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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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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두고 우리들은 그들을 얼마나 낮게 평가하고 있는가. 모든 중요한 사안에서 아이들은 쉽게 배제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그 사안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삶, 그 자체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마치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시선은 누구보다 정확할 적이 많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기 전, 어린 아이였던 시절을 거쳐 왔다. 누구나 회고해볼 수 있듯, 어린이라는 시절이 단순히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이 장난감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절이라고 쉽게 정의내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 ​ 아이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뚤어진 시각도 아니다. 본디 사물을 바라보는 데는 한 가지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그런 점에서 새롭고 참신하며 누구보다 정확할 적이 많다.


총선을 바로 앞에 두고 각종 후보들의 선거 공약 유세가 한창이다. 동네방네 마이크를 쥐고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제창하는 후보들의 입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약은 도무지 찾아 보기 어렵다. 아동 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바로 어제 오늘의 일이다. 정치판에서 아이들은 다시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언제나 늘 그래왔듯, 아이들의 삶과 관련한 이야기는 단순한 9시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단지 무서운 것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깨쳐버리는 것.​ 

김지은의 <거짓말하는 어른>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주체적인 아이로 독립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옥죄고 심지어는 아프게 하고 있다. 세상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은 학대당하는 줄도 모른 채 어느날 갑자기 발견되어 뉴스거리에 오르고 그대로 끝이다. 아이들은 겁이 많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많다.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어린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도 좀 더 빠르고 쉽게 정립할 수 있다. 어른들에게 단지 무서운 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느 정도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쳐버리는 것이 아닌지.


동시에 문학은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는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거짓과 허구로 만들어져 있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은 아니지만, 세상과 꼭 빼닮아 있어 아이들은 그 안에서 이것저것 실천하고 시도해볼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짓말 하는 어른>은 이러한 아동 문학 작품들을 여실히 모아 묶은 아동 문학 평론집이다. 작품성 있는 다양한 아동 문학 작품을 만나보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각종 아동문제들을 되짚어 볼 수 있다.

어른들이 읽기 좋은 아동 문학의 첫걸음. <거짓말하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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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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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 <쥐>

© 아트슈피겔만 <쥐>


“여기는 좀 돌아서 가야겠어요. 얼마 전에 아동학대로 뉴스에 난데거든. 경찰이고 기자고 너무 많아서 지금 지나갈 수가 없어.” 며칠 전 동네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음을 말해주었다. 지인이 사는 곳은, 어린 자식을 계속해서 학대해오다가 끝내 숨지게 만든 부모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바로 그 동네였다. “택시 아저씨 얘기 듣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지. 알고 보니 바로 옆이더라고.” 문제를 비로소 직시할 수 있는 건, 재난도 일상이 되는 순간이다. 뉴스를 보면 남 일이지만, 뉴스가 내 일이 되면 문제가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재난의 일상적인 기록, <쥐>

재난은 항상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왔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입장 차이다. 사람들을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스럽게 만들고 마는 재난의 특성상, 모든 관전 포인트는 재난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사람들의 입장 차이라는 것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보통은 ‘덮으려는 자’와 ‘고통스럽더라도 안고 가려는 자’이다. 그리고 대개 ‘덮으려는 자’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안고 가려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다 지나서 왜 아직도 그 얘기를 하고 앉아 있어?”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는 고통스러운 재난과 역사의 흔적을 ‘다 떠안고 가려는’ 자의 육성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인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단순히 역사책에 쓰인 몇 줄의 기록과는 비교할 수 없이 상세하고 일상적이다. 아버지의 단란했던 신혼생활부터 시작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까지 진행되는 이야기는 아들과 아버지의 담담한 대화로 전개되지만, 실제 내용들은 끔찍하고 상상하기 무서운 일들이다. 재난이 곧 일상이었던 현실을 살아온 아버지의 경험을 가만히 듣다 보면, 도무지 이성적이라고 볼 수 없는 당시 아버지와 주변 가족들의 행동들이 차츰 이해되기 시작한다. 극도의 공포와 배고픔 속에서 가능한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보다는 오직 ‘나’ 자신을 생각하는 일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도 피해갈 수 없는 편견의 작은 씨앗

