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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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



마거릿 애트우드 1930년대 생 지금 만 80세라고 한다. 나이를 가늠해보는 것은 그가 어떤 배경으로 성장했는지 알면 작품을 대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 이런 편견이^^ 아버지는 곤충학자.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 퀘백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책이 유일한 친구였다고 한다. 거장들의 유년은 어딘가 다르다. 영애의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의 소설은 어딘가 가볍지 않다는 생각과 제목이 주는 큰 무게감에 다소 긴장해서 읽기 시작했었다. 예상외로 소설은 술술 읽혔다. 한 땀 한 땀  각기 다른 단편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결국 한 여인의 삶이라는 하나의 실에  꿰어져 생애 전체의 서사를 수놓았다. 



소설의 시작은 노년의 부부의 식탁 시작된다. 티그는 과도 정부 위원회 지도자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나쁜 소식은 열량이 있고 혈압을 높인다.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 드럼린을 떠올린다. 고양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쁜 소식이 우리에게 닥쳐올 경우에 대비해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티그는 티그리스라는 이름의 약칭이다. 그는 아침에 꼭 나쁜 뉴스를 전하고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다. 《나쁜 소식》이라는 소제목에서 불행한 결말을 예측했다.



화자는 열한 살이었던 해의 여름으로 돌아간다. 뜨개질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배내옷 입습을 만드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곧 출산 예정이다. 벙어리 공주들이 백조가 된 오빠들을 사람으로 돌려놓기 위해 짜야 했던 동화 속의 쐐기풀 옷처럼. 활동적이던 어머니는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요리책에 잠시 빠져들었다. 10월 여동생이 태어났다. 뚱뚱했던 어머니는 이제 야위었다. 신생아를 돌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 아기가 울어대고 달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열네 살 소녀가 하는 평범한 일상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동생은 네 살이 되었고 어머니는 키우던 햄스터에서 갑상선 병이 옮았다. 어른이 된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많이 늙었다. 동생과는 형제애 이상의 감정을 느기며 성장한다. 두 자매가 나이 차이는 많아도 연대감을 느끼며 잘 지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예민한 사춘기에 갓 태어난 동생을 봐야했던 넬. 한참 호기심 많고 꿈 많은 사춘기 소녀에게 그것을 벌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을 피하려면 대학에 가야했다.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프리랜서 편집자가 된다. 당차게 삶을 꾸려 잘 살아갈 줄 알았던 그녀는 티그와 오나 부부를 만나 원치 않는 관계로 이어진다. 이 부부와의 만남부터 본격 어긋나는 느낌.



넬과 티그는 시골로 간다. 티그가 원해서였다. 티그는 농장을 임대했다. 티그는 결혼으로부터 달아났다. 이것은 작가의 표현이고 뭐지 이 남자? 무책임한 이 태도는! 티그의 아이들은 주말마다 농장에 와서 이층 침대에서 잤다. 넬은 자리를 피했다. 넬은 오나의 편집자였고 둘 사이는 가까워졌다. 오나는 유명세를 누렸고 방송 출연도 했다. 오나는 후속작을 쓰고 싶어 했고 넬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넬은 오나의 계획된 바에 의해 티그와 가까워지고 출판 계획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티그의 아이들이 올 때마다 넬은 혼자 단절감을 느꼈다. 단절감까지 느끼며 왜 사나싶었다. 티그는 땅을 놀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와 아이들은 닭장을 만들었다. 닭이랑 오리를 길렀다. 다리 다친 거위와 공작 두 마리도 생겼다. 식용 소고기를 직접 길러야 한다며 소 네 마리를 샀다. 결국에 흰 말까지 기르게 된다.  아이들은 많이 자랐다. 키도 이제 넬보다 더 컸다. 티그와 오나는 아직도 결별 동의서 작성을 하지 않은 상태. 겨울이 지나고 암컷 공작은  족제비에 물려 죽임을 당하고 양들은 자라서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농장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티그가 무엇을 제안할수록 넬은 점점 더 일이 많아진다. 일만 벌이고 말만 많은 이 남자! 서류 정리 깔끔하게 안 해주는 오나는 어떻고! 오나는 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고 만다. 어이없는 타이밍에 실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모양 좋게 잘 썰어 담아놓은 과일 접시를 받아든 기분이었다.  한 여인의 삶 그  조각들은 저다마 다른 색깔로 썰어져 나왔고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묘사력은 대단했다. 그녀만의 비유법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내 아기가 아니잖아요. 내가 낳은 게 아니에요. 어머니가 낳으셨잖아요.' 어머니는 넬의 뺨을 때렸다. 원치도 않는 일을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장녀들을 떠올려보자. 장녀는 어머니의 배가 불렀다 꺼지는 것을 수없이 봐야 했다. 줄줄이 태어나는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어머니가 일을 가야 겨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서사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수없이 되풀이되었었다. 태어나자마자 무언가 책임져야 했던 그녀들. 자신의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가정의 살림 밑천으로 살았다. 남의집 식모나 공장노동자로 일하며 동생들의 학비를 벌고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일찍 시집을 가야 했다. 아니 가줘야 했다. 현실은 시집가서도 또다시 되풀이되었다. 장녀들은 남의 인생을 살아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서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1930년대 태어난 작가가 쓴 문학에도 1990년에 태어난 여성 소설가의 작품에도 큰 변화는 없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그렇게 흘러왔다. 이제는 멈췄으면 한다. 단지 여성뿐만이 아니다. 장애와 비장애, 계층 간의 차별 등 다양한 차별에 과감히 맞설 때다.  저자가 말하는 '혼란'의 키워드를 내 나름의 기준으로 생각해봤다. 작품 전체를 읽는 동안 불편했던 무질서함. 주인공 넬은 본인 나름으로 주체적이었으나 내가 보기에 참으로 답답한 연민의 감정이 든다. 결혼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직업을 구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삶의 끝이 결국 한 남자의 여자. 그것도 법적 아내가 있는 애가 딸린 남자의 도구적 삶으로 느껴져 답답했다.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라는데 어느 부분일까? 통속적인 관심으로 읽었는데 결국 여성이라는 서사 전체가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자 우리 여성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책 속의 수려한 문장들 중 여성들이 잊지 알았으면 하는 문장이 갑자기 하나 떠오른다. "내가 왜 해야 해요?" 불합리, 불평등, 부도덕, 불신, 불평 앞에서 한 번쯤 반기를 들어보라. 내가 왜 해야 하냐고!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냐고 물어보라! 나 자신에게도 끝없이 질문을 던져본다.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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