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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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금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맨 처음 만난 작품이 《지하로부터의 수기》였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지루하다, 어렵다, 이해가 안된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로 놀라웠다. 주절주절 한두 페이지에 걸친 긴 독백과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쩜 그리 나 같은지? 감히 말하건대 나는 정말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사람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준 충격 그 불멸의 대작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번 작품은 세 번째 작품이다. 그의 첫 책에서 워낙 강렬한 첫 만남을 했기에 만일 이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라면 첫인상이 좋았으니 갈수록 더 실망할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을 어떡해! 도스토예프스키 앓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 노름꾼》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기나긴 유형 생활을 하고 돌아와 쓴 첫 번째 작품이다. 26일 만의 속성 탈고로 비난받는 면도 있다. 등장인물의 선이 매끄럽지 않다는 둥.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이미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룰레텐부르크'라는 가상의 도시이다. 어쩐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학기행을 가보고 싶을 정도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워낙 무게감 있게 소설을 전개해 나가다 보니 모든 게 진실 같다. 메인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나 1인칭 화자(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장군(자고란스키)의 가정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독일을 여행 중이다 . 하룻밤 자는데 꽤 비싼 호텔을 예약했다. 장군은 나에게 온갖 심부름을 시킨다.  나는 장교의 양녀인 뽈리나를 사랑하고 있다. 근데  뽈리나는 왜 이렇게 '돈 ' '돈' 하는걸까? 소설 초반에서는 아! 물질에 노예가 된 인간상을 보여주는 건가 생각했다. 한편 자고란스키 장군은 프랑스 젊은 여인 블랑슈를 사랑한다. 사치스러운 그녀를 사귀면서 자고란스키의 빚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괜찮다. 왜? 그에겐 막대한 유산을 물려줄 할머니가 있다.




알렉세이는 침착하게 도박판을 관찰한다. 막상 도박장에 들어섰을 때 모든 탐욕과 추악함이 왠지 더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는 도박판에 앉은 사람들을 심오하게 관찰한다. 참으로 도스토예프스키답다. 그의 입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한다. 도박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데 하나는 신사적인 도박, 하나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도박이다. 알렉세이는 사랑하는 뽈리나를 위해 도박을 한다. 뽈리나는 말한다. "나는 한 판의 룰렛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라고... 그는 뽈리나를 정말로 사랑한다. 그러나 뽈리나는 그가 안중에도 없다. 그가 사랑을 표현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철저히 그를 무시할 뿐이다. 아!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극도로 업신여김 당하면서도,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도 즐거움이라니! 어쩜 이리도 사랑에 서투르단 말인가!




장군은 하루가 멀다하고 할머니가 혹시나 돌아가신건 아닌지 하는 희망을 걸며 전보를 친다. 어서 할머니가 죽고 유산으로 블랑슈 양과 행복한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책의 1/3지점에서 나는 그야말로 빵터졌다.  할머니가 등장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으며 킥킥 웃다니! 누가 보면 웃는 내 모습이 의아할지도. 뭐 하여튼 할머니 대사 정말 명대사다! "내가 왔다! 전보 대신에 말이야!  왜, 날 기다렸던 게 아니냐?" 장군은 거의 실신 직전이다. 어서 유산 상속받기만을 기다리던 블랑슈 양과 프랑스인 드 그리외는 식은땀 뻘뻘 흘리며 할머니와 대면한다. 실로 한 방 먹은 분위기.




게다가 할머니는 도박판에 뛰어든다. 의자에 시중들어주는 하인을 대동한 채로 긴 시간을 도박판에 앉아있다니 그것도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성격으로 판을 좌지우지하면서. 처음에는 돈을 좀 따는 듯하지만 도박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겠는가? 날이 갈수록 많은 돈을 잃고 몰락해간다. 장군은 할머니가 파산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에게 할머니를 말려달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급기야는 경찰을 부르겠다며 할머니에게 겁을 주기도 하고 난동을 부리지만 할머니를 막을 수 없다.  75세 노인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도박판에 매달려있으니 이 신기한 광경에 구경꾼이 몰리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블랑슈는 애교를 떨며 줄타기를 하고 드 그리외도 적절히 할머니의 비위를 맞춘다.




책의 후반부는 그의 수기 형식이다. 블랑슈 양은 떠나버린다. 장군은 거의 넋이 나간 채로 알렉세이에게 그녀를 찾아보라고 애원한다. 할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어 고리대금업자에게 노자를 빌려 모스크바로 떠난다. 알렉세이는 도박장으로 간다. 도박은 마치 그의 운명을 휘몰아치는 듯했다. 그는 꽤 거금을 만질 수 있었고 뽈리나에게 가지만 차갑게 거절당한다. 이때 블랑슈가 제안을 한다. 자신과 함께 파리로 떠나자고. 파리에서의 생활은 교활한 블랑슈에게 이용만 당한다. 결국 그는 도박 빚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된다. 떠나온 지 1년 8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곳에서 미스터 에이슬리를 만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의 삶은 자신이 가졌던 훌륭한 인상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절실한 희망이란 고작 홀수와 짝수, 검은색과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 열두 숫자들이냐고! 그리고 한 가지더! 그녀가 사랑한 것은 알렉세이 당신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렉세이나 할머니의 입을 통해 유럽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특히 프랑스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프랑스인이란 천성적으로 다정한 경우는 드물다. 다만, 계산속에서 다정히 군다 'p80  또한 '그들은 가장 비열하고 속이 빈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라고. 할머니의 시원시원한 행동과 대사는 어린 아이마냥 마구잡이였지만 통쾌한 면이 있었다. 




블랑슈 양이나 드 그리외 같은 '기회주의자'이며 이기적인 인물들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들의 행동. 프랑스인 귀족 드 그리에와 영국 신사 에이즐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뽈리나.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알렉세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이것이 진정 지옥임을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지옥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 '도박'이라는 지옥과 '사랑'이라는 지옥. 동시에 두 지옥에서 한 남자가 희망이란 고작 홀수냐, 짝수냐, 도박판에 운명을 맡긴 채 자기 합리화의 늪에 빠지는 몰락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컷 비웃을 수도 없다. 알렉세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으므로.




예측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나 한때, 한 방의 심리가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그가 그토록 싸워야 했던 것은 뭘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매번 내게 묻는다. "이 불쌍한 인간아! 도대체 어떻게 살 거냐고?"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나를 비웃는다. "이 멍청한 것아! 내가 책에서 그렇지 보여주지 않았느냐"라면서. 그래, 도박은 현실도피이며 환상을 쫓는 몽환적인 우리들의 무의식이다. 나 역시 현실에서 도망쳐 책 속으로 숨어들지 않았나? 참으로 비겁한 모습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토록 짜릿한 지옥으로 나를 내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렉세이가 그러했듯이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으로 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바짝바짝 목이 마른다. 아! 도스토예프스키!




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렇게 나는 1백70굴덴만 호주머니에 넣은 채 알렉세이처럼 걸어보고 싶다. 슐란겐베르크 어딘가를....





네이버 카페 리딩투데이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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