독특한 점은 만화의 형식을 빌려 유태인을 쥐로, 나치즘을 고양이로 표현해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개구리나 돼지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단순히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쥐나 고양이지만, 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비이성적일만큼 폭력적인 당시의 인종차별주의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도 우리가 사는 사회 곳곳에 인종차별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든다면, 현실은 그저 다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뿐이지 서로를 아예 다른 세계의 동물들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쥐>는 총 1권과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까지는 나치즘 아래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견뎌낸 아버지의 일상적 기록이다. 반면 2권은 이를 기록하고 있는 아들 세대의 관점과 더욱 가깝다.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스로 생존해 나온 뒤,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을 한 아버지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히스테리와 강박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간다. 이를 바라보는 아들은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특히 나치즘으로 인해 극도의 인종차별을 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아버지가 흑인에 대해서 또다시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장면은 시사점이 깊다. “깜둥이와 유태인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작가인 아들은 여과 없이 책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일상을 붕괴하는 재난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작은 편견과 생각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아트슈피겔만 <쥐>


 

기록의 가치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의 경험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생생한 일상의 기억을 되살려 그림과 글로 옮기는 것은 물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아버지조차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대로 내보였다. 나치즘의 피해자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점은 기존의 상식으로는 거북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다. 당장 내 앞에 주어진 부조리한 상황에는 분노하면서도, 내가 유리해지는 상황에서는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것. 아트 슈피겔만은 아들의 시선에서 아버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명하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면모까지 가감 없이 그려냈다. 그의 책을 읽으면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항상 다 늦어서야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운 역사적 현장이라면 기록하는 일이 가진 가치 자체가 부정되는 일도 있다. “다 지나간 일을 왜 이제 와서 굳이…”라고 말하며 만류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기록이란 빨리 흘려보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의 가치는 단순히 무언가를 적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 놓았다가 두고두고 펼쳐보는 데 있다. 아동학대 사례가 2014년부터 1만 건을 넘어섰고, 지난 4년간 약 70%나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뉴스거리가 되니까 몇몇 아동학대 범죄들이 사회의 큰 문제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몇 개월 뒤 금방 잊혀버리고 말 것이 분명하다. 고통스러운 사건을 뉴스가 아닌 현실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언제까지나 기록하는 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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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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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섀퍼, 애니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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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독서가 취미라고 하니까 막상 취미로 적으면 내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야."

주변에 책 많이 읽는 사람 보기 쉽지 않다.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취미로 독서를 적어내는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이럴 때,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해서 읽는 나로서는 약간 억울해진다. 취미로 적어낼 것이 독서 말고는 마땅치 않아 억울해하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 해야 취미지, 그러니까 책 안 읽는 사람들은 취미로 독서를 쓰는 거야. 너는 '필사적으로' 읽잖아."

 

책 읽어서 어디다 써요?

꼭 어디다 써야만 의미있는 활동이라면 애초에 독서는 참으로 의미가 없는 일 중에 하나다. 독서라는 활동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활자를 읽어내고 정보를 습득하는 간단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선 독서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책의 서문부터 시작해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작가가 무슨 말을 이렇게나 길게 하는지 하나하나 스스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다. 꽤나 머리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책이 무겁고 부피가 커서 가방에 넣기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이리저리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이유도 알만하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각종 전자기기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름의 최첨단(?) 시대에 종이를 넘겨가며 책을 읽는다니, 약간은 구식일지도 모른다.

