이 아닐까. 하는 부분을 보며 마치 우리나라에서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지어 대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자격이 있냐, 없냐 대한 말까지 나왔는데, 굳이 이렇게 구분짓기 보다는 여러갈래가 있다고 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길은 많지만, 그냥 편한 길과 뜻을 이루기 위한 험한 길이 있다는 차이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반전이라면 바로, 서생의 정체일 것이다. 임종에 나오는 인물은 잘 모르는 인물이라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이 인물은 내가 아는 인물이라 좀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는 번역서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라 이 분을 아는 사람이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세 번째 탐서, 방편

 옛날에 다니던 담배회사 창업자인 야마쿠라와 함께 샤미센 공연을 보러온 나. 공연이 끝난 후, 근처 식당에서 술 한 잔을 하던 중, 구석에 있던 노신사를 발견한 야마쿠라는 반가운 듯이 그와 대면한다. 야마쿠라의 말에 따르면 그 노신사는 도쿄에서 일어난 괴사건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해 신문에도 난 경시청 야하기 순사라고 한다. 야하기는 야마쿠라와 합석해 자기가 최근에 다니고 있는 철학관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개화기의 계몽운동과 학자의 시점에서 보는 계몽의 방법론에 대한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부제인 방편에 대한 게 많이 나오는데, 쉽게 말하자면 어린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도깨비가 잡아간다고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믿게하거나 가르치기위해 미신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잘 보면 방편이라는 게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이 방편만 내세우고 정작 실천을 하지 않거나 방편을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문제점이 된다. 즉, 예를 들면 신이 있다고 하며 자비와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오직 신이 있다고 믿으며 신이 있다고 믿질 않으면 신앙심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철학하면 다들 어려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그럼으로 거리가 멀다고 여기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철학이 생겨난 이유를 보면 단순히 학자들의 영역에서만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석가도 공자도 진리를 가르쳤어요. 그들은 누구를 향해 진리를 가르쳤습니까? 지혜도 지식도 없는 대중을 향해 가르쳤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철학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236p

 이는 결국 계몽의 시대에는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해서 어렵다고 어겨진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그저 학자들만 이해하는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 아닐 까 한다.
 앞에서 방편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학문을 어렵게 받아들이는 대중을 이해시키려면 역시 방편이 필요한 모양이다. 하긴, 지나치니까 문제지 원래부터 문제였던 것은 없었고, 아무래도 학문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색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이걸 오해할 수도 있는데, 쉽게 설명한다고 주장하려는 철학이나 주장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다만, 설명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지옥이니 신이니 헛소리하는 종교인 같은 게 아닌 진정한 사회 개혁가이며, 교육자이자, 계몽운동가가 아닐 까.

 네 번째 탐서, 속죄

 추운 겨울날, 뱀장어 요리 때문에 집을 박차고 거리로 나온 나. 이윽고, 처음보는 뱀장어 요리점을 발견하나 입구에 죽치고 앉은 시커먼 남자를 보게 된다. 머뭇거리고 있던차, 남자의 일행인 노인이 그를 가게 안으로 불러들이며 나 역시 들어서게 된다. 나카하마라 소개한 노인의 별의미 없는 인생을 얘기를 듣던 중, 그 시커먼 남자는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치적인 부분이 많아서 메이지 유신 당시의 역사적인 면이 많이 나왔다. 존왕양이니, 신정부파니하는 역사 교과서에 나올 법한 용어부터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이 언급되서 앞의 내용보다 조금 따분한 면이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는 정치판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없진 않아서 완전한 일본 정서적인 내용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주로 도쿠가와 막부와 가신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의와 도리를 지켜야하는 관점과, 에도시대에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던 관습의 병폐가 보였다.
 천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심판을 빙자한 악행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신이 그렇게 악행한 자를 죽이라 명령하고, 정치적 뜻을 행하라고 주장할까. 그건 일종의 회피이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하기 위한. 여기에 충(忠)과 의(義)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관점이나, 오해가 더해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정치판이 복잡해진다.
 역사는 기록하는 관점에 따라 평가된다는 걸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한 일도 기록자가 불순한 의도라 하면, 후대에도 불순한 의도가 되고 심지어는 살아있음에도 죽었다면 죽었다고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떤 큰 뜻을 가지고 행한 일이라 할지라도 이런 거대한 영향력을 보며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이 제대로 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시다시피 에도시대에 무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빈번했었다. 물론 아무런 이유없이 죽인다는 것보다는 모종의 근거가 있어서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범죄자고, 나쁜 짓을 한 놈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범죄의 심판과 살생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천벌이라 할지라도 그건 곧 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형이라는 중형도 있지만, 이러한 판결 없는 살생은 아무리 정당성이 있다 한들 범죄나 다름 없을 것이다. 만약 사람을 죽이고 속죄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무리 오랜 수감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은 사람이 왜 살아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312p

