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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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흐름출판사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의 소설. 어쩌보면 섬뜩한 스토리다. 55층 고틍 타워 유리창을 닦는 남자. 23세 쇼타. 같이 일하던 선배가 추락사로 죽은 후 유리를 닦을 때면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같으면 무서워서 다시는 유리 닦을 생각을 못 할텐데 쇼타는 용감했다. 아니 해야 했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이 명문대를 진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더욱 공감이 갔다.  



오늘도 그는 지상 55층짜리 타워맨션 위에서 5분의 1만큼 내려온 지점에 매달려있다. 고층 유리창닦이 목숨 걸고 하는 직업이다. 연이어 면접을 봤지만 취업채용에서 번번히 탈락되었다. 어느 순간 먼저 취업한 동기들과의 격차가 벌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틈은 점점 넓어지고 마침내 그는 사회를 차단해버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가 보내주는 음식을 간간히 받을 뿐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어느날 창을 닦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친 노부인은 립스틱으로 3706이라고 쓴다.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리는 곤돌라에서 도쿄를 내려다본다. 그는 미사키와 2인 1조가 되어 유리창을 닦는다. 그는 무슨 용기로 3706호를 찾아간걸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노부인은 그를 반긴다. 이상한 의뢰를 하는데 그것은 빌딩 튜리를 닦으며 안을 촬영해오라는 것이었다.  '기록'이라 부르면서.  당연히 불법이었지만 50만 엔이라는 대가는 그를 당장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음날 나카무라와 같은 팀이 되어 작업 현장에 나간다. 



망설이던 그는 좋은 카메라와 장비를 구입한다. 약속한 시간 일주일 후 노부인을 찾아간다. 그의 사진을 보고 노부인은 흡족해한다. 그녀가 권하는 대로 샴페인을 마시며 죽은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일을 가르쳐 준 선배, 로프가 끊어지는 사고로 죽은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노부인은 때론 어린아이 같고 때론 생을 꿰뚫어보는 듯하다. 



'거꾸로 그 사고가 있던 날부터 높은 곳이 괜찮아졌어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게 계속 무서웠는데, 정말로 죽는 것을 보고 나니까 더 이상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지지는 않더라고요. 죽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히 죽는 거니까 오히려 안심이 됐다고나 할까요." ​ 오히려 안심이라는 쇼타.



노부인의 맨션으로 가면서 초콜릿을 사 간다. 그녀는 사진값으로 100만 엔을 내밀었다. 하루 종일 유리창을 닦아도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동은 8500엔. 사진을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그 100배를 받은 셈이다. 그가 찍어다 준 사진을 보며 마치 쇼타도 아는 사람인 양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고 추억을 이야기한다. 독백하듯이 내뱉으며 맥주에 저녁식사까지 차려준다. 거울이 없는 집, 상자만 잔뜩 쌓여있는 집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회사 측에 로프 작업을 하겠다고 말한다. 정말 위험한 작업이라 다들 꺼리는 작업인데 선뜻 하겠다고 하니 회사 쪽에서도 뜨아해한다. 죽은 선배는 끊임없이 쇼타에게 말을 건낸다. "왜 빌딩 안의 녀석들은 밖이 보고 싶은걸까. 밖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에는 다들 밖에 있었기 떄문일까. 안전한 안을 찾아 들어가 비바람을 피할려고 할까. 아니면 이렇게 빌딩에 올라서 밖을 닦을까 하고."



한 조로 작업하던 나카무라에게 도촬 행위를 들키고 마는데 과연 그는 계속할 수 있을까? 스물셋 창문 닦이 노동자와 노부인의 만남. 그 아이러니한 조합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우리는 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부유한 노부인은 쇼타를 통해 바깥세상을 본 것이다. 쇼타 역시 유리창 너머 나와 다른 계급의 삶을 잠시 들여다본다.  그 끈은 닿을 듯 말 듯 결국 툭 끊어지고 만다. 죽은 선배의 독백과 천진한 노부인의 대화가 깊은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다. 



단순 추리물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사회를 들여다보고 격차와 틈에 대해 생각해보게되었다.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의 표지는 차디찬 밤, 우리들의 현실을 의미한다. 저 많은 달은 상승하고픈 청년들의 모습과 희망이 아닐까? 노부인은 쇼타가 가져온 사진들을 상자에 붙여서 거대한 타워와 도로를 만든다. 쇼타는 지금 유리창 안만 바라보고 있지만 상하좌우 다양하게 관통하듯 바라봐야 한다.  유리창 밖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은 부럽기만 하지만 그 실체도 그렇게 아름다울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안 쪽에 있는 사람인가? 밖에 있는 사람인가? 결국 나는 안에도 밖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마음? 늘 저 너머를 꿈꾸며 살아왔다. 이 순간만 이 고비만 넘기면 저너머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 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쇼타와 같은 청년들이 너무도 많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름 우등생으로 성실한 삶을 살았지만 사회는 지금 구조적 모순으로 청년들이 설 자리가 없다. 설령 있다손치더라도 앞으로 청년 하나가 먹여살릴 노인 인구가 몇 명인지 모른다. 55층 창문 유리를 닦으며 로프 하나를 의지한 채 허공에 매달린 쇼타의 모습은 바로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채 피기도 전에 짐부터 지우는 꼴이 된 우리 사회 그 모순 속으로 한걸음 쑥 발을 내딛는 작품이었다. 인생의 후배들, 청년들의 삶이 쇼타가 닦던 유리창처럼 환하고 밝고 투명하기를.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의 도서지원으로 읽고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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