당장에 책이 내 대학교 학점을 올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책을 많이 읽는 것만큼 보탬이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 특히 문학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인생 전반에서 겪는 위기나 고난에 대한 대처 능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는 책을 가까이 두고 읽어 온 사람들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자세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그리고 독서 클럽 하나로 끔찍했던 전쟁을 견디고 지나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점령 하에서 심각한 전쟁 기근과 탄압에서 맞서 살아 남은 '건지' 섬 사람들의 스토리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외딴 섬에서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극심한 배고픔과 고통을 견뎌낸 원동력은 바로 북클럽이었다. 식량도 귀해서 숨겨 놓고 먹어야 했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자 꾀를 낸 것은 바로 독서 클럽이었고, 이를 계기로 전쟁 이후에도 건지 섬 사람들의 북클럽은 지속된다. 책읽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책을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아 가는 독특하고 기발한 이야기다.

그리고 주인공은 줄리엣은 우연한 계기로 건지 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편지를 통해 전쟁 당시의 사연을 주고 받다가 건지 섬 사람들을 직접 조우한다. 그녀 또한 전쟁을 버텨 온 또 한 명의 사람으로 건지 섬 주민들의 힘들었던 당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시작된 하나의 독서 모임은 섬 밖에 있던 줄리엣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편지소설

​특이한 점은 <건지 감자껌질파이 북클럽>은 책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줄리엣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머러스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전쟁을 견뎌 내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지위까지 등극한 인물이다. 이러한 줄리엣이라는 한 명의 인물이 주변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내용만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건지 섬 사람들, 가까운 친구인 시드니와 소피까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독자에게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편지와 편지 사이에 놓인 사건들은 오롯이 독자들이 편지의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편지 형식의 전개에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끊김없이 술술 이루어진다는 점.


주인공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실존했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책 제목들이 편지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에밀리 브론테 전기를 썼다는 줄리엣의 이야기부터, 건지 섬 북클럽 사람들이 인용하는 각종 작가들의 말과 책의 문장들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하나하나 짚어가는 재미가 있는 대목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통해 또 다른 작가와 책을 만나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다.

정말 책 하나로 전쟁을 버텨낼 수 있다면

동시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 보내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서사다. 정말 책 하나로 전쟁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책은 단순히 독서를 했기에 끔찍한 전쟁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는 이야기가 아니라, 북클럽이라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전쟁이라는 어려움의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는 하나의 기적적인 스토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각자의 인물들이 전쟁을 통해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아픔들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이 책과 모임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두고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은 시시할 수도 있는 북클럽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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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라고 -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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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자식이 뭐라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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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심심해'

사실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심심'하다. '사노 요코'라는 사람을 아는 건 그림책 <100만번 산 고양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그 작가가 원체 그렇게 '시크한' 여자라는데, 그건 사실 알 바 없다. 그녀의 다른 책은 읽어본 적도 없으니.


이렇게 심심한 책을 구매하게 된 경로는 단순히 마케팅(!) 때문이었다. 해당 책을 낸 출판사에서 올린 페이스북 카드뉴스는 눈물이 마구 샘솟는 최루성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엄마에 대한 감성을 건드리기는 충분했다. '아, 이건 사야겠다.'

에세이집 같은 건 돈 주고 사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나름의 충동구매다.


세상에 흔하고 널렸지만 애정이 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심하지만 나쁘지 않게 편안한 책이다. 아들과 엄마 얘기라니, 부모가 있는 자식이라면, 그리고 자식을 둔 부모가 세상에 흔하고 널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단순하고 뻔한 책이지만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자식이 뭐라고>는 사노 요코라는 작가가 그녀의 아들 '겐'을 키우고 관찰하며 적어내려간 하나의 일기와도 같은 기록이다. 작가가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들을 바라보고 지켜보며 적었던 흔적에는 그저 평범한 엄마로서의 따듯한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문제는 말 안 듣는 아들 '겐'이 엄마의 이런 기록을 무척이나 싫어했다는 점이다. 어린 아들이었던 '겐'을 키우는 동안 사노 요코의 작품에는 아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지만, 그녀를 닮아 약간 까칠한 아들은 그 점을 싫어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요코의 작품에 아들이 나오는 일이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 아들 '겐'은 엄마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는 청개구리(?) 같은 짓을 저지른다. 책의 말미에도 적혀 있듯, 독자들을 눈물 짓게 할만큼 구구절절한 그간의 사연이 있어서는 절대 아니다. (기대했는데 아니더라...)



