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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혼자를 기르는 법> 샘플북 서평단 작성입니다 :)

 

 

 Imageⓒ 창비 페이스북

 

 

얼마 전 SBS 스페셜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캥거루족'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캥거루족은 성인이 되어서도 금전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나이 든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방송을 골똘히 보고 있노라니 저 또한 캥거루족과 다름 없었습니다. 올해로 제 나이가 스물셋, 아직까지 물리적 독립은커녕 금전적인 독립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달 생활비를 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학기 중에는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유독 우리 세대는 '독립'이라는 말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의 가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르는 엄청난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상대적으로 적은 전반적인 경제 침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20살 이전까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는 우리들은 '독립'이라는 말, '자유'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이상한 건, 스무 살이 지나면 '독립'해야만 하는 겁니다. 물론 몸만 큰 자식들을 밖으로 내보내길 되려 무서워 하는 부모님들도 많습니다만, 다들 자꾸만 내 길을 알아서 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도 해본 적도, 허락해 준 적도 없는 그 일들을 혼자서 해내는 게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다그치기 시작하는 거죠. 이렇게 갑자기 성인 대접을 받기 시작한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 눈에는 완전한 어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와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 거죠. 우리는 생각보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힘듦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엔...
특별한 드라마가 아녀서 위로받기도 힘들 거야.

그러니까... 투정은 나에게만..."



때문에 혼자보다는 여럿이 편하고, 여럿이 그렇다고 하면 내 생각은 금방 묻어버리는 편이 속 시원합니다. 이것저것 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주어지는 와중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보폭을 맞추느라 나 혼자만의 감정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니까요.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상을 짤막한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현재 Daum 웹툰에서 연재 중인 이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온 건데요. 짧으면 세 컷, 길면 여섯 컷 정도의 만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페이지들은 읽는 이에게는 공감과 웃음, 가끔은 짠한 감동을 전해줄 때가 많습니다. 다소 둥글고 친절한 어조의 독백으로 이뤄지던 각각의 장면들과 실제 만화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어긋날 때면 작은 폭소가 터지기도 합니다.


 

 

 

"야, 야 이 xx 새끼야!!!!!!"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이시다'라는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만화는, 지방에서 상경해서 홀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겪는 일상과 그 안에서의 생각들이 주된 내용입니다. 야근을 하면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는 주인공, 세 아이를 키우며 고된 하루를 보내는 친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데려온 햄스터 한 마리와 동거하며 마주치는 일련의 이야기들. 내 삶을 살고 싶은 생각에 무리까지 해서 상경했지만, 가족들에게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대목에서는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나의 일상을 대입해서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스스로 혼자되길 결심하는 걸까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팝업창이 끊임없이 뜨는 사이트를
시작 페이지로 설정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별것 아닌 것들이었지만,

저는 그냥... 어느 순간부터...
간단한 대답도 버거운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요?"

 

 

"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열대어.
여행을 다녀와도 될 줄 알았던 거북이.
내가 먹던 간식을 나눠줘도 될 줄 알았던 병아리.
내 방식대로 같이 놀면 될 줄 알았던 강아지.

많은 실수들을 반복하면서 분명하게 배운 것은...
내 방식만으로는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는 것.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이제 혼자서 잘 할 수 있... (근데 도저히 보증금을 마련할 수가 없어요.)"

 

무엇 하나 쉬운 게 하나 없는 지난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들 비슷한 걸 겪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책 <혼자를 기르는 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점점 쉬운 구석이 하나 없어 보일 만큼 척박해지고 있고, 결국 그 안에서 내 한 몸 둘 곳을 열심히 찾으며 돌아다니는 게 우리네 삶인 건 분명한데. 말로는 단순해 보이는 이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건 타인이 살고 있는 삶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 안의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닐까요. 김정연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이었습니다.


 

 

* 아래는 현재 연재 중인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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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309동 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리뷰

Imageⓒ 네이버책 


약 1년 전 대학 내 시간강사의 삶을 다룬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나왔을 무렵인 2015년의 11월, 나는 학내 언론 기자로 활동하며 2016년 시행 예정을 앞두고 있었던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취재에 골몰하고 있었다. 대학생 기자라면 한 번 쯤은 쓰게 된다는 시간강사의 처우를 다룬 기사가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년간 몇 차례의 시행과 무산을 반복하던 '시간강사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이, 다가올 16년에도 또 다시 시행을 예정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정말이지 시행이 되나 싶었고(결국 무산되었다), 기존까지의 시간강사법 기사들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뭔가 다른 것을 구상하던 중, 실제로 시간강사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발행된 기사는 10쪽이 조금 안 되는, 누가 읽어줄지 모르겠는,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시간강사 분을 만나고 학교와 교육부를 털어내며 알게된 시간강사와 그 법을 둘러싼 모든 내막에 비하면 내 기사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나의 삶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건

