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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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꿈

표도르 도스토예프스끼 








150년이나 지났지만 한결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다. 지난번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채 가시지 않은 충격과 감동이 『아저씨의 꿈』을 통해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끝도 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지니! 탐욕이란 죄악인가? 비난받아야 할 대상인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선한 것은 무엇이고 악한 것은 무엇인가? 선과 악의 기준을 누가 정하나? 외적인 아름다움과 물질적 풍요가 전부인양 내 몬 것은 누구인가?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여주인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몸부림은 가히 눈물겨웠다. 이 또한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자아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의 시작은 '모르다소프 시' (벌써 이름부터 뭔가 과장되고 허풍이 느껴졌다.) 에 사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집에 'K'공작이 머물게 된 데서 시작한다. 우리의 여주인공은 남의 험담을 좋아하는 수다쟁이이다.  본성에 충실하며 그녀의 성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문장이 있었으니 아래에 적어본다.


'그녀에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를 가지고도 경쟁 상대를 때려눕히고,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말살시켜 버리는 수완이 있어서 우리들도 그런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그런 말을 자신이 내뱉었다는 사실을 짐짓 깨닫지도 못하는 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제스처는 아시다시피 최상류 사회의 것이다.' 라는 부분이다.



'K'공작은 누구인가? 4천 명의 농노를 거느린 지주이고, 좋은 가문의 일가친척을 많이 가지고 있어 그가 원하기만 하면 이 지방 도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편이면서도, 그 부유한 영지에서 마치 은둔자처럼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젊은 시절 공작은 호화스러운 사회에서 재미있고 멋진 나날을 보냈다. 하루의 반나절을 자신의 화장실에서 몸치장하는 데 보낸다. 소문에 의하면 공작의 정신 상태는 이상하고 기억력이 없고 늙은이에 불과했다.  




연인이었던 가난한 가정교사를 잊지 못하는 지나. 그녀의 연인이었던 그는 지금 폐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는 스물세 살이나 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 병중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과의 묘한 관계가 온 도시에 소문이 나서이기도 하다. 지나의 신랑감으로 손색이 없으려면 적어도 막대한 영지를 가지고 있는 공작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지나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많은 장면에 그녀의 아름다움이 묘사되어 있다. 엄마는 지나를 꼬드겨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선한 일인양 온갖 미사여구로 공작과의 결혼을 설득한다. 거의 세뇌에 가까운 노력이다. 'K' 공작 역시 지나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다. 만일 이들의 결혼이 이루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각자 원하는 것을 얻고 행복했을까?




결국 지나는 엄마의 설득에 못 이기는 것인가? 지나는 'K'공작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막대한 유산과 공작부인이라는 작위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그는 대단한 부자이고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엿들은 모르글라꼬프. 그는 아침 일찍 공작을 찾아가 모든 게 꿈이라고 간악한 모녀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말해준다. 소눔을 듣고 달려온 까마귀 같은 여인들. 과연 마리야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가? 맨 뒤에는 우리가 바라는 권선징악이 아닌 반전이 있다. 내용 스포는 여기까지.




'살롱'은 어떤 곳인가? 파티가 열리고 벽난로와 피아노와 소파가 그림처럼 진열돼있다.  탐욕의 선이 뒤엉켜 맞물린 곳. 공작이 등장하자 안나 바씰리예브나와 나스따시야 바실리예브나 등은 공작의 환심을 끌고 싶었다. 온갖 교태로 공작의 비위를 맞추는 그들에게 침을 뱉어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오 우리의 공작님." 하고 같이 부르고 싶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공작이 한 마디하기라도 하면 "공작님. 공작님." 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리액션을 취하는 그녀들. 마치 어디선가 본 듯이 낯익다.





아저씨는 'K' 공작을 말하며, 꿈은 'K 공작이 순수하고 어린 지나에게 청혼한 것이 한낱 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읽기 불편한 긴 이름이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미를 극대화 시켜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생활인이기보다는 의식의  흐름, 자신만의 신념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도스토옙프스키의 소설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말했듯이 인간 영혼의 모든 심연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지하생활자'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등이 너무나 싫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들이 밉지가 않다. 오히려 연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내 안에 숨은 욕망, 광기, 도덕, 타락 같은 감정들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캐릭터는 마치 닿지 않는 어딘가에 또렷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한 명 한 명 개성이 뚜렷하다. 