 다섯 번째 탐서, 궐여

 벚꽃이 질 무렵, 본가로 돌아갔던 나.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가족들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도쿄 외곽으로 다시 떠난다. 불편한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아침 일찍 근처 책방, 마루젠에 들린다. 그때 점원인 야마다가 나를 찾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야마다의 말에 따르면 소설가 오자키 고요가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인데...
 어른이 어른 다워야 한다는 얘기, 다들 많이 들었을 것이다. 애늙은이는 몰라도 어린이 같은 어른은 인정받기는 커녕, 어른답지 못하다고 비판받는다. 이와 같은 관점과 갈등은 메이지 시대에도 있었나 보다.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군다는 것은 단순히 성숙하지 못한다는 것을 넘어, 과거로 도피한다고도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맞서는 것 만이 진리이고 정답일까? 보면 사람은 안 될 걸 알면서도, 그럼으로서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도망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론, 끝까지 맞서는 대범함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생각해도 안 될 걸 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맞서는 것은 대범함이 아닌 그냥 스스로 자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도망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이미지만 따지다가는 그런 것도 따지지 못할 정도로 망가질지도 모르니까.
 또한 아동용과 성인용을 구분하는 잣대에 대해 생각해 보게 금 하는 내용이 많았다. 아동이 성인용을 보는 건 정서적인 문제 때문에 당연히 안 된다. 하지만, 성인이 아동용을 보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냥 애들이 보는 거다, 그래서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 라는 고리타분한 이유가 전부다. 그러나 현재 성인인 사람도 어릴 적에는 아동용 도서를 읽으며 자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동용 도서를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준에 대한 문제도 아동과 성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학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쓸데 없는 구분을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라는 요소가 있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장래의 문제에 대해 나와서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당 주인의 말을 보며 시대의 방향과 맞지 않게 가도 거기에 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뜻과 의미가 있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

 승패라는 천한 가치판단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열등한 자가, 도망치는 것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374p

 모두가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당신은 오직 혼자,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오른쪽에 목적이 있다면 왼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왼쪽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은 왼쪽에 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도피가 아니지요. 모두가 오른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목적도 오른쪽에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375p

 여섯 번째 탐서, 미완

 주인집에서 맡아달라고 부탁한 고양이와 집에 있던 나. 아무런 의미없이 죽치고 있던 중, 서루조당 사환인 소년이 찾아온다. 다름이 아니라 방대한 양의 고서적을 사드리는 과정에서 일손이 부족한 나머지 부탁함과 동시에 고양이를 새로 맡길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별수 없이 사환 소년과 길을 나서서 도착한 곳은 나카노의 위치한 신사였는데...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이자,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키구치와 견주어도 손색 없을 음침한 남자가 주연으로 나오며, 교고쿠도의 할아버지 쯤 되는 인물이 등장해서 나름 기대하며 읽었다.
 그 동안 근대적 시각과 전통적인 시각의 대립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종교적인 면, 일본 신토를 비롯한 음양사에 대한 고뇌가 많이 보였다. 음양사가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마 우리나라로 치자면 무당이 자신이 하는 모든 의식이 아무런 효엄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즉, 오래 전에는 위대한 주술사로 칭송 받았으나, 현대에 와서는 속임수를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위축된 것일 테다. 그 동안 지식인층이나, 정치인, 평민들이 시대 변화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많이 보았지만, 음양사와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신앙은 사기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없는 것을 있다고 해야 말이 되는 것들도 많다. 실재로 마음이나 냄새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처음에는 어려워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았는데, 그 뜻은 간단했다. 바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로서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주술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속임수라 할 수도 있으나, 위의 방편과 마찬가지로 큰 뜻을 전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사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말이 가장 큰 의의로 다가온다.

