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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평점 :
책을 덮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정식 한 세트를 주문해서 따끈한 밥을 먹고 싶어졌다.
크로켓, 돈카츠, 가라아게, 햄카츠, 카레, 주먹밥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메뉴들이 부제처럼 이어지며,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혼을 통보받은 30대 여성 사야카와, 오랜 세월 홀로 ‘자츠’라는 정식집을 지켜온 70대 여성 조우의 만남이다. 사야카는 남편이 간혹 이 가게에 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내연녀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며 자츠를 찾는다. 생활비가 부족해 일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어느새 이 작은 식당의 일원이 되어간다.
처음엔 서로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던 사야카와 조우는, 자주 찾아오는 단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당을 꾸려나가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사야카와 자츠, 식당을 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사연으로 책이 이어진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들은 친구와 마주 앉아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내가 자츠의 단골손님이 된 것처럼, 익숙한 얼굴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 듯한 친밀함이 남는다.
그러다 주먹밥쯤에서 등장하는 ‘코로나’라는 시대의 그림자는, 자츠를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운영해오던 조우와 사야카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온다.
이 책의 매력은 소소한 일상 속에 비치는 진지한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결혼한 자녀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부모의 모습, 층간소음에 지쳐 결국 늙은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늙은 부모를 내보내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민낯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배려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숨기고 말을 삼킨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작은 계기로 깨닫고 변화하며 한 걸음 나아간다. 그 과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 역시 그런 작은 변화들의 결과는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되 지나치게 가까워지지는 않는, ‘적당한 거리감’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관계의 모습,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만약 우리 동네 어딘가에 자츠 같은 식당이 있다면, 나 역시 일주일에 몇 번씩 들러 인사를 나누고 밥 한 끼를 함께하며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소박한 온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