'주인공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라는 인물 설정을 보라.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 설정이다. 현실 욕망에 충실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도덕쯤이야 쉽게 내팽개치는 그러면서도 딸을 공작에게 시집보내려는 장면에서는 희극적인 면을 연출한다. 고전을 읽다가 빵 터져서 웃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녀는 어찌나 능수능란한지 '텁석부리','대폿집 주인', '술통 검사원'이라 부르던 인물이 그녀의 입에서는 하루아침에 '전통적' '순수한 러시아인'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공작 캐릭터 역시 책을 덮어도 눈에 선할 만큼 또렷이 묘사되어 있다. 머릿카르 콧수염, 구레나룻, 의치, 한쪽 눈, 한쪽 다리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이 캐릭터 영원히 잊지 못할 듯 하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주인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토록 싫어하는 '안나 니꼴라예브나'와 '나딸리야 드미뜨리에브나' 등은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러 마리야의 집에 들이닥쳤다. 막상 결혼이 성사된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리야 앞에서 축하한다며 서로 그녀에게 먼저 축하 키스를 하려는 장면은 정말이지 내가 본 희극 중 가장 웃프다. 그녀의 손을 들어주고 기뻐하다가 다시 공작이 '청혼은 사실이 아니며 꿈을 꿨다'라고 하자 이번에는 또 공작의 편에서 박수를 친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그들 시기와 질투로 뒤범벅된 이 인물들 정말 기막히다. 




초대되지 못한 화풀이로 느닷없이 들이닥친 소피야 빼뜨로브나 까르뿌히나는 또 어떤가? 나는 이 인물이 소위 다 된 판을 망쳤을 때 모종의 쾌감을 느꼈다. 그녀의 적나라한 가발림으로 마리야는 등골이 쭈뼛서는 망신을 당했으나 오히려 당당하다. 동료이고 같은 밭에서 자란 딸기 같은 여인들은 연대하여 소피야를 쫓아낸다. 빠벨 알렉산드로브비치(모즈글랴꼬프)는 어떤가? 젊고 얼굴도 흉하지 않고, 멋쟁이인 데다가 저당 잡히지 않은 농노를 150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며 더군다나 빼째르부르그 출신이다. 농노를 거느리면서 진보 사상을 운운하는 이 인물은 도대체 뭐지? 지나를 사랑하여 청혼하지만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지나를 마음에 품고 여론이 지나의 약혼남인 것처럼 몰아지자 그는 은근 연인으로 불리는 것을 즐긴다. 왜? 지나는 이 도시 최고의 미녀이자 나름 괜찮은 집안의 외동딸이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마리야의 남편 아파나시 마뜨베이치는 어떤가? 이 남자는 번듯한 외모에 근엄하고 엄격하지만 정작 그래야 할 경우에 이르러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해, 어리벙벙한 표정을 한다. 그녀가 남편을 곁에 두고 있는 이유는 다만 그가 직장을 갖고 봉급을 받기 때문이었지만 그마저 수입이 없어지자 시골로 추방 처분이 내려졌다. 그는 하루에 세 파례 차를 마시고, 목욕탕에 들어가기를 무척 좋아했다. 마리야가 시골로 그를 데리러 갔을 때 아내에게 '어머님'이라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은 서글픈 웃음 코드를 자아냈다. 그 외에 인물 하나하나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이 집안의 하인들이나 공작의 마차를 몰던 마부 캐릭터까지 모두 언급해야 하므로 아마 책속의 독백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이것이 도스또예프스키의 눈에 비친 상류사회의 모습인가? 지방 도시에 '백작'이라는 권세가가 등장하자 여인들은 몸부림을 친다. 자신의 딸을 공작의 눈에 들게 하기 위한 여인들의 치열한 경쟁. 살롱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에피소드. 아이러니하고 적나라한 이 모습은 믿기지 않겠지만 마리야의 '살롱'이라는 좁은 세트장 안에서 하루에 있었던 일이다. 지하생활자의 '지하실'처럼 작고 좁은 공간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우리를 밀실로 초대해 놓고 숨 막히는 공연을 선사한다. 우리는 이 희극의 등장인물을 몹시도 닮았지 않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기적 사실이나 사건, 인물, 이데올로기라는 평론가들의 거창한 이론이나 당대 사회관계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끝없이 나를 부른다. 그는 유리 뚜껑 밑에 놓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의 심리를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진 작가이다. '아저씨의 꿈'은 끝났지만 다음 작품으로 수일 내에 또 만날 것이다. 다음에 그의 작품을 만날 땐 맨발로 뛰어나와 반길 것이다.











 [네이버 카페 리딩투데이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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