 이 세상의 절반은 거짓입니다. -450p
 
 끝으로 미완이라는 단어를 보며, 완성되지 않은 채 버려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여기서는 색다른 뜻으로 받아들여 졌다. 완성되지 않았으니, 그 끝은 존재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다. 즉, 이는 앞날을 알 수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내일을 걱정하며 골머리를 썩힌다. 이건 우리가 완성된 채라고 받아들임으로서 빠지는 고뇌가 아닐 까. 차라리 지금의 상태로 전전하며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미완인 채로 있어야 예상치 못한 내일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미완은 정체되고 도태된 상태로 보일지 몰라도 무언가를 하게 되리라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너무 앞날만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기 보다는 지금을 생각하며 즐기는 게 더 좋다는 게 아닐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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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기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는 의외로 공포물을 맛깔나게 쓴다. 그가 쓴 살인귀라는 소설은 온갖 잔혹 표현을 서슴없이 쓴다고 들어서 국내에 들어올 수나 있을지 관심의 대상이다.
 공포 단편집인 안구기담은 초반부터 아름다운 공포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아야츠지 씨의 공포성향은 절대 어디가지 않는다. 뭐, 아름답기는 아름답다. 단지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보면 전혀 아니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 단편집의 묘미는 전부 다른 내용의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공통된 사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맥거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재생

 알콜 중독이었던 나는 우연히 병원에서 지금의 아내와 만나 결혼하게 된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지내던 중, 아내는 뜻밖의 비밀을 말하게 되는데...
 마치 이토 준지의 토미에를 감동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분명 헌신적인 사랑은 사랑인데 토미에에서 나오는 비뚤어진 사랑 같으면서도, 어딘가 감동적인 이상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뭐, 어떤 설명을 하든 전반적으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기괴한 기담이다.
 아마 이 단편집이 전체적으로 어떤 성향인지 잘 알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나마 수위가 좀 낮은 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요부코 연못의 괴어

 아내의 유산과 그로 인한 불임으로 적적함을 느끼던 나는 뒷산에 있는 요부코 연못에 낚시를 하러 간다. 미끼도 없이 마냥 시간만 때우던 중, 빈 낚시바늘에 기이한 물고기가 잡히게 되는데...
 마치 생물의 진화를 신비롭게 나타낸 내용이었다. 신비롭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목격한다면 경이롭다기 보다는 공포가 먼저 엄습하고도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계속된 진화의 끝에 나올 생명체에 대한 불안감은 그 아무리 경이로운 존재라 할지라도 경계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 특징이다. 그러니 다른 단편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겠지요..?

특별요리

 남들이 먹지 못하는 혐오음식을 즐겨먹는 나. 대학 동창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는 선배에게 취향에 맞을 한 맛집을 추천받는다. 그 후, 우연히 아내와 외출을 했다가 맛집에 들리게 되는데...
 내용 전반적으로 괴식이 많이 나오지만, 결론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고찰을 넘어선 공포다. 이전에 읽은 토탈호러에 실린 흉포한 입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흉포한 입은 애초부터 정신나간 전개라 미친 놈의 끝을 본다는 느낌이고 특별요리는 거기에 뭔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게 차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이상한 것들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게 많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게 도가 지나치면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일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마 기어코 나 자신에게 까지 예술을 들먹여야 감이 잡히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결론적으로 예술을 빙자하며 나 자신까지 파괴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인 나. 파티 장소로 가는 길에 있는 한 가게에는 그녀가 자주 들여다보는 칼이 있었는데, 오늘은 칼이 없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기억의 파편. 이 모든 것은 파티 장소에서 알게 되는데...
 상당히 기묘하면서 강렬한 잔혹 묘사가 특징인 단편이다. 모든 단편을 통틀어 잔혹묘사가 가장 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가장 행복하게 보일 것 같은 생일선물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말이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무너져 있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한 구석을 강하게 느꼈다. 어쩌면 모든 게 환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분명 생일이고, 선물을 받았고, 가게의 칼은 없어졌다. 이 확실한 3개의 구성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상의 현실은 비현실을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합쳐져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는 건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이브인 만큼 분명 분위기는 훈훈하다. 단지, 상황이 전혀 훈훈하지 않아서 문제지.