" 아아, 미안했어. 그렇게 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쓰도록 내버려뒀을 텐데.

 ​미안, 엄마.


 내가 이렇게 생각할 리 없다. 그녀가 만약 지금 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다.

 과장과 허풍을 한층 더 교묘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더욱 많은 낯선 아줌마들이 내가 모르는 나와 친척처럼 되었을 게 틀림없다. 무섭다, 무서워."

 

- 후기를 대신하며, 히로세 겐 -


자식이 진짜 뭐라고

태어날 때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키는데, 막상 머리가 커지면 커졌다고 또 대들고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정말 자식이 생각해봐도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키운다는 건 좋은 게 하나도 없다. 히로세 겐의 후기을 더 넘겨 나오는 옮긴이의 말에 보면 '부모는 자식을 통해 새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내가 낳았지만, 온전히 나는 아닌 다른 존재가 바로 자식이다. 사노 요코가 아들 겐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관찰해 기록해나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낳았지만,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하나의 소중한 존재. 결국 부모가 바라보는 자식도, 자식이 바라보는 부모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관찰하고 소중히 응시하는 관계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식이 진짜 뭐라고.



아쉬운 점

처음에 이 책을 만약에 소개한다면 누구에게 적합한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자식을 둔 부모? 혹은 부모를 둔 자식? 나는 자식의 입장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읽었지만,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버릇없는 '겐'이 좀 짜증났을 뿐이다(!).

가장 좋은 건 아들을 둔 엄마가 읽는 게 싱크로율도 맞고 공감도 잘 되겠다. 쓰고 보니, 별로 현명한 소개는 아닌 것 같다(...).


또 하나 아쉬운 건 책이 다소 짧다. 두께가 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겐이 훅훅 크더니, 중간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 끊기는 기분이 들 적이 많다. 아마도 '그놈의 버르장머리없는?' 아들내미가 엄마가 글 쓰는 걸 못하게 해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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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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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나는 봄에 없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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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람 지금 기분 나쁠까? 어떡하지?"로 끝나는 고민 상담을 부탁해오는 지인들이 간혹 있다. 그 사람의 심정이 당시에는 어땠고, 지금은 과연 어떨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만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제 3자인 타인이 보기에는 전혀 인과관계를 모르겠는 만큼 쓸데없는 걱정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꼬리를 물기 시작한 생각에서 빠져나오기란 단순히 고민 상담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일을 인력으로 막는 건 그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말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강한 생존능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거꾸로 혼자서 마구 자라나는 생각들을 주체하지 못해 망하기도 한다.


오롯이 혼자 남게 된 여행, 생각과 생각의 향연

주인공은 조앤 스쿠다모어, 중년의 여성으로 작은 시골의 변호사인 로드니와 결혼했다. 자식들도 이미 장성해서 결혼까지 마친 상태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생각만큼 순탄치 않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순탄치 않은 것일뿐, 조앤이 보기에는 별 무리 없는 가정생활이다. 오히려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한 하나의 가정을 지금껏 유지하고 내조하는 데 있어서 조앤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대견할 뿐이다. 그러던 중 막내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딸이 살고 있는 바그다드로 혼자 떠나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예기치 않게 사막 한가운데 홀로 고립된다. 홀로 남은 그녀에게 남은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념뿐이다. 지나가는 듯한 말들로 그녀를 조금은 뜨끔하게 만들었던 남편과 딸들의 차가운 행동, 그리고 남편 곁에 남아 계속 신경쓰이게 만들었던 어떤 여자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조앤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그녀는 일어나서 아스피린을 세 알 먹고 다시 누웠다.

