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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평점 :
『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장편소설)/ 밝은세상(펴냄)
워낙 더운 지역에 사는지라 어젯밤 열대야에 시달리며 펼친 책이다. 며칠 만에 읽을까? 생각하며 펼쳐들었고 마지막에 범인이 누군지 너무 궁금해서 하룻밤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소설을 덮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책 소개 글처럼 추리소설의 범인을 찾고 끈질기게 추적해가는 단순 스릴러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시대 이슈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여자들은 어두운 밤, 외진 곳 혹은 한적한 장소에서 강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가? 여자들은 두 번 죽는다. 이미 강간 당할 때 한 인생은 끝났고,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두번 째 죽음이다. 때로 세 번, 네 번 죽임을 당하고 또 당하기도 한다. 왜 반항하지 않았나?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었나? 도대체 그 밤에 한적한 곳에 왜 갔느냐는 언론의 무심한 기사 한 줄이 피해자를 죽이고 또 죽인다. '피해자'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너무 조심스러운 말이다. 고인에게 너무 미안한 말이다!! '피해'를 입은 자라고?? 누가 피해를 입고 싶겠는가?
강간 상담 사례를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은 너무나 겁에 질리거나 놀라면 사지가 경직되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싶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제 사례자가 말씀하셨다. 도대체 얼마나 큰 충격이기에?? 당사자가 아니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소설을 읽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주인공이 구타 당하고, 강간 당하고, 마침내 숨이 끊어지는 장면을 읽고 또 읽으며 여성 독자들은 아마 같은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이 당하는 듯한 기분....... 너무 오버한다고? 글쎄, 과연 오버인지? 어디 한두 번 접하는 기사인가? 소녀 뿐 아니라 조두순 같은 사건에서 우리는 심지어 아동에게도 가해하는 인면수심의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다른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어린유아들마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이유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자'이기 때문??
책을 다 읽고 다시 소설의 첫 문장으로 가서야 애도의 눈물이 흘렀다. 주인공의 영혼은 말했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이렇게 비슷한 방식으로 죽었다고.... 미국에서는 이런 죽음을 당한 경우 신원미상의 사망자를 부를 때, 사건이 일어난 장소나 범죄에 사용된 도구를 앞에 붙이고 뒤에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고 한다. 얼마나 끔찍한 짓인가!!!! 이 소설에서는 리버사이드 제인이었다..... 그렇다, 강에서 강간당하고 죽임 당한 신원 미상의 여자 제인....
소녀의 영혼은 죽자마자 분리되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아직 가해자의 행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숨이 끊어져 다행이라고 했다. 소녀의 진짜 이름은 앨리스 리..... 토끼굴을 따라가던 소녀 앨리스와 이름이 같다. 앨리스는 자신의 죽음을 밝히고자 영혼의 모습으로 36세 루비의 삶에 다가간다. 마치 남의 일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죽임 당한 날까지 서술한다.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루비였다.... 루비에게도 상처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한 것이다. 이들은 폭풍우 치는 날 허드슨 강가에서 마주하게 된다. 삶과 죽음 분리된 모습으로....
이렇게 불행한 아이가 있을까 싶을 만큼 아팠다. 이혼 가정에서 엄마와 살아온 앨리스, 이후 집을 나와 잭슨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가지만 성 노리개였을 뿐이다. 친구 태미에게 마음을 기대지만 친구 역시 앨리스를 받아줄 만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뉴욕에서 만난 노아, 혹시 앨리스의 친아빠일까??....... 노아는 앨리스를 보며 잃어버린 딸을 떠올린다.
소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 재클린 부블리츠는 소설을 통해 말한다. 이런 억울한 죽음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고. 더이상 기사에서 소녀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고!!! 이런 억울한 죽음은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바통 넘기듯 던져줄 일이 아니라 당신과 나 우리 세대에서 끊어내야 한다고 강력히 외치는 듯했다. 적어도 그렇게 들렸다...... 내게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아직도 신원미상인 채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한 제인들에게 이제는 당당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 범인은 지극히 평범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