철교

 고등학교 동창인 두쌍의 커플은 여름을 맞아 열차를 타고 놀러가는 중이다. 야간 열차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이즈미는 곧 지나게 될 철교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전개에서 오는 반전이 묘미다. 여행가는 도중에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무슨 일이 터지는 클리셰는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역시 전개상으로는 비슷하지만, 주제가 되는 무서운 이야기 속에 있는 섬뜩함과 훈훈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교차되는 게 정말 기묘하다. 그리고 앞서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약간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라 쉬어가는 타임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인형

 소설가인 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게 된다. 이후, 요양차 고향집에 내려가서 밀린 원고를 집필하던 중, 강가에서 버려진 기괴한 인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인형이 주제로 나오는 공포는 수 없이 많이 봐서 질리고도 남겠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형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이 인형과 주인공의 삶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비현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과연 같은 인간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도 존재하는 가.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나는 죽은 것이고, 지금의 나도 곧 죽을 것인가.
 또,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인가.
 인생의 굴레를 깊이 따져보며 한 생각은 정말 기괴한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내 뒤로 쌓여 있는, 나와 똑같은 한편 나이가 다른 수 많은 시체. 그리고 내 앞으로는 지금의 나를 죽이려고 대기하는 미래의 나.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망가지면 이런 것일까?

안구 기담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어느 날, 동창으로부터 한 소설 원고를 받게 된다. 한밤 중에 혼자 읽으라는 기이한 말이 적힌 편지와 함께 배달된 원고의 제목은 안구기담. 대학 조교수인 주인공이 요양겸 동창회겸 고향 마을을 방문했다가 기이한 일을 겪게 되는 내용인데...
 전반적으로 주인공이 받은 원고인 안구기담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목 그대로 내용 곳곳에 사람의 눈이 굴러다녀서 보기에 혐오스러운 장면이 꽤 있다. 보통 눈이라고 하면 시선에 대한 공포가 많은데 여기서는 눈 자체, 즉 안구가 공포의 대상이다. 아니, 눈이 내뿜는 시선과 함께 눈의 외형이 주는 혐오감이 같이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끝나는 와중에 숨겨진 반전은 현실과 환상이 이어지면서 끝나지 않은 시선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시선을 느끼면 누군가 본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 시선이 많다면 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테고. 하지만 그 많은 시선이 사실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리고 누군가라는 존재가 아닌 눈이라는 물체 자체가 본다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건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서 느끼는 침입자에 대한 공포가 아닌, 눈 자체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걸 읽으면서 내용 속에 언급되는 이 문장을 꼭 잊지 말자. 정말 묘할 것이다.

 읽어 주세요.
 한밤 중에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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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왔다. 활발하게 살아야 한다, 좀 나가서 친구들이랑 어울려라, 너는 내성적이라 문제다... 이 얘기는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더한 10년 가까이 같이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부서질대로 부서져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지금은 조금 낮지만, 아직도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추천받았다. 바로 조용한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는 자신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지만 본인이 내성적이라고 하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은 시끄럽고 활발하게 돌아가지만, 조용하게 사색을 즐기고 싶어하는 부류가 있다고 한다. 세상은 그런 부류를 가리켜 내성적인 사회부적응자라고 펌하한다. 하지만 저자는 외향적인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추앙받고, 내향적인 이들이 심각하게 부당한 평가를 받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과거에서부터 시작된 외향적인 면이 추앙받는 현실이 만들어진 과정부터, 사회적으로 외향적인 면이 어떻게, 왜 추앙받는지 따져가며 저자는 현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맹목적으로 받들어지는 외향성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 시사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다. 이미 가까운 곳에서부터 세계적인 경제참사 때도 앞장서서 이끌던 외향적인 이들이 대부분 도산했고, 뒤에서 고민하던 내향적인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증명된 사실이 있다. 즉, 외향적인 면이 리더로서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리더로만 뛰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 내용 중, 한 경영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게 다 프래드킨 때문이라고. 그 인간은 사업 센스는 꽝인데 리더쉽 기술은 엄청나서 사람들이 다들 그 인간을 따라서 곤두박질친단 말이야. -110p
 

