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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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지킬 것이 많다. 무슨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 마냥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멀쩡한 사회가 있어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한다면 그게 야생과 다를게 없다. 특히 치안이 불안하고 부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더욱 야생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생에서는 가장 먼저 공격받기 쉬운 건 약자이다. 특히 어린 생명이.

 베니 그리설은 과도한 음주로 아내와 별거를 하고 있던 중, 아동폭력범을 골라 살해하는 일명 아세가이 살인마 수사를 맡게 된다. 아무런 단서 없이 전전하던 중, 콜걸 크리스틴이 자신의 아이가 콜롬비아 마약상에게 납치당했다는 신고를 듣고 거대한 작전을 짜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인상은 아파르헤이트와 월드컵, 그리고 괴담처럼 돌던 치안문제까지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회상이 복잡한 구성을 띄어 보였다. 빈부격차 외에도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 하는 분위기에 낯설지 않은 부정부패와 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모습에서 상당히 거친 느낌을 받았다. 있을 건 다 갖춘 사회지만, 결국에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야생적인 느낌.

 특이한 무기를 가진 살인마가 나오지만, 작가는 굳이 이름을 밝히고서 시작한다. 이런 경우 대체로 형사, 혹은 탐정과 범인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스릴를 형성하고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형사고 범인이고 모두가 피해자나 다름없어 보였다.

 베니 그리설은 범죄소설에 자주보이는 술에 빠져사는 형사의 이미지지만, 가정을 위해 술을 줄인다는 점에서 약간은 색다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알콜 중독 치료과정까지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베니 그리설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내내 술과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베니를 보면 뭔가 의욕은 있지만, 세상에 실망해서 자신을 망치는 경우로 보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주변 환경 때문에 망가지는 걸 본 입장에서 베니 그리설은 불운의 경찰이었다.

 아동 범죄가 주 소재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이 있었다. 거기에 경찰은 도움이 안 되고, 범죄자 인권은 지독히 따지는 모습이 많아 아세가이 살인마의 행적은 해결사에 가까워 보였다. 보통 복수하는 형태의 살인마는 각종 다양한 문제점을 들어 정당성을 부정하려드는데, 작중 사회 상황과 증오적이기 보다는 뭔가 결의에 찬 듯한 살인마의 심리를 보면 살인마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혁명가에 가깝게 보였다. 분노와 함께 나타나는 그의 염원이 남일처럼 보이지 않아서 몰입이 되었다.

 여기에 인물들 간의 접점이 상황을 더욱 예상치 못하게 한다. 특히 사건의 중심에 있는 베니 그리설과 아세가이 살인마 외에 나오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성의 시점이 그렇다. 크리스틴은 아세가이 살인마 사건 외의 시선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제대로 모여준다. 열악한 현실에 맞서는 베니와 살인마처럼 대응할 만한 수단이 전무하기에 크리스틴은 거의 피해자의 위치라 할 수 있다.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성향과 출신환경은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때로는 불법적이고, 때로는 과격하기도 하지만 작중 내내 펼처저 있는 사회를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아는 사람, 같은 직장의 동료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멀쩡히 있는 사회가 보호를 하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자체적인 방어 밖에 없다.

 사회에 존재하는 야생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허울만 있고 실질적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가 이렇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기에 거친 야생을 언제 어디서 경험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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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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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널린 게 나쁜 놈들이다. 살인을 비롯해 사기, 아동학대, 폭력 등. 같다 붙칠 죄목은 수 없이 많고, 그 만큼 저지르는 사람도 천지다. 문제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가 아닌 이상, 이들이 처벌받아도 언젠가 사회에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과연 우리는 나쁜 놈이 과연 어떤 것인가, 용서받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누나가 살해당한 일로 범죄자 증오에 시달리는 사에키 슈이치. 그 일로 경찰까지 됐으나 범죄자 증오가 도를 넘어 퇴출되고 탐정으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슈이치는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의 최근 모습을 조사해달라는 노부부의 의뢰를 시작으로 처벌받은 이후의 범죄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개개의 사건 수사와 함께 사에키 슈이치라는 탐정의 개인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연작형식이라, 이 탐정의 심정변화와 범죄자에게 사죄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간결하게 쓰여진 것에 비해 작중 내내 무거운 소재를 계속 던져주기 때문에 가볍다 할 수는 없다. 탐정 본인이 겪은 사건도 무겁지만, 의뢰를 맡은 사건들 역시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 어려울 뿐이다.