강사법을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나의 스승들에게 직접 연락해, 당신이 시간강사인지 아닌지를 물으며, 당신조차도 형용하기 어려운 그 문제에 대한 내밀한 속사정을 들려달라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안한 부탁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기자인 동시에 학생이었고, 나의 취재원은 교수인 동시에 나의 스승이기도 했기에. 다행히도 강의실에서는 아직까지 마주친 적 없었던 어느 교수님께서 선뜻 부탁을 들어줄 용의를 내비치셨다. 나는 취재를 하는 내내 자연스레 웃지도, 그렇다고 무엇 하나 자유롭게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이것저것 관련 자료까지 모아서 전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취재는 별 무리 없이,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더 도움을 받으며 끝났지만, 교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은 실로 가만히 듣기에는 껄끄럽고도 학생인 나까지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노동의 문제들. 그는 교수인 자신이 학생들에게 더 나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가르칠 때조차도 괴리감이 든다고 했다. 나의 삶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일주일에 네 시간 노동(강의)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난한다. 강의 준비, 과제 첨삭, 개인 면담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노동의 시간이 오히려 더 길지만,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회성의 결여, 사회에서 함께 동시하고 있으나 동시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성의 비동시성, 이러한 외로움은 연애나 우정이나 가족애 같은 것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사회적'이지 못한 존재는, 외롭다."

- p. 66


16년 1월 뉴스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시 시행 예정이었던 시간강사법 개정안은 내용상 문제가 많았고, 실질적으로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그 무엇 하나 도움 되는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무산되는 것이 나았다고 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법이 시행되면 시간강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더욱 처절해지고, 시행되지 않는다면 이 곤혹한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뜻 기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다시 흘렀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지방시를 쓰며 스스로의 삶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데 대해 놀랐고, 또한 절망했다. 사회인으로도, 노동자로도, 학생으로도, 나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나에게 대학은 신성하고 숭고한 공간이었다. 지성, 학문, 연구, 진리, 이러한 단어들의 총체였고, 나에게는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의 맨얼굴과 점차 마주하며, 그러한 환상은 무참히 깨어져 나갔다. 나는 그저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처연한 자기 규정을 하게 됨과 동시에,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p. 15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원생과 조교 그리고 강사의 삶 그 어디쯤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강사로서 일주일 중 이틀은 대학에서 수업을, 사흘은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저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후 저자는 강사로서의 일을 그만두었다.) 건강보험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나를 보호해주는 공간이 대학이 아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대학이라는 구조 안에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대학원생과 조교 그리고 강사의 삶, 그 중간 어디쯤을 조명한다. 1부는 대학원생의 시간, 2부는 시간강사의 시간이라는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사로서 강단에 서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부조리의 순간들을 담담한 문체로 적어내고 있다. 인권은 물론, 기본적인 삶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그 공간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읽는 사람마저 화가 나지만 정작 적는 이는 담담하기만 하다. 2부에서는 학문의 공간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로 공유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경험이 주된 내용이다.

저자 김민섭(실명)

Imageⓒ 인문학카페 36.5


"아직 인문학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좋다는 강좌를 들어보아도 저마다의 인문학이 다르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인문학이 무엇인지 물으면 내 첫 제자들과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마지막으로 강단에 서게 되었을 때, 그날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나의 인문학을 대신하려 한다. 굳이 어려운 철학책을 애써 들추어보거나 하버드 교수의 강의록을 곁에 두지 않아도, 인문학은 언제나 내 주변의 평범한 집단 지성 안에 있음을 나는 믿는다."

- p. 151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으며, 내 주변을 노동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이라면, 교수라면, 아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노동자로서의 우리네 삶을 과연 우리는 얼마큼이나 직시하고 있을까.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 단계라 불리는 대학이라는 공간마저도 거대한 구조적 결함을 가진 채 대학의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중에 우리 사회의 고장난 어느 한 부분만을 도려내 고친다는 게 과연 가능한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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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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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2> 리뷰

 Image ⓒ 김영사

  Image ⓒ 김영사


 

도킨스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당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 셀러에 올랐을 때였다. 인간의 진화 방식을 유전자의 이기주의라는 다소 독특한 패러다임으로 설명했던 리처드 도킨스의 저작은 국내에서 개정판 출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머무르며 사랑을 받았다. 나 또한 그 책을 구입했던 독자들 중 하나였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학에 끌렸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 과학자가 궁금했을 뿐, 그리고 평생 살면서 그다지 생각해볼 기회가 없을 '과학'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받은 도킨스에 대한 인상은 그가 다소 '재수없다'는 점이었다(...).


