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친구였으며 그러나 우에게 무엇이라고 이렇게 소매를 적시고 있나 죽은 사람아오지 않아요, 누군가가 귓속말을 속삭이고 사라진다 꽃를 씹어 먹던 중환자들이 동시에 우릴 쳐다보는데

탈출한 사람보다 가라앉은 사람이 더 많다는 소식을 들은 그 계절, 초행길이라며 방향을 묻는 아이의 슬픔에 개입했다가, 그 누구도 미래 날씨를 예측하지 못했어요, 말해주었다 그것이 우리 지옥의 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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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거, 내가 물속에서 하염없이 가라앉을 때,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것보다 멀어지고 멀어지며 가라앉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물 밖에선 알 수 없는 형체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지만 내가 들은 건 비명을 삼키는 어떤 소리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살의이자 예지몽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믿던 건 그런 게 아니지 않았나 두 발 잘린 새가 착지하는 곳은 나무가 아니라 다른 새의 곁이라고, 미래의 숲은 폭죽과 가까운 모습일 거라고 하지 않았나 아직도 그 대화가 믿기지 않아서 적고 적고 또 적었다

아직 끝이 나지 않았는데도
우는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요

그러나 편지를 쓰는 동안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누구의 선생도 되지 못할 것이며 사실 네가 나에게 가르쳤던 장르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위세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여름은 길고 길어서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그게 나의 장르라고 추측했다 나무가 햇빛을 조각내는 동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편지를 적는 것 적어놓고 보내지 않는 것

스스로 읽어보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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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등을 씻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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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아까 지나갔던 곳 아니야?
너는 자꾸 눈물을 훔치고 나무를 살펴보고
나무에 기대어도 보다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마음이 분열되어서
이 마음과 저 마음을 구분할 수 없다고
혼란스럽다고
주변이 온통 의자들이니
어서 옆에 앉아 달라고, 너는 말했다

눈을 감으면
빛이 나를 조각내는 장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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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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