 아동살해 사건의 피해자 노부부. 아동방임 피해자였던 청년. 범죄를 저지른 동생을 버린 누나. 사기꾼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오빠. 변호한 범죄자의 갱생을 믿고 싶은 변호사. 이들이 조사해달라는 인물들은 전부 이미 끝난 사건의 가해자들.

 범죄를 저지른 이후, 멀쩡하게 살아가는 가해자와 아직도 잊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들은 현실에도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가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여기고 있는 가이다. 하지만 작중에 나타난 가해자들을 보면 속 시원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엇이 정답인지 더욱 알 수 없게 만든다.

 과연 저게 자신의 죄를 뉘우친 모습일까.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쓰레기라면 복수를 해야할까.

 현재 그들의 행복을 파괴할 권리가 있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죄일까.

 이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거리들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말로 표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보며 악당이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악당은 그냥 나쁜 놈,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 알고 왔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를 당시나 이후에도 철면피의 악질이면 몰라도, 처벌받은 이후의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피해자들 기억 속에는 분명 악당이다. 그러나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 앞서 말했듯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죄와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거 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악당이 생겨나지 않으려면 증오를 없애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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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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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 섬_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하와이 몰로카이의 현인 칼라마케의 딸과 결혼한 나. 장인어른은 딱히 일을 하지도 않는데도 여기저기서 돈이 나오는 걸 보고 결국 비결을 물어본다. 칼라마케는 자신이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몇몇 물건을 가져오게 하는데...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색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살던 19세기 당시면 제국주의가 만연해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던 때라, 다른 지역에 살던 민족의 신화나 문화를 존중하고 관심을 가진 스티븐슨이 오히려 특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오세아니아의 사모아에서 지역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가 돌아가셨으니.

 신화적이다 보니 거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분위기를 만들고 상당히 교훈적이다. 섬과 바다를 넘나드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평소 느끼던 인종차별의 부당함도 반영되어 있어 19세기 환상소설치고는 시대를 앞섰다는 느낌이다.



 마술가게_허버트 조지 웰즈


 길거리에서 못보던 마술가게를 발견한 나. 그 가게의 물건에 매료된 아들의 성원에 못이겨 결국 마술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신기한 물건들이 많은 가운데 기묘한 가게 주인이 나타나는데...

 판타지를 써놓고 마술이라 주장하는 듯한 분위기라 약간 익살스러운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해서 잔혹 동화적인 부분도 있어 보였다.

 환상과 괴기를 넘나드는 분위기를 보면서 어른과 아이가 보는 마술, 환상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마술 가게는 수상한 것들이 넘쳐나는 이상한 곳, 심지어 위험한 곳으로 인식된다. 반면, 아들에게는 신비한 것들이 넘쳐나는 환상의 공간이다. 이런 차이를 보며 아이의 관점을 어른이 수상하고 위험한 것이라 여겨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한한 상상을 한낯 허황된 생각으로 치부해서. 이런 것에 대항하는 위치에 있는 게 바로 마술가게의 주인으로 보였다.

 마술가게 주인이 아버지에게 계속 강조하던 마술. 이게 바로 진짜 마술이라 강조하던 건 이런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상상 속 세계. 진짜 환상의 나라라고.



 초록문_허버트 조지 웰즈


 어린 시절 방에서 나타난 초록문 너머의 신세계를 경험한 나. 그곳의 분위기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다시 한 번 가려 하지만, 초록문이 다시 나타난 순간마다 자신의 인생문제와 갈등하게 되는데...

 동심과 현실에서의 삶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보였다. 실제 생활에서 초록문은 없어도 이런 갈등을 알게 모르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환상 그 자체라 해도 될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상상의 나라가 아닌 실존하는 환상. 하지만 삶은 한 시절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되고 만다. 그렇게 점차 현실에 집중하며 앞만 보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어린 시절의 환상은 정말 옛날 이야기 속의 허상이 되버린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나이 따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느끼고 즐기는 문화가 낯설지 않게 됐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19세기라면 정말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 고민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작중에서 주인공이 고뇌하게 만드는 초록문이라는 것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눈 먼 자들의 나라_허버트 조지 웰즈


  안데스 산맥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눈 먼자들만 사는 나라가 있었다. 그곳에 콜롬비아 수도에서 온 한 남자가 굴러떨어진다. 남자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주민들에게 제압당하고 마는데...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르게 만드는 제목이지만, 눈이 안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내용이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지역의 사회와 문화가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면서도, 오래도록 계속된 고정관념의 대한 괴기스러움이 있었다.