 내향적인 이들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찬양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외향성에 집중된 사회에 내향성도 어느정도 역할이 필요하고 한쪽으로 너무 쏠리면 아무리 공들인다해도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향성과 내향성이 앞으로 어떻게 조화롭게 지낼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고.
 약간 인상깊은 부분이 있다면 동양과 서양의 성격상을 비교해보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대체로 서양이 외향적, 동양이 내향적이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힌 사례는 서양이 미국을 비롯한 유렵, 동양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었다. 그래서 내향적인 면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한중일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이걸보며 미국이나 유렵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이 있고, 서양에서는 동양을 대체적으로 이렇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동양도 이미 미국과 거의 비슷해지고 있거나, 거의 비슷해진거나 마찬가지겠지만...
 책 전반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말을 보면 이렇다. 
 협력이 창의성을 죽인다.
 집단이 개인의 판단 능력도 마비시킨다.
 혼자 있는 시간이 최고의 능률을 올리는 시간이다.
 조용함이 아니라 섬세함이다.
 내향성은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처음부터 문제는 아니다.
 이는 얼마 안 되지만, 깊이로는 숱한 시간과 맞먹는 내 과거에서 이미 많이 느낀 것이다.
 앞으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려면 편견도 없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먼저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고 좋게 여겨야 하겠다. 무엇보다 과거와 지금 현재에도 내향적이지만, 멋진 업적을 이룬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된 이들은 다음과 같다.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의 레리 페이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 마하트마 간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해리포터를 쓴 J.K. 롤링, 아이작 뉴턴, 스티븐 스필버그,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이들이 내향적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과 업적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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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월요일이 없는 소년 - 제1회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대상 수상작 제1회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황희 / 낭추 / 2014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알고는 있다고 하지만 성소수자문제는 다들 한 번 쯤은 잊고 살 것이다. 그나마 대중매체에서 게이라던가 레즈비언에 대해 약간씩 다루어서 크게 낯설지는 않겠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는 것 같다. 또한 이건 나도 생각지 못했던 점인데, 성소수자 문제를 성인의 시점에서 보다보니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는 아예 고려대상 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문제지만, 차별을 넘어선 혐오범죄는 더욱 문제가 된다.

 은새는 원래 남자이나, 체형은 여자라서 여자가 되기로 한 성소수자이다. 그런 그녀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마시던 중,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마 처단 천사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는 속보를 듣고 당황하며 급히 자리를 떠난다. 지하철에 도착한 그녀는 들어오는 전동차에 뛰어드는 남자를 구하게 된다. 어색하게 남자와 같이 있던 그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의심하면서도 전화를 받은 그녀. 그런데 전화를 받고서 눈을 뜨자 그녀는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황희 작가님 특유의 어두운 현실과 청소년 성소수자의 처한 현실, 그리고 타임슬립이 합쳐지면서 긴박에 긴박함이 더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힐 수록 더해지는 위협, 성소수자라는 입장에서 느끼는 박탈감, 그리고 타임슬립물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여행자라는 불안감. 이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하나의 느낌으로 와 닿았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현실은 보통 청소년들보다도 더 힘겹게 보였다. 내적인 불안과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거기에 시선을 넘어선 직접적인 차별과 경멸. 이런 각박한 현실도 벅찬데 가까운 이들에게서도 경멸받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공권력도 그리 탐탁지 않게 본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던 것은 읽으면 읽을 수록 소설에서도 이렇게 성소수자를 다룬 게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소설에서도 성소수자를 이렇게 차별받고 불안하게 살아는 걸 많이 본 적이 없었다. 기껏 나와봐야 클럽에서 퇴폐적으로 묘사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밖에. 이렇듯 소설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해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소수자 문제와 더불어 종교에 관한 논점은 시끌시끌하게 싸우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냈고, 종교의 의미와 존재를 다시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종교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온갖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짓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잘못됐다고는 말하지만 정작 왜 잘못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현실적인 도리나 법률을 꺼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종교적 논리 밖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였는지 여기서는 현실적인 문제로 반박하기 보다는 종교의 본질을 돌아보며 반박해 광신도적인 면이나 종교가 행하는 비인도적인 행동을 비판한다. 현실적인 면만 생각하다가 종교적 본질을 돌아보니 법률이나 도덕적인 면을 논하기에 먼저, 현재 종교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먼저 따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의 존재, 아니면 작은 희망이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나, 종교란 이름으로 온갖 눈꼴 사나운 짓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딱 이런 문구를 보여주어야 한다.

 

 신은 있다고. 신은 이런 분들을 통해 사랑을 보여주셔. 자기들이랑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경멸하면서 성경을 들고 예수를 부르 짖는 사람들에겐 신이 없어. 신앙심의 가장 기본인 사랑이 없으니까.

                                                                                                                                 -240p

 

 시간여행 끝에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베드엔딩일까. 그건 독자가 보는 은새의 모습을 보며 알아서 판단하는게 좋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됐듯이 제목에서는 소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은새를 그가 아닌 그녀로서 자연스럽게 본다면 성소수자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게 됐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은새를 그녀로 자연스럽게 보게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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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봄 한정 고전부 1학년 박스 세트 - 전4권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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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주니까 돌아오는게 이겁니까? 이것들이 돈독만 올라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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