도킨스의 시니컬한 문체는 그의 저작들마다 일종의 마스코트처럼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비판 정신과 무엇이든 탐구하며 의심하는 태도는 도킨스를 읽는 독자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킨스를 접하게 된 이유를 하나 더 붙이자면, 이공계열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여느 문과생이라면 한 번 쯤은 경험해보지 않았...) 특히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이과 친구 중 한 명이 들고 다니던,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이라는 책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그 아이의 책을 빌려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판형에 빳빳한 종이로 인쇄되어 있는 페이지에는 도킨스의 과학적 논증이 섬세하게 담겨 있었다. 그래픽 노블 작가와 협력하여 제작된 그 책은 내용만큼이나 컬러풀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있어(!) 보였다면 이유가 될까. 지금 생각하니 이유가 좀 우습다.

  Image ⓒ 김영사

그렇게 만난 도킨스가 이번에는 자서전 시리즈로 돌아왔다. 다 합쳐서 1000 페이지를 넘기는 이 두 권의 자서전은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의 유년 시절과 성장기,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라는 저작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1권에,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 이후 경험했던 여러 학문적 연구들을 되돌아보며 학계, 출판계, 방송계에 대한 현실적인 풍자를 2권에 담았다. 1권은 두껍고, 2권은 더 두껍다(...).

"증거로 보아, 내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만큼은 제법 있는 듯하다. 내가 설득하려는 주제가 다윈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말이다. 다만 다윈이 밝힌 진실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일이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 내가 오늘날 다윈의 분야에서 일하는 일꾼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는 내 일도 하찮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의 후반부에 속하는 이야기다. (중략) 그러니 그 이야기는 이 책의 후속작에서 하도록 하겠다. 재채기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모종의 사건 때문에 내가 세상을 하직하는 일만 없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인생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과학자로서의 그의 성과들을 알고 배운다는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 현대에 사랑받는 놀라운 과학자들 중 하나인 리처드 도킨스라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왔고, 또한 바라보고 있는지를 찬찬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다. 유년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린 것 없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놀랍기도 하다. 마치 자서전을 쓰게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살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섬세하게 정리해놓은 노트가 몇 권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과학자인 그가 단지 과학에만 매몰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학 작품에 대한 인용들은 그가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을 어느 정도 예상해볼 수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명료한 시각만큼 애정 어린 손길로 그가 문학을 다룬다는 사실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과학자가 지녀야 하는 것이 단순히 과학적 사고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탄생한 뒤 벌어진 모든 사건이 정확히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포탄 사건은 훨씬 더 일반적인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중략)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대단한 요행으로 여겨도 좋다. 좌우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사후니까 이처럼 당당히 선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존재한다."

어려운 과학은 내버려두고서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 몇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실로 값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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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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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흥 :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리뷰


 Imageⓒ 김영사


옛 것을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옛 것에는 예전의 것, 옛날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생활용품을 보고 옛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도 현재의 것은 아니니, 옛 것이라 볼 수 있겠다. 현재를 지난 것이 역사로 기록된다면, 옛 것이란 바로 어제의 것도 포함하는 말이다.

문제는 옛 것이 우리에겐 너무나 고리타분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것을 알아가기에도 바쁜 우리 삶 속에서 옛 것을 익힌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도, 그 기회가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옛 조상들의 예술 작품을 공부한다는 건 어느 정도 그 배경지식이 동원되어야만 충분히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손철주 미술평론가의 <흥 :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는 '옛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쉽게 고개를 돌려버리는 나 같은 젊은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미술교양서다. 오랜 시간 옛 그림들에 대한 강의와 기고를 지속해 온 작가 손철주는 그의 책 <흥 : - 옛 그림 강의>를 통해 학예사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의 옛 그림들이 페이지 별로 수록되어 있고, 그림을 세세하게 짚어주는 해설이 뒷받침된다.

 

 이 책은 크게 보면 3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우리나라 옛 그림을 관통하는 3개의 키워드인 '은일' '아집' '풍류'가 그것이다. 첫 번째 주제인 '은일'은 숨어 살기와 혼자 이루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홀로 은신하며 생을 보냈던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그림을 통해 알아보고 있다. 두 번째 '아집'은 우리가 흔히 아는 나만 알고 이기적인 마음에 고집을 부린다는 의미의 '아집'과는 다른 의미다. 여기서의 '아집'은 더불어 모여 즐기는 무리를 뜻하는 말로, 사람 간의 우애를 뜻한다. 옛 그림 작품에 나타난 정다운 우애의 단면들을 작가와 함께 거닐어보는 것이다.

 

마지막 장인 '풍류'에서는 그림 속에 나타난 옛 조상들의 멋과 운치를 있는 그대로 감상해볼 수 있다. 이 장은 이 책의 주제인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지는 그림들을 가장 잘 보여주기도 한다. 연회를 열고 춤과 음악을 즐기던 조상들, 거문고를 타는 연주가의 모습, 조선시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방 문화에 대해 가볍게 공부할 수 있다.