 현실세계에 환상적인 세계가 만들어진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적 사고가 통하지 않고, 고립이 계속되면서 만들어진 독자적 해석과 세계관이 지배하는 곳이 환상의 세계가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눈까지 보이지 않으니 그들에게 환상적인 세계가 없다는 증거를 보여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

 '눈먼자들의 나라에서 외눈박이가 왕이다'라는 구절이 강조되긴 한다만, 작중 주인공이 간과한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눈먼 자들이 자신이 사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냐는 것이다.



 얀 강가의 한가로운 나날_로드 던세이니


 얀 강을 따라 상업활동을 하러 다니는 '강에 노니는 새' 호. 이들의 여정은 여유로움과 한가함 그 자체다...

 평범한 강가에서 상선이 물건을 판매하러 다니는 내용이라 별거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가의 특징이 시적이며 환상적인 서술이다.

 제목 그대로 한가로운 항해 모습과 한가로운 물류교류의 모습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거기에 각종 신의 흔적이 언급되고, 가상의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이 얀 강이라는 공간은 상당히 신화적인 환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배를 몰고 다니는 느낌이란 어떨지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느긋한 항해로 얀 강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은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


 페더탑_너새니얼 호손


 마녀 릭비는 옥수수밭에 세워놓을 허수아비를 만들다 마음에 든 나머지 아예 사람으로 만든다. 페더탑이라는 이름을 받은 허수아비는 릭비에게 담배 파이프를 피우는 걸 잊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데...

 밝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뜻밖의 비극이 나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낭만 허수아비라 할 수 있는 페더탑이 자신감이 충만하고 당당하기 때문에 더 그런 점도 있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인 외모지상주의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페더탑은 자신이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외모가 강조된 면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페더탑이 바라보는 시점이 붕괴된 것에 있다고 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점이 무너진 것이라 하면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현실과 환상은 다르지만, 결국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아무리 초라한 현실이라도 환상적으로 살아가면 그것대로 긍정적알 수도 있다. 하지만 환상으로 시작해 결국 초라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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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관의 살인 1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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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빛을 거부하는 어두컴컴한 심연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눈 앞의 모습을 불분명하게 하고, 나라는 존재의 이유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망각의 저편으로 소중한 기억들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남는 것은 어둠과 그 깊고 깊은 심연. 그 속은 아마도 저편으로 사라진 수 많은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잃어버렸거나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숨기던지. 그리고 이 시커먼 어둠에 빠져들다 보면 뭐가 진짜인지 해깔릴지도 모른다. 내가 나인지, 혹은 내가 나가 아닌지.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명확한 정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 곳. 그곳은 암흑관이었다.

 관 시리즈 2기 시작점인 암흑관은 지금까지의 관 시리즈와는 차별되는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전체적인 암흑관의 크기도 그렇고, 저택에 숨겨진 진실까지 깊은 심연 속에 숨겨진 그 정체는 어마어마 했다.

 가와미나미는 어미니 장례식으로 고향을 방문했다가 구마모토 산 속에 있는 우라도 가문의 암흑관이라는 저택에 대해 듣게 된다. 역시 그곳에서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서둘러 암흑관으로 향한다. 그런데 암흑관에 도착해서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가와미나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만다. 한편, 대학 선배 우라도 겐지의 초대로 암흑관에 와 있던 대학생 츄야는 그 광경을 목격하는데...

 상당한 분량안에서 더디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이런 경우 분위기가 몰입되지 않는 이상 읽기가 힘든데, 어둠에 둘러싸인 암흑관은 정체를 궁금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대체로 관 시리즈가 기괴한 사연으로 비롯된 광기가 폭발하는 구성이지만, 대체로 사건 주요 인물은 평범한 편이다. 그에 비하면 암흑관은 주요 인물들부터 심상치 않은 부분이 많다. 정신 상태가 좋지 못하다거나, 희귀병, 작중에서 보면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 등. 여기에 암흑관이라는 건물의 스케일까지 보면 다른 관에 비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면이 많아 보인다.

 미도리와 미오라는 쌍둥이 자매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나오는 오버룩 호텔에서 죽은 쌍둥이 자매가 떠올랐다. 암흑관도 거대한 저택이라는 이미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시리즈의 명물이자, 작중 추리의 호불호를 만드는 비밀장치는 여전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 문을 여는 장치가 있고 범인은 그걸 이용한다. 하지만 암흑관에서 비밀장치는 사건 해결의 맥거핀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 동안 관과 비밀장치가 사건의 무대와 사건 해결의 맥거핀으로 나눠져 나타났었다. 반면 암흑관에서는 비밀장치의 존재가 숨겨지지 않고 저택의 한 요소로 들어가 더 이상 특별한 요소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암흑관 곳곳에서 충격적인 흔적을 발견해서 보면 볼 수록 놀랐다. 다름 아닌, 지금까지 나왔던 관과의 연관성이나 관의 주인들, 그리고 그 관에서 일어난 사건의 느낌이나 요소들의 흔적들이 보였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요소는 스포일러성이 있기에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적인 부분만 나열하자면 이렇다.


