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평점 :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폴 콘티(지음)/ 푸른숲(펴냄)
늘 독특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레이디 가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이자 아티스트 중 한 분이다. 그녀의 삶에도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깊은 트라우마가 있었고 그 치유의 과정이 이 책에 실려있었다. 많은 분들이 트라우마를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크든 작든 본인에게는 정말 하나의 '우주'와 같을 것이다.
레이디 가가의 서문도 저자의 여는 글도 모두 아팠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받아온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남동생, 선청성 희귀질환을 앓던 동생의 자살 이후 저자인 폴 콘티는 자신의 집안에 정신 질환과 자살 내력을 알게 된다. 이런 사건들은 그를 정신과 의사의 길을 가게 한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아홉 살 때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달려오는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겪은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차가 무섭다. 나는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차가 무섭다. 이동 수단인 차가 얼마나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이미 아홉살에 알아버렸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면 아주 가끔 저 길 건너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아홉살의 교통사고 날 미술학원을 갔다 오던 길이었고, 내 옆에 친구 누가 있었는지, 그 날 입었던 반소매의 원피스, 아홉 살 작은 몸으로 차에 부딪혔다가 다시 땅에 쿵 떨어졌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생생히 진술할 수 있다. 잊은 줄 알았는데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놀란다.
하물며 '성폭행'이나 '전쟁'을 겪으신 분들의 트라우마는 어떨까? 감히 가늠할 수나 있을까???
이미 트라우마에 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 지금도 트라우마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왜일까? 이제 누구나 트라우마가 주는 경고에 대해 알고 있다. 그 심각성, 방치하면 할수록 위험하다는 사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나 자신, 타인 혹은 사회적 트라우마, 이런 나 자신과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많은 실용적인 도구에 대해 이 책은 말한다.
트라우마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남기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 토로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그 실체는 보이지 않으며, 조용하고도 음흉하게 작용하는 그 양상만 드러난다. 트라우마는 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서도 스스로 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친 다음 또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고 다시 본래 사람에게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p30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실제 사례들 어린이 사례, 여성, 남성, 노인의 트라우마 등 사례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각 단계별 대처법. 예를 들면, 동기를 들여다본다거나, 충동을 조사하고, 상상 기법을 활용하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등 의사로서의 해법을 제시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특히 흥미롭게 읽은 챕터는 정신 건강 전문가 다린 하이허터와 대담의 형식으로 주고 받은 대화였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이런 전문적인 영역을 줄글로 읽어본 적이 있으나 이해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렇데 인터뷰로 읽으니 눈에 쏙 들어오고 이해가 쉬웠다. 유대인 생존자, 캄보디아 대학살 생존자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우울증과 불안 등의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 안타깝다. 또한 다린 하이허터의 주장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모두가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기에만 급급했지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부분이다.
독일처럼 처벌을 하고 반성을 해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한데 하물며, 친일파 처단을 커녕 남북 이데올로기까지 더하고 거기다 민주주의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죄없는 피를 뿌렸는지?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까지 온몸으로 겪어낸 분들의 트라우마는 누가? 어떻게? 처벌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분들의 상처에는 관심이 없다. 제주 4.3의 생존자분들,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분들께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의 트라우마에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인 정부가 있었던가.....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의문이 든다.

저자는 몸소 트라우마가 인간의 뇌와 마음을 파괴하는 과정을 겪으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글이 살아있다. 생동감 있고 신뢰감이 높았다. 트라우마는 심지어 노화까지 촉진한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 4부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다섯가지 처방을 내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연대였다. 결코 당신이 가진 트라우마의 뿌리는 혼자가 아님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는 메시지라고 나는 느꼈다.
정신건강의 문제,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라면 이 책을 꼭 끌어안아야 한다......나의 한줄평 소감^^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