"문학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은 세상과 어느 정도로 절충을 하느냐,

아니면 그냥 자신만의 세계를 밀고 나가느냐,

참으로 큰 고민에 휩싸이게 되지요.

 

어렵건 쉽건 독자와 시청자에게 반드시 통하는 게 있지요.

곧 예술가의 진정성과 고뇌입니다.

그것이 예술 가치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장점은 그 어떤 작품도 결코 어려운 말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옛 그림 작품들이라고 하면, 한자와 시조가 가득히 메워져 있는 어려운 책을 떠올리기 쉽지만 손철주의 <흥 : - 옛 그림 강의>는 말 그대로 '강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가독성이 좋고 거부감이 없다. 작품을 해설하며 때때로 그에 곁들이는 '시조'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작가의 해설과 감상 포인트가 꼼꼼하게 덧붙여져 있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공부한다는 지루한 마음보다는, 상식이 쌓인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눈이 즐거운 건 당연하다.

"수없이 많은 꽃을 꺾어다 봤지만 우리집에 핀 꽃보다는 다 못하더라는 거죠.

그 꽃들이 품종이 다르고 품격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집 꽃이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포한의 정서니, 애상의 미학이니...

이런 학술적으로 치장된 설보다 이 시 한 수가 설명 없이 그냥 바로 와닿았습니다.

 

왜 우리 것이 좋으냐?

우리집에 핀 꽃이라서 좋다, 어쩔 거냐 이거죠.


이것으로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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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요령
와다 히데키 지음, 김정환 옮김, 유상근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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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 <수능의 요령> 리뷰


 Image ⓒ 김영사

올해의 수능도 끝났다. 내가 수능을 본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라는 게 놀랍기만 할 뿐. 매년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은 쏟아져 나오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또 누군가는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리고 3년 전 내게 있어 수능은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하나의 벽에 불과했다.​ 고등학교로는 3년 간의 싸움이지만, 교육열이 엄청난 우리나라 분위기로 볼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총 12년을 공부에 매진한다. 공부말고는 다른 선택지를 받아보기가 힘든 그 긴 나날동안 아이들은 수능이라는 첫 번째 관문, 아주 좁은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어린 마음에 수능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크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수능이 가지는 지위는 날로 공고해지기만 한다. 수능을 통해 대학에 바로 진학하든, 혹은 다음 해를 기약하든, 또는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하든 간에 수능은 지긋지긋한 공부와의 싸움인 동시에, 그 긴 시간의 노력과 분투를 마무리하는 하나의 지점이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구조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입시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합격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즐기며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 p. 7, 입시라는 구조 속에서 통쾌하게 승리하는 법

와다 히데키의 <수능의 요령>은 작년인 2015년 김영사에서 낸 수능 공부 비법에 관한 서적이다. 독특한 점은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인데, 고등학교 2학년에 스스로 공부비법을 터득하여 의대에 진학했고, 의사 국가 고시에 합격하여 정신과 의사가 된 이력도 눈에 띈다. 본인의 대학입시 경험을 토대로 원작인 <입시의 요령이다>를 내고 각종 입시 학원을 오가며 학생들의 입시를 지도하는 데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와다 히데키 저자가 소개한 많은 교재들을 국내 사정에 맞게 바꿔 넣어 정리하고 있다. EBS <특강>에 출연해 많은 유명세를 얻고 '공신닷컴'의 창립 멤버였던 유상근 씨가 직접 이 책의 감수를 맡아 한국의 입시 사정과 맞지 않는 부분을 솎아내고 알맞게 편집했다.


이 책은 대학 입시에 합격하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으로 쓴 것이기에 아이들의 사고력을 떨어뜨리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만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 비판대로라면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사회인이 된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다거나 더 좋은 공부법으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나의 옛 독자들이) 하고 있었다.

- p. 21, 개정판 머리말


올해의 수능은 끝이 나 많은 학생들이 수시와 정시를 비롯한 각종 전형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겠지만, 수능 혹은 여타 어떤 시험이든 스스로의 미래와 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많은 입시준비생들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부법에 대한 소개도 자세한 편이지만,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각종 전략들이 한국의 사정에 맞게 잘 정리되어 있다.

 

 

 

 

 

* 덧붙임

와다 히데키의 공부비법(대부분 공부하는 습관 및 태도,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이다)이 정리되어 있고 챕터가 끝날 때마다 유상근 씨의 팁이 짧게 정리되어 있는 형식이다. 일본 입시에서 시작한 책이지만, 한국의 입시 대비와도 잘 맞는 지점이 많다.

한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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