눈을 감을 때마다 플랫폼에서 그녀를 등지고 멀어져가던 로드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견딜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로드니가 도와주리라 기대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떠나버렸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 혼자 남았구나. 난 외톨이야. 조앤은 생각했다.

녀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난 외톨이야!" 그녀가 외쳤다.

p.78

진실을 구경할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고고하고 우아하며 완벽한,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고 자부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착각해왔던' 조앤은 사막 한가운데서 밥을 먹고 책을 읽다가도 생각의 꼬리를 잇는데 집중하게 된다. 무심한 듯 차갑게 건드렸던 남편과 가족들의 문장이 한꺼번에 조앤에게 다가오고, 조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한 신경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철저하게 믿어왔던 나의 세계가 무너지려고 하는 순간 만났던 어느 중년의 부인인 '사샤'와 대화하며 그녀는 무언가 자신 안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마구잡이로 털어놓은 조앤의 속내는 그동안 그녀가 위선과 가증으로 구축해왔던 세계를 한꺼번에 허물어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 그녀는 말하겠다고 생각했다. 난 바보이고 실패한 인간이에요. 당신의 지혜로, 당신의 다정함으로 내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줘요.

p. 224

스스로 변화를 감지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까지 한 상황에서, 그녀는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 영국에 무사히 귀환하게 된다. 갈피를 못잡고 새로운 자신을 보여주기로 마음 먹은 조앤은 딸인 에이버릴과 남편 로드니를 다시금 만나게 되지만, 가족들과 다시 조우하게 된 조앤에게 남은 것은 고통스러웠던 사막 한가운데서의 기억들을 그저 없었던 일처럼 금세 잊어버리는 일.

정말 공포스러운 것은, 이야기가 결말로 치닫을수록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조앤의 모습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며 독자마저 기만한다는 점이다.

가장 무서운 건 일상에 젖어드는 일

조앤은 '아주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바그다드에 다녀오는 길에 폭우를 만나 사막에 갇혀있던 그 며칠의 시간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말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버린다. 소설의 중심이 되었던 조앤의 '사념'은 결말로 갈수록 점차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도 그 이유다(어쩌면 조잘조잘 짜증스러울 만큼 생각에 생각을 꼬리 물던 초반, 조앤의 목소리가 더 인간적이었다). 가장 자기기만적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도착하는 것이다.

조앤의 양미간이 펴졌다. "저 의자 쿠션은 너무 오래돼 색이 바랬어요. 새로 갈아야겠어요." 조앤이 말했다.

로드니는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응하려다가 참았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쿠션은 색이 바랬다.

(...)

"휴가는 끝났어." 로드니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조앤이 그를 향해 몸을 홱 돌렸다.

"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로드니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그녀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휴가는 끝났어'라고 하지 않았어요? 졸다가 꿈이라도 꿨어요? 애들이 개학이라도 했나봐요."

"맞아, 꿈꿨나봐." 로드니가 말했다.

p.259

메리 웨스트매콧이자 애거사 크리스티

책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서정소설이다. 당시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스스로 잠적 생활을 계속해오던 애거사 크리스티가 해당 시기에 낸 6편의 장편소설을 내게 되고, 그 일은 이후 약 50년간 비밀로 부쳐지게 된다. 물론 필명은 자신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미지나 문체 면에서 혼동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배려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별다른 사건이나 인물들의 '꼬임'이 많지는 않지만, 한 인물의 생각과 생각들을 통해 전개되는 심리적 압박감은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만큼 스릴있다. 서정소설이지만 동시에 스릴러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난 혼자가 아니에요. 난 혼자가 아니라고요. 내겐 당신이 있잖아요."

"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로드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알았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p.261


 

* 기타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방식의 소설 전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여타 추리소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조금은 안쓰럽다.

무섭고 복잡한 사건 하나 없이도, 충분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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