 십각관-살인의 광기적인 면.

 수차관-환상적이고 잔혹동화인 면.

 미로관-미로같은 구조 속의 괴물 같은 살인마.

 인형관-개인의 뒤틀린 내면(이건 불확실하거나 아닐 가능성도 있음.)

 시계관-생명에 집착하는 면.

 흑묘관-각종 생물학적인 요소.


 사람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종의 금단의 영역에 손을 들인 부분이 많아서 암흑관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록 공포가 엄습한다. 이 공포와 불길함의 깊이는 가면 갈수록 짙어져 암흑관의 암흑 자체의 정체까지 이어진다. 그건 바로 충격적인 사건의 진상과 우라도 가문의 진실. 작중내내 풍기는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불안감, 생판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기시감, 현실이라는 자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눈 앞의 세계,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거슬리는 낯선 이의 시점. 아야츠지 유키토만의 공포적 감각이 만든 분위기라 더욱 더 빠져드는 것 같았다. 물론, 추리소설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나친 오컬트적 미스터리가 전반에 깔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작중에 나타난 오컬트를 보다보니 어쩐지 과거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생긴 왜곡된 심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라도 가문의 초대 당주에 대한 것이나, 현재 저택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것도 그렇고 암흑관이 만들어진 배경까지 보다보면 오컬트적 요소가 지배하게 된 원인으로는 그것 밖에는 없어 보였다.

 심연의 끝에 존재하는 진실만큼 충격과 당혹감을 주는 것이 있을까. 믿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눈 앞에 있는 세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 착각한 것인지라는 걸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눈 앞의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걸 부정하고 거스른다고 해도 변하는 게 있을지도 의문이다.

 심연이 계속해서 깊어져 그 바닥을 알 수 없도록 방치하거나,

 아니면 진실을 위해 빛을 비추어 모든 걸 파국으로 치닫게 하거나. 

 암흑관의 정체는 심연에 다다른 이들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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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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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 흑과백 같이 상반된 이미지. 어디가 어떻게라고 설명을 하자면 한 없이 복잡해진다. 특히 그냥 개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형태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저 반대에 해당된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서로 다르면서 연관성이 있는 경우라 해야할까. 그냥 다른 것도 아니고 같은 것도 아니라면 결국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특징이 다르지만 연관성을 지닌 동일한 것이거나, 아니면 둘 중 하나가 실존하는 형체의 반대편에 있는 허상의 이미지이거나.
 상당히 병적이거나(십각관, 시계관), 구조나 외견상 특이점(수차관, 미로관)이 돋보이던 지금까지의 건축물과 달리, 흑묘관은 이렇다 할 특징 없이 정말 평범하다. 하지만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그 평범함 속에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엄청난 설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시시야 가도미는 기단샤 편집자 가와미나미와 함께 홋카이도에 위치한 흑묘관으로 향한다. 동행한 노인 아유타 도마는 과거 기억을 잃은 상태로, 흔적을 찾을 단서는 그가 쓴 수기 뿐이다. 수기에는 과거 흑묘관에서 벌어진 사건이 쓰여 있었는데...
 이번 관 시리즈에서 눈여겨 볼 점은 관을 제작한 나카무라 세이지에 관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십각관에서는 죽기 전의 행적만 나오고, 그나마 인과관계라든지 그가 생전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시작한게 시계관 때부터다. 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과거 행적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비밀장치의 대가인 나카무라 세이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시계관의 엄청난 스케일과 비교하면, 대체로 흑묘관은 이렇다할 특징적인 것이 없어서 단조롭다. 기상천외한 비밀장치도 이번에는 평범하고 사건도 심심한 편이다. 거기에 이미 벌어진 사건을 뒤쫓는 형식인데도, 사건보다는 흑묘관 자체와 이력에 더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변칙이라면 변칙수를 제대로 던진 것일 수도 있으나, 흑묘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게 보이는 것도 변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흑묘관 자체에 대해서는 괜찮은 아이디어 였다. 그 동안 나왔던 관이 이름에 맞게 특징적인 면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흑묘관은 도대체 검은 고양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점을 보면서 사실상 메인 게임은 흑묘관이 왜 흑묘관인지 알아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저택을 보면 특정 이미지가 있던 걸 생각하면 이 흑묘관 역시 아무렇게나 생긴 이름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 메인 게임 